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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교회의 역사 (큰글자 살림지식총서 010)
서정민 지음 | 2012년 10월 15일
브랜드 : 큰글자 살림지식총서
쪽수 : 96 쪽
가격 : 12,000
책크기 : 163*255
ISBN : 978-89-522-2101-8-040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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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지식총서, '큰글자'로 새 옷을 입다!

최근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전개되면서 더불어 노년층 독서인구가 증가하고, 다양한 지적・문화적 욕구 또한 늘고 있는 추세다. 하지만 노안이나 약시・저시력 등의 이유로 독서에 어려움을 겪는 독자들 또한 늘고 있다. 이에 살림출판사의 대표 브랜드인 살림지식총서가 문고판 최초로 [큰글자 살림지식총서] 제작 및 보급에 나섰다.
[큰글자 살림지식총서]는 노안으로 독서에 어려움을 겪는 어르신들과 시각 장애인들이 책을 읽기 쉽도록 글자 크기를 키운 도서로, 선진국에서는 ‘라지 프린트 에디션’이라는 이름으로 제작되기도 한다. [큰글자 살림지식총서]는 일반 글자크기인 10포인트(살림지식총서 기준)보다 1.5배 정도 더 큰 약 15포인트의 글자크기로 제작됐으며 독서 소외 계층을 위한 살림지식총서의 노력은 계속될 예정이다.
이 책은 민족국가 내에서 공동체의 역동, 기능, 상호 관계를 한국교회사를 통해 살펴본다. 기독교회와 민족공동체의 만남과 갈등을 전체적 관계론을 통해 서술하고 있는 책으로, 두 주체 간의 관계와 역사적 상황 속에서 두 공동체의 교섭을 이해하는 데 초점을 두고 기술하고 있다.
한국기독교의 수용과 갈등
한국기독교의 전환과 모색
한국기독교의 저항과 굴절
한국기독교의 분열과 성장
한국기독교의 참여와 성숙
1832년 독일계 유태인 목사인 칼 귀츨라프(Karl Gtzlaff)가 영국 상선 로드 암허스트 호를 타고 충청도 홍주 고대도 앞바다에 정박했다. 그가 승선한 영국 상선의 목표가 한국과의 통상이었다면, 그의 목표는 한국 선교였다. 그는 한국에 프로테스탄트 기독교를 전하고자 방문한 최초의 선교사였다. 그러나 이는 한국 정부의 거절로 좌절되었다. 그 후 1866년 영국 런던선교회 소속 목사 로버트 토마스(R. Thomas)가 미국 상선 제너럴 셔먼 호를 타고 대동강을 통해 평양에 진입하였다. 역시 이 배도 통상과 선교허락이 목표였다. 그러나 이들의 방식은 침략적 강권의 형식이었고, 당시 세계사를 지배하던 제국주의적 진출의 형식에 다름없었다. 결국 셔먼호는 평양 관군에 의해 불타고, 토마스와 그 배의 선원들은 처형당하였다. 이렇듯 두 차례의 한국 프로테스탄트 선교 시도는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_p.9

한국 근대민족사에서 3.1운동만큼 커다란 역사적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사건은 없다. 그런데 바로 이 한국근대사 최대 역사사건의 한 중심에, 그 분포나 역사성으로 볼 때 신흥외래 종교이며 당시로서는 소수종교에 지나지 않는 기독교회와 기독교인들이 자리하고 있다는 점은 지속적 검토가 요구되는 측면이다. 그러나 물론 3.1운동이 기독교만의 주도와 참여로 진행된 운동이라든가, 혹은 기독교 정신과 기독교 이념을 구현한 운동이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실제로 3.1운동은 종교적으로도 천도교를 비롯하여 불교와 기독교가 모두 참여하였고, 계층과 지역, 사회적 계급을 불문하고 전 민족이 함께 참여했기에 통합적인 운동으로서의 의의가 더욱 큰 것이다. 다만 이와 같은 전 민족적인 대의와 운동의 한 축으로 기독교가 역할 할 수 있었던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며, 바로 그러한 점을 기독교 역사에서도 의의 깊게 평가하는 것이다. _pp.23~24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한국교회는 ‘전시대책비상기구’를 만들고 민족위기에 기여할 방도를 찾으려고 노력하였다. 첫째, 미국교회와 국제기독교기구, 유엔 등에 한국문제에 관심을 가져 줄 것과 구체적인 협력과 도움의 방도를 강구해 줄 것을 요구하는 외교적 노력을 하였다. 둘째, 이와 더불어 국제 기독교사회가 한국민에 대한 구제와 원조기금, 물자를 수집・제공할 수 있는 자극과 루트를 형성하였다. 셋째, 대내적으로는 기독청년들을 중심으로 ‘십자군’을 조직, 직접 전선에 투입되어 공산주의와 맞싸울 것을 준비하였고, 직접적이지는 않더라도 여러 가지 ‘선무활동’ ‘정훈활동’ 등을 통하여 남한에 대한 전쟁지원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측면과는 반대로, 한국전쟁기의 한국교회는 기록상으로 최대의 수난과 학살을 당하기도 하였다. 전쟁이 시작된 북한지역에서, 그리고 북한 공산군이 점령한 남한 각 지역에서 여러 가지 이유로 기독교인들이 집단적으로 학살당하였으며, 교회당은 파괴되고 또한 피난을 가지 못한 많은 기독교 지도자들이 납북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기독교는 철저한 ‘반공이데올로기’를 형성한 교회로 이행되었고, 민족공동체에 대해 화해와 중재의 장을 마련해주지 못하고, 대립과 갈등을 주도하는 ‘이데올로기적 기독교’로 재편되는 과정에 서게 되었다. _pp.74~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