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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고통과 사랑 사이로 흘러간다
최국주 지음 | 2019년 11월 25일
브랜드 : 살림문학
쪽수 : 440 쪽
가격 : 20,000
책크기 : 152*225
ISBN : 978-89-522-4167-2-03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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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가의 자손이자 아메리칸드림을 이룬 기업가,
아버지의 발자취를 따라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다.

한 인간의 파란만장한 일대기이자
사랑으로 되돌아오는 여정,
결국은 누군가의 가족인 우리 자신의 초상
어떤 사건도 그 자체로 역사가 될 수는 없다. 역사는 그것을 바라보고 해석한 이들 덕분에 집단의 기억으로 윤색되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 현대사는 대개 학자나 정치인에 의해서 기술되어왔고, 그 때문에 평범한 생활의 목소리는 자취를 찾기 힘들다. 오리건 한인회장을 지낸 저자 최국주는, 자서전 『삶은 고통과 사랑 사이로 흘러간다』에서 평범한 가정의 일원일 뿐인 어느 한국인의 삶을 이야기한다. 지식인이 말하는 역사가 투쟁과 정치로 점철되어 있다면, 최국주 회장이 경험한 역사는 하루하루의 생존과 끈질긴 희망으로 이루어져왔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늘 가족이 있다. 한국전쟁의 포화를 피해 오른 피난길, 세탁소와 미군부대에서 일하며 자식을 키운 어머니,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으로 떠나 경험한 이민자의 삶……. 이 파란만장한 행로에서는 우리가 잊어선 안 될 ‘가족의 가치’가 재발견된다.

아버지의 마지막을 밝혀내고자 떠나는 여정
만주-베이징-서울-일본-평양-미국이 파란만장하게 펼쳐진다

1993년, 미국에서 가족과 함께 살아가던 최국주 회장은 북한 김일성으로부터 초청장을 받는다. 이 사건은 최국주 회장이 기억 속에 묻어두었던 아버지를 되짚어보게 하는 계기가 된다. 아버지 최형우는 독립운동가로서 김일성의 동료였으나, 가족들은 그가 한국전쟁 때 북한군에 끌려가 처형당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김일성은 왜 이들을 초청하였는가? 최국주 회장은 아버지의 죽음에 관한 의구심과 혹시 아버지가 살아 계실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안고, 어머니와 함께 북한을 방문한다. 오래전에 헤어진 이복형제 두 사람과 상봉하지만, 북한의 실상은 상상했던 것보다 더욱 처참했다.

북한은 정말 ‘낙원’이라고 그는 말했다. 정부가 인민 누구에게나 필요한 것을 다 마련해준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몇 분 후 화장실을 사용하자마자 형이 해준 말을 믿고 싶었던 마음은 산산이 깨져버렸다. 변기에 용변을 내릴 물이 없었다. 나는 용변을 씻어 내리기 위해 변기 옆 양동이에 채워놓은 물을 사용해야만 했다. 나는 전기와 물 공급이 제한된 상황에서 어떻게 이토록 높은 곳에서 하루하루 생활해나갈 수 있다는 것인지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평양이 이 정도이니 평양 밖에서의 삶이 더 비참하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기본 필수품이 아예 없거나 공급이 부족한 것이 분명했다. 매일매일 살아남는 것, 그것이 그들의 삶의 일차 목표였다.
-본문 138쪽에서

북한 당국은 최국주 회장 가족을 벤츠에 태워 이동하게 하는 등 ‘VIP 대접’을 해주지만, 그럼에도 북한 사회가 극도로 경직되어 있음은 훤히 보였다. 가족끼리 사적인 대화를 나누는 동안에도 북한 당국의 사람들은 수첩에 무언가를 적는 등 노골적으로 감시를 일삼았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김일성이 최국주 회장 가족을 오찬 자리에 초청했을 때, 누구보다 기뻐한 사람은 바로 북한에 살고 있던 이복형제들이었다. ‘위대한 수령’과 대면하는 순간 북한 사회에서는 신분 상승이 이뤄지는 것이었다. 오찬 자리에서 김일성은 최국주 회장의 아버지 최형우가 “남조선의 반동분자들”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고 말하지만, 아버지가 북한군에 의해 끌려갔음을 알고 있는 최국주 회장은 김일성이 거짓말을 하고 있음을, 다시 말해 북한군이 아버지를 죽였음을 확신하게 된다.

미국의 자본주의와 북한의 공산주의를 체험하다
진정으로 인간을 위한 사회/시스템은 무엇인가

저자 자신이 밝히고 있듯이, 북한을 방문한 경험은 그에게 ‘일생의 전환점’이라 할 만한 사건이었다. 어린 시절, 피난길에 올라 달구지를 타고 죽을 고비를 넘긴 뒤, 그는 구세군 목사의 도움을 받아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자본주의의 선봉에 서 있는 미국에서 최국주 회장은 무역업에 뛰어들어 이민자로서의 삶을 일구어갔다. 최국주 회장이 일생 견지해온 가치는 ‘믿음’이었다. 그것은 하나님을 향한 신앙적 믿음이기도 했지만, 타인에 대한 믿음과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대한 헌신이기도 했다. 철저한 개인주의와 실용주의에 입각한 미국 문화는 그에게 낯설고 불편했으나, 그는 회사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이 곧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믿음으로 근면히 살아간다. 무역회사 ‘K-C 인터내셔널’을 설립하여 대표를 맡기까지 그 믿음은 변치 않았다. 따라서 공산주의를 견지하는 북한의 모습은 그에게 기괴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 사회에 대한 신뢰, 하나님을 향한 믿음, 아버지를 앗아간 북한에 품은 증오는 최국주 회장에게 ‘무엇이 진정 인간을 위한 것인가’라는 질문을 안겨준다. 이에 대한 답은 그의 일생에서 찾아볼 수 있다. 미국에서 성공적인 기업가의 삶을 영위하던 그에게, 마치 하늘의 시험처럼 불행이 닥쳐온다. 아내가 교통사고를 당해 중태에 빠진 것이었다. 아내는 목숨은 건졌으나 의사에게서 결코 예전처럼 건강을 회복할 수 없다는 말을 듣게 되고, 최국주 회장은 다른 일을 작파하고 아내의 간호에 힘쓴다. 기적적으로, 조금씩 회복되어가는 아내를 보며 순연히 기뻐하는 그의 모습은, 어쩔 수 없이 하늘의 질문에 대한 대답처럼 보인다.

결국은 미안한 마음만으로 남게 될 이름, 가족
변화하는 시대에도 여전해야 할 가치를 이야기하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가족’만큼 의심받는 가치는 드물다. 젊은 세대는 새로운 가치관과 감수성을 온몸에 두르고, 기존의 한국 사회가 신성시해온 ‘가족’이라는 이념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시대가 변화하더라도 놓치지 말아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이다. 최국주 회장은 회고록 『삶은 고통과 사랑 사이로 흘러간다』에서 가족의 영원한 가치를 이야기하고 있다.

우리 식구들은 하와이 코나로 일주일간 바캉스 여행을 떠났다. 딸들은 물론이고 아내도 황홀해했다. 나는 이 우주 속에서 영적인 존재로서의 내가 누구인가를 되새기며 조용히 내적인 기쁨과 행복에 젖어 있었다. 가족들의 천진한 웃음소리와 미소가 나를 부끄러움에 젖게 했다. ‘인생 대부분을 물질적 행복을 추구해왔으니 내 마음과 몸은 그 얼마나 더럽혀져 있을 것인가?’ 나는 처음으로 그보다 훨씬 소중하고 의미 있는 것을 배운 것 같았다. 이 배움의 선물을 받기까지 나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아니 이해가 불가능할 정도로 큰 값을 치렀다.
-본문 358쪽에서

최국주 회장이 자신의 삶을 통해 들려주는 하나의 역사는, 따라서 한마디로 대답할 수 없는 질문에 대한 장중한 대답이다. 어지러울 만큼 다양한 가치와 믿음이 혼재된 이 세상에서 우리는 무엇을 믿고 의지해야 하는가? 인간의 상식과 가족애의 가치를 이야기하는 이 책 『삶은 고통과 사랑 사이로 흘러간다』는, 그리하여 흘러가는 한 세대가 남긴 정신적 유산이기도 한 것이다.
60대쯤 되어 보이는 하얀 턱수염의 노신사 한 명이 달구지 옆에 서 있었다. 노인이 우리에게 말했다.
“음, 어디 사람 나고 돈 났지, 돈 나고 사람이 났다던가. 자, 내가 도와주겠소.”
그는 돈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묻지 않았다. 그저 곧바로 달구지를 끌기 시작했을 뿐이었다. 그는 우리가 운이 좋은 사람들이라며 밤을 보낼 수 있는 빈집을 가까운 곳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말로 그의 말이 맞았다. 얼마 가지 않아 우리는 집을 한 채 발견했다. 하지만 그 집은 이미 서울로부터 도망 온 피난민들로 붐비고 있었다. 그런데 갓난아기를 등에 업고 세 아이를 거느린 어머니의 모습을 보자 방에 앉아 있던 사람들은 두말 않고 우리들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방바닥은 따뜻했지만 너무 비좁아서 제대로 누울 공간도 없었다. 하지만 동포 피난민들이 우리 가족에게 보여준 따뜻한 마음씨에 어머니와 나는 더없이 마음이 편안해졌다.
-본문 65쪽에서

그날 밤 나는 홀로 남산 꼭대기에 올라가 어머니가 입원해 있는 국립의료원 건물을 내려다보았다. 어머니는 다음 날 아침에 수술을 받을 예정이었다. 나는 어머니를 위하여, 그리고 의사를 위하여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이제껏 그토록 길게, 그리고 그토록 간절히 기도해본 적은 없었다. 수술 예정 시각은 오전 9시였다. 콜러 박사는 수술실로 들어가기 전에 복도에서 나를 잠깐 만났다. 그는 최선을 다하겠다고, 하지만 나머지는 모두 하나님의 몫이라고 다시 한 번 내게 다짐하듯 말했다. 나는 그에게 거듭 감사한다고 말했다. 내게는 그가 하나님처럼 보였다.
-본문 106쪽에서

어머니는 김일성과 대화할 기회를 틈타서 아버지의 행방에 대해서 물었다. 김일성은 조금도 놀란 기색 없이 1950년 11월 5일 전투 중에 남조선 반동분자들이 남조선에서 아버지를 죽였다고 덤덤하게 말했다. 그가 너무도 망설임 없이 재빠르게 대답했기에 나와 어머니는 당황했다. 그의 말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를 체포한 것은 인민군이었으며 그들은 연합군이 서울을 탈환하기 이틀 전인 1950년 9월 26일 밤에 아버지를 남산으로 끌고 가 처형하려 했다. 어머니와 아버지의 친구인 최승조와 아버지를 수색했던 사람들이 다음 날 허탕을 치고 돌아오자, 우리는 아버지가 포로가 되어 북으로 끌려갔다고 믿었다.
김일성의 말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 어머니와 나는 감히 그의 말에 반박하고 진실을 내세울 수 없었다. 우리는 쓰린 가슴으로 그의 말을 듣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본문 141쪽에서

갑자기 엉켜 있는 실타래가 풀리는 것 같았고, 눈앞을 가리고 있는 짙은 안개가 걷히는 것 같았다. 그들이 우리 가족을 초청했다는 그 사실로 인해, 북한에서 그 애국심을 칭송받고 있는 우리 아버지, 바로 그 아버지는 북한 도살자들의 희생물이 되었다는 사실이 더 확실해진 셈이다. 그들은 기반도 허약하고 부패한 북한 정권에 위협이 될 만한 남한의 정치적 지도자들을 제거한 것이다.
그러자 김일성이 우리 가족을 위하여 그의 주석궁에서 베풀어준 오찬이 정말로 잔인한 역설로 여겨졌다. 아버지의 불행한 죽음이 없었다면 우리는 이 위대한 수령을 만날 수 없었으리라는 그 역설! 하지만 나는 그 당시만 해도 그 모든 일의 숨겨진 의미를 제대로 자각하지 못했다. 그리고 아버지의 죽음에 대해 김일성 개인을 비난할 수 있다고 확신할 수 없었다. 아버지를 살해한 자들은 북조선 공산당이 고용한 사냥개 살인자들이라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본문 145쪽에서

사업을 올바로 경영한다는 것은 수도꼭지를 틀고 잠그는 것과는 다르다. 나는 나의 직원들을 높이 평가하고 있었으며, 가능한 한 감원을 늦추었다. 하지만 동시에 여러 마리의 토끼를 쫓을 수 없는 교차점에 마침내 이르게 되었다. 나는 고지 수출을 제외하고는 높은 숙련도를 지닌 세일즈 엔지니어를 필요로 하는 모든 수출 아이템들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직원들을 때맞춰 감원한데다 수출 여건이 조금씩 향상됨에 따라 우리는 서서히 불황의 늪에서 헤쳐 나와 이윽고 우리가 위험 지역에서 벗어났음을 알려주는 지표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 불황기간에 소중한 직원들을 내보낼 수밖에 없었던 일은 참기 어려울 정도로 고통스러운 경험이었으며 결코 잊을 수 없는 교훈으로 남았다.
-본문 282쪽에서

나는 아내가 아직 죽을 운명이 아니었다고 생각했다. 하나님께서 그런 무서운 사고를 겪고도 그녀가 살아남을 수 있게 해주셨다면 그녀를 혼수상태에서 벗어나게 해주시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별로 이치에 맞지 않는 생각임을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통계치로 본다면 그녀는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확률이 높았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살아 있다. 그녀가 3개월이나 살아 있다는 바로 그 사실이 내게 다시 희망을 주었다.
“여보, 내가 왔어.” 내가 아내에게 말했다. “오늘은 기분이 좀 어때?”
-본문 338쪽에서

어머니는 2009년 1월 9일 세상을 떠나셨다. 어머니가 눈을 감으시자 나는 마치 나의 에너지원(源)이 빠져 나간 것처럼 느껴졌다. 마치 내 정신이 내 육체를 떠난 것 같았다. 이제 내게서 그 세월 동안 버팀목이 되었던 지주를 잃은 것이다. 어머니는 지난 15년 동안 당신의 몸이 쇠약해졌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아내와 가족들을 돕기 위해 최선을 다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전 생애 동안 내가 지고 있던 짐, 어머니를 돌보아야 한다는 그 무거운 짐을 이제 놓을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내가 안도감을 느끼기도 했음을, 비록 고통스러운 일이지만 고백해야 한다. 동시에 이제 어머니가 더 이상 육체적 고통으로 괴로워하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 자식들 때문에 겪게 된 심적인 번민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로 인해 나는 기쁨을 느끼기도 했다.
-본문 339쪽에서

그 많은 시련과 고난으로 점철된 부모님의 생애와 비교해볼 때 나는 내 생애 동안 많은 것을 누리고 살았다. 물론 내게도 악몽 같은 일들과 고난들이 있었다. 하지만 하나님은 내가 가는 길에 도전과 시련이 있을 때마다 그에 맞설 수 있는 용기를 내려주셨다. 아마도 나의 부모님과 조상들이 천국에 쌓아놓은 덕행 덕분이었을 것이다. 내 생애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가장 위대한 선물은 내가 하나님을 엿볼 수 있게 해주셨다는 것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내 영혼은 영원히 하나님 안에 거(居)하고 있다는 신념을 내게 심어주셨다는 것이다.
-본문 432쪽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