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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갈 수 있는 배
무라타 사야카 지음 | 김윤희 옮김 | 2018년 10월 30일
브랜드 : 살림
쪽수 : 256 쪽
가격 : 13,000
책크기 : 127*188
ISBN : 978-89-522-3991-4-03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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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 hakobune_bodo.hwp
일본 3대 문학상을 휩쓴 ‘크레이지’ 사야카
『편의점 인간』 작가의 또 하나의 문제작
‘섹슈얼리티’라는 이름의 바다를 표류하는 세 여자 이야기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일하는 프리터 리호는 섹스가 괴롭다. 어쩌면 자신은 남자가 아닐까, 아니면 성별 없는 섹스를 할 순 없을까 생각한 끝에 남장을 시도한다. 그런 리호의 모호한 태도를 비난하는 어른 여자 츠바키는 어두운 밤에도 선크림을 발라가며 자신의 몸을 정성스럽게 ‘케어’한다. 그 어느 쪽도 공감하지 못하는 치카코는 남자와 자도 인간으로서의 육체적 감각을 느끼지 못한다. 어디에도 들어맞지 않는 이들의 성(性)은 어디로 다다르게 될까.

“나는 여자를 좋아하는지도 몰라.”
열아홉 살 리호는 남자처럼 행동하며 사내들과 어울리는 한편, 좋아하는 남자와 섹스를 하는 것이 고통스럽다. 자신이 여자를 좋아하는지 남자를 좋아하는지 혼란스러운 가운데 본격적으로 성별을 찾기 위한 실험의 장소를 독서실로 정했다. 아는 사람 눈을 피해서 간 독서실인데 첫날부터 아는 사람 발견. 레스토랑 단골손님인 츠바키가 거기 있을 줄이야. 졸지에 옥상까지 따라 올라가 밥까지 같이 먹어버린 리호. 여기서 답을 찾아 나갈 수 있을까?

“밤에도 자외선은 있거든.”
츠바키는 어려서부터 줄곧 인기가 많은 미모의 삼십 대 직장 여성이다. 한밤중에도 선크림을 바를 만큼 자신의 여성성을 소중히 한다. 여자라는 과목의 시험이 있다면 우등생이 되었을 츠바키는 이런저런 자격증에 관심이 많다. 지금은 비서 검정시험을 목표로 독서실에서 공부하고 있다. 천생 여자 사람 츠바키는 독서실에서 만난 유사 남자 리호를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럼 우선 섹스를 해 보고 나서 결정하면 안 될까요?”
자신을 별의 한 조각이라 여기는 우주적 세계관의 소유자 치카코. 인간이 아닌 물체로서 모든 것을 감각한다. 독서실은 그저 사람이 모이는 장소에 늦게까지 있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다니고 있었는데 그곳에서 알게 된 남자가 고백을 해왔다. 그와 연인이 될 수 있을까?
리호. 1 ― 7
치카코. 1 ― 65
리호. 2 ― 113
치카코. 2 ― 170
리호. 3 ― 210
치카코. 3 ― 231

해설 ― 250
웰컴 투 사야카 월드
한국에 소개된 무라타 사야카의 소설 중 가장 잘 알려진 소설은 역시 『편의점 인간』이다. 사람들이 수시로 드나드는 일상적 공간인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생으로 보통 사람을 연기하며 살아온 주인공을 우리는 꽤 흥미롭게 지켜봤다. 편의점에서 일하면서 소설을 써온 작가의 이력도 덧붙여서 말이다. 그런데 『편의점 인간』은 일종의 예고편, 그러니까 본격 무라타 사야카 월드로 입문하는 초입이었다.

“『편의점 인간』을 읽었을 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 중 하나는 여느 아이처럼 죽은 새를 가엾게 여기지 않고, 아빠가 참새구이를 좋아하니까 더 잡아 오자고 말하는 주인공의 모습이었다. 싸우는 반 아이들을 말리라는 선생님 외침 한 마디에 난폭하게 날뛰는 아이를 삽으로 내리치는 장면은 어떤가.” -소설가 백영옥

전작에서 목격한 바 있듯 무라타 사야카는 언제나 정상과 비정상, 평범함과 비범함의 경계를 아무렇지 않게 비틀어버리는데 이 조용한 파괴력에는 무섭고도 묘한 쾌감이 있다. 『멀리 갈 수 있는 배』에서는 섹슈얼리티라는 예민한 재료를 다룬다. 지금 우리의 이야기이거나 주변 누군가의 이야기 또 어떤 누군가에게는 여전히 불편한 이야기. 불편한 이야기를 아무렇지 않게 하는 것이 특기인 이 작가는 섹슈얼리티를 어떻게 요리할까.

무라타 사야카가 우리를 위로하는 방식
‘왜 이런 걸 하지 않으면 안 될까.’
‘왜 이런 식으로 역할을 강요하는 걸까.’
『멀리 갈 수 있는 배』는 작가 자신이 줄곧 느낀 ‘살기 어려운 삶’에서 비롯되었다. 많은 사람이 사소하게 생각하는 작은 것에서부터 싫은 감정이나 위화감이 들었고, 특히 여자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괴로움이 있었다. 이에 관해 마음껏 써보고자 탄생시킨 것이 주인공 리호다. 사회에서 이런저런 역할을 강요받아서 자신을 규정 짓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열심히 역할을 수행하지 않아도 된다고, 누구나 고민하며 나아가고 있다고 위로의 메시지를 건넨다.

“이 이야기를 씀으로써 저는 변했다고 생각합니다.
치카코라는 여성이 제 뇌로는 알 수 없었던 장소로 저를 보냈습니다.” -무라타 사야카

치카코는 소설 속에서 특별한 인물이자 작가를 변화시킨 인물이다. 작가의 말에 의하면, 치카코는 구상 단계부터 설정한 것이 아니라 리호만을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지만 잘 풀리지 않자 다른 시점으로 넣어본 인물이라고 한다. 기왕이면 상식적인 사람과 조금 다른 인물, 소설을 쓸 때 주인공으로 삼기엔 괴로운 인물을 만들어내고 싶어서 우주적 감각으로 사는 인물을 만들었는데 쓰는 도중에 작가 본인도 우주 속에 사는 상상을 하며 재미있었다고 한다. ‘여자니까 이렇지 않으면 안 돼’ ‘어른이니까 이렇게 하면 안 돼’ 같은 생각으로 여태 작가 본인을 억압하고 있던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이었다는 것을 치카코로 하여금 느낄 수 있었고 좀 더 넓은 시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되어서 살기 편해졌다고 한다.

이름 없는 모든 성에게
이 책의 원제는 ‘방주(ハコブネ)’다. 성경에서 방주는 하나님이 부패한 세상을 멸망코자 노아의 가족에게 만들게 한 거대한 배다. 그 배 안에 모든 종류의 동물을 한 쌍씩 싣게 한 다음 세상이 잠겨버릴 만큼의 비를 퍼부었다는 이야기 속 ‘노아의 방주’ 말이다.
『멀리 갈 수 있는 배』의 주 무대인 독서실은 방주로 비유된다. 리호에게 독서실은 이성애자와 동성애자 사이에서 흔들리는 자신을 구원할 무언가, 정확히는 자신이 어느 쪽인지 정의해줄 수 있는 구원자의 배, 또는 암수 어느 쪽도 될 수 있는 선택지를 가진 자신을 태운 방주다.
작가는 ‘주인공이 이성애자인지 동성애자인지 몰라서 흔들리고 있지만, 사실은 그 어느 쪽 중 하나였습니다’ 식의 이야기가 아닌 흔들리고 있는 상태 그 자체에 관한 이야기 즉, 성애의 모호함을 그려보고 싶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일본 근대 문학회의 2016년 11월 정기 발표회 특집에서는 『멀리 갈 수 있는 배』를 ‘섹슈얼리티의 가능성’ ‘이해하기 쉬운 기호로 성을 파악하는 것이 아닌, 오히려 하나의 이름으로는 정의할 수 없는 성을 인정하는 것으로 다양성을 제시하는 시도’라고 평했다.
오늘은 독서실 책상에 일본 사람의 특징을 다룬 책과 다양한 상식, 예절에 대해 엄격하게 편집된 책을 늘어놓았다. 그저 사람들이 모이는 장소에 늦게까지 있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자습실에 다니기 때문에 특별히 공부를 하지는 않는다. 그러다 보니 늘 이런 잡학 관련 책들을 읽게 된다.
별에 대한 감각이 강한 치카코는 이렇게 다양한 상식이나 규칙을 알아가는 것이 좋았다. 애초에 자신과 아무런 연관이 없는 규칙의 나열은 언제 보아도 흥미롭고 사랑스러웠다. 남자는 이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고, 여자는 이래야 한다는 내용의 책도 좋았다. 소꿉놀이를 하면서 아이들은 규칙을 만든다. 여기부터 앞쪽은 지하실이니까 아버지만 들어가야 해, 아침 식사는 모두 식탁에 앉아서 먹어야 해, 이렇게 단순한 규칙을 지켜야 한다는 것만으로도 소꿉놀이는 즐겁다. 치카코에게는 이런 책이 그런 놀이의 규칙을 나열해 놓은 것처럼 보였다. 소꿉놀이 안에서 어느 틈엔가 생겨난 규칙, 그것을 지키기 때문에 환상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70~71쪽)

사내 녀석들이 리호더러 여자가 아니라면서 지나치게 스킨십을 하는 것도, AV를 보는 자리에서 전혀 여자 취급하지 않는 것도, 모두 리호 자신의 반응을 보기 위한 장난이라는 것을 진작부터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리호는 성별이 없는 사람처럼 있고 싶었다. 그렇게 있다 보면 자기 안에 있는 남성성이 표출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결국 그 모든 것은 가식이요 과장일 뿐이었다.
목적지도 없이 터덜터덜 걸으면서 츠바키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확실히 남자인 척 행동하면 쾌감이 느껴졌고, 그런 자신에게 심취해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메이는 그것을 확인하기 위한 ‘어쨌든 여자’라는 기호에 불과했는지도 모른다. (132~133쪽)

“대체 왜 남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냥 그대로 있어도 되잖아. 리호는 무언가 단단한 줄에 묶여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나로서는 오히려 리호가 그 줄을 스스로 묶고 있는 것처럼 보여. 사람을 꽁꽁 동여매는 줄을 손에 들고 자신을 묶어버린 거지. 그러니까 그토록 힘들고 고통스러운 거 아닐까?” (135쪽)

나는 줄곧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성별이라는 옷을 벗어던지고 싶었다. 성별을 벗고 서로 사랑하고 싶었다.
상대의 성별 따위는 아무래도 좋았다. 두텁게 ‘성별’을 입고 있는 사람일수록 갑옷처럼 첩첩의 껍데기 안의 성별 없는 존재를 연상시켜서, 사실은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것 아닐까, 자신과 함께 할 수 없는 것 아닐까,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그저 그것뿐이었다.
성별이라는 갑옷을 껴입고 있는 사람은 그 단단한 갑옷으로 무른 내면을 사수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 내면과 리호는 연결되고 싶었다. 메이의 능수능란하게 여자를 연기하며 남자를 응대하는 모습은 어딘가 방어벽처럼 보였다. 침대 안에서 함께 갑옷을 벗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다. (14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