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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예수
셰인 클레어본 Shane Claiborne, 크리스 호 Chris Haw 지음 | 정성묵 옮김 | 2010년 9월 30일
브랜드 : 살림기독교
쪽수 : 392 쪽
가격 : 15,000
책크기 : 150*203
ISBN : 978-89-522-1509-3-03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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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다면 당선 가능성은?
기독교와 정치, 국가와 하나님 나라를 다시 생각한다!
새로운 가치, 새로운 정치에 목마른 그대, 그대의 상상력에 시동을 걸어 주마!
명민하고 유머러스한 우리 시대의 예언자 출현!
하나님 나라의 꿈에 정치적 상상력을 더하라!

교회와 국가의 관계, 기독교의 정치 참여와 관련된 문제는 선거 때마다 돌아오는 이슈다. 얼마 전 6․2 지방선거를 치렀고 이명박 정부의 임기가 반환점을 돈 지금도 그 어느 때보다 이 주제는 뜨거운 감자다. 비단 기독교의 간판을 내걸고 창당한 ‘기독사랑실천당’이나 지난 지방선거 때 복음주의권 운동가들을 중심으로 발족해 활동한 시민단체 ‘희망정치시민연합’의 관계자뿐 아니라, 노소를 불문하고 정치적 의식이 있는 그리스도인의 첨예한 관심사가 바로 기독교 정치의 문제다. 『대통령 예수』는 바로 이스라엘의 역사와 예수의 가르침, 그리고 초대 교회의 행적을 뒤돌아보며 기독교 정치의 문제를 처음부터 다시 사고하게 하는 책이다.
저자는 차세대 기독교 운동가 셰인 클레어본과 크리스 호. ‘친근하고, 명민하고, 유머러스한 이 시대의 예언자’라는 「퍼블리셔스 위클리」지의 평처럼, 세상의 불의와 악에 대한 대단히 예민한 감각을 갖고서 사람들을 하나님의 질서 속으로 돌아오라고 끊임없이 촉구하며 심판과 구원의 메시지를 선포한 예언자의 모습을 이들에게서 발견할 수 있다. 게다가 매우 재기발랄하기까지 해서 독자를 성경의 이야기들과 초기 기독교의 역사에 대한 즐거운 독서로 이끈다. 이 책에서 저자들은 정치를 ‘우리가 세상과 관계를 맺는 모습’이라고 다소 넓게 정의한 뒤, 성경에서 보여 주는 정치적 상상력을 발견하고, 기독교 정치의 새로운 양상을 탐구하며, 기대와 냉소가 섞인 이 시대의 기독교적 정치에 새로운 희망과 목표와 실천의 단초를 제시하고 있다.

교회와 국가를 섞는 것은 아이스크림을 소똥에 섞는 일
소똥은 괜찮지만 아이스크림은 완전히 망가진다.

우선 미국인인 이 책의 저자들이 강하게 비판하는 것은 미국 기독교와 국가의 결탁이다. 지난 미 대선 에서 나타났듯이 미국 정치와 기독교(특히 개신교 복음주의)는 정경 유착의 정도를 넘어설 정도로 깊은 관계에 있다. 남침례교로 대표되는 이들 교회는 정치적으로는 보수주의, 신학적으로는 근본주의를 대변하면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실정이다. 강렬한 애국심으로 무장한 이들은 미국의 가치와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혼동하면서 하나님이 미국이란 나라를 축복하여 계속 번영을 가져다주기를 바란다.

우리 교인들은 정신분열증에 빠져 있다. 그러니까 좋은 그리스도인이고 싶지만 속으로는 오직 국가의 군사력과 경제력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다 보니 미국인이 곧 그리스도인이라고 착각하는 사람이 많다. 이처럼 권력은 교회의 목적과 관행을 타락시킨다.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한 주인을 섬기면 필히 다른 주인과의 관계가 파괴된다는 뜻이다. 우리 형제이자 동료 운동가인 토니 캄폴로의 말을 빌리자면 “교회와 국가를 섞는 것은 아이스크림을 소똥에 섞는 것과 다름없다. 소똥은 괜찮지만 아이스크림은 완전히 망가진다.” _24쪽에서

그러나 최근 종교 근본주의자와 정치적 우파의 결탁에 대해 회의하고 반성하는 젊은 복음주의자들이 형성되고 있다. 이 운동의 최전선에 자리한 인물 중 하나인 저자는 성서에서 말하는 하나님 나라가 오늘날 막강한 제국이 되어 버린 미국과 전혀 다름을 일깨운다. 역사적으로 한국의 기독교가 미국의 기독교를 거의 그대로 받아들였고, 지금도 미국과 한국이 정치적, 종교적으로 매우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음을 기억할 때, 저자들이 미국 기독교에 전하는 내용은 한국 교회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게다가 (권력의 맛에 취한 종교, 약자에 대한 폭력, 자본의 지배와 착취, 풍요 숭배와 같이) 저자들이 비판하는 현실은 한국 사회와 교회의 상황에도 그대로 들어맞는 것이어서 귀 기울여 들을 가치가 크다.

하나님 나라의 작은 씨앗은 어떻게 제국의 질서를 깨뜨리는가?
다른 세상을 상상하는 그리스도인을 위한 예수 스타일 정치 이야기

1부에서는 구약성서에 나타난 이스라엘 역사를 읽어 가면서, 폭력과 착취와 풍요 숭배에 물든 이웃 민족들과 구별될 것을 이스라엘에 요구하는 하나님의 모습을 상기시키며 국가에 대한 성서의 시각을 해석한다. 2부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행적 속에서 찾을 수 있는 하나님 나라의 정치적 상상을 이야기한다. 독자는 로마 황제의 길과 대조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길이 어떠한 것인지를, 성서학 연구 성과의 고갱이들을 보는 재미와 함께 확인할 수 있다. 물론 세상과 전혀 다른 예수의 하나님 나라라고 해서 현실 세계와 전혀 동떨어진 구름 위의 나라를 말하는 것은 아니다. 예수의 삶과 가르침은 오늘날 현실을 변혁할 수 있는 강력한 동력과 구체적 아이디어를 제공한다는 것이 이 책의 입장이다.
3부에서는 초기 기독교인들이 로마 제국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어떻게 결단하고 행동했는지를 살펴본다. 하지만 제국의 변방에서 중심부로 옮겨 가면서 기독교는 점차 권력의 단맛에 취해 왜곡된다. 이러한 역사는 오늘날의 미국 기독교의 상황과 마찬가지이고, 이런 상황에서는 제2의 출애굽이 필요하다. 4부에서는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바꾸기 위해 어떤 실천을 할 수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실제 평화주의 운동가로서 활동하는 풍부한 저자들의 경험담을 들으며, 독자는 매우 유쾌하면서도 날카로운 통찰을 제공받을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의 복음은 평화와, 억눌린 자를 향한 해방과 나눔의 메시지임을 강조하는 이 책은 제국의 무력과 부, 자본의 마수에 포획된 상태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현대인들에게, 진실을 보게 해 주는 영화 〈매트릭스〉에 나오는 빨간 알약과도 같다. 또한 ‘지독하게 썩어빠진 현재의 시스템 외에 다른 길이 없다고 생각하는 최악의 정치적 상상’에 젖은 이들에게는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우박을 내리고, 새로운 정치에 목마른 이들에게는 시원한 단비와도 같은 책이 될 것이다.
기독교 도서로서는 보기 드문 화려한 이미지와 풍부한 삽화도 읽는 이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이 책을 읽기 전에(김민웅)
서문_ 그리스도인에게 정치적 상상력을

1부 왕과 대통령이 있기 전
태초에 / 홍수 / 탑 / 이집트 탈출 / 모든 왕에게는 선지자가 있다 / 거대한 짐승과 작은 선지자들 / 왕이 울 때 / 약자의 힘 / 하나님이 찍은 백성들 : 정결 법 / 더 좋은 뭔가를 위해 구별되다
2부 전혀 새로운 대통령
짤막한 정치적 배경 읽기 / 폭동과 혁명 / 헤롯 대제(대제는 무슨!) / 진정한 왕의 탄생 / 광야에서의 정치적 유혹 / 취임 연설 / 선거 공약으로 내걸었다가는 백전백패할 국가 안보 전략 / ‘테러와의 전쟁’에 대한 예수님의 정책 / 왕국이 성장하는 방식(혹은 예수님이 체게바라와 같으셨을까?) / 겨자씨 혁명 / 천국 시민권과 거듭남에 관하여 / 지극히 현실적인 정치 / 로마가 아닌 나의 멍에를 메라 / 군단에 점령당하다 / 예수님과 세금 /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되 / 반(反)개선의 예루살렘 입성 / 수건으로 다스리는 왕국 / 마지막 기도 / 예수님의 취임식 / 로마 황제의 즉위식과 행진 / 예수님의 즉위식과 행진 / 인간 성전
3부 제국이 세례를 받을 때
당신 안에 있는 더러운 체제를 씻어내라 / 벌거벗은 제국 / 제국의 정치적 변방에서 / 훌륭하고 매혹적인 로마 / 혁명적인 복종 / 콘스탄티누스와 교회의 ‘타락’ / 자비로운 제국주의 / 또 다른 출애굽 / 정체성 위기 / 계속되는 제국의 세례 / 미국의 복음 / 우상과 형상 / 우리는 시장을 신뢰한다 / 왜곡과 혼란 / 강대상 위의 국기 / 하나님이 미국을 축복하시리라(미국 국가) / 히틀러는 어떤가? / 위험한 결탁 / 로건의 이야기 / 전쟁 이야기들 / “이젠 그만!”이라고 말한 또 다른 병사 / 3부를 마무리하는 고백
4부 독특한 집단
복음 / 예수님을 쏙 빼닮았는가? / 무엇이 보이는가? / 이슈들 / 정치적 소수자들 / 문화적 망명자 / 평범한 혁명가들을 위한 정치 / (SUV도 첩보 기관도 없는) 방랑 캠페인 / 하나님의 좋은 피조 세계를 위한 좋은 패턴 / 부활을 실천하라 / 포로들을 자유롭게 하라 / 하나님의 거리들 / 노인과 더불어 살아가라 / 샘 아저씨(미국 정부)의 것은 샘 아저씨에게 주라 / 자급자족 / 진정한 안보 계획 / 예수님의 제3의 길 / 은혜의 캔을 따라 / 다윗 왕처럼 / 용서하라 / 열매로 싸우라 / 기독교 평화 운동 팀들에게 던지는 쓴 소리 / 아미시파를 통한 국토안보 / 십자가를 지라 / 혁명적인 인내를 발휘하라 / 왕이 제멋대로일 때 어떻게 해야 할까? / 지옥의 문 / 혁명적 복종 / 대안 경제 / 관계적 십일조 / 서로 돕는 마을 / 새로운 세상이 가능하다 / 회심 / 새로운 축제가 필요하다 / 새로운 언어가 필요하다 / 새로운 예식이 필요하다 / 새로운 영웅이 필요하다 / 새로운 노래가 필요하다 / 새로운 전례가 필요하다 / 새로운 눈이 필요하다 / 새로운 기념일이 필요하다 / 선거에 관한 생각의 전환
부록 1. 창조 이야기는 구별된 반제국주의 민족으로서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어떻게 강화시켰는가?
2. 모하메드를 대통령으로? 다원론과 유일무이함
3. 복종과 혁명 : 로마서 13장은 뭔가?
4. 저항과 고백의 기도문 선한 사람이 되는 것이 왜 이렇게 어려울까?

더 읽을 책들
친근하고, 명민하고, 유머러스한 이 시대의 예언자 출현! 저자는 타락한 세상에서 아무 일 없다는 듯 살아가는 사람들을 하나님의 전혀 다른 질서 속으로 불러낸다.
_「퍼블리셔스 위클리」

셰인 클레어본과 크리스 호는 평화운동가이다. 그와 동시에 이들은 성서가 주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영감으로 가득 찬 사람들이다. 자본의 위력에 굴종하게끔 설득하고 권력의 죄에 동조하도록 하며 특히 전쟁의 폭력을 옹호하도록 만드는 제국의 종교로 전락한 미국 기독교에 대해 거침없이 비판하면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미래에 대한 믿음을 진지하게 일깨우고 있다. 빈곤해진 정치적 상상력을 풍부하게 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하면서, 일상의 소소한 지점에서부터 국제적 현실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실현을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이 무엇이 있는지 소개한다. 그래 맞다. 우리가 세상을 논리로 설득하는 자들이 아니라 진정과 행동으로 감동하게 하는 자들이 될 때 비로소 세상은 변하는 것이다. 아, 정말 그렇구나. 하나님 나라는 우리 안에 있다. 거기에서 시작된다. 이걸 믿으면 ‘지금, 이 자리’가 곧 하나님 나라의 신나는 일터가 될 것이다.
_김민웅(성공회대 교수)
우리를 사로잡는 것은 아름다운 것이다. 아마도 가장 큰 유혹은 하나님께 반대하려는 마음이 아니라 하나님처럼 되려는 마음일 것이다. 독이 든 과일일수록 더 맛있어 보이는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자유와 평화, 정의 같은 이상은 얼마나 위험한지 모른다. 이런 이상은 하나님의 마음에 가깝기 때문에 그 유혹이 실로 대단하다. 실제로 우리는 아름다운 것들을 위해 목숨을 걸고 사람을 죽인다. 우리가 팔고 착취하고 위조하는 것은 아름다운 것들이다. 우리는 소유물에 오히려 소유 당하고 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자유의 추구라는 굴레에 갇혀 있다. 평화를 위해 싸우는 국가들은 폭력을 깨뜨리겠다는 명목으로 폭력을 자행하고 있다. 뱀의 속임수는 너무도 교활하고 감쪽같다.
인간의 추악함은 대개 아름다움을 왜곡된 방식으로 추구한 결과다. 예를 들어, 탐심은 복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한다. 살인의 출발점은 정의를 향한 갈망이다. 아름다움을 몰라보는 사람은 정욕을 품을 수 없다. 폭식은 하나님의 선물을 과용한 결과다. 우상 숭배는 아름다운 것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본 후 아름다운 것이 숭배를 받아 마땅하다는 식으로 논리를 확대한 결과다. _30쪽

우리는 주로 왕과 대통령의 삶을 통해 역사를 배웠지만 하나님은 선지자들의 삶을 통해 역사를 이야기하신다. 때로 선지자들은 광범위한 지지를 얻었고 때로는 광야에서 외치는 목소리로 살았다. 하지만 사람들이 듣든 말든 선지자들은 엄연히 하나님의 목소리다. 선지자들은 상황에 상관없이 목소리를 낸다. 때로는 무모할 정도로 진실을 말한다. 선지자들은 선뿐 아니라 악에도 지극히 민감하다. 하나님의 진노와 사랑은 선지자들의 입술을 타고 흘러나온다. 랍비 아브라함 헤셸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에게는 불의한 행위(사기 거래나 가난한 자들에 대한 착취) 하나가 별것 아닐지 몰라도 선지자들에게는 엄청난 재난이다. 우리가 볼 때는 불의가 사람들의 안녕에 흠집을 내는 작은 상처에 불과하지만 선지자들에게는 존재 자체를 위협하는 치명상이다. 우리에게는 하나의 이야기가 선지자들에게는 파국이요 세상의 위협이다.” 선지자들의 목소리에 많은 것이 걸려 있다. 그리고 때로는 말 한마디로 불의의 패턴이 온통 흔들릴 수 있다. _45-46쪽

예수님을 대통령이라 부른다면 그분의 선거 운동 슬로건은 “희년(jubilee)!”이라 할 수 있다. 오래전 이사야처럼 예수님은 우리가 1부에서 살핀 반제국주의 삶의 방식인 토라의 위대한 경제적 전통을 설파하셨다. 포로와 억압받는 자를 자유롭게 하는 것이 희년의 풍습이다. 희년은 빚을 탕감하고 불공평을 깨뜨리는 전통이다. 희년을 통해 이스라엘은 정체성 없이 분열된 사회가 아니라 독특한 경제를 펼치는 독특한 공동체, 아니 가족이 될 수 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백성이 되라고 촉구하셨다.
표면적으로 보면 희년 선포는 위대한 슬로건이요 매력적인 공약이었다. 실제로 이 선포를 듣고 많은 사람이 “다 주목하여 보았다.” 하지만 좋은 분위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예수님은 이 문제를 더 깊이 파헤치기를 원하셨다. 그분은 희년 원칙을 실제로 실천하면 세상이 완전히 뒤집히고 국세청이 곤란에 빠질 줄 처음부터 알고 계셨다. _94-95쪽

많은 유대인들이 눈부신 승리 속에서 임할 하나님 나라를 상상했다. 또한 그들은 하나님 나라를 나무 중에서도 으뜸인 백향목으로 묘사한 선지자들의 비유에 익숙했다. 하나님 나라를 레바논 백향목에 빗대어 설교했다면 여기저기서 아멘이 터져 나오고 심지어 춤추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군중의 기대 심리를 무참히 깨뜨리셨다. 겨자나무는 다 자라봐야 1미터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예수님의 비전은 이 세상 제국에 대한 전면 공격이 아니었다. 그분의 혁명은 소리 없는 전염이었다. 한 번에 생명 하나, 한 번에 가정 하나씩. 길리기아 다소의 사울이 예수 전염 현상을 파괴하기 위해 집집마다 찾아다닌 것이 흥미롭지 않은가?(행 8:3) 사울은 예수 운동을 마치 가라지처럼 생각했다. 하지만 이 ‘가라지’는 뽑으려고 할수록 더 빨리 퍼져나갔다. 겨자씨는 부서져야 그 잠재력이 풀려난다. 그래서 순교자의 피에 교회의 씨앗이 있다는 말도 있다. 나중에는 사울도 이 운동에 전염되어 바울이 되었다. 우리가 사랑하는 또 다른 회심자 미누키우스 펠릭스는 초대 교회의 박해자였을 때 그 길의 추종자들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로마 제국을 감염시키는 “불경스러운 음모를 꾸미고…… 무성하게 자라는 잡초와 같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뿌리와 가지를 제거해야 한다.”
겨자씨 비유에서 예수님은 힘의 개념을 완전히 뒤엎으셨다. 예수님의 힘은 파괴하는 게 아니라 파괴당하는 데 있었다. 그분은 십자가로 제국의 검을 이기셨다. 겨자씨는 부서지고 짓밟혀야 제 힘을 낼 수 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그렇게 부서진 씨앗으로 묘사했다.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려 성찬식의 빵과 포도주처럼 몸이 찢기고 피를 쏟아내신 그리스도, 이것이 우리가 축하해야 할 불가사의다. 겨자씨는 약재로도 쓰였다. 빅스 베이퍼 럽(코가 막히거나 기침이 날 때 가슴에 바르는 약―옮긴이)처럼 겨자씨를 가슴에 문지르면 호흡에 도움이 됐다. 전염성 잡초이자 치료제이며 어마어마한 잠재력의 상징인 겨자, 이것이 예수 혁명의 공식 심벌이다. _109-111쪽

예수님은 나귀를 타고 유월절 행사장으로 들어가셨다. 알다시피 유월절은 유대인들이 조상의 이집트 탈출을 축하하는 반제국주의적 축제였다. 로마 병사들이 늘어선 거리에 유대인들이 모여 저항의 상징인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었다. 유월절은 언제 폭동과 유혈극이 벌어질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시기였다. (안디바가 축제 거리에서 유대인 수천 명을 학살한 사건이 기억나는가?) 예수님이 나귀를 타고 이 축제 현장으로 들어오신 것은 일종의 풍자였다. 마치 저항을 표현한 거리 연극 같았다. 학자들은 이것을 반개선의 예루살렘 입성이라 부른다. 미국 독립기념일 퍼레이드에 대통령이 외바퀴 자전거를 타고 나타난다고 상상해보라. 예수님 당시 왕들은 나귀를 타지 않았다. 왕들은 으레 병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강한 군마를 타고 행진했다. 따라서 예수님이 나귀의 등에 타신 것은 폭력과 권력을 조롱하는 행위였다. (그나마도 빌린 나귀였다!) _13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