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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쓰카 라이초 일본의 여성해방운동가 (살림지식총서 586)
정애영 지음 | 2019년 8월 30일
브랜드 : 살림지식총서
쪽수 : 136 쪽
가격 : 6,800
책크기 : 120*190
ISBN : 978-89-522-4077-4-040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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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 586.hwp
“여성 한 사람 한 사람은 천재다.”
동아시아 신여성 운동의 선구적 존재
일본의 신여성 1호 히라쓰카 라이초!
새로운 여성으로, 여성의 손으로, 새로운 방식으로
조용하지만 치열하게 세상과 맞선 여성해방운동가

신여성 1세대 인물로 꼽히는 히라쓰카 라이초는 죽을 때까지 여성운동 및 반전 평화운동에 헌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녀는 ‘분열’이라고 표현할 정도로 직업, 배우자와 아이, 가정 등의 현실에서 자기실현이라는 과제를 이루기 위해 치열하게 자신의 사상을 만들어갔다. 페미니즘이 부상한 오늘날 한국에도 깊이 영향을 준 라이초의 생애와 사상을 집중 조명해본다.
머리말·100년 전에 올린 여성운동의 깃발

제1장 라이초의 성장과 청춘시대

제2장 「세이토」와 새로운 여자의 탄생

제3장 신여성의 실천운동 신부인협회 활동기

제4장 라이초와 조선의 신여성

맺음말·여성·평화… 라이초의 꿈은 아직도 미완성
라이초는 이러한 근대여성교육의 세례를 받으며 성장한 엘리트 여성으로, 메이지시대의 양처현모 교육에 반기를 들고 일어난 신여성 1세대 인물이다._6쪽

라이초가 메이지시대의 양처현모주의의 여성교육을 계속 받아오며 그에 대한 반발과 환멸을 강하게 느끼고 많은 번민에 빠져 방황하게 되었을 때 그녀에게 큰 위안을 주고 길잡이가 되어준 것이 선(禪) 사상이었다. 라이초의 사상적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조용한 열정, 자유로움, 발상의 예리함 등은 참선에서 얻은 사상적 훈련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라이초 연구자들은 지적하기도 한다._14~15쪽

1911년 푸른 스타킹이라는 뜻의 「세이토」라는 잡지가 여성들의 손으로 만들어져 세상에 나왔다. 「세이토」는 본격적인 여성문예지의 간행을 촉구하던 라이초의 문학선생이었던 이쿠타 조코(生田長江)의 권유와 그녀와 뜻을 같이한 여성 5명의 힘으로 만들어졌다._18쪽

패션의 일부인 스타킹과 페미니즘은 어떤 관련이 있을까. 일반적으로 여류문학자, 문학을 좋아하는 여성 등을 뜻하는 ‘블루 스타킹’은 18세기 중엽 런던의 남녀지식인이 참가한 한 사교모임에서 비롯되었다._19~20쪽

새벽녘에 단숨에 써 내려갔다는 “원시 여성은 태양이었다”로 시작하는 이 유명한 문장은 일본 여성운동사의 상징적인 구호로 여겨져왔다._21쪽

“우리들은 숨어 있는 우리 태양을, 숨어 있는 천재를 발현하자”며 태양이었던 여성을 회복하고 숨겨져 있던 여성 안의 힘, 즉 천재를 발견하라고 외치고 있다. 여기에서 천재는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겠지만 그동안 억압받고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여성의 힘 또는 창의력 등으로 이해된다._24쪽

라이초의 인생에서 1912~13년은 매우 중요한 만남이 이어진 시기였다고 볼 수 있다. 그녀의 사상에 지대한 영향을 준 엘렌 케이를 접하고 자신의 사상을 심화시킨 점, 그리고 공동생활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부부관계를 맺게 된 오쿠무라 히로시와의 만남이 그것이며 이는 라이초의 사상과 행동을 이해하는 중요한 키워드라는 점에서 큰 전기를 맞이한 것으로 해석된다._43쪽

라이초는 본격적인 육아 생활에 접어들며 자신의 생활을 ‘분열’이라고 고통스럽게 표현할 정도로 일과 직업, 배우자와 아이와 가정 등으로 분열되는 자아와 싸우지 않으면 안 되는 치열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케이의 영향으로 모성주의를 주장해온 그녀는 모성의 실현과 자기실현이라는 과제와 치열하게 씨름하면서 자신의 사상을 만들어나갔다._55~56쪽

도시화의 진전, 교육의 보급, 산업화의 진전으로 도시생활자가 크게 증가하고 참정권의 확대로 정치적 권리를 가진 대중이 확대되며 바야흐로 대중의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러한 시대를 배경으로 여성운동도 신여성운동의 차원을 벗어나 좀 더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운동으로 변화해가는 시기로 큰 전환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부인참정권 요구나 여성노동자의 문제 등이 새로운 이슈로 떠오르는 가운데 라이초도 새로운 운동을 모색하는 과정에 부인참정권 운동을 중심으로 다양한 여성운동을 전개할 목적으로 신부인협회를 결성하여 적극적으로 운동을 전개하였다._80쪽

라이초의 전후 평화운동은 모성주의에 기반한 평화 운동적 성격으로 그녀의 모성주의의 연장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그녀의 평화사상에 아시아에 대한 가해의식이나 연대의식, 전쟁책임의식은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도 지적할 수 있다._110쪽

한국이나 동아시아 입장에서 「세이토」나 히라쓰카 라이초는 어떤 의미일까. 근대 동아시아 세계는 제국과 식민지라는 갈등적 위치에서 수많은 사건과 상처를 동반했으나 다양한 사상과 학문이 순환하고 소통하는 깨달음의 공동체이기도 했다. 동아시아 3국이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근대화, 서구화하는 과정에서 메이지유신으로 일찍 근대화에 성공한 일본은 가까이에 있는 근대화 모델 중 하나였다._111쪽

나혜석이 일본에 유학했던 1913년부터 1918년 시기는 일본에서 신여성 운동이 새롭게 탄생하여 세간의 주목을 받고 세상을 풍미한 시대와 겹친다. 나혜석의 글 가운데에는 라이초나 요사노 아키코의 이름이 등장하기도 한다. 나혜석이 다녔던 도쿄여자미술대학 출신의 아라키 유코나 오다케 코키치가 세이토에서 활약하고 있었던 시기와도 겹친다. 연일 신문이나 잡지에는 「세이토」와 동인들의 언행 기사나 가십 기사들이 쏟아졌고 「인형의 집」과 같은 작품이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던 시기이기도 했다._11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