최근 중국이 우리와 가까운 관계를 맺게 되면서 중국과 관련된 서적이 연일 출간되고 있다. 대형서점에서는 아예 중국코너를 설치해 놓았을 정도이다. 그러나 쏟아지는 책의 홍수 속에서 진정 수준 있는 책을 골라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특히 학술이론분야의 경우 제목은 그럴듯 해도 기껏해야 한때 풍미했던 「마렬주의：마르크스 레닌주의）」의 재탕이기 십상이다. 중국책에 대한 필자의 이러한 부당한 편견은 북경대 천핑웬（진 평원）교수가 지은 「중국소설서사학」（이종민 옮김․살림출판사간）을 보고 단숨에 깨졌다. 천교수는 현재 대륙에서 촉망받는 신예학자중 하나로 「중국소설사」등 비중 있는 책을 이미 여러 권 낸 바 있다.

그의 「중국소설서사학」은 선배학자들이 이룩해 놓은 중국소설연구의 이론수준 을 훨씬 상회한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왜 소설을 이야기하고자 하는가. 근대소설의 형성은 자본주의 성립이후 산업화의 추세와 명백한 상관이 있기 때문에 소설의 발달 문제는 은근히 문명의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로까지 이어진다.

중국의 전통소설에 대한 서구적 편견은 바로 이러한 견지에서 성립된다. １９５０년대에 하버드대학의 한 동양학교수가 규정한 중국소설의 낙후성은 내용상 유기적 통일성이 결여되어 있고 형식․구조상 정합적이지 못하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아울러 그는 중 국소설이 선정주의를 능사로 하는 통속소설의 성향이 짙은 것으로 파악했다. 서구소설을 기준으로 한 이러한 가치평가가 동아시아 문화에 대한 자신들의 우월감을 배경으로 한 부당한 논란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이의가 있을 수 없다. 천핑웬교수의 역작은 우리로 하여금 이러한 일방적 편견을 극복하고 중국소설에 대한 새로운 전망을 구축하도록 소중한 시사를 준다.

그는 오늘날의 중국소설을 단순히 근대시기 서양소설의 유 입과 수용의 결과로만 보지 않고 탁월한 전통문학과의 「창조적 합력（합력）」관계로 통찰하고자 한다. 이러한 그의 입장은 편협하지 않을 뿐더러 바흐틴적인 의미에서 「대화적」이기도 하다.

아울러 근대이래 전통소설로부터 현대소설로 탈바꿈한 중국소설의 궤적에 대한 그의 면밀한 탐색은 우리로 하여금 중국소설의 주요 흐름을 쉽사리 장악할 수 있도록 해주는 또 하나의 미덕이다. 소설의 위기， 문학의 위기가 거론되는 이 시점에서 「강한 이야기성」을 지닌 장편소설의 부활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이 책은 이 현상에 대해 납득할 설명을 제공해줄 것이다.
---한국일보 정재서 (이화여대 중문과교수) ( 1995-04-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