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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선악론 (큰글자 살림지식총서 067)
안옥선 지음 | 2013년 3월 15일
브랜드 : 큰글자 살림지식총서
쪽수 : 96 쪽
가격 : 12,000
책크기 : 163*255
ISBN : 978-89-522-2404-0-040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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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지식총서, '큰글자'로 새 옷을 입다!

최근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전개되면서 더불어 노년층 독서인구가 증가하고, 다양한 지적・문화적 욕구 또한 늘고 있는 추세다. 하지만 노안이나 약시・저시력 등의 이유로 독서에 어려움을 겪는 독자들 또한 늘고 있다. 이에 살림출판사의 대표 브랜드인 살림지식총서가 문고판 최초로 제작 및 보급에 나섰다. 큰글자 도서는 노안으로 독서에 어려움을 겪는 어르신들과 시각 장애인들이 책을 읽기 쉽도록 글자 크기를 키운 도서로, 선진국에서는 ‘라지 프린트 에디션’이라는 이름으로 제작되기도 한다.
이 책들은 일반 글자크기인 10포인트(살림지식총서 기준)보다 1.5배 정도 더 큰 약 15포인트의 글자크기로 제작됐다. 큰글자 도서는 현재 출간된 살림지식총서 중 건강, 복지, 고전, 역사, 인문 등 중장년층의 관심이 집중된 분야 중심으로 추가 제작될 예정이며 큰글자 도서의 출간을 염두에 둔 기획도 진행 중이다. 독서 소외 계층을 위한 살림지식총서의 노력은 계속될 예정이다.
[불교에서 말하는 선의 두 가지 특징]
불교 선악관의 독특성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선에 있어서 마음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선(악)이 공空하다고 보는 것이다.
선에 대한 마음의 역할과 관련하여 불교는 세계가 마음에서 비롯된다고 하듯이, 선 또한 마음의 문제라고 본다. 선이 주관적인 것이며 그 객관적 근거가 없다는 점에서 마음의 문제인 것이 아니라, 도덕의 발생, 도덕의 실천, 그리고 도덕의 완성의 중심이 마음에 있다는 의미에서 선은 마음의 문제인 것이다. 예컨대 ‘모든 악행을 끊고 뭇 선을 받들어 행하며 스스로 마음을 청정히 하는 것, 이것이 여러 부처의 가르침이다(諸惡莫作 衆善奉行 自淨其意 是諸佛敎)’라고 칠불통계七佛通戒에도 명시되어 있듯이, 불교윤리의 관건은 마음을 청정히 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마음과 연관되지 않는 선, 마음을 변화의 원천으로 삼아 마음을 그 배양의 토대로 보지 않는 선은 껍데기일 뿐이다.
‘선은 공하다’라는, 얼핏 선문답처럼 보이는 이 개념에 대해 저자는 친절하게 풀어 설명해준다. 불교가 선악을 공하다고 할 때 그것은 선과 악이 없다는 의미에서 공하다는 것이 아니고, 선악은 고정적인 것도 아니며 절대적으로 구분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선악은 연속적이고, 상호규정적이고, 상황의존적이라는 의미에서 선악은 공하다는 뜻인 것이다.

[연속적, 상호규정적, 상황의존적인 선악]
선악이 연속적이라는 것은 선악이 절대적으로 이분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선이 아니면 악이고, 악이 아니면 선인 것은 아니다. 9?11 테러 이후 미국 대통령 부시가 ‘우리 편이 아니면 모두 테러리스트(Either you are with us or you become a terrorist)’라고 말한 것은 선악이분의 단적인 예이다. 그러나 불교적 관점에서 보면 선악은 선이 아니면 악인 것이 아니다. 선악은 이분적인 것이 아니라 연속적으로 연결된 하나이다. 그래서 불교는 절대적 이분에 근거한 폭력,강제,배제의 윤리가 아니라, 평화,자율,포용의 윤리이다.
선악이 상호규정적이라는 것은 선으로 인하여 악이 있고, 악으로 인하여 선이 있다는 말이다. 불교에서는 이를 밝음과 어둠에 비유한다. 선악의 존재방식은 밝음이 어둠으로 인하여 존재하고, 어둠이 밝음으로 인하여 존재하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요컨대 선악은 각각 독립적으로 규정되는 것이 아니다.
선악은 시공간의 제약을 받아 상황 속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선악은 구체적 상황이나 맥락을 떠나서 있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상황에 대한 이해와 고려 없이 특정 행동에 대하여 선하다거나 악하다고 단정적으로 말할 수 없다.
선악이 이처럼 공한 것이라면 절대적 선도, 절대적 악도 있을 수 없다. 그러니 선에 대해 집착할 수도 없고 악을 배제할 수도 없다. 선을 행하되 집착 없이 행하면서도 악을 배타하지 않고 껴안아야 한다. 그래서 악이 선이 되도록 이끌어야 한다. 번뇌를 보리로 치유하고 제도하듯이, 악은 선에 의해서 치유되고 제도 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악이 오면 선으로 제도하라(惡來善度)’고 한다. 악은 단죄의 대상인 것이 아니라 자비의 대상으로서 선 실천의 장소인 것이다. 그것은 자신의 윤리적 역량의 시험대이며 자신을 고양시키는 무대이기도 하다.

[‘선악을 넘어서’ -불교와 니체의 선악관]
이렇듯 선과 악, 즉 도덕이 객관적으로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불교의 인식은 ‘도덕은 객관실재가 아니라 현상에 대한 인간(특정 집단)의 해석’이라고 본 니체의 입장과 상통한다. 전통적으로 주류 도덕철학자들이 이성에 근거하여 선의 구명과 그 정당성의 탐구에 몰두해 온 것과 달리 포스트모더니즘의 선구자 니체는 도덕의 문제를 이성의 문제로 보지 않는다. 그는 선과 악을 절대적,고정적인 것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가변적이고 유동적인 것으로 보고, ‘선과 악은 서로 대립하는 이분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라는 주장을 폈다. 같은 맥락에서 그는 선악이분법을 벗어나라는 의미에서 ‘선악을 넘어서’라고 한다. 이는 선악은 경직된 이원적인 것이 아니며 상호배타적인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경직된) 선악이분법을 전제하는 전통적 도덕관도 넘어서야 할 대상이 되고, 더 나아가서 ‘선악을 넘어서’라는 말은 악조차도 이용하기에 따라서는 미덕일 수 있다, 악도 유용하다는 것, 선과 악은 정도의 문제일 수 있다는 것, 악/악인까지도 포용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니체의 이러한 주장은 불교적 관점에서 바라보는 선악관과 그 맥을 같이 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이러이러한 일은 선행이고 이러이러한 일을 하면 복을 받는다는 식의 절대적인 기준이나 고정관념에 우리는 묶여 있는 것이 아닌지를 돌아보고, 모든 것은 마음에서 비롯되고 마음에 있다는 진리를 다시금 되새겨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프롤로그
선악을 넘어서
선의 능력으로서의 마음
선의 원천으로서의 무탐진치/심청정
선의 표현으로서의 업
선의 구체적 실천지침으로서의 역지사지와 자리이타
선의 구현체로서 ‘선한 성품’
선의 공성: 선악에 대한 집착을 넘어서
세계가 마음에 의해 인도되고 마음에 의해 이끌려 다닌다는 것은 세계가 인간의 마음을 주도한다기보다는 인간의 마음이 세계를 주도함을 말한 것이다. 윤회의 세계가 인간에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인간의 선택에 의한 것이라는 뜻이다. 열반도 마찬가지이다. 열반이 인간으로부터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열반을 선택하지 않은 것이다. 마음에 의해 윤회를 선택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윤회의 세계는 마음에 의한 것이므로, 윤회로부터 벗어나는 열반 또한 마음에 의해 얻어질 수 있다. 열반은 마음 밖에 있지 않으며(心外無佛) 마음을 떠나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마음으로 인하여 윤회도 하고 마음으로 인하여 열반도 한다. 그래서 윤회로부터 벗어나 열반에 이르려는 이는 전적으로 마음에 의존해야 한다. 땅으로 인하여 넘어진 자는 땅으로 인하여 일어나야 하듯이, 마음으로 인하여 넘어진 자는 마음으로 인하여 일어나야 한다. _pp.26~27

이상과 같이 마음, 습관, 성향/행으로도 이해되는 업의 가장 큰 특징은 자기 자신에 의해서 형성된다는 것이다. 신구의 행위로서의 업은 과거로부터 현재를 거쳐 미래에 이르기까지 변화 가능한 것이며, 그 변화의 방향과 내용은 바로 자기 자신에 의해 선택・결정된다. 이런 의미에서 불교의 업 개념은 운명론・숙명론적인 것이 아니다. 신구의 특정 행위의 반복에 의해 형성되는 특정 행위패턴으로서의 습관도 자신이 만들고, 습관에 의한 성향, 성격, 혹은 기질도 자신이 만들며, 성향에 의한 운명 또한 자신이 만들기 때문이다. 자신의 현재적 삶, 자신의 정체성, 자신의 운명의 중심은 자기 자신이다. 불교는 개개인이 다양한 조건-시대・문화・역사・성별 등-의 영향을 받는다고 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러한 조건 속에서 자아가 어떠한 행위를 선택하고 어떠한 방식으로 선택된 행위를 수행하느냐에 따라 자신의 삶이 결정된다고 본다. 불교는 그 무엇보다도 마음의 결단이나 마음씀, 습관, 성향 등으로서의 업을 강조한다. _p.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