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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목대비 - 그는 연모했고 그녀는 증오했다
이재원 지음 | 2020년 11월 14일
브랜드 : 살림
쪽수 : 448 쪽
가격 : 16,000
책크기 : 152*225
ISBN : 978-89-522-4251-8-03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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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 QueenMotherInrnok.hwp
역사적 행간 속에 숨겨진 인목대비와 광해군에 얽힌 비밀
광해군이 인목대비를 궁 밖으로 내치지 않고 서궁에 가두었던 이유는?
역사를 비틀어 보면 보인다!
수많은 변곡점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찾아내다!

인목과 광해! 여자와 남자, 증오와 사랑 그리고 평생 품을 수 없는 여인을 치열한 당쟁 속에서 지켜내고자 갈등하는 남자의 이면을 역사 속 반전의 시각으로 풀어낸 소설.
얄궂은 인연 때문인지 인목을 먼저 만난 것은 광해였다. 이미 필운동 복사꽃 봄나들이에서 입궁 전 인목을 운명처럼 만나고 먼발치에서나마 뛰는 가슴을 주체하지 못해 금실 나비 수 향낭을 전달하며 마음을 준 상태였다. 그런 그녀가 부왕인 선조의 계비이자 자신보다 아홉 살이나 어린 새어머니로 궁에 들면서 세자인 광해의 마음에는 연민의 복선이 깔린다.
4년 만에 인목대비로부터 적자인 영창대군이 출생하지만 이내 선조가 승하하면서 왕위계승에 대한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된다. 하지만 인목은 광해를 신뢰하며 왕위를 물려주는데……
과연 광해는 선조의 유지대로 형제간의 갈등 없이 국정을 유지해갈 수 있을까?

• 이 책에 나오는 주요 인물과 사건

-선조(1552~1608, 재위 1567~1608): 조선의 제14대 왕. 당쟁으로 인한 국력의 약화로 두 번의 왜란을 겪었다.
-인목대비(1584~1632): 조선 선조의 계비(繼妃). 선조 35년(1602) 왕비에 책봉되었으나 광해군이 즉위하자 대북(大北)의 모략으로 서궁(西宮)에 유폐되었다가 인조반정으로 풀려났다.
-광해군(1575~1641, 재위 1608~1623): 조선 제15대 왕. 서적 편찬, 사고(史庫) 정리 등 내치에 힘쓰고 명과 후금 두 나라에 대한 양단(兩端) 정책으로 난국에 대처했다. 당쟁에 휩쓸려 친형 임해군과 영창대군을 죽이고 인목대비를 유폐했으며, 뒤에 인조반정으로 폐위되었다.
-김개시(?~1623): 조선 광해군 때의 상궁. 광해군의 총애를 받아 국정에 관여하여 매관매직을 일삼는 등 정치를 어지럽혔다. 인조반정 때 처형되었다.
-인조(1595~1649, 재위 1623~1649): 조선의 제16대 왕. 인조반정에 성공해 광해군을 몰아내고 왕위에 올랐다. 병자호란과 정묘호란을 겪었다.
-임진왜란(선조 25년, 1592~선조 31년 1598): 조선 선조 25년에 일본이 침입한 전쟁.
-계축옥사(광해군 5년, 1613): 조선 광해군 5년에 대북(大北)이 영창대군 및 반대파 세력 소북(小北)을 제거하기 위해 일으킨 옥사. 1608년 광해군이 즉위하자 대북의 정인홍·이이첨 등은 선조의 적자인 영창대군을 왕으로 옹립하려 했다는 역모를 구실 삼아 소북파를 축출했다.
-인조반정(광해군 15년, 인조 즉위년, 1623): 조선 광해군 15년에 이귀, 김유 등 서인(西人) 일파가 광해군 및 집권파인 대북파를 몰아내고 능양군인 인조를 즉위시킨 정변.
지은이의 말 … 6
인물 관계도 … 11

제1부
구중궁궐 복사꽃

간택령 … 16
중궁전의 새 주인 … 26
계비와 상궁 … 31
기방 살인 사건 … 39
공주 탄생 … 44
차지세와 산실청 … 53
유희서의 죽음 … 58
『조선왕조실록』 … 66
왕실의 경사, 영창 … 73
동전 한 닢 … 87
선조의 「비망기」 … 94
맞불 상소 … 102
선조의 죽음 … 115
광해, 왕이 되다 128

제2부
악연은 음모를 부르고

음모 … 138
후궁 김개시 상궁 김개시 … 153
질투 … 171
임해군의 피살 … 182
책봉 … 195
세자빈 간택 … 209
칠서의 옥 … 216
인목의 눈물 … 237

제3부
서궁에 핀 눈물꽃

강화도에 떨어진 여린 꽃 … 256
두 개의 태양 … 270
인목, 정신줄을 내려놓다 … 290
후궁들의 불임 … 303
죽음의 그림자 … 311

제4부
서리꽃

사갈蛇蝎 이이첨과 이무기 허균 … 342
이무기 승천하다 … 368
잡채판서와 더덕정승 … 383
서궁 문이 열리다 … 408

인목대비 그 후 … 446
대북파의 끊임없는 모함과 암살 위험으로부터
인목대비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
새어머니인 그녀를 향한 광해군의 외사랑 때문은 아닐까?

지나온 역사는 씨줄과 날줄로 엮인 천과 같다. 이런 이유로 천의 얼굴과도 같은 『조선왕조실록』 등의 역사서를 저자 이재원은 평소에 틈나는 대로 읽는다. 그 속에서 시대를 앞서간 선각자들의 역경과 자신이 가진 자신만의 가치로 세상을 헤쳐나간 인물을 만나는 것을 즐기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역사 기록 속에 명확히 드러나지 않은 채 잊혀가는 사람을 세상 밖으로 불러내 재조명하곤 한다. 『조선의 아트저널리스트 김홍도』 『정약용과 혜장의 만남』 등이 그 결과물이다. 그러던 그가 이번에는 인목대비의 삶에 주목하게 되었다.
인목대비는 그동안 서궁마마 또는 형인 광해군에 의해 어린 나이(만 8세)에 비참한 죽임을 당한 영창대군의 어머니로, 드라마에 종종 등장하던 불운의 여인으로 알려져왔다. 인목대비는 모든 여인이 꿈꿀 수 있는 권력의 최고 정점에 서 있었지만, 영예와 치욕이라는 변곡점을 모두 경험한 인물이다. 그런데 광해군은 역모라는 미명 아래 인목대비의 집안을 사지에 몰면서도 끝내 그녀를 폐출시키거나 사약을 내리지 않았다.
저자는 바로 이 점에 의문을 품었다. ‘광해군이 경운궁 안에 인목대비를 가둬두고 고립시킨 까닭은 무엇이었을까. 혹시 연모와 증오라는 감정 복선이 징검다리가 되어 두 사람 사이를 이어지게 만든 것은 아닐까’라고 말이다. 이러한 상상력이 이 소설의 시발점이 되었다. 혹시 그녀를 서궁 유폐라는 구실로 철저히 보호했던 건 아닐까? 그녀의 존재만으로도 광해에게 또 다른 역모의 빌미를 줄 수 있다는 것은 광해 스스로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역사를 비틀어 보면 보인다. 수많은 변곡점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발굴하고 있던 저자는 대북파의 끊임없는 모함과 암살 위험으로부터 인목대비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를, ‘마음 깊이 새어머니인 인목대비를 연모하지만, 금지된 사랑의 벽을 허물 수 없었던 광해군이 그녀를 각별히 보호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역사의 행간 속에서 이러한 비밀을 읽어낸 저자의 시선이 참으로 탁월하면서도 신선하다.
금단의 사랑에 머무를 수밖에 없었던 광해군과, 지아비 선조가 죽은 뒤 믿고 의지하고자 했던 광해군에 의해 하나뿐인 아들을 잃은 인목대비의 슬픔이 마침내 복수의 칼끝이 된 단죄 장면이 소설의 하이라이트다. 이 단죄 장면으로 광해군은 폐위되고 인목은 대비로 복원되고 인조는 반정에 성공하면서, 소설의 대단원은 마무리된다.

임진왜란·계축옥사·인조반정·『조선왕조실록』 복원사업 등 역사적 사건,
정명공주·이항복·이덕형·허균·허준·이이첨·유희분·김개시 등 역사적 인물이
지극히 이성적이고 감성적이면서도 스펙터클한 역사소설로 태어나다!

시대를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 소설의 배경이 되는 역사적 사건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자. 명종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왕위에 오른 선조는 동서분쟁으로 당쟁의 씨앗을 키웠고, 임진왜란 발발 시 도성과 백성을 버리고 몽진의 길을 나섬으로써 왕권에 금이 간다. 왜란 중에 국난에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광해군은 세자로 책봉된다. 그는 의병과 함께 왜적을 상대하며 국난을 이겨냈다.
그러나 이후 선조의 계비 인목의 적자인 영창대군이 태어나자 세자자리를 놓고 당파가 갈리며 혼란을 겪는다. 광해군을 지지하는 대북파와 영창대군을 옹호하는 소북파로 나뉘게 된 것이다. 선조가 세상을 뜨자 대북파의 지지와 인목대비의 결단으로 광해군이 보위에 오른다.
즉위 초 광해는 백성을 위한 개혁법인 대동법을 시행하면서 나라의 기틀을 다지며 정국을 안정시켰다. 『동의보감』을 편찬했고,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할 사고(史庫)를 정비했다. 명과 후금 사이에서 백성을 전쟁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중립외교·실리외교를 펼쳤다.
그러나 그는 애첩 개시와 야심가였던 이이첨 등의 간언에 휩쓸리며 친형 임해군을 귀양 보내 죽게 했고, 칠서(七庶)의 변인 계축옥사로 인해 아우인 영창대군을 증살시켰다. 또한 부원군인 김제남(인목대비의 아버지) 등을 처형했으며, 인목대비를 서궁에 가둔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지나면서 광해군과 더불어 개혁을 꿈꾸던 교산 허균이 역모죄로 처형되었다. 이후 서인들이 봉기한 인조반정이 일어난다. 반정으로 인해 대왕대비로 복위된 인목대비는 36가지 죄목(‘폐모살제廢母殺弟’가 가장 대표적인 죄. 어머니인 인목대비를 폐함. 선왕 선조의 유언을 어기고 어린 아우 영창대군을 폐서인시키고, 절해고도 강화도로 유배 보낸 뒤 죽게 함)을 내세워 광해군을 단죄한다.

저자는 『조선왕조실록』 등에 기록된 역사적 사건을 소설 인목대비와 일관성 있는 전개로 맞춰가고자 노력했다. 역사소설은 허구와 팩트의 접점 사이를 오가지만, 재미와 유익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더 치열하게 써내야 하기에 저자의 고민은 커졌다. 그는 독자와 밀당하면서 냉정한 독자의 시선을 삭여야 하고, 공감과 소통으로 이끌어 확산시켜야 하는 힘이 절대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아울러 “역사소설에는 사회를 정화시키는 힘이 있다”고 힘주어 말한다.

소설 『인목대비』를 통해 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
‘시대가 사람을 만든다!’ 그러나 ‘승자로서의 삶’의 끝이 반드시 편안했을까?
광해군과 인조 반면교사 삼아, 이 땅에 꼭 필요한 리더 되기를…

지난날, 정쟁에 휘말려 멸문지화된 사건들은 너무나 많다. 이것이 왕실이 배경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저자는 세인들이 흔히 말하는, ‘역사는 승리한 자들의 이야기’라는 평에는 거의 동의한다. 폭군으로 인지된 광해군을 향한 역사적 비판에 폐모살제가 큰 획을 그은 것도 사실이다. 또한 인목대비는 조선시대를 사는 어머니이자 여자로서 희대의 비극을 감내해내며 딸 정명공주의 안위를 위해 몸을 낮춰야 하는, 왕비도 대비도 아닌 일생 비운의 주인공으로 살았다.
그러나 저자는 승자로서의 삶 또한, 그 말미가 편안했을까 라는 의문을 갖고 있다. 모든 것을 잃었지만 인연의 끈은 흔적처럼 영원하고, 모든 것을 얻었지만 놓친 인연에 대한 회한과 그리움은 남는 것이다. 만약 광해군과 인목대비의 인연이 모자간이 아니라 부부간이었다면 역사가 새로 쓰일 수 있었을까? 역사에 만약은 없으니 그저 상상할 뿐이다.
광해군의 광기와 인조의 무능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이미 많이 내려져 있다. 이에 저자도 조심스럽게 한마디한다. 광해군의 대외 중립외교가 이어지지 못해 병자호란, 삼전도의 굴욕을 당하고 백성과 이 땅이 유린당해도 속수무책이었던 인조의 정치력은 안타깝다고. 하지만 그 탓을 임금 한 사람에게 미루고 책임 지울 수 있는 일은 아니라고…….
‘시대가 사람을 만든다’. 두루 알려져 있다시피, 처음에 광해군은 백성을 생각하고 보듬는 왕이 되고자 했다. 반정을 통해 임금이 된 인조도 즉위 초에는 민생 안정에 공들였고, 북방과 해안 방어에 힘쓰는 등 국방에 전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인조가 병자호란 등을 통해 패자로서의 치욕을 맞본, 지나친 의심과 무능으로 아들까지 시샘했던 임금으로 평가되는 것을 볼 때, 역사를 재해석하는 후세 사람들의 안목과 지혜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다시금 깨닫게 된다.

이 책이 정의로운 세상을 꿈꾸며 이 땅이 상처받고 곪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 무력감에 빠진 스스로를 위로해주고 싶은 자, 그 가운데서도 자식을 앞세운 부모에게 주는 최고의 선물이 되기를 바란다. 덧붙여 나라를 이끄는 지도자들에게 꼭 읽히고 싶다. 그들이 광해군과 인조를 반면교사 삼아 이 땅에 꼭 필요한 이상적인 리더가 되기를 바라본다.
즉조당 뜰에서 열린 하례식에서 중전이 된 인목을 처음 마주한 광해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순간 기억의 흐름은 필운동에서 있었던 한 장면에 멈추었다. 복사꽃이 장관인 필운동에서 마주쳤던 꽃 같은 처자가 아버지의 부인이 되어 중전으로 입궁을 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필운동 복사꽃 향기에 취한 듯 그녀에게 이끌려 세상을 떠난 어머니 공빈 김씨가 남겨준 한 쌍의 금실 나비 수 향낭을 한 개 풀어 마음을 내어주었고, 남은 한 개를 가슴 깊이 보관하며 얼마나 가슴 두근거렸던지… 다시 한번 마주하고 싶은 마음으로 하루하루 손꼽으며 설레고 얼굴이 붉어져 이마에 열꽃이 핀 듯 잠을 이루지 못했던 지난 봄날이었다. _35쪽

“왔느냐?”
“네, 전하.”
“한 사람을 지켜다오.”
“제 소임은 저하, 아니 전하를 지키는 일이옵니다. 저를 다른 이에게 보내시려는 것이옵니까?”
“너와 내가 한 몸이듯 네가 지켜야 할 그이도 내 마음속에는 나와 같은 한 몸이다. 그를 지킴은 과인을 지키는 것이다.”
“누구이옵니까?”
“인목왕후이시다.”
광해의 외답이었다.
“주군! 외람되이 한 말씀만 여쭙겠습니다. 만일 전하와 인목왕후 중에 한 사람을 살려야 한다면 누구이옵니까?”
“그녀다.”
“존명.”
이 물음과 두 번에 걸친 광해의 외답은 앞으로 더 이상 묻지 말라는, 상황이 어떻게 변한다 해도 더 묻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 담긴 약속이었다. 일생 한 번 묻고 일생 한 번 답하고 일생을 지키는 단심丹心이었다. _134~135쪽

십여 년 전 복사꽃 만개한 필운대에서 우연히 마주쳤던 인목의 고운 자태와 종종걸음이 독특했던 그녀의 뒷모습을 떠올렸을 때, 자신도 모르게 파안대소를 하다가 스스로의 웃음소리에 놀라 멋쩍어진 광해는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예기치 못했던 가슴 뛰던 첫 만남 후 신의 저주처럼 엉뚱한 곳에서 새어머니와 의붓아들이라는 운명의 장난으로 재회하게 됐지만 늘 가슴 한켠 아련한 통증으로 남아 있었다. 왕위에 오른 후에는 자신의 의지와는 반대로 인목에게 수많은 고통과 상처를 비수처럼 꽂으면서 시대를 탓하는 치기 어린 변명으로 자신을 비호해왔지만 자신 역시 그 칼날에 찔려 눈이 멀었다.
왕으로서 눈앞에 놓인 거대한 강은 두 줄기였다. 하나는 버텨야 하는 거친 강이었고 또 하나는 유유히 들판을 가로지를 수 있도록 지켜야 할 강이었다. 하지만 계축옥사란 거친 강을 버텨내었을 때 이미 그녀는 깊은 늪 속에 빠져 있었고 발버둥 칠수록 더욱 가라앉는 풍전등화 같았다. 그녀 주변의 모든 것을 희생하더라도 그녀가 버티주기만 한다면 반드시 지켜줄 수 있을 것이라 여겼던 자신의 생각은 곱씹어봐도 무모하고 미련했다. 미안함이 가슴을 조이며 저려왔다. _311~312쪽

창덕궁으로부터 곡소리가 흘러나오기를 빌고 또 빌고 있던 인목은 시간이 지날수록 조바심이 났다. 반짝거리는 별빛들이 침 끝으로 보였다. 그 별 무리들이 독침이 되어 유성을 그리듯 광해의 몸에 수없이 박히기를 기원하고 또 기원했다. 온몸에 침이 박혀 고슴도치처럼 죽어갈 광해가 극한 고통에 나뒹굴면 뒹굴수록 침이 더 깊게 박혀 그의 심장까지 파고들기를 고대했다. 별 무리가 갈 길을 잃고 서로 부딪치는 금속성 소리가 야심한 밤을 깨우고 있었다._338~339쪽

서궁의 큰 상궁 여씨는 늘 좁은 문틈 사이로 오가는 이들을 살폈다. 해가 떨어지면 일찍이 청심재 전각의 불을 모두 껐다. 더 어두운 곳에서는 또 다른 어둠 속 사물을 구별하기 쉬워도 어둠 속에서 더 어두운 곳의 사물은 구별이 쉽지 않기 때문이었다. 같은 어둠이라도 차이가 크다는 것을 이들은 어둠 속에서 깨쳤다. 인간 박제가 될지언정 인목은 차라리 침울하고 칠흑 같은 어둠이 좋았다. 역적으로 몰려 목숨을 잃은 아버지와 오라버니와 동생들, 어린 영창과 조카들 그리고 제주도로 유배를 간 어머니와 피붙이 같던 해맑은 달이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들에게 너무 미안해서 울었고 자신의 드센 팔자에 서러워 울었다. _389쪽

“폐주인 네가 쇠로 만든 낯가죽을 쓰지 않고서야 어떻게 네 입으로 소자라 운운하느냐? 나는 네 어미인 적이 한 번도 없다. 너 스스로 나를 폐모 하지 않았더냐? 게다가 천하의 간신배들 말에만 귀를 기울이고 천하의 간신배들을 믿고 따랐던 폐주는 그들의 우매하고 충성스런 노비였느니 백성들이 어찌 그런 노비를 우러러볼 수 있었겠느냐? 용상이 부끄럽구나! 너는 이 나라의 큰 재앙이었다.”
독설이었다. 지난 설움에 대한 응축된 폭발이었다. 소자라는 광해의 말 한 마디에 처절하게 반응하는 인목의 원한은 온몸에 꽂혀 있던 가시들이 하나하나 고개를 들고 폐부를 찌르듯 잔혹하고 아팠다.
광해는 눈을 감았다. ‘그녀는 내 심중의 복사꽃이었느니…… 그녀를 보호하라.’ 음영에게 지시했던 말들이 귓전을 울렸다. 인목을 서인으로 강등시켜 폐출하라던 대신들의 강압적인 읍소와 상소를 여러 해 동안 물리쳐가며 죽음의 손길로부터 그녀를 지키려 했던 지난 기억들이 아련하게 떠올랐다.

이제는 그 가녀리고 곱디곱던 복사꽃이 아니구려. 내가 깊은 상처와 한으로 점철된 여장부를 만들어낸 것인가? 그래도 나는 그대가 애련하기만 하오. 그립고 또 그리웠구려. _426~427쪽

인목은 침전을 서성거리며 혹시나 하는 기대와 희망으로 쉬이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나뭇잎 떨어지는 작은 소리에도 귀를 세우며 문밖을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이 때문인지 경운궁에서는 이른 새벽 나인들의 비질이 금기시되었다. 작은 비질 소리에도 인목대비의 정신이 온통 영창대군의 발걸음일지 모른다는 희망으로 점철되었기 때문이다. _437~438쪽

참으로 질기고 지독한 인연이었다.
한 번도 내색한 적 없었다. 한 번도 아는 척한 적도 없었다. 필운동에 복사꽃 핀 봄날, 향낭으로 마음 전해주던 붉은 노을 속 젊은 선비가 광해 당신이었느냐 물어본 적도 없었다. 한눈에 사랑을 가져간 열아홉 살 꽃 같던 처자가 인목 아니, 휘정 당신이었노라는 고백을 받아본 적도 없었다. 질기고 기나긴 마음의 끈이었고 비밀의 숲이었고 결코 맞받아칠 수 없었던 수평선과 지평선 딱 그만큼의 거리에서, 가슴으로 울던 짝사랑 같은 연정이었고 애증이었다. _44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