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출판사가 출판한 책 현재 2,173  
살림출판사홈 > 살림의 책 > 브랜드별 도서
한국가톨릭의 역사 (살림지식총서 554)
서정민 지음 | 2017년 1월 10일
브랜드 : 살림지식총서
쪽수 : 140 쪽
가격 : 4,800
책크기 : 120*190
ISBN : 978-89-522-3573-2-01080
• Home > 브랜드별 도서 > 살림지식총서
• Home > 분야별 도서 > 인문사회
• Home > 시리즈별 도서 > 살림지식총서
세계 역사상 유례없는 ‘피의 역사’를 기록한 한국가톨릭
그 시작과 극단적 갈등, 그리고
오늘의 가톨릭에 이르기까지 격변의 역사를 살피다
한국가톨릭, 그 역설의 역사
세계적으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가톨릭이지만, 한국가톨릭의 역사는 비교적 짧은 편이다. 그럼에도 한국가톨릭은 가톨릭 역사상 최대 규모인 103위의 순교성인이 시성될 만큼 유래를 찾아보기 어려운 교난(敎難)의 파도를 무수히 넘어 오늘날 한국사회에 깊이 뿌리내리기에 이르렀다.
더욱 놀라운 것은 한국가톨릭의 시작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단 한 명의 선교사, 성직자도 없이 교회가 먼저 창설되었으며, 심지어 교구 설립 이전에 이미 순교자를 배출했다는 사실이다. 여러 교파로 나뉘는 불교나 개신교(프로테스탄트)와 달리 전 세계의 가톨릭교회가 로마 교황청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가톨릭의 특징을 감안할 때, 더욱 역설적인 역사인 셈이다.
가장 혹독한 박해 속에서도 삽시간에 들불처럼 번져나가고, 외래 종교지만 토착민 스스로 들여와 초석을 놓은 한국가톨릭의 아이러니한 역사는 이뿐만이 아니다. 가톨릭은 개신교에 비해 선교지 문화에 수용적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초기 한국가톨릭은 원리원칙을 고수함으로써 대대적인 박해라는 참사를 불러왔다. 아울러 정치적 상황을 외면했던 초기 한국가톨릭에 반해 격동의 한국 현대사 속에서 민주화운동의 선봉에 서기도 했다. 지금은 어느 지역에 가도 어렵지 않게 가톨릭 성당을 찾아볼 수 있을 만큼 익숙한 종교지만, 그렇게 뿌리내리기까지 한국가톨릭은 이처럼 예측하기 어려운 사건과 상황에 거듭 직면해왔다.

한국가톨릭을 새롭게 읽다
시간의 흐름 순으로 훑어볼 때는 사건의 나열에 불과하던 역사가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면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되기도 한다. 이 책에서 저자는 한국가톨릭의 역사를 주제별로 접근하고 다각도로 살펴보는 방식을 취한다. 이러한 저자의 접근법과 관점은 한국의 대표 종교 가운데 하나로 자리 잡은 가톨릭과 그 역사가 대단히 참신한 주제로 다가오게 만든다.
이 책은 가톨릭의 수용에서부터 수난과 신교자유 과정,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 가톨릭까지 한국가톨릭의 역사 전반을 조망한다. 하지만 역사적 사실과 사건을 연대기식으로 늘어놓기만 하는 대신, 큰 범주 안에서 그 역사를 어떻게 이해하고 바라볼 것인지 나름의 분석적 도구를 함께 제시한다. 가령 가톨릭 선교방식을 크게 ‘예수회식’과 ‘반예수회식’으로 제시하고 다른 나라의 사례를 함께 들어 이해를 돕는다. 또 종교・사상・문화의 이동과정을 ‘텍스트’와 ‘콘텍스트’의 결합과정으로 보는 이론을 제시하여 분석하기도 한다.
이렇듯 거시적 관점에서 종교사를 바라봄으로써 한국가톨릭의 역사를 살피는 가운데 세계 가톨릭은 물론, 가톨릭과 불가분의 관계인 프로테스탄트의 흐름까지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단순히 한국가톨릭의 역사를 읽는 것이 아니라, 한국가톨릭을 둘러싼 우리 근현대사를 새로운 시각에서 되짚어보는 기회가 될 것이다.
가톨릭 선교신학과 한국가톨릭 수용과정
조선시대 당파와 실학, 그리고 서학 수용의 두 형태 황사영과 정하상
한국가톨릭의 수난과 신교자유 과정
일제강점기 한국가톨릭사와 해방 이후의 변화
학자들 중에서는 가톨릭서적을 연구하다가 그 내용에 심취하여, 본격적인 신앙생활은 아니라고 해도 서적에 기록되어 있는 가톨릭교회의 예전(禮典)에 따라 그것을 실천해보고 싶은 의욕이 생긴 이들이 있었다. 이러한 실천적 서학 의례(儀禮)를 최초로 실행한 것으로 전하는 학자가 홍유한(洪儒漢)이다. 그는 1770년 무렵, 서학서적을 탐독한 후 일단 ‘성수주일(聖守主日)’에 대한 개념을 받아들여 6일간 열심히 일하거나 학문을 탐구한 후, 7일째 되는 날을 ‘주일’로 지켜 안식하며, 기도와 묵상, 금욕적 생활을 실천하였다. _19쪽

한국가톨릭의 순교, 수난의 역사는 거듭되는 ‘교난(敎難)’ 과정을 통해 나타나는데, 각 박해 때마다 그 규모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다. 시대별 박해의 순서로 볼 때 조선시대의 것으로는 제일 마지막 박해인 ‘병인박해(丙寅迫害)’, 곧 1866년부터 1873년까지 7년 동안 진행된 고종대의 박해에서만 해도 8,000명이 목숨을 잃었다. 그 이전 여러 차례의 박해에서 순교한 이들의 수를 전부 추산하면, 1만 5,000명은 충분히 넘을 정도이지만 정확한 숫자는, 전체적인 자료의 부족으로 통계를 내기가 불가능하다. _72쪽

1895년 이후 앞서 신구교 갈등이 심했던 황해도 지역의 가톨릭교회를 관할하는 프랑스 신부 빌렘(J. Wilhelm)이 부임하면서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이 대표적인 예이다. 그의 부임 당시 비교적 소수이던 가톨릭 교인이 불과 6~7년 만에 열 배 이상 늘어나 7,000명 정도에 이르면서, 강력한 세력으로 부상했다. 더구나 당시 지방관헌은 혼돈 중의 중앙정부에서 보낸 탐관오리가 대부분으로 공정하고 강력한 지방행정을 확립하지 못했다. 빌렘 신부와 일부 가톨릭 신도들은 사적으로 힘을 행사하였다. 부당한 세금징수를 막아준다든가 송사를 해결한다는 명분으로 민간인을 불법으로 구금하기도 하고 관헌을 무시하며 실제적으로 부당한 행정권, 사법권을 행사하기도 하는 과정에서 많은 문제점이 발생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순수한 종교적 목적의 개종이 아닌, 현실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하는 가톨릭의 힘에 영합하는 거짓 신자들도 득세한 것이 사실이다. 이렇듯 당시 가톨릭 선교사, 때로는 프로테스탄트 선교사들이 현실적 힘의 위세를 부리는 것을 이른바 ‘양대인자세(洋大人藉勢) 현상’이라고 불렀다._7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