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이와나미문고’와 프랑스의 ‘끄세즈문고’. 각각 일본과 프랑스 출판계를 대표하는 장수 문고판 이름이다. 1927년 첫 책을 낸 이와나미문고는 총 5200종을 넘겨 현재도 계속 출간되고 있고, 1941년 시작한 끄세즈문고도 3700권을 넘어섰다.

한국 출판계의 자존심을 걸고 여기에 도전하며, 60∼70년대 전성시대를 이뤘던 문고판 제2의 부흥을 꿈꾸는 출판사들이 있다. ‘책세상문고’ 217권을 낸 책세상(대표 김직승)과 이번에 ‘살림지식총서’ 300호를 낸 살림출판사(대표 심만수)가 바로 그 곳이다. 지식 대중화에 앞장서는 문고판은 이 밖에도 삼성경제연구소의 ‘SERI연구에세이’와 태학출판사의 ‘태학산문선’, 시공사의 ‘시공디스커버리 총서’, 문학과지성사의 ‘스펙트럼 총서‘, 도서출판 창해의 ‘ABC북’ 시리즈 등이 꾸준히 권수를 늘려가고 있다.

당대 문제에 대한 새로운 화두를 제시하겠다며 2000년 ‘한국의 정체성’(탁석산)으로 포문을 연 책세상문고는 ‘우리시대’(117권), ‘고전의 세계’(64번), ‘세계문학’(36권) 분야로 세분화해 시리즈를 이어가고 있다. 특히 최근에 나온 117권 ‘여성의 정체성-어떤 여성이 될 것인가’(이현재)는 여성주의와 철학을 접목한 여성철학을 통해 여성의 정체성을 탐구하는 책으로 호평받고 있다. 책세상문고는 분량이 200쪽 안쪽이고, 정가는 4900원이다.

김광식 책세상 주간은 “책세상문고는 ‘우리의 눈으로 우리 시대를 읽는다’는 기획 의도 아래 동서양 고전부터 역사·민족·테러·생명·통일·환경문제 등 우리시대의 첨단 화두까지 망라해 현 사회의 문화적 지형도를 다시 그리는데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책세상문고보다 3년 늦게 시작한 살림지식총서는 2003년 기획 단계부터 국내 필자 200여명을 확보하는 등 야무지게 출발했다. 출범 첫 해 ‘미국의 좌파와 우파’ ‘미국의 정체성’ 등 미국 시리즈 10권을 필두로 모두 70권을 소화했고, 그 후 매년 100권 가까이 펴내는 저력을 보이고 있다.

여기엔 대학 강단을 마다하고 출판계에 뛰어든 살림출판사의 강훈(37) 기획부장과 진형준 홍익대 불문학과 교수, 박치완 한국외국어대 철학과 교수 등 스무 명 남짓한 기획위원, 그리고 280여명의 필자가 땀을 흘렸다. 지금도 50종 이상의 주제가 결정돼 집필과 제작에 여념이 없다.

기획위원 진형준 교수는 “‘세상의 모든 지식을 담는다’는 취지로 시작한 살림지식총서는 좀 더 설명이 자상한 일종의 백과사전”이라며 “지식 사회의 전유물로만 인식되어온 축적된 지식을 쉽게 풀어 일반인도 공유할 수 있도록 한 데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철학, 혁명 같은 고답적 분야부터 스포츠, 영화, 힙합, 살사, 디지털 게임까지 광범한 기획 스펙트럼이 이를 반증한다.

살림출판사 기획팀의 정회엽씨는 “책값이 3300원으로 저렴하고, 모두 국내 필진으로 정파나 취향을 가리지 않고 다양한 분야와 대상에 열린 자세로 임하는 게 성공이라면 성공요인”이라며 “그동안 100만 부 정도 팔려나갔고 점차 증가하고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