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출판사가 출판한 책 현재 2,443  
살림출판사홈 > 살림의 책 > 전체도서목록
아버지와 아들 (큰글자 세계문학컬렉션 31)
이반 세르게예비치 투르게네프 지음 | 진형준 옮김 | 2019년 11월 25일
브랜드 : 살림
쪽수 : 232 쪽
가격 : 25,000
책크기 : 197.6×273mm
ISBN : 978-89-522-4132-0-04800
• Home > 브랜드별 도서 > 살림
• Home > 분야별 도서 > 문학
• Home > 시리즈별 도서 > 큰글자 세계문학컬렉션
시니어 독자의 눈높이에 맞춘 최초의 세계문학컬렉션
변혁의 시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물은
『아버지와 아들』
죽기 전에 읽어야 할 세계문학 버킷리스트!
『아버지와 아들』은 러시아가 변혁의 소용돌이에 처했을 때의 소설이다. 달리 말하면 변혁이 필요했던 시대에 발표한 소설이다. 하지만 인류 역사는 온통 변혁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갈등이 너무 심해 안정을 추구해야 할 때도 있고, 너무 오래 정체되어 있어 새로운 물꼬를 터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게다가 인간에게는 현재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싶은 본능도 있고 그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들고 싶은 본능도 있다. 전자가 개인이나 사회에 안정성을 부여한다면 후자는 역동성을 부여한다. 여러분은 지금 나에게,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하다고 느끼는가?

큰글자로 읽는 진형준 교수의 세계문학컬렉션!
읽지 않는 고전은 없는 고전이고, 즐기지 못하고 감동을 주지 못하는 고전은 죽은 고전이다. ‘큰글자 세계문학컬렉션’은 마음을 풍요롭게 다스리고 날카롭게 자신을 마주하고 싶은 시니어 독자의 눈높이에 맞춘 최초의 고전문학선이다. 두껍고 지루한 고전을 친절하고 더 맛깔스럽게 재탄생시킨 ‘축역본’이자 글자 크기를 키워, 보다 편한 독서를 도와준다.

『아버지와 아들』은 투르게네프가 1861년에 탈고하고 1862년에 발표한 소설이다. 하지만 이 소설의 배경은 러시아의 알렉산드르 2세가 우여곡절 끝에 농노제를 폐기한 바로 2년 전인 1859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투르게네프는 다른 소설들과 다르게, 마치 역사소설, 혹은 르포인 것처럼 작품 앞머리에 1859년 5월 20일이라고 명기했다. 이것은 이 소설의 무대가 국가 전체가 격변기에 처한 러시아임을 분명하게 알려준다.
러시아의 농노는 ‘이방인’이 아니라 ‘러시아 국민’이다. 당시 러시아 인구 6,700만 명 중 4,000만 명이 농노였으니, 일부 러시아 국민이 아니라 대다수 러시아 국민들이 농노였던 셈이다. 러시아의 ‘농노해방’은 단순한 변혁이 아니라 국가의 근간을 뒤엎는 일이었으며, 국가의 틀 전체를 새롭게 바꾸는 일을 의미했다. 나라 전체가 진보/보수, 새로운 세상/구질서, 젊은 세대/낡은 세대의 대립으로 어수선했을 것이고 귀족은 귀족대로, 정치인은 정치인대로, 구세대는 구세대대로, 젊은 세대는 젊은 세대대로 이리저리 편이 갈려 대립하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변화되는 시대상을 단순히 대립의 구도로 조명하기보다 아버지와 아들 간의 갈등에 집중하고 있다. 한 쌍의 부자가 아니라 아르카디와 바자로프라는 두 친구의 아버지들과의 갈등을 보여준다. 왜 그랬을까?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 즉 세대 간의 갈등은 “요즘 젊은것들은 원!” 하는 탄식이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의 입에서까지 나온 것처럼 오래되고 흔한 일일 텐데 말이다.
그런데 이런 아버지와 아들 간의 갈등이 특히 심해질 때가 있다. 바로 역사적 변환기다. 역사적 변환기라는 것은 낡은 세상이 물러가고 새로운 세상이 오려 할 때를 말한다. 그런 때가 되면 아버지와 아들 간의 갈등은 단순한 세대 간의 갈등이 아니라 역사관, 세계관의 갈등으로 확대된다. 그리고 대개 아버지가 수세에 몰리고 아들이 우세를 점하게 된다. 역사적 변환기 혹은 변혁기는 아버지에 대해 아들이 승리를 거둔 시기인 것이다. 아버지가 그럭저럭 아버지의 권위를 유지하고 있을 때는, 갈등 속에 작은 변화는 있을지 몰라도 변혁이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이 의미심장한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의 모습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이런 역사적 맥락을 우선 염두에 두고 읽어야 한다. 그래야 왜 이 소설에 나오는 아버지들이 아들들 앞에서 그토록 절절매는지 이해할 수 있다. 아마 도도한 역사적 흐름 앞에서, 그 대세 앞에서 아버지들은 시대에 뒤처져 있다는 자괴감에 젖었을 것이고, 자신의 시대는 끝났다는 절망감에 젖었을지 모른다. 한마디로 존재 근거가 사라져버린 허망감!
하지만 투르게네프는 이 작품에서 아들들의 편만 들지 않는다. 그래서 작품을 발표한 후 작가는 보수주의자, 진보주의자 양쪽 모두로부터 비판을 받는다. 보수 진영으로부터는 니힐리스트에 불과한 바자로프를 너무 미화했다고 비난받고, 진보 진영으로부터는 혁명적 민주주의자의 모습을 악의적으로 왜곡, 비방했다고 비난받는다. 즉, 투르게네프는 변화되는 시대를 그저 묘사하고 누군가의 편을 들기 위해 『아버지와 아들』을 쓴 게 아니라, 변혁기를 사는 인간과 그들의 삶을 그대로 보여줌으로써 읽는 이로 하여금 그 누구를 향해서건 공감할 수도 있고 반감을 품을 수도 있게 했다.
인류 역사는 온통 변혁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갈등이 너무 심해 안정을 추구해야 할 때도 있고, 너무 오래 정체되어 있어 새로운 물꼬를 터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게다가 인간에게는 현재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싶은 본능도 있고 그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들고 싶은 본능도 있다. 전자가 개인이나 사회에 안정성을 부여한다면 후자는 역동성을 부여한다. 여러분은 지금 나에게,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하다고 느끼는가?
제1장
제2장
제3장
제4장
제5장
제6장
제7장
제8장
제9장
제10장
제11장
제12장
제13장
에필로그

『아버지와 아들』을 찾아서
그날 저녁 식사 후, 서재에서 니콜라이는 형 파벨에게 말했다. “이제 형님과 저는 시대에 뒤떨어졌어요. 우리들의 시대는 끝났어요. 그래요, 바자로프의 말이 옳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한 가지 견디기 어려운 게 있어요. 이제 아르카디와 정말 가깝게 지낼 수 있겠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시대에 뒤떨어졌고 그 애는 저만치 앞서간다는 생각…… 우리는 서로를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 (47쪽)

파벨 페트로비치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고함을 질렀다. “이 불쌍한 녀석아! 네가 네 나라를 위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나 알아라! 정말 도무지 참을 수가 없구나! 힘이라고? 아무리 미개한 나라라도 힘은 있어. 그런 힘이 우리에게 왜 필요하냐? 우리에게 필요한 건 문명이야. 그리고 그 문명이 가져다줄 열매야. 그런 열매가 쓸모없다는 소리는 제발 하지 마. 아무리 보잘것없는 삼류 시인도, 하루 저녁에 5코페이카만 받는 무도회 피아노 연주자도 너희보다는 쓸모가 있어. 왜냐고? 그들은 힘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문명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지. 이보게, 니힐리스트들! 잘 기억해둬! 자네들 숫자는 한 줌도 안 돼! 그리고 자기네들의 신성한 전통이 짓밟히는 꼴을 가만히 두고 보지 않을 사람들은 수백만이야! 그들이 자네들을 짓밟아버릴걸!” (58쪽)

동생이 형에게 말했다.
“형님, 전에 어머니와 말싸움했던 게 생각나네요. 어머니는 소리만 지르시면서 제 말은 들으려고도 하지 않으셨지요. 결국 저는 ‘어머니는 저를 이해하실 수 없어요. 우리는 세대가 다르니까요’라고 말해버렸죠. 그런데 이제 우리 차례가 된 셈이에요.”
“자네는 너무 너그럽고 겸손해서 탈이야. 나는 자네나 내가 저 애들보다는 옳다고 확신해. 우리가 약간 낡은 언어를 쓰고 구식인지는 모르지만, 그리고 저 애들처럼 확신에 차 있지는 않지만…….” (60쪽)

파벨이 쓸쓸한 미소를 띠고 말했다. “바자로프가 날 속물이라고 비난한 게 옳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어. 이보게, 니콜라이. 이제 더 이상 겉치레나 세상 평판 따위에 신경 쓰며 살지 말자고. 우리는 이제 낡았고 보잘것없어. 이제 온갖 종류의 허영을 버려야 할 때가 온 거야. 자네가 늘 말했듯이 우리의 의무나 행하자고. 그래야 덤으로 행복을 찾을 수도 있을 거야.” (166~167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