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보는 눈 키워준 작지만 큰 문고본 
 

“인간이 사용하는 여러 도구 중 가장 놀랄만한 것은 책이다. 다른 것들은 신체의 확장이다. 현미경과 망원경은 시각의 확장이고, 전화는 목소리의 확장이며, 칼과 쟁기는 팔의 확장이다. 그러나 책은 기억과 상상력의 확장이다.” 보르헤스의 말이다. 눈이 멀었으면서도 계속해 책을 사 모았던 보르헤스는 “비록 볼 수는 없지만 책이 내 옆에 있다는 느낌만으로도 나는 행복하다. 책이 사라질 것이라고들 말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해 버젓이 두 눈을 뜨고도 책을 멀리하는 우리를 부끄럽게 했다.

출간 1년 만에 100호를 돌파한 ‘살림 지식총서’는 이 활자매체 위기의 시대에 다시 한번 우리를 책으로 데려다 준다는 점에서 전례없이 성공적이고 획기적인 기획이다. 지금까지 그 어느 문고판도 1년에 100권을 낸 적은 없었으며, 그처럼 다양한 필자를 동원해 그처럼 광범위한 주제를 다룬 적도 없었다. 문고본 사이즈에 ‘세상의 모든 지식’을 담기 위해 시작된 ‘살림 지식총서’는 교양의 함양, 지식의 대중화, 새로운 패러다임과 변화하는 세계의 조망, 그리고 대중문화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을 통해 명실공히 ‘교양과 지식의 백과사전’으로 자리잡았다. 

 
그래서 ‘살림 지식총서’100권을 읽고 있노라면, 그동안 몰랐던 것들을 새롭게 알게되는 즐거움과 세상을 보는 눈이 밝아지는 기쁨을 동시에 경험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살림 지식총서’는 다양한 지식과 정보의 보고이자,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상징적 창으로 다가온다. 비록 1927년에 시작한 일본의 이와나미 문고나 41년에 시작한 프랑스의 크세즈 문고처럼 역사는 없지만, 지난 1년 동안 보여준 ‘살림 지식총서’의 저력은 그것이 머지않아 한국의 크세즈나 이와나미가 될 수 있으리라는 믿음을 갖게 해준다. 

물론 책의 외형적 크기나 두께에 관심이 많은 한국적 토양에서 작은 문고본이 겪는 편견도 만만치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문고본은 마치 패스트푸드처럼 누구나 접근이 가능하고 휴대가 간편하며 쉽게 소화할 수 있는 매력과 장점이 있다. 오늘날 패스트푸드가 전 지구적 문화 표상이 되어 젊은 세대의 사랑을 받고 있는 이유도 바로 그러한 문화 민주주의적 속성 때문일 것이다. 문고본은 바로 그러한 시대에 필요한 형태의 책으로 독자들의 동참과 사랑을 받게 될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세계는 한권의 책이다. 여행하지 않는 사람은 다만 그 책의 한 쪽을 읽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그 반대로, “책은 하나의 세상이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은 다만 세상의 한 단면만 알 수 있을 뿐”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적절하게도 ‘살림 지식총서’ 100호는 ‘여행 이야기’다. 책을 읽는 것은 곧 지적 모험과 정신적 방랑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사실 유랑과 탐험, 그리고 여행과 모험은 작가들의 문학적 상상력을 자극했을 뿐만 아니라, 인류문명과 역사의 발전에도 큰 공헌을 했다. 그렇다면 책을 읽는 것은 곧 정신적 신대륙을 발견하고 우리 영혼의 북극과 남극을 발견하는 중요한 과정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살림 지식총서’가 100권 발간 기념으로 세계 100개 주요 도시를 다룬 ‘세계의 도시 이야기’를 기획하고 있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 대단히 상징적이다. 폐쇄적인 민족주의에서 벗어나 세상을 향해 눈 뜨고 마음을 열어놓기 위해 제공되는 이 특별한 기획은 세계 각국의 유서 깊은 도시들로 독자들을 데리고 가 그곳에 감추어진 것들을 보고 경험하게 해주는 현대판 오디세이의 항해와도 같기 때문이다. 과연 우선 출간된 1차분 11권만 보아도 모험과 탐험을 좋아하는 독자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기에 충분하다. 서구문명의 발상지였던 아테네와 로마로부터 동서문명이 혼재하고 공존하는 이스탄불과 예루살렘, 그리고 유럽을 향한 러시아의 창인 상트 페테르부르크와 독일인들의 정신적 궁이자 낭만적인 고성 하이델베르크를 거쳐, 자유와 예술의 도시 파리와 아름답고도 슬픈 역사의 바르샤바로 우리를 데리고 가기 때문이다. 

보르헤스와 에비타의 도시 부에노스아이레스와 아스테카 문명의 멕시코시티, 그리고 헤밍웨이가 문학적 상상력을 불태웠던 사파리의 도시 나이로비를 다루고 있는 것도 매력적이다. 세계 100개 도시로 원대한 지적 편력을 떠나는 이 기획은 단순한 여행안내서가 아니라, 세계 주요 도시들에 대한 인류문명사 및 세계문화사적 고찰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보르헤스는 이 세상을 백과사전과 미로에 비유했다. 그동안 출간된 ‘살림 지식총서’ 111권은 지식의 백과사전이면서 세상이라는 미로에서 길 잃은 독자들을 안내하는 이 시대의 북극성이자 등대로 어둠 속에서 밝게 빛날 것이다.

플라톤, 비트겐슈타인, 푸코, 아인슈타인, 스티븐 호킹 등 사상가와 과학자들의 이론을 현대사회의 쟁점과 연결해 재해석한 문고본 ‘아이콘’ 시리즈(이제이북스 발행)가 24권으로 완간됐다. 

살림총서(왼쪽)와 아이콘시리즈 
마지막 4권은 ‘플라톤과 인터넷’ ‘프로이트와 거짓기업 증후군’ ‘포스트모더니즘과 유대인 대학살의 부인’ ‘하이데거와 나치’. ‘플라톤과 인터넷’에서 저자 키런 오하라는 참이 입증되어야 진정한 지식과 믿음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인식론은 현대와 같은 정보 홍수시대에는 폐기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살림출판사가 내고 있는 ‘살림지식총서’는 100권을 돌파했다. 최근 나온 12권은 아테네, 로마, 이스탄불, 나이로비, 부에노스아이레스, 멕시코시티, 하이델베르크, 파리, 바르샤바 등 세계 주요 도시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했다. 유럽과 중동, 남미 등 25개국 35개 도시를 담은 시리즈가 후속으로 나올 계획이다. 

/김범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