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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시
오민석 지음 | 2016년 8월 24일
브랜드 : 살림문학
쪽수 : 252 쪽
가격 : 12,000
책크기 : 140*210
ISBN : 978-89-522-3463-6-03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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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이 아름다워지는
오민석 교수의 매혹하는 시 읽기
매일의 진부함을 깨뜨리는 마법 같은 시의 매혹
일상의 클리셰(clishe, 진부함, 상투성)를 깨뜨리는 오민석 교수의 매혹적인 시 읽기. 저자는 2015년 10월부터 한 일간지에 “시가 있는 아침”이라는 코너를 거의 매일 연재해오고 있다. 이 가운데 일부를 인생, 사랑, 풍경이라는 큰 주제로 묶고 새로운 해설을 더하여 펴낸 것이 이 책 『아침 시: 나를 깨우는 매일 오 분』이다.
시를 읽지 않는 시대에 독자들이 보내온 뜨거운 반응은 정말 뜻밖이었다. 산골 벽지에서 손편지들이 날아왔고, 먼 해외에서 모국어의 매혹에 열광하는 서신들이 왔다. 이에 힘입어 저자는 중앙 문단에서 소외된 산간벽지 가난한 시인들과 병마를 딛고 일어선 무명 시인의 아름다운 시를 소개하는 용기와 보람을 얻을 수 있었다.
이 팍팍한 시대에 시와 시인을 향한 독자들의 이러한 반향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매일같이 반복되는 지난한 생계, 무미건조하고 얄팍한 인간관계, 한없이 가벼운 삶의 무게, 이 모두를 깨뜨려줄 어떤 ‘마법’에 대한 갈망이 우리 가슴속에 응어리져 있기 때문 아닐까?
『아침 시』는 그 뜨거운 갈증에 신선한 새벽 기운을, 청명한 아침 햇살을, 산들대는 첫 바람을 쏟아 붓는다. 이 책에서 우리는 아기의 첫 잠을 깨우는 엄마의 감미로운 손길 같은 시들을 만난다. 갓 세상에 태어나 날마다 새롭고 경이로운 것들을 만나는 아기처럼 우리는 아침마다 시에 매혹당한다.

삶, 지리멸렬에서 튀어 오르기
어떤 시인은 삶을 “지리멸렬”(황지우)이라 일컫고 또 어떤 시인은 “지옥”(랭보)이라 부른다. 우리는 툭하면 현실의 한계에 절망하고, 인식의 감옥에 좌절하며, 유한한 운명의 옥죔에 숨이 막힌다. 시인은, 시는 이 존재의 나약함과 초라함을 한순간에 돌파해버린다.

명경으로 누운 호수
튀어 오르는 단치 한 마리
나도 처음 인간으로 지상에 올 때
그랬으리
_ 강형철, 「재생」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최초의 신선함이 시간의 더께가 쌓임에 따라 완전히 사라진 상태, 그것이 죽음이다. 우리가 매번 처음의 순간을 기억하고 늘 다시 “튀어 오르는” 것은 죽음을 지연시키기 위한 몸부림이다. 이 환생의 반복이 우리 삶의 물결이다. 그 위에서 다시 튀어 오를 때마다 우리는 새로운 존재다.
티 없이 맑은 호수 위로 어느 한순간 온몸으로 튀어 오르는 물고기의 존재 선언. 우리는 모두 그렇게 지상에 왔다. 세월의 더께가 우리의 몸과 마음에 차곡차곡 쌓이는 동안, 우리는 저 푸르른 시작에서 얼마나 멀어지는가. 그러나 매 순간 번개처럼 튀어 올라 다시 시작을 선언(“재생”)하는 삶은 또한 얼마나 아름다운가. 시간의 칼날은 시작의 푸른 힘줄 대신 권태의 실, 죽음의 실을 짠다. 죽음을 거부할 수 없지만, 처음처럼 늘 다시 튀어 오르는 생은 삶/죽음의 경계를 지운다. 그 혼종성(混種性)이 우리 삶의 두께고 깊이다. 그러므로 의연하게 살고 싶은 자들이여, 늘 다시 태어나자. 우리는 “파괴될지언정 패배하지 않는다.”(헤밍웨이)
_ 본문 189쪽

인생, 사랑 그리고 풍경
이 책에 실린 시와 해설은 인생, 사랑, 풍경이라는 세 가지 범주로 묶여 있다. 하지만 이는 편의에 따른 구분일 뿐, 우리 삶에서 이 세 가지가 별개의 요소로 각각 성립하는 것은 아니다. 인생은 사랑의 열병을 앓고 사랑은 풍경에 녹아들고 풍경은 인생을 조각해낸다. 독자들은 어떤 시에서든 인생을 앓고, 사랑을 살고, 풍경에 매료될 수 있다.

어떤 항구의 풍경이 그림엽서 속에 잡히고
봄밤을 실어오는 산그늘에 묻혀
어둠이 어느새 마을을 덮어주는 내내
한 사람을 그리워한다
_ 고운기, 「봄의 노래」

계절은 서사(敍事)를 낳고 이야기들은 우리 몸에 기록된다. 우리 몸은 계절의 책이다. 푸른 “스무 살”과 “어떤 항구의 풍경” “봄밤을 실어오는 산그늘”의 이야기가 우리 몸에 나이테처럼 새겨져 있다. 그 나이테의 중심엔 늘 ‘그리운 사람’이 있다. 사람을 중심으로 퍼져가는 동심원들이 해마다 는다. 올해도 봄은 “그냥 가는 게 아니다”. 동심원 하나가 늘었다.
_ 본문 169쪽

어쩌면 시는 ‘매일 아침 오 분’이라는 시간에 우리로 하여금 ‘세상만사’를 ‘휘저어’ 새로운 인생과 사랑과 풍경을 빚어내도록 이끄는지 모른다. 그 찰나가 우리에게 살아갈 힘을 준다.

단어들이 모여 풍경을 만드는 모습은 얼마나 매혹적인가. 언어는 실재(the Real) 위를 넘나들며 또 다른 실재를 만든다. 매혹은 이 두 개의 실재, 이중주(二重奏) 사이에 존재한다. 시여, 영원하라.
자연은 이처럼 아름다워서 숭어, 낡은 배, 바람, 노을, 강, 청둥오리로 이어지다가, 마침내 “하늘에 별이, 튀밥처럼” 터지는 풍경을 연출한다. 워즈워스는 시를 “강력한 감정의 자연스러운 범람”이라고 했다. 자연의 건반들이 흥을 못 이겨 “몹시” 출렁일 때, 별이 터지듯 시가 올 때가 있다. 사람의 마을에서 사랑에 굶주릴 때, 잠깐이라도 “노을이 벌겋게 내린 / 강”에 가서 “그물코”를 “뚝뚝” 끊는 숭어를 만나고 올 일이다.
_ 본문 169쪽

그러니 저자의 표현에 빗대어, 사람의 마을에서 사랑에 굶주릴 때 우리는 시를 읽어야만 할 일이다. 『아침 시』는 아름다운 시와 저자의 농익은 해설과 독자의 마음이 한데 어우러지는 매혹의 울림이 날마다 ‘나’를 새롭게 하는, 그리하여 ‘나’를 매일매일 살아 있게 하는 “진경(珍景)” 속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아침을 여는 매혹의 시

제1부 인생
제발 개구리처럼 앉지 말고 여왕처럼 앉아라 / 시(詩) / 스승의 사랑법 / 슬픔에게 무릎을 꿇다 / 겨울밤 / 동물의 왕국 1 / 미카엘라 / 난독증(難讀症) / 옛 시인의 목소리 / 오만 원 / 경청 / 생일 / 검은 당나귀 / 면벽 23 / 부지깽이 / 늙은 꽃 / 물결 표시 / 지옥에서 보낸 한 철 / 황무지 / 목계(木鷄) / 디딤돌 / 한 번의 우연적 만남과 두 번의 필연적 만남 /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 이렇게나 많은 새들이 / 슬픈 편대 / Don’t Cry 베이비 박스 / 소금 / 탁발 / 풀을 깎다 / 문 / 용접 / 난경難境 읽는 밤・2 / 밥 / 보살핌 / 희망은 외양간의 지푸라기처럼

제2부 사랑
풍문 / 격렬비열도 / 소네트 116 / 첫사랑 / 나의 손이 꽃잎을 떨어낼 수 있다면 / 아늑 / 초록 도화선을 통해 꽃을 몰아가는 힘이 / 새가, 날아간다 / 바람의 기원 / 할렘 강 환상곡 / 눈물이, 부질없는 눈물이 / 남국에서 / 집시 / 합장(合葬) / 나비족 / 눈이 오시네 / 젖지 않는 물 / 푸른 곰팡이 / 오빠가 되고 싶다 / 아이의 질문에 답하기 / 봄의 노래

제3부 풍경
노마드 / 봄이 올 때까지는 / 난초 / 목련꽃 우화 /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 진경(珍景) / 재생 / 미라보 다리 / 바다의 미풍 / 해 / 한 줌의 도덕 / 죽편(竹篇) 1 / 바티칸 비너스 / 눈가루 / 뻐꾸기 울음 / 강매역江梅驛 / 산수유꽃 / 이니스프리 호도(湖島) / 워낭 / 산숙(山宿) / 삼랑진역 / 나는 아침에게 젖을 물린다 / 옛집 마당에 꽃피다 / 아이들 / 파문 / 바위사리 / 매 / 두 개의 우산 / 숲 / 초사흘 / 앙코르와트 가는 길
스승의 사랑법

주대야
술 마이 먹찌 마라라 제발
몸도 안 조타 카민서
자아, 한잔 바다라

김주대, 『사랑을 기억하는 방식』, 2014

스승이 사라진 시대에 “자아, 한잔 바다라”라고 내미는 스승의 술잔은 말 그대로 ‘바다’다. 그 바다에서 퐁당거리는 제자는 외롭지 않다. 시간이 흘러 제자가 스승의 나이가 되면, 스승들은 사라지고 없다. 그때 바다가 되어 어린 제자들을 품는 자가 되지 못하면 얼마나 외로울까.
현대판 문인화로 요즘 이름을 날리고 있는 김주대의 시다. 이 시에서 김주대 시인과 대작하고 있는 사람은 그의 스승, 강우식 시인이다. 텍스트에 드러나 있지 않으니 그가 누구든 상관없다. 사랑은 이렇게 좌충우돌이고 모순이어서 늘 문제를 일으킨다. 문제없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사랑은 위험을 껴안고 뒹군다. 아무도 그 미래를 모른다. 그래서 더 해볼 만한 거다. 안전한 섬에서 ‘정주(定住)’를 꾀하는 자들은 정작 봐야 할 것을 보지 못한다.
창조는 규범(norm)을 깨뜨리는 데서 시작된다. 이 시는 문어(文語)의 문법을 해체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술 한잔 받는 일이 “바다”로 커진다. 세계는 놀랍게도 항상 언어로 재구성된다. 거짓말 같지만, 상징계 안에서 물(物) 자체는 없다.
_ 22~23쪽

아늑

쫓겨 온 곳은 아늑했지, 폭설 쏟아지던 밤
깜깜해서 더 절실했던 우리가
어린아이 이마 짚으며 살던 해안(海岸) 단칸방
코앞까지 밀려온 파도에 겁먹은 당신과
이불을 뒤집어쓰고 속삭이던,
함께 있어 좋았던 그런 쓸쓸한 아늑
아늑이 당신의 늑골 어느 안쪽일 거란 생각에
이름 모를 따뜻한 나라가
아늑인 것 같고, 혹은 아득이라는 곳에서
더 멀고 깊은 곳이 아늑일 것 같은데
갑골에도 지도에도 없는 아늑이라는 지명이
꼭 있을 것 같아
도망 온 사람들 모두가
아늑에 산다는, 그런 말이 있어도 좋을 것 같았던
당신의 갈비뼈 사이로 폭폭 폭설이 내리고
눈이 쌓일수록 털실로 아늑을 짜
아이에게 입히던
그런 내밀이 전부였던 시절
당신과 내가 고요히 누워 서로의 곁을 만져보면
간간한, 간간한 온기로
사람의 속 같던 밤 물결칠 것 같았지
포구의 삭은 그물들을 만지고 돌아와 곤히 눕던 그 밤
한쪽 눈으로 흘린 눈물이
다른 쪽 눈에 잔잔히 고이던 참 따스했던 단칸방
아늑에서는 모두 따뜻한 꿈을 꾸고
우리가 서로의 아늑이 되어 아픈 줄 몰랐지
아니 아플 수 없었지

민왕기, 「시인동네」, 2015 가을호

대학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내던 민왕기 시인은 오랜 기자 생활을 하면서도 시의 땅에서 떠나지 않았다. “깽판”인 세상에서 깡다구로 싸우다가도 그는 늘 “아늑”의 시로 돌아오곤 했으니까. 그는 아늑의 아늑함과 아늑의 쓸쓸함이 겹치는 곳에서 유배 중이다. 거기에 폭설이 내릴 때 겁먹지 마라. “어린아이 이마 짚으며” “해안 단칸방”에서 살던 아늑이 우리를 다시 따뜻하게 데워줄 것이다.
삶은 얼마나 위태로운가. 오죽하면 어떤 시인은 “나는 지뢰밭 위에서 잔다”고 고백했을까. 그리하여 우리는 일상 속에서도 늘 피난처를 구한다. 어머니의 자궁처럼 아늑하고 안전한 공간. 뭔가에 쫓길 때나 겁먹었을 때, “깜깜해서 더 절실”할 때, 나의 피난처는 어디인가. 함께 “이불을 뒤집어쓰고 속삭”이는 “당신” 때문에 그나마 이 세상이 살 만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상에서 모든 “아늑”은 “쓸쓸한 아늑”이다. 결핍은 유한자(有限者)인 모든 인간의 운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핍과 유한성 안에서 분투한다는 것은 또한 얼마나 장엄한 일인가. 결핍이 우리를 키운다.
_ 124~127쪽

진경(珍景)

북한산 백화사 굽잇길
오랜 노역으로 활처럼 휜 등
명아주 지팡이에 떠받치고
무쇠 걸음 중인 노파 뒤를
발목 잘린 유기견이
묵묵히 따르고 있습니다
가쁜 생의 고비
혼자 건너게 할 수 없다며
눈에 밟힌다며
절룩절룩
쩔뚝쩔뚝

손세실리아, 『꿈결에 시를 베다』, 2014

약할수록 연민도 깊다. 쓴맛을 본 자가 타인의 고통에 공감한다. 함께 아파하지 않는 것은 다른 감정의 파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현(絃)이 다른 현을 건드리듯 공감하는 일생은 그래서 부피가 크다. 내 것에 다른 것이 더해지기 때문이다. 약한 것들끼리 울리는 공명(共鳴)은 깊어서 슬프고, 슬퍼서 깊다.
늙어서 “무쇠 걸음”인 노파와 “발목 잘린” 유기견의 동행을 그린 시다. 그들이 함께 가는 길은 “굽잇길”이고, 노인의 등은 “오랜 노역으로 활처럼” 휘어 있다. “명아주 지팡이”는 노파의 손처럼 울퉁불퉁 마디로 가득하다. 유기견은 발목까지 잘린 채 버려졌지만 “가쁜 생의 고비”를 함께하기 위해 노파를 뒤따른다. 노파가 “절룩절룩” 걸어갈 때 유기견은 “쩔뚝쩔뚝” 걸어간다. 아프고 약한 것들 사이의 이 슬프도록 아름다운 화음(和音)의 저 끝에 산이 있고 절이 있다. 적멸(寂滅)로 가는 길이 화사하다. 그래서 “진경”이다.
_ 186~18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