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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습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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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탁환 지음
| 2009년 5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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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랜드 : 살림인문 |
| 쪽수 : 280 쪽 |
| 가격 : 12,000 원 |
| 책크기 : 122*190 |
| ISBN : 978-89-522-1166-8-038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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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김탁환이 말하는 따듯하고 매혹적인 글쓰기!
『혜초』 『리심, 파리의 조선 궁녀』 『방각본 살인 사건』 『열녀문의 비밀』 『열하광인』 『허균, 최후의 19일』 『불멸의 이순신』 『나, 황진이』 등 굵직한 장편을 연거푸 쏟아놓은 소설가 김탁환이 드디어 글쓰기에 대해 입을 열었다. 그러나 『천년습작』은 기존의 글쓰기 책들처럼 글쓰기의 기술이나 실용적인 방법론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세상을 바라보는 ‘따듯함’에 초점을 맞추며, 글을 쓰는 이의 자세와 마음가짐을 세밀하게 파고든다. 이 책에서 그가 말하는 바는 단 하나의 문장으로 집약된다. 요컨대 잔재주보다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글쓰기와 이야기 만들기의 핵심은 그럴 듯한 흉내가 아니라 ‘진심 그 자체’이다. 그러므로 삶을 관통하는 일관된 ‘자세’를 확립하는 것이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인 것이다. 글쓰기에 뜻을 둔 사람이라면 모름지기 ‘천년의 습작’을 각오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독자들은 이 책 속에서 소설가가 말하는 소설가를 만나게 된다. 김탁환은 『괴테와의 대화』 『발자크 평전』 『릴케의 로댕』에서처럼 또 다른 누군가가 바라본 고뇌하는 작가의 모습을 그려내는가 하면, 『칼 같은 글쓰기』 『하드리아누스의 회상록』에서처럼 자신의 내면을 스스로 토로하는 용기 있는 작가들과 직접 대면하기도 한다. 그리고 그 모든 이야기와 장면들에는 소설가 김탁환이 오랫동안 품어왔던 창작의 고민과 구도에 대한 갈증이 진하게 배어난다. 그가 영감을 받았던 작품에서 빌려온 고르고 고른 주옥같은 문장을 헤집고 나아가다보면 독자들은 어느새 글쓰기에 대한 ‘눈’과 ‘손’과 ‘걸음걸이’뿐 아니라, 인생을 대하는 ‘자세’를 되돌아보는 자신을 느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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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강 오리엔테이션: 인용들
―『괴테와의 대화』에 기대어
제2강 카프카의 불안과 빌어먹을 매혹
―『문학의 공간』에 기대어
제3강 사이에서 치열하게, 인터뷰!
제4강 작가의 방 1
―『발자크 평전』에 기대어
제5강 작가의 방 2
―『릴케의 로댕』에 기대어
제6강 이야기에 관한 어리석은 이야기
제7강 매체와 이야기의 변신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에 기대어
제8강 누구나 사랑할 만한 인간
―『남쪽으로 튀어!』에 기대어
제9강 견고한 ‘나’ 만들기 1
―아니 에르노의 소설들에 기대어
제10강 견고한 ‘나’ 만들기 2
―『하드리아누스의 회상록』에 기대어
제11강 작가는 어이하여 떠돌까
―여행과 글쓰기
제12강 키워드 혹은 그물
―소설 『혜초』를 위해 고심하기
제13강 따듯하게 설화 품기
―물의 상상력
제14강 따듯하게 소설 품기
―『원미동 사람들』에 기대어
제15강 따듯하게 영화 품기
―과 에 기대어
제16강 내 인생의 책은 죄가 없다
―『새로운 인생』에 기대어
강의를 마치며
―작가는 나무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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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테와의 대화』를 쓴 요한 페터 에커만은 괴테를 천 번이 넘게 만났다. 천 번이나 괴테를 만날 수밖에 없었던 필연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거룩함과 관련된 문제일 것이다. 한 걸음 한 걸음에 목숨을 거는 수도사처럼, 작가들은 어쩌면 한 문장 한 문장의 글을 통해 점점 그러한 거룩함으로 다가가는 것일 테다.
글을 쓴다는 것은 무엇일까? 작가들은 갈망한다. 매 작품을 쓸 때마다 쓰는 내내 매혹되기를. 그 매혹에 들 가능성을 높이기 위하여 작가는 나름대로 다양한 창작방법을 찾는다. 자신의 삶 전체를 살피면서, 매혹에 돌입하기 위한 기회를 호시탐탐 엿본다. 누구나 저마다의 방식으로 글을 쓰고 이야기를 만들며, 여기에는 결코 정답이 없다. 그러나 또한 단순히 그러한 창작방법만으론 무언가 부족하다. 작가는 자신의 삶 전체를 살피면서 매혹에 돌입하기 위한 기회를 호시탐탐 엿보아야 한다. 바로 자신의 삶을 관조하는 눈이 필요한 것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처음에 글은 ‘읽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감(感)하고 동(動)하면서 글은 ‘느끼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 작자는 읽고 느끼고 품는 자라고 확신합니다. 한없이 따듯하게!” 따듯함을 지니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열린 마음이다. 편견 없이 내 앞에 놓인 문장을 하나하나 음미할 여유가, 그리고 지속적인 관심 역시 따듯한 품기의 필수적인 요소이다. 한 줄의 문장을 짓기 위해 작가는 오랫동안 고민하고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그러므로 만약 우리가 그 고민의 나날을 가늠해본다면 우리는 그 문장을 통해 훨씬 더 많은 것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이다.
이 책은 글쓰기를 소위 ‘테크닉’으로만 파악하는 관점에 반대한다. 이러저러한 테크닉을 익히면 좋은 글을 쓸 수 있다는 소위 ‘실용서’들은 우리에게 어떠한 울림도 주지 못한다. 시점, 구조, 주제, 인물을 만드는 법만 따로 모아놓은 스토리텔링 교재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또 다른 하나는 글쓰기와 이야기 만들기를 디지털 기술로 해결하려는 시도이다. 컴퓨터가 체스를 두듯 이야기를 자동적으로 만들려는 노력은 글쓰기나 이야기 만들기의 본질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설령 컴퓨터가 글을 쓰고 이야기를 만드는 날이 온다고 해도, 그것들은 단지 삶의 중요한 문제를 다루는 ‘척’할 뿐인 것이다. 글쓰기와 이야기 만들기의 핵심은 그럴 듯한 흉내가 아니라 ‘진심 그 자체’라고 말하는 저자의 말은 우리가 곰곰이 되새겨보아야 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이 책에는 테크닉도, 디지털에 기초를 둔 스토리텔링 신기술도 없다. 즉시 써먹을 수 있는 돈이 되는 이야기는 하나도 없다. 대신 ‘따듯함’이 있다. 아니 에르노의 치열한 글쓰기처럼, 집필실의 고독에 빠졌던 발자크처럼, 평생 동안 멀고도 험한 길을 감내해야겠다고 다짐했던 폴 오스터처럼, 글은 사람의 인생을 걸고 쓰는 것이다. 그러므로 저자는 말한다. “우리는 누구나 ‘백년학생(百年學生)’이며, 글쓰기에 뜻을 둔 이라면 ‘천년습작(千年習作)’을 각오해야 한다.”라고. 글쓰기로 세상과 소통하고 싶은 사람에게, 작가의 비밀한 속내를 들쳐보고 싶은 사람에게, 이 책은 작지만 따듯한 안내자가 되어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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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에 대해 고민하게 만들어 주는 책이다.
저자의 지식이 방대한 걸 느낄 수 있다.
어쩔 땐, 작품분석을 논하는 책 같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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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시작입니다. 김탁환 작가의 '따듯한 글쓰기 특강' [천년습작]은 잊고 있던 그리고 잃어버리고 있던 글쓰기에 대한 저의 욕망을 일깨웁니다. 지은이의 얘기처럼 '따듯하게'말입니다. 지은이가 강의를 하며 들려주는 이야기를 옮겨놓은 듯한 이 글은 겸손하고 공손한 말투만으로도 선뜻 우리를 잡아 끕니다. 마치 글쓰기란 그닥 어렵거나 힘들거나 한 것이 아닌 듯이 말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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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제는 외부적 조건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삶을 사는 이상 글을 쓰는 이에게 유리한 시간은 없다는 지적입니다. (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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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쓰기와 글읽기의 '매혹'과 '불안'에 관하여 들려주는 카프카의 실례에서 보듯이 우리는 끊임없는 흔들림 속의 글쓰기, 끝이 없을 그 습작의 시간들을 예감합니다. 겨우 한 두 해 또는 고작 십여 년이 아니라 지은이의 말처럼 '천년'은 이어져야 할 '습작'의 시간들을 만납니다. 십수 년 시인이 되겠답시고 끄적거리던 습작의 시간들을 어느 순간 자연스레 멈춘 뒤 불현듯 다시 만나는 자극의 시간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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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치고 고치고 고치고 또 고칩니다. (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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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쩌면 너무도 단순한 이 한 문장이 저같은 문학청년! - 등단을 앞둔 모든 습작하는 사람들은 나이에 상관없이 문학청년이라 불러도 될 것입니다. - 들에게는 화살처럼 와서 꽂힙니다. 그렇지요. 스티븐 킹이 그의 책에서도 이야기한 것처럼 '지름길은 없습니다.' 글쓰기는 우직하게 한걸음 한걸음 밟고 나아가는 그 한 길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읽고 쓰고 '고치고 고치고 고치고 또 고치'는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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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면 우리는 이 책의 특강들을 통하여 무엇을 배워야 할까요? 지은이는 콕 집어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테크닉과 지식은 예술가의 작업과 하등 상관이 없습니다.' '저는 자세를 가르치고 배운다고 생각합니다.' (75) 저 역시 그리 생각합니다. '눈'과 '손'이 어울려 빚어내는 작업, 그 '창조의 자부, 창조의 오만, 창조의 황홀과 도취!'(91)를 잊지 않는다면 우리는 이 길, [천년습작]의 길을 갈 수 있을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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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한 지은이는 '본질은 문학에 있지만 ~ 그 본질을 문학의 틀에서 벗어나 배우고 익혀나가야 한다는 것'(106)에 고민하면서 '사랑,부끄러움,증오를 객관화시켜 정확히 쓰려고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인생을 걸고 쓰는 글이기 때문'이라고 강조합니다. 그렇지요. 지은이의 말처럼 '그대로 쓰겠다는 마음가짐,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155) 하지만 어차피 글쓰기에 뛰어든 이들이라면 이 말을 받아들여야합니다. 결코 낯설거나 어색하게 생각한다면 지은이의 지적처럼 제대로 된 글쓰기는 불가능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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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여기서 다시 '김수영'을 만납니다. 아니 그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온몸으로, 온몸으로 부딪혀 나아가는 글쓰기, 진정성 있는 글쓰기만이 문학에 몸을 던진 청년들이 나아가야할, 바라보아야 할 길이지요. 그렇습니다. 진정성이 담보되지 않는 문학이란 우리에게 아니, 독자들에게 무엇이겠습니까? 제가 어영부영 하던 습작 생활을 슬그머니 그만둔 까닭도 이것입니다. 노력은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순간순간 샘솟는 감정들만 토로하며 습작이랍시고 끄적거리던 날들이 부끄러워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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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따듯한 강의를 듣다보니 앞으로 (다시) 찾아 읽어야할 책들의 목록이 엄청 늘어갑니다. 1980년대, 그 뜨거웠던 날들에 읽었던 "원미동 사람들"을 지은이의 조목조목 섬세한 설명과 다시 읽는 시간도 좋고 미처 만나지 못하였던 몇몇 작가들의 글을 걸러서 만나보는 순간은 더욱 기쁩니다. 그렇겠지요. 잘 쓰기 위하여서는 그만큼 많이 읽고 제대로 느끼고 바로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 책 덕분에 잊고 있던 습작의 종이들을 다시 꺼내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시작하렵니다. 수많은 이들이 걸어갔지만 결코 지름길은 보이지 않는 '천년습작'의 길일지라도 터벅터벅 한걸음 한걸음 다시 걸어가렵니다. 고맙습니다. 이 책, 이 강의! 덕분에 저는 다시 꿈을 꾸기 시작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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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밤마다 새벽까지 책을 읽었다. 눈이 아파오고 온몸의 힘이 빠질 때까지, 책을 읽다 보면, 때때로 책이 내 얼굴로 뿜어내는 빛이 너무나 강렬하고 현란해서, 나의 영혼과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몸이 녹아 없어지고, 나를 나로 만들어주는 모든 것이 책이 뿜어내는 빛과 함께 없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럴 때면, 나는 그 빛이 나를 삼키면서 점점 더 팽창해가는 것을 상상했다. - [새로운 인생] 53면 ( 오르한 파묵 ) (2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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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 6.14. 밤, '좋은 글 한편 품고 문 두드릴 그날까지'(268)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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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들풀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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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9-140-06-0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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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는 나무처럼 성장해가는 존재입니다"
- P.265
- 라이너 마리아 릴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
이말이 가장 와닿는 천년습작, 존경하는 작가 김탁환님의 따뜻한 글쓰기에 대한 특강이다. 아무래도 학생들에게 글쓰기에 대해서 가르치다보니까 이런 책도 있어야 하겠구나 하고 만들어진 책인듯 보인다. 사람들이 글을 쓴다는 것을 상당히 어려워한다. 심지어는 글쓰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다. 나역시도 그랬다. 이과 출신에 공대로의 인생을 살다보니, 활자에 대한 두려움이 점차 생겼다. 글쓰기에는 어떤 테크닉이 있어야 하는 것인지 갈팡 질팡 글쓰기는 계속되었다. 그러다 '천년'을 만나게 되었다.
이 책 <천년 습작>은 글쓰기의 테크닉을 알려주는 책이 아니다. 글을 짓는 마음, 진심, 고민에 대한 책이다. 그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그런 글을 쓰기 위해서 수많은 문호가들이 어떻게 하여 주옥같은 글을 짓게 되었는지 말해주고 있다. 괴테와 카프카를 만나며 릴케의 작업 방을 훔쳐본다. 작가들이 얼마나 수많은 고민과 괴로움 끝에 책을 펼쳐 내었는지 그 감정을 배우라고 한다. 이들은 분명 보통 사람들이 아니라고 여겼지만 참 기분 좋은 표현 '-기대어'란 말을 빌려 위대한 작가의 작품들을 탐닉한다. '발자크 평전'과 '릴케의 로뎅' 뿐 아니라 ' 남쪽으로 튀어' '하드리아누스의 회상록' 등에 기대어 사람의 인생을 걸고 글쓰기에 전념했던 이들의 마음을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어려운 작품들이다. 이 책에 소개된 작품들은 제목도 잘 들어보지 못한 것들이 상당수이다. 내공이 부족한 내 탓일까. 진중하게 이들의 마음을 따라잡기에는 역시 아직 바다의 모래알만큼도 안되는 상식수준이라서 그런걸까.
읽는 내내 오히려 더 혼란스러웠다. 뭐 어떻게 해야 마음이 이렇게 될 수 있단 말인가. 자기 자신을 정돈하고, 쓰고자 하는 작품의 키워드를 손보고, 따뜻하게 책의 주제를 가슴에 품어야 한다는데, 이게 말처럼 쉬운게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만큼 깊이 다가오는 글쓰기 책은 아직 없었다. 백날 글쓰는 기교가 늘어나 봤자, 독자들은 알아주지 않을 것이다. 완전한 혼연일체가 되어야 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의 말중에 인간은 누구나 '백년학생(百年學生)'이라 글쓰려면 '천년 습작(千年習作)'을 각오해야하 말한다. 엄청나게 가슴에 콕콕 박히는 말이다. 앞으로도 쭉 천년습작을 끄적이는 백년학생으로 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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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탁환, 그의 작품인 <열하광인>과 <혜초>로 인해 그가 나의 삶 안으로 그 어떤 걸림돌도 없이 거침없는 걸음으로 들이밀고 들어와 그 이름을 바위에 새겨놓듯이 수려한 흘림체로 박아놓았다. 유명작가 김탁환이라고 스스럼없이 말을 해도 거짓부렁이나 과함이 없는 저자이기에 그의 글쓰기 특강이 있는 책이라니, 그 어떤 기대감보다도 더 충만되어있는 마음을 마주하게 된다.
첫 장을 넘기고 그렇게 몇 십장의 책장이 넘어가면서 조금은 멍한 상태가 되어 있었다. 사실, 유명작가의 글쓰기에 대한 기술을 세세하게 가르침받고자 한 마음으로 마주한 책이었기에 이 책에 담긴 그의 글쓰기 강의를 처음에는 따라가지 못 하고 있었다. 내가 원하던 내용이 아니었기에 길 잃은 양마냥 안절부절해 있었다고나 할까. 그는 이 책에서 글쓰기를 위한 기술을 가르쳐주지 않는다. 그런 특강은 없다. 그는 글쓰기를 하려면 어떤 자세여야 하는지 그것을 이 책 속에 말하고 있을 뿐이다. 잘 쓰는 글쓰기의 요령을 배우고 싶었던 얄팍한 나의 급한 마음을 꾸중이나 하듯이 되레 그는 글쓰기를 위한 자세를 먼저 말해주다니 언제나 급한 나의 성격이 또 앞지르고 말았다.
하긴 어린시절 내가 헤세에게 반했던 이유가 무엇이던지 다시 떠올려보면, 그의 이 글쓰기 특강은 순서를 제대로 지켜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책이란 독자들의 영혼을 흔들어 놓아야 한다고 믿어왔다. 그러하기에 책에는 인생이 녹여져 있어야 하고, 인생을 살아가는 자세는 무엇보다 중요한 진실이 되어준다고 말이다. 글쓰기에는 인생이 담겨져 있고, 그 인생을 대하는 자세가 바로 서 있는 상태에서 글쓰기는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 그는 바로 이 책을 통해 그것을 보여주고 있다.
글쓰기는 따듯함이 있어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하기에 이 책에 역시 그 온기를 불어놓았다고 말이다. 글이 따듯하기 위해서는 열린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그의 말을 거침없이 수긍한다. 어린시절 편중되고 좁은 사고 속에서 책들을 읽어왔었고, 그러하기에 마지막 책장을 넘기는 순간 웅얼웅얼 욕지기를 삼켰던 경험을 여러번 가져본 적도 있었다. 하지만 세월의 더미를 쌓아가면서 모난 모서리가 둥글어져가듯이 책이나 인생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갖는 것이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그러하기에 글쓰기나 책읽기에 있어서도 열린 마음으로 다가서는 것으로 그 시작점을 찍어오려 노력하던 요즘의 걸음들이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주춤해 있던 그 걸음에 더욱 활기를 불어넣게 된다.
[고독을 견디지 못하면 비극적인 삶과 희극적인 삶도 불가능합니다. 철저한 고독은 철저한 불일치와 놀라운 비약을 낳고 돌이킬 수 없는 삶과 죽음을 만듭니다. 그것들의 가치를 읽어내는 것이 작가의 임무겠지요/131쪽] 절망의 이름을 느낄 줄 알아야 희망의 이름을 말할 수 있고, 어둠의 아름다움을 알아야 빛의 소중함을 말할 수 있듯이 고독은 비극과 희극을 정점 속에서 불타오를 수 있도록 만들어주나 보다. 고독은 비극의 몫이라고만 생각해왔는데, 실은 인생 그 자체의 모든 것의 진실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역시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에도 그 이유가 있는 것이 맞는가 보다. 의미없는 것은 없고, 그 의미를 찾을 줄 아는 것에서 가치는 그 따듯함을 잉태하나보다.
[사랑, 부끄러움, 증오를 객관화시켜 정확히 쓰려고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인생을 걸고 쓰는 글이기 때문입니다./155쪽] 책읽기를 할 때도 글을 쓸 때도 나는 언제나 주관적이다. 하지만 글을 쓸때는 사랑에 대해서도 부끄러움에 대해서도 증오에 대해서도 나의 감정에 치우친 시선이 아닌 객관적인 시선이어야 한다는 것은 중요한 덕목인 것 같다. 양면을 모두 알고 있는 것과 오로지 한면만을 알고 있는 것과는 천지차이일 것이에 말이다. 인생은 한면만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에 말이다. 나의 소리만이 아니라 너의 소리도 담아져 있는 것이 인생이기에 말이다.
글을 쓰는 것에 뜻을 둔 사람들이라면 천년습작을 각오해야 한다는 김탁환, 그의 글쓰기 특강이 담긴 이 책을 읽으면서 그 마음의 첫 단추를 제대로 끼워맞추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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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살아가면서 누구나 한번쯤은 작가를 희망한다.
자신의 이름 석자로 펴낸 책을 발행한다는 것은 그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지않는다고 해도 분명 뿌듯한 기분일 게다.
요즘은 책을 내는 연예인들도 많고 직업은 있지만 본인이 잘하는 취미를 살려서 책을 내는 경우도 많다.
본서는 그런 책들과는 분명 다르다. 앞서 언급한 연예인들의 글과 책들이 그저 자신의 성공에의 경험을 글로 옮긴 아마추어적인 글이라 말한다면 본서는 이미 여러 편의 소설 등을 통해 글쓰기에는 제법 이름있는 글쓰기 전문가의 책이라는데 그 이유가 있다.
천년습작은 작가 김탁환의 “따듯한 글쓰기 특강”이라는 강의다.
강의의 언어와 글쓰기의 언어는 분명 다를터인데 저자는 선생이 학생들을 앉혀놓고 마치 강의하듯
강의의 언어로 글을 써내려간다.
16번의 강의속에는 괴테를 비롯한 서양의 작가들과 원미동사람들의 저자 양귀자씨에 이르기까지
동서양을 넘나들며 글쓰기에 대해 놀라운 그의 통찰력을 보여준다.
이 책은 그동안 몰랐던 작가들의 이름을 알게되었다는 점에서도 내겐 너무 귀한 책임에 분명하다
그러나 그중에 내게는 4번째 강의! 즉 발자크평전이 가장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저자는발자크에 관한 글을열며 이렇게 말한다.
진짜 작가의 방을 살펴봄으로 글쓰기를 위한 자신만의 방을 꾸며보라고...
그러면서 저자는 발자크의 방을 소개해준다
하루 8시간을 집필하기 최선을 다하는 그!
저녁8시부터 12시까지 취침후 15시부터 아침 8시까지 매일 온전히 집필만을 하는 그!
집필은 그에게 있어 평범한 샐러리맨이 슈퍼맨으로 변신하듯 또 다른 자아로의 변신이기에 수도복을 입는 그!
나는 책을 읽기전에 발자크라는 인물이 누구인지도 잘알지 못했는데
그의 글쓰기에 대한 집념을 보면서 나도 언젠가는 글을 써보고싶다고 했던 마음이 부끄러워졌다.
나에게 글쓰기란 그저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욕망에 불과한 것이었다.
온전히 글을 쓰는것에만 삶을 소비하고 살아간 사람들의 발자취를 보면서
쉽게 끄적이면서 써도 된다고 생각했던 나를 반성하게 한다.
책속에서 스티븐킹이 말했듯 글쓰기는 정말 집짓기인 같다. 뛰어난 목수의
연장이 언제나 잘 정리 되어있듯!
나또한 글을 잘 쓰기위해 글쓰기의 도구를 잘 정리해야 겠다.
그것이 내면의 도구든지 외면의 도구이든지 간에!
한국을 대표하는 저자의 귀한 글뿐 아니라 동서고금의 위대한 작가들의 글을
마주대하고 싶은 이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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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릴적 글 쓰는것을 좋아했다. 나름 글 쓰는것에 자신도 있고 그런 나를 주위에서 인정하는 분위기여서 나의 장래 희망은 작가일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기대감은 더 잘 써야한다는 불안감에 휩싸이고 그것이 굴레가 되어 더이상 글을 쓰는것에 자신도 없고 흥미도 많이 잃어버렸다. 그러나 책을 읽는 즐거움을 알아가면 갈수록 나도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은 잘 제어가 되지 않는것 같다. 책을 읽고 서평을 쓰는것 조차 힘들어하고 자신없어 하던 나에게 이 책은 그런 나의 마음을 읽어낸듯한 느낌이었다.
책 표지에서 느껴지듯 책상위에 온갖 아이디어를 짜내듯 머리에 손을 얹고 고뇌하는 작가의 모습, 그리고 구겨진 종이는 작가라는 직업이 얼마나 고통스럽고 힘든 직업인가 여실히 보여지는 부분이다.
'천년'이란는 시간은 그 수를 헤아리기 쉽지 않을 정도로 긴 시간이다. 그 긴 시간동안 "습작"이라는 과정을 통해 작가는 더 좋은 글을 지어내고 그 글이 독자들에게 읽히면서 감동을 느끼기도 때로는 희망을 갖기도 또 슬픔을 안기기도 한다.
이 책은 강의 형식으로 진행된다. 총 16강에 걸쳐 글쓰기에 대해, 때론 글쓰기 그 자체에 대해 또 여러가지 문학작품에 기대어 설명이 되어진다.
이 책의 저자 김탁환 작가는 "글을 쓴다는것은 시간의 부재,그 매혹에 몸을 맡기는 것이다"라고 힘들었던 문청시절 이 문구를 발견했다고 한다.
글을 쓴다는 것은 매혹의 위협이 있는 고독을 긍정하는 공간에 돌입하는 것이다. 그것은 시간의 부재라는 위험에 몸을 내 던지는 것이다. 시간의 부재 속에는 끝없는 새로운 시작이 군림한다. 그것은 아무에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 되고, 나와 관계있다는 사시로 말미암아 익명의 것이 되어 문하니 흩어진 가운데 무수히 반복된다. 글을 쓴다는것은 이러한 매혹 아래 언어를 상용하는것이다. [문학의 공간]
취미로 글을 쓰는 사람과 글씀을 직업으로 갖는 사람의 차이는 글을 쓰면서의 불안감일 것이다. 직업작가는 글로 하여금 생계를 유지해야하는 책임으로 이 책이 많은 독자에게 읽히길 그래서 더더욱 힘든 작업일지 모른다.
이 책의 부제 따듯한 글쓰기 특강은 많은 문학작품을 소개한다. 그 문학작품 속에서 진정한 글쓰기에 대한 고찰은 김탁환 작가의 고뇌를 엿볼 수 있고 새롭게 글을 쓰고자 하는 이들에게 희망이 되기도 한다.
글을 쓰는것은 여행하는 것과 닮았다고 한다. 새로운것에 대한 끊임없는 도전. 그리고 새로운 곳을 발견햇을 때 느끼는 희열과 감동을 찾을 수도 있다.
많은 사람들은 책을 통해 간접적으로 그 세상을 접한다. 그래서 그 세상에 대한 기대감도 때로는 불안감도 갖게된다. 그러기에 작가라는 직업은 책임감 또한 큰 직업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어떤 막연한 두런 두려움 조차도 이 책을 통해 한발짝 가깝게 다가갈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초반에는 지루하다는 느낌이 있고 책장을 넘기는데 힘든 시간도 있었다. 하지만 그 시간을 넘어서면 책에 작가의 강의에 빠져든다.
하나하나 되새김실 하면 그 깊은 뜻을 이해할수 있고 내 가슴에 새기고 싶어진다.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 몇번 읽어내야하는 것은 있지만 그것은 그만한 가치가 있다.
책 속에 다루는 문학작품의 다수 내가 접해보지도 않았던 작품들이라 이 책을 읽으면서 부끄러움도 또 이 책들을 하나씩 읽어내려가야겠다는 도전도 함께 가져본다.
김탁환 작가의 다른 책들은 접해보지 않았지만 그의 전작들을 하나씩 읽어내려가고 싶다. 이렇게 책을 덮으며 나의 소중한 책 목록에 하나더 추가되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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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듯하고 매혹적인 글쓰기란 무엇인가
소설은 '노동'이라고 믿습니다. 소설이 유희라면, 기분 좋을 때만 즐기고 기분 나쁠 때 하기 싫을 때 하지 않아도 되는 놀이라면, 소설에 헌실할 까닭이 없겠지요. 적당히 즐기다가 떠나면 그만입니다.(71쪽)
요즘 출판가에는 글을 잘 쓰는 법을 배울수 있는 '글쓰기' 관련 책이 부쩍 눈에 많아졌다. 인터넷 블로그를 포함한 다양한 매체를 통한 글쓰기 바람과 입시를 위한 청소년논술 교육의 영향으로 최근의 우리 사회는 글쓰기 열풍이라고 할 만큼 폭넓은 세대에 걸쳐 글쓰기에 대한 관심이 뜨겁다. 전에 비해 독서를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자신만의 글쓰기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거라 생각한다. 이렇게 글쓰기의 무한 매력에 빠져들면서 전업작가만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창작의 영역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
『천년 습작』은 현역 작가가 문학에 대한 열정이 남다른 문학청년, 이른바 '문청(文靑)' 들을 위해 만든 책이다. 그러나 표지에서 느낄수 있듯이 소위 가벼운 글쓰기 테크닉을 알려주는 책이 아니다. 따듯하고 매혹적인 글쓰기에 관한 작가의 생각을 전하는 책이다. 우선 이 책의 지적에 의하면 글쓰기에 뜻을 둔 이들이라면 예술을 노동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유희로 볼 것인가를 먼저 선택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전문가(직업인)에게 있어서 예술은 노동이고, 아마추어나 감상자에게 있어서 예술은 유희입니다. 또한 아마추어에게는 좋은 예술가나 좋아하는 형식, 스타일이 정해져 있지만 프로는 모든 영역을 다 다룰 줄 알아야 합니다."(71쪽)
이는 비단 예술가들의 정신적인 노동에만 해당되는 사항은 아니다. 저자에 의하면 밤 12시부터 오후 5시까지, 중간에 1시간의 휴식과 식사를 제외하곤 집필과 퇴고에 몰두 했던 '소설 노동자' 발자크 처럼 손으로 쉴 새 없이 집필하는 것, '과잉'으로 소설 세계에 빠지는 것만이 뛰어난 소설가가 되는 길이라고 말한다. 작가들이 천재적 재능과 하룻밤 영감으로 글을 쓸 것이라는 작가에 대한 신비감을 가진 현대인들의 편견이 잘못됐음을 지적하는 대목이다.
저자에 의하면 작가들은 매 작품을 쓸 때마다 매혹에 빠져들기를 바란다고 한다. "글을 쓴다는 것은 시간의 부재, 그 매혹에 몸을 맡기는 것이다."(20쪽) 프랑스 소설가인 모리스 블랑쇼의 이 문장은 저자가 문학청년 시절, 재능에 확신이 없어 불안하던, 그렇지만 글을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그때, 스스로 왜 글쓰기에 매달리는지를 깨닫게 해줬다고 한다. 저자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문청들이라면 공감이 가는 이야기일 것이다.
이 책의 부제로 사용된 <김탁환의 따듯한 글쓰기 특강> 에서 '따듯한 글쓰기'란 어떤 의미일까. 저자는 따듯한 글을 쓰기 위해서는 먼저 따듯하게 타인의 작품을 읽고 정리하여 자신만의 문체로 담아낼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 책은 글쓰기의 기술적인 요소만 되풀이하는 일부 책들과 달리 풍부한 이야기와 저자의 경험을 통해 나오는 살아있는 조언들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독의 가치가 있다. 블랑쇼, 카프카, 발자크, 폴 오스터 등 저명한 이들의 이야기를 함께 엮었다는 점도 이 책의 풍부함을 더한다.
물론 작가의 실용적인 글쓰기 비법을 기대하고 이 책을 펼쳐든 이들라면 조금은 아쉬울 수 있다. 시점, 구조, 주제, 인물을 만드는 법을 다루는 스토리텔링 교재의 내용과 다르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저자는 이 책을 집필하면서 구체적인 글쓰기 테크닉이나, 디지털에 기초를 둔 스토리텔링 기술을 전해주려고 한 것이 아니다. 그보다 저자는 "이 책에서 독자들, 특히 습작에 몰두하는 청년들이 각자의 눈과 손과 걸음걸이를, 하여 인생을 대하는 '자세'를 되돌아 보게 만들고 싶었습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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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글쓰는것을 좋아하진 않는다. 좋아하지 않는다기 보다는 글을 잘 쓸줄 모르기 때문에 안쓰려고 한다는 것이 옳은 설명일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내 생각을 전달하는것도 힘든일일 뿐더러 다른이에게 이해시킬정도의 단어선택이나 표현에 매우 서투르기 때문이다. 마음 속에 있는 말들을 글로 표현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거 같다.
글을 잘 써보고 싶어서가 아닌 조금이라도 내 마음속의 말을 표현해내고 픈 마음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받을까 싶어서 읽은 '천년습작'은 글쓰는 법을 알려주는 책인줄 알았던 나의 예상이 빗나갔다. 이 책에는 저자의 16강의로 이루여져있다. 단지 어떻게 써야 잘 쓰는건지 하는 기초적인 지식을 알려주는것이 아니라 글을 쓰려면 가져야 하는 생각, 따뜻하게 바라볼 수 있는 관점등에 대해서 소설을 통해 알려주고 있다. 많은 소설가들이 그렇하듯 자신의 소설을 쓰기까지 독자들의 생각이상으로 많은 책을 읽는것도 더욱 자세히 알게된 듯 하다.
'천년습작'에서는 저자인 김탁환님 외에도 많은 작가들에 대해서 전해주고 있다. 이 책에서 소개되는 책중에는 내가 읽어본 책도 있지만 들어보지도 못한 제목의 책도 있었다. 실제로 강의를 하듯 조목조목 잘 설명해주고 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정말 따뜻한 특강으로 다가옴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글을 잘 쓰는 이들을 보면 부러움은 어쩔 수 없다. 어떻게 구구절절 마음속에 와닿는 글을 쓸 수 있을까 하며, 그것을 끄집어 내는 기술 또한 너무 대단해 보인다. 짧은 글을 적을때에도 어떻게 적어야 하는 고민과 걱정을 가지고 적다보면 자연스런 문장이 나오기 보다는 다시 읽어보면 부끄러울 만큼 어색한 문장이 적혀있기 일쑤이니 말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좀더 넓게 생각하고 시야를 넓혀야 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게 되었다.
이 책을 덮은 지금 내가 원하는 만큼의 글을 쓸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글이란걸 써야 하는지는 마음속에 자리잡은 듯 하다. 또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작가들의 힘듦 또한 조금 엿볼 수 있었으며, 예전부터 나의 바램이었던 예쁜 서재를 갖고픈 맘이 더욱 간절해 졌다. 책읽기를 좋아하는 이라면, 글쓰기를 좋아하는 이라면 '김탁환의 따뜻한 글쓰기 특강'을 들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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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덕수궁에서 열린 한 커피회사의 문학관련 행사에 다녀왔다.
작가 김탁환이 '커피에 관한 안타까운 이야기 - 발자크, 김홍륙, 그리고 나'라는 주제로 한시간 남짓 이야기를 하는 시간이 있었다.
그의 소설은 '나, 황진이', '열녀문의 비밀'등을 읽었고, 곧 이 책 '천년습작'을 읽을 것이라 처음 보는 자리지만
친근했다. 그뿐 아니라 그의 털털해 보이는 듯한 모습과 독자들에게 친절한 행동에 나는 작가 김탁환이 아니라
인간 김탁환을 본 듯해서 기분이 좋았다.
(그 역시 이런 자리를 많이 가졌으리라. 하지만 첫인사를 나누기 전까지는 살짝 수줍어하는 듯한 모습과
권위의식(?) 없어 보이는 모습이 너무 인상적이었다!)
그 자리에서 많은 이야기가 나왔고, 난처한 듯한 질문에도 긴 대답을 해주면서
그의 유머와 박식함, 그러면서도 작가로서의 생각 등을 많이 알려주어 혼자였지만 지루하지 않고 마음 따뜻한 시간이었다.
그가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학과의 학생들은 좋겠다, 부럽다 생각하면서 그의 책 '천년습작'을 기다렸다.
마침내 내게로 온 책, '천년습작'
표지에서부터 창작의 고통이 보이는 듯 하다.
작가라는 업을 가졌다는 것이, 글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자신을 비워내고 다시 채워야 하는 것일까.
천년습작은 '김탁환의 따듯한 글쓰기 특강'이라는 부제를 가지고 있다.
특강이라는 말에 어울리게 목차 역시 제 1강에서 시작해 제 16강에서 끝이 난다.
제 1강은 오리엔테이션! 앞으로 이어질 강의에 대해 설명을 하는 시간을 갖는다.
어찌하면 작가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해 선배 작가로서 들려주는 이야기, 그 이야기를
그동안 자신이 읽은 책들과 그 책들을 베껴 쓴 시간들을 가지고 풀어낸다.
중간중간 지난번 행사때 들었던 이야기들도 나와서 괜히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듯 기분이 좋게 느껴지는 16번의 강의.
어렵기도 했고, 살짝 지루하기도 했다. (어렵다 생각하는 부분이 지루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
하지만 작가가 아니면, 그의 이야기가 아니었다면 모르고 지나갔을 많은 부분들.
같은 책을 읽어도 앎의 차이로 인해 내가 느끼지 못했던 생각들.
그런 이야기들이 책과 영화와 작가들을 통해 나와 소통하기 위해 다가왔다.
작가 김탁환을 작가가 되고 싶다고 느끼게 만들었던 책이 있다고 한다.
그 책은 무려 180권짜리 소설로 하루에 한권씩 보는데 꼬박 6개월이 걸렸다고 한다.
그 소설을 읽고 그는 아마도 그런 소설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 생각을 했겠지?
그 소설에 매혹당한 그는 지나가듯 보게 된 한문장을 통해, 스치듯 들은 이야기 한조각을 통해
여러 것들에 매혹당하면서 글을 쓰는 것이겠지? 짐작한다.
한걸음 한걸음이 모여 여행이 되듯,
한글자 한글자가 모여 글이 된다는 그의 말.
쉽게 쓴 듯 보이는 한 작가의 글을 읽고, 이정도만 써도 된다면 나도 작가 하겠다 라고 쉽게 내뱉었던 내 마음이 부끄러워 진다.
따뜻한 이야기를 들려준, 작가 김탁환과의 소중한 특강시간이었다.
(시험을 치르지 않아 더욱 좋았던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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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렇게 검색한 사진만 보면 상당히 두꺼운 책으로 뵈는데 실은 아주 귀엽고 앙증맞게 생긴 책이다. 처음에는 상당히 두꺼울 거라는 막연한 두려움에 읽고 싶은 호기심을 눌러버렸다가 다시 고개 내미는 호기심에 져서 이렇게 읽을 수 있었다. 다행히도~ 좋은 글을 쓰려는 사람이라면 천년동안 습작할 것을 각오하는 마음에서 붙였을 법한 이 책의 제목은 정말 작가로서 걸어야 할 길의 고단함과 그런 삶 속에 숨겨져있을 매혹을 함께 품고 있다. 나 또한 그런 고단함과 매혹 속에 어쩔 줄 몰라 포로가 되어 버린 범인들 중의 하나이다. 읽기는 꽤 오래 전에 다 읽었지만 서평을 쓰려면 그의 말이 내 안에서 숙성되어야 하겠기에 그러길 기다렸다가 천년 만년이 지나도 도저히 숙성에 다다를 수 없음을 예감하고 이제야 글을 쓴다. 그의 글은 많이 읽지 않았다만 이 책은 참 마음에 든다. 그렇다고 그의 글이 쉬 읽을 수 있다는 얘긴 아니다. 뭔가 아귀가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미처 다 익지 않은 총각김치를 먹은 것처럼 입안에서 서걱서걱거리는 느낌이 남아있다. 읽기 전에도, 또한 다 읽은 뒤에도... 이는 그가 아는 작품과 작가들을 내가 채 반도 알지 못하기 때문일 수도, 아니면 작가들만의 감수성이 내겐 없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이유야 어찌됐건 그만의 글쓰기 특강을 들으며 어렵다고 허우적거리거나 재밌다고 호응했던 일은 정말 해볼 만한 일이었음을 확실히 말해둘 수 있다. 그가 말한 "단어 하나의 강렬함일 수도 있고 문단 하나의 아득함일 수도 있습니다."(p. 32) 속에서 말한다면 내가 느낀 것은 "글의 아득함", 바로 그것이었을 거다.
그의 글쓰기 특강에서는 글을 쓰는 방법을 전달해주기보단 사물을 바라보고 그 속에서 의미를 유추해내는 과정과, 수많은 위대한 작가들이 얼마나 많은 '매혹'과 '불안' 속에서 살아갔는지를 잔잔한 목소리로 들려주었다. 수많은 문학청년(이하 문청)들이 자신의 욕망에 필적할 만큼 제대로 된 작품을 쓸 수 있을까 하는 불안 속에서 글쓰기에 매혹당한 채 살아가고 있음을, <선고>를 하룻밤만에 완성한 카프카의 이야기에 빗대 들려주었다. 이 작품을 통해 자신이 글을 쓸 수 있음에 대해 확신을 가지게 되었던 카프카이지만, <변신>으로 자신의 능력에 대해 혐오감을 느끼기도 했다. 시간이 없어서, 다른 일로 방해받아서 더 좋은 작품을 내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카프카를 예로 들면서 저자는 글을 쓰기 위해 "시간이 상실되는 지점, 매혹과 시간의 부재가 주는 고독"(p. 31)속으로 돌입하는 과정이 필요함을 역설했다. 시간의 부재 속에서 무엇인가를 읽는 매혹에서부터 출발하였다가 시간의 부재 속에서 언어로 무엇인가를 쓰는 매혹으로 나아가는 문청들의 반드시 거쳐야 할 관문이라는 것이다. 카프카는 글쓰기의 매혹에 푹 빠져서 하룻밤만에 완성했던 <선고>를 수작이라고 생각했고, 문단에서 대단한 평가를 받은 <변신>을 형편없게 여겼는데 이것은 저자의 말대로 이것은 글쓰기의 매혹과 글읽기의 매혹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단의 평가가 어찌됐든 글쟁이는 자신이 스스로 잘 쓸 수 있음을 확신해야 비로소 글쓰기가 진행되니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우리도 "시간이 상실되는 지점, 매혹과 시간의 부재가 주는 고독"속으로 들어가야 할 것이다.
저자의 눈으로 몰래 훔쳐본 작가의 방에서도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방대한 양의 자료를 모아서 글을 쓰든 조그만 수첩에 의지하며 글을 쓰든 일단 작가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곳이 바로 책상일 텐데 발자크의 예를 들면서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성실해야 함을 알려주었다. 저녁 8시부터 12시까지는 잠을 자고, 밤 12시에 작업을 시작해서 아침 8시까지 집필하고, 아침 8시부터 9시까지 목욕으로 휴식을 취한 다음 식사를 하고, 아침 9시부터 오후 5시까지는 그날 썼던 것을 퇴고하고 나면 작업이 끝나는데 그 때부터 8시까지는 가끔 나들이를 즐긴다는 발자크는 정말 성실한 글 노동자였다. 그런 수많은 습작들이 모이고 모여서 대작을 만들어내는 작가들은 정말 부지런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기본적인 생활조차 불규칙한 나로서는 정말 따라가기가 힘든 스케줄인데, 발자크는 정말 대단하다. 이제껏 그의 작품은 하나도 읽어보지 못했는데 이제 슬슬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이렇게 성실하게 고치고 또 고치는 발자크의 작품은 얼마나 깊은 내공이 쌓여있을지 내 눈으로 확인해야겠다. 굳이 글을 쓰고자 하지 않더라도(성실하지 않은 나로서는 어렵겠는데~) 이 책으로 작가에 대해 다양한 관점을 가질 수 있을 법하다. 작가에 대해 관심이 생기면 당연히 그의 작품에 대해서도 관심이 생기기 마련이니까 많은 사람들이 김탁환의 따스한 글쓰기 특강을 들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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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탁환 작가의 책은 '리심, 파리의 조선 궁녀' 한권 밖에 만나 보질 못했다.
하지만 이 책의 표지와 제목을 보는 순간 꼭 읽고 싶다는 강한 욕심이 생겼다.
책을 읽고 느낀 감상의 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독후감이나 리뷰를 쓰는게 얼마나 힘든지를 잘 알고 있는 나에게
마치 구세주처럼 다가온 책이었기 때문이다.
매끄럽게 잘 다듬어지고 세련된 문구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야 늘 하고 있지만 어디 그게 생각만으로 가능한 일인가?
문득 어렸을 때, 늦게 귀가하시는 부모님을 기다리면서 동생들에게 이야기를 꾸며서 들려주었던 기억이 났다.
챙피하지만 창작이아니라 여기저기서 들은 이야기, 책에서 읽었던 내용을 적당히 재미있게 잘 버무리고 꾸며서....
그래도 동생들은 지겨워하지도 않았고 물론 가끔은 의심을 하기도 했지만 기다림이 지루하지 않게 시간을 보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아마 그 때 내가 품었던 꿈은 초등학교 선생님이었고, 작가였던것으로 기억한다.
책이라면 사족을 못쓰던 내게 딱 어울리는 꿈이었고 멋진 환상을 품고 있었지만 실제로 걸어온 길은 전혀 다른 길이었음을...
하지만 아직도 내게 한가닥의 희망처럼 남아있는 소중한 바램이기도 하다.
어디선가 들은 말처럼 '아직도 나는 배가 고프다....책 읽기와 배움에 대한 열망으로.'
저자 김탁환은 글쓰기와 이야기 만들기의 핵심은 독자들을 끌어당기는 진심어린 마음과 삶의 자세에 있다는 것을 거듭 강조한다.
'천년습작'은 기존의 글쓰기 책들처럼 글쓰기의 기술이나 실용적인 방법론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세상을 바라보는 '따듯함'에 초점을 맞추며, 글을 쓰는 이의 자세와 마음가짐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
이 책에서 그가 말하는 바는 단 하나의 문장으로 집약된다. 요컨대 잔재주보다는 마음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글쓰기와 이야기 만들기의 핵심은 그럴 듯한 흉내가 아니라 ‘진심 그 자체’이다.
사실 글쓰기의 기술과 비법을 내심 기대하기도 했었던 나로선 잠깐 실망도 했었지만,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본다.
한번 읽고 던져두기보단 두번 세번 거듭 읽으며 저자와 공감하고 싶은 책이었다.
누구나 인정받고 싶어하고 자신의 글과 작품에 많은 독자들이 열광하기를 꿈꾸고 있을 것이다.
비록 작가는 아니지만 가끔 책을 읽고 글을 올리는 나의 머릿속에 퇴고란 말이 떠올랐다.
이 짧은 글을 쓰면서도 썼다가 지우기를 수십번인데........하물며 작가들은 어떠할지.
책을 읽으면서 책 속에서 소설가가 말하는 또다른 소설가를 만나게 된다.
총 16강으로 이루어진 저자의 강의를 들으면서 아직도 내가 읽지 못한 책들을 찾아 읽기로 했다.
저자의 시선으로 본 이야기가 100퍼센트 옳다고 말하기는 무리가 있을지 몰라도
하나의 작품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선을 이해하는 좋은 시간이었음을 두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어찌하면 작가가 될 수 있는지, 습작에 열심인 이들로부터 종종 질문을 받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아득해집니다. 아, 어쩌다가 나는 작가가 되었을까.
수많은 답이 가능하겠지만, 그중에서 저는 제가 읽은 책들이, 또 그 책들을 질투하며 베껴 쓴 시간들이 저를 작가로 만들어버리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지금부터 제가 들려드리는 이야기는 결코 정답이 아닙니다. 누구나 저마다의 방식으로 글을 쓰고 이야기를 만들지요.
하지만 적어도 진심을 가지고 글쓰기에 몰두한 이들을 엿보는 일은 또 때론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순간은,
초발심을 잃지 않고 열정을 지닌 채 습작에 매진하는 나날에 작지만 흔들림 없는 깃발이 될 수는 있으리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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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책을 읽고 서평을 쓰기 시작하면서 나도 제대로 된 글 좀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무심코 하게 된 것 같다.
나중에 서평을 보게 되었을 때 처음 그 책을 읽었을 당시의 그 느낌 그대로를 다시 체험할 수 있기를 바라기도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다른 사람들이 내 서평을 읽고 '그 책 꼭 읽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고 싶은 욕심도 있었다.
처음엔 그냥 내 느낌을 적어나간 게 다였지만 나중엔 조금씩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근데 이 표현이 맞는 표현인가?'
'내 글을 보고 비웃으면 어쩌지?'
이런 생각을 하면 할수록 더 좋은 서평을 쓰고 싶은 욕심은 커져갔다.
더이상 내가 쓴 서평이 일기장에 나만을 위해 쓴 글이 아닌 인터넷이라는 공간에서 어느 누군가에게 보여지는 것이 되고부터는 더더욱 그랬다.
이러니 『천년습작』이라는 책의 출간 소식은, 말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꿰뚫어 보는 친구를 만난 것 같은 반가움을 느끼게 해 주었다.
물론 나는 『천년습작』에서 말하는 '문청(문학청년 : 글쟁이가 되려는 욕망은 크고 습작은 제대로 되지 않는 20대 어느 시절)'처럼 글쟁이가 되고자 생각했던 적은 단 한번도 없는 것 같다.
그냥 책을 읽는 게 좋았고 그 책을 읽은 소감을 누군가에게 제대로 전달하고픈 생각만 있었을 뿐이다.
그러기에 난 이 책에서 '작가가 되려는 사람들을 위한 글을 쓰는 방법' 보다는 나같은 보통 사람들이 '글'이라는 것을 어렵게만 생각하지 않고 일기처럼 편안하게 생각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고 싶었다.
그렇다면『천년습작』을 읽고 난 후 그 결론은?
어쩌면 이 책은 '문청'들을 위한 책이기도 했고 나처럼 그냥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는 '일반 사람'들을 위한 책이기도 했다.
만약 '글'을 쓰는 방법과 관련된 이론을 기초부터 제대로 배우고 싶은 사람이 이 책을 읽게 된다면 그 사람이 느끼기에 이 책은 그냥 두리뭉실 어정쩡한 책이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천년습작』은 정확한 이론을 가르쳐 주는 책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책 속에는 다른 작가들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
그들은 어떻게 소재를 찾고 어떻게 이야기를 만드는지...
작가들이 한 권의 책을 탄생시키기까지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조심스레 알려준달까.
『천년습작』에 등장하는 유명한 작가들의 책은 내가 본 책보다 아직 접해보지 못한 책이 많았기에 '아...이 책들을 읽고나서 『천년습작』을 봤더라면 더 좋았을텐데...'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김탁환이라는 유명한 작가가 이렇게 느낀 작품이라면 나도 꼭 한번 읽어봐야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기도 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 읽고 싶은 책이 하나, 둘 더 생긴다는 건 어찌됐든 좋은 일이니까...
『천년습작』은 총 '16강'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덕분에 김탁환 작가가 진행하는 교양 수업을 듣는 기분이었다.
수업시간은 끝이 났는데 다음 내용이 궁금해지는 재미있고 자유로운 교양 수업 말이다.
'자, 그럼 이것으로 제1강 오리엔테이션을 마치고 제2강으로 넘어가겠습니다.' 처럼 교수님같은 각 '강'의 끝맺음은 얼마 지나진 않았지만 어렴풋이 느껴지는 대학시절의 향수도 불러일으켰다.
이 책은 작가가 되려는 '문청'들에게는 작가가 가져야 할 기본 자세를, 그리고 나처럼 '일반 사람'에게는 책 또는 글에 좀 더 가까이 갈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
어쩌면 이런 내용이라 지루하지 않고 재밌게 책을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론 공부를 위한 책이었다면 어디 지루하고 시험공부 하는 것 같아 제대로 읽을 수나 있었겠는가.
처음 『천년습작』을 알게 되고 책 소개를 살펴봤을 때, '김탁환의 따듯한 글쓰기 특강'이라는 소개글에 끌렸다.
평소에 '따뜻한'이라는 단어보다 '따듯한'이라는 단어를 좋아했기 때문이다.
'따뜻한'이 피부로 느껴지는 단어라면 '따듯한'은 가슴으로 느껴지는 단어라고 해야하나...
처음부터 끝까지 나에게 존댓말을 쓰는 책은 상당히 오랜만에 만났기에 따듯했고 오직 작품으로만 만났던 작가들의 실제 생활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어 따듯했다.
이제 한 권의 책이 나에게 왔을 때 오직 그 책의 내용만 생각하게 되지는 않을 것 같다.
작가가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만들어냈을까, 주인공은 어떻게 탄생되었나 등 전과는 다르게 좀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될 것 같다.
이 사실만으로도 난 『천년습작』을 통해 여러가지를 얻은거라 생각된다.
꼭 '문청'이 아니더라도 책을 좋아하고 또 마지막 책장을 덮은 후에 여러가지 생각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에서 다른이보다 더 많은 '따듯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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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때부터 독후감과 글짓기에 자신이 있었던 나는 매일 일기를 쓰고, 책 읽는 것을 좋아했다. 그 덕인지 큰 상은 아니어도 최소 장려상, 입상은 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강요에 의한 글쓰기가 아니고서는 일기를 쓰는 것조차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독서를 열심히 하다 보니 읽는 양도 많아져서 이야기의 소재는 당연히 읽었던 책의 내용이 되었지만 읽은지 한참 지난 책은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 것이 생기게 되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책을 읽고 꼭 독후감 쓰기. 길게는 아니여도 꼭 기억에 남도록 줄거리와 주인공 이름 적어 놓자고 나 스스로와 약속을 하게 되었다.
이제 막 서평과 독후감 쓰기에 재미를 붙이고, 글쓰기에 흥미를 붙인 나에게 [ 천년습작]은 흡사 마른 날에 단비를 만난 것과 같이 고마운 책이다. 나의 글쓰기에 얼마나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을지 기대를 안고 차근차근 읽어 내려 갔다.
김탁환님은 이 책을 통해 작가의 마음가짐에 대해 말하고 싶으셨던 것 같다. 직접 강의를 하 듯 주제와 함께 책을 소개하고 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이 읽으면 도움이 되게끔 일목요연하게 총 16강을 정리해 놓았다. 너무 어렵지 않고, 복잡하지 않아 초보인 내가 읽어도 조금은 마음이 편안한 느낌이다.
그러나 나처럼 간단한 글쓰기를 배워볼 요량으로 집어든 사람에게는 이게 뭐야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다. 글쓰기의 기초를 바랬다면 말이다. 글쓰기의 기초를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작가의 본질적인 자세에 대해 말하고 있다.
「 작가란 이렇듯 항상 밑줄 긋는 자이면서 밑줄 긋는 문장을 만들기 위해 몰두하는 족속일 겁니다. 」
「 소설은 '노동'이라고 믿습니다. 소설이 유희라면, 기분 좋을 때만 즐기고 기분 나쁠 때 하기 싫을 때 하지 않아도 되는 놀이라면, 소설에 헌신할 까닭이 없겠지요. 적당히 즐기다가 떠나면 그만입니다. 」
막연하게 항상 신선한 소재를 생각해 내고, 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글을 쓰는 작가들은 참 대단하다고만 생각했는데, 노동과 직업 의식을 가지고 한 자 한 자 적어 가는 것이라니,, 정말 어느 책에서 보았듯이 작가는 제 팔자를 내어 주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 노동이란 무엇일까요. 땀방울입니다. 일정한 시간을 정해 놓고 하염없이 자신의 노동력을 투여하는 겁니다. 」
진심으로 작가의 길로 들어선 이가 읽으면 많은 도움이 될 듯 하다.
「 내가 읽은 책들이, 또 그 책들을 질투하며 베껴 쓴 시간들이 나를 작가로 만들었다. 」정말 멋진 말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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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다닐 적 글 쓰는 것을 좋아했다. 교환일기나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글을 쓴다는 것에 재미를 붙인 것이다. 그래서 글 쓰는 것이 더욱 좋아지고 자신 있고 과감하게 적었는지도 모르겠다. 인터넷 발달로 자필로 글을 쓰는 사람은 드물다. 작가 또한 컴퓨터에 의존하며 키보드를 두드리며 글을 쓰는 작가도 많아졌다. 그만큼 시대가 변한 것이다. 하지만, 시대가 변한 것이지 글이 변한 것은 아니다. 교환 일기와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글을 쓴다는 것이 좋았기에 혹은 또각또각 써 내려간 글씨체를 보면서 글을 쓰는 재미를 더해 주었는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흘러 글쓰기란 참으로 어려운 것임을 느꼈고 깨닫게 되었다. 나 역시 글을 잘 쓰고 싶다. 하지만, 글을 잘 쓰기 이전에 글을 잘 쓰기 위한 기본적인 조건을 갖추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자리 잡아가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김탁환’ 작가의 「천년 습작」이라는 책을 만나게 되었다. 제목을 본 순간, 글쓰기에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기에 서슴없이 책을 펼쳐 읽었다.
책은 강의하는 느낌이 드는 것처럼 ‘16강’까지 목록에 있었다. 각각 다른 주제와 함께 ‘김탁환’ 작가가 선택한 책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그 책 속에서의 멋진 문장들이 담겨 있었다. 조금 색다른 책이었다. 그중에서 ‘제11강’의 주제가 기억이 난다. ‘작가는 어이하여 떠돌까? ─ 여행과 글쓰기’라는 주제로 이야기는 흘러갔다. 그가 추천한 작품은 『이스탄불』과 『열하일기』였다. 『이스탄불』은 ‘오르한 파묵’의 작품이며, 장소에서 장소로의 횡적 이동보다 시간에서 시간으로의 종적 이동으로 쓰인 에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가 이 책을 선택한 이유는 자신의 성격이나 삶과 문학의 특징을 발견하기 위함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열하일기』는 글에 담긴 사상도 탁월하지만, 문체 때문이라고 한다. 그 속에 실린 26편의 글은 각각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 시, 소설, 일기, 논설, 사전, 필담으로 당대에 존재했던 문체가 한자리에 모여 있다는 것이었다.
박지원의 『공작관문고』의 ‘자서(自序)’에서는
“글이란 뜻을 그려내는 데 그칠 따름이다. 글제를 앞에 놓고 붓을 쥐고서 갑자기 옛말을 생각하거나, 억지로 경서의 뜻을 찾아내어 일부러 근엄한 척하고 글자마다 장중하게 하는 사람은, 비유하자면 화공을 불러서 초상을 그리게 할 적에 용모를 가다듬고 그 앞에 나서는 사람과 같다. 시선을 움직이지 않고 옷은 주름살 하나 없이 펴서 평상시의 태도를 잃어버린다면, 아무리 훌륭한 화공이라도 그 참모습을 그려내기 어려울 것이다. 글을 짓는 사람도 어찌 이와 다를 것이 있겠는가. 말이란 거창할 필요가 없으며, 도는 털끝만 한 차이로도 나뉘는 법이니, 말로써 도를 표현할 수 있다면 부서진 기와나 벽돌인들 어찌 버리겠는가. 그러므로 도올은 사악한 짐승이지만 초나라의 국사는 그 이름을 취하였고, 몽둥이로 사람을 때려죽이고 몰래 매장하는 자는 극악한 도적이지만 사마천과 반고는 이에 대한 기록을 남겼으니, 글을 짓는 사람은 오직 그 참을 그릴 따름이다.” ─『연암집』(중), 15~16면
- p. 171~172 -
작가 ‘김탁환’은 이 책에서 글을 쓰기에 앞서 자신이 추천하는 책과 함께 글 쓰는 방식을 말하고 있다. 하지만, 글쓰기에는 정답이 없음을 말한다. 글쓰기는 자신의 생각과 느낀 점을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의 글쓰기 방법이 강의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어서 색다른 글쓰기 비법을 만난 기분이다. 그가 이 책에서 언급한 책은 상당수다. 그 많은 책에서 글쓰기에 도움되는 문장과 글을 제시하면서 내가 몰랐던 책과 궁금했던 책의 내용을 말해주며 글쓰기에서 다방면을 이 책에서 보여주고 있기에 그의 알찬 강의를 들은 기분이 들었다. 나 역시 글재주가 남다르지 못하기에 이 책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의 글쓰기 방법을 참고하여 나도 멋진 글을 써보고 싶다.
“내가 읽은 책들이, 또 그 책들을 질투하며 베껴 쓴 시간들이 나를 작가로 만들었다.”
- 작가 ‘김탁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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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소개하는 누군가의 인터뷰에서였던 것 같다. 작가 김탁환의 책은 첫 50페이지가 읽기 힘들다고. 50페이지만 넘기면 술술 잘 읽힌다고. 그 고비만 잘 넘기면 된다고.
그런 말을 들어서는지, 아니면 그 말이 사실이였기 때문인지... 김탁환의 따뜻한 글쓰기 특강이라는 '천년습작'의 3강까지 진도를 나가는데 꽤 시간이 걸렸다.
글을 쓰기 위해 여러 종이를 꾸겨 버리고 펜을 쥔 채로 한 손으로 머리를 받치고 있는 표지의 그와는 다른 이유, 책을 읽기 위해 나는 한 손으로 머리를 받쳐야만 했다.
그러다 어느순간 글이 읽기 편해지면서 쑥쑥 머릿속에 잘 들어온다.
그와 친근해져서인가, 아니면 진짜 50페이지까지는 어렵게 쓰는게 그의 버릇인건가. 이건 그의 다른 책을 읽어봐야 풀릴 의문이겠지? ^^
16강으로 이루어진 '천년습작'은 정말 강의를 듣는 기분이다.
오리엔테이션도 하고 (1강) 다음엔 이런 이야기들을 하려고 한다라고 강의 말미에 알려주기도 한다. 한주에 2번씩 강의를 듣는다고 가정했을 때 16강이면 8주, 거진 한학기가 걸리는 분량이다. 시험을 안치는게 다행인 '독자'의 입장이 강한 특강이라 부담없어 좋았다.
내가 이 책을 읽고 싶었던 이유는 도대체 어떤 사람이 작가가 되는 것인지 궁금했던 것이 컸다. 서태지가 은퇴선언하게끔 만든 '창작의 고통'이라는 것이 작가들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는 법이니(더 크면 컸지 분명 작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은 어떻게 그런 고비를 넘기는 것일까 궁금했다.
아무리 이야기 능력을 타고난 작가라도 수많은 다른 작가들과는 다른 이야기들을 어떻게 만들어 나가는 것일까. 이 세상에 넘치는 셀수도 없이 많은 이야기들을 적는 작가는 어떤 노력을 하는 것인지 궁금했던 것이다. 정말 제목처럼 '긴 세월 습작을 하며 이야기가 자신을 찾아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라면 그 부담감은 이루말할 수 없는 고통일텐데...개인적으로 쓰는 글도, 회사에 쓰는 기획안도 문장을 어떻게 표현하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고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오해가 있을 수도 있어 조심스러운데 공개되고 평가되는 작가라는 업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더큰 중압감이 있을 것이다.
'귀를 대고 가까이 가야 해. 멀리서 수면을 그저 바라보는 것으로는 부족하지. 물속에 귀를 푹 넣어. 그리고 그 아득한 침묵의 소리를 듣는거야'
이 문장이 그런 작가들의 부담감을 어느정도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나는 '수면을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하는' 독자인 반면
작가는 침묵의 소리도 들어야 하는 그런 존재들...
그저 흰 백지와 머리와 손만 있으면 글 쓰는 거지라고 한때나마 작가라는 직업에 대해 무식하게 생각했던 나를 반성한다. 세상에 쉬운일이란 없다는 것, 작가가 되려는 이도, 작가인 이도 좋은 글을 위해서는 '천년습작'도 각오해야 한다는 그런 마음가짐이 필요하다는 것.
내가 그의 따뜻한 특강을 통해 배우고 품게 된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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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 글쓰기에 워낙 재주가 없어서 한수 배워볼 욕심에 책을 펼쳐 들었다. 어릴적 많은 꿈들 중에 작가란 직업도 있었고, 현재 역시 무맹랑한 꿈이라는 것을 알지만 나이를 더 먹고나서 전문 작가는 아닐지언정 내가 겪은 이야기를 소설형식으로 써보는 것이 꿈이다. 하지만, 학창시절 숙제로 그 많은 독후감을 제출했으나 단 한번도 수상해 보지 못한 나로서는 글을 쓰는 사람들은 항상 선망의 대상이였고 엄청 대단하고 특별한 능력을 부여받은 자들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리고 창작의 고통을 이겨내는 법과 신선한 주제, 어휘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 항상 궁금했다.
책표지는 저자 김탁환이 고뇌에 찬 모습으로 글을 쓰고 있는 모습이다. 책상은 글이 잘 안써지는지 꾸겨진 종이 뭉치가 있고, 따뜻한 커피가 담겨있을듯...아니 이미 다 마셔버렸을듯 한 컵이 놓여져 있다. 간혹 티비등에서 나오는 작가들의 모습이나,방은 이런 모양새 였던것 같다. 멋진 어휘를 사용하고 독특한 문법을 개발하고, 글을 창작을 해내려 애쓰는 작가의 모습은 어딘지 모르게 그윽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김탁환은 이 책에서 열여섯개의 강의를 펼쳐 낸다. 이전의 작품들을 인용하기도 하고, 위인들의 이야기를 하고, 이런 저런 질문들도 툭툭 던져 생각을 이끌어 내고 있다. 그가 소개하는 책들은 나에게는 많이 생소한 책들이였다. 그것들은 뒷부분에 [강의와 함께 읽을 작품 목록]에 출판사와,저자등이 자세히 나와있기에 시간이 되는대로 천천히 읽어볼 계획이다.. 책을 읽는 내내 느낀점은 글을 잘쓰는것은 타고난 것이 아닌 그만큼 공부를 하고 밤을 세워가며 노력을 해야 된다는 것이다. 나의 글만을 생각하지 않고 다른 작가가 내놓은 책과 그들의 생각을 배우고 한 분야만이 아닌 여러 분야를 다독하고 정독하여야 한다는 것. 그리고 그냥 넉놓고 책상머리에 앉아 있는다고 절대 좋은글이 나오는 것은 아니며, 베스트셀러로 이름을 높일수도 없다는 것이다. 작가는 글을 쓰면서 그 사람의 삶을 체험한다고 하였다. 어떤 인물의 삶에 결점이 많고,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을때 그 소설속의 주인공이 되어 그 삶을 체험하고, 이해를 한다는 것이다. 절로 고개가 끄덕여 졌다. 소설을 써 보고 싶은 마음에 펜을 들어 본적이 몇번 있었는데 그때마다 포기하고 말았던 것은 소설속의 인물과 합쳐지지 못한채 설명해 내려고만 했기 때문이였나 보다..;;
나는..사실.. 작가란 직업을 가진이가 글을 쓰는 방법등을 소개하는 책은 처음 접해보았다. 그들의 고뇌와 글을 쓰는 자세를 깊게 알수 있게 된듯하다. 작가가 되고 싶은 꿈을 품은 사람들이나, 꼭 그렇지 않더라도 글을 잘쓰고 싶은 사람들이 한번쯤은 꼭 읽어보면 무척이나 유용할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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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천년습작]을 만날때만 해도 나도 김탁환 작가처럼 화려한 글쓰기를 할 수 있게 되리라는 기대감이, 그런 글쓰기 방법을 배울수 있을것이라는 부푼 가슴이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책장을 넘기면 넘길수록 나는 그에게서 화려하고 멋진 글을 쓰는 법을 배우는 대신, 마음이 동하여 손이 움직여져 씌여지는 맛깔나는 글을 쓰는 것이 더 멋지지는 않겠는가.......라는 마음을 조금씩 조금씩 담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머리를 쥐어짜면서 팔을 움직여 한글자씩 채워넣는 것보다, 마음이 동하여 정신을 놓게되면서 팔이 저절로 움직이며 채워지는 한글자, 한글자가 더 독자의 마음을 울리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가지게 해준 [천년습작]
글을 쓴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아무리 써도 늘지 않는 글들이 가끔씩 멋져보이게 씌여질때가 있다. 멍때리며 정신줄을 놓고 나도 모르게 손가락들을 움직이며 쓴 글들이 그렇게 보일때가 종종 있다. 그 외엔 열심히 머리를 쥐어짜 쓴 것이기에 누가 봐도 흔히 쓸수 있는 그다지 독창적이지도 새롭지도 않은 그저그런 평범한 글들일 뿐이다.
글이라는 그런가 보다. 억지로 만들려 하면 어긋나 보이고, 그저 마음이 동해 손이 저절로 움직여져 씌여지면 참 담백하니 맛깔나보이는게. 마음의 진심이라 해야하는 것인가?
[천년습작]을 읽기 전부터 내가 갖고 있던 화려한 글쓰기의 환상은 [천년습작]으로 사라졌지만, 따뜻하고 푸근한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을 채워줘버린 몹쓸 책이다.
[천년습작]은 말그대로 백년이 걸리든 천년이 걸리든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 스토리텔링을 할 것이 아니라. 세상사에 관심을 가지고 따뜻함을 마음에 품고 인생을 대하라는 일종의 자아성찰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그런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화려하고 수려한 글쓰기를 배우기에는 실패한 듯 하지만, 어쩌면 나는 더 큰 것을 얻어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
삶에 대한 열정과 내 눈에 보이는 인생의 담담함등을 글로 담아보고 싶은 날이 언젠가는 돌아오지 않을까? 그때 나는 정신줄 놓고 미친듯이 한글자 한글자 써내려 갈 수 있을까. 많은 것을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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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습작 - 김 탁환 지음 -
―괴테와의 대화에 기대어 ―문학의 공간에 기대어 ―발자크 평전에 기대어 ―릴케의 로댕에 기대어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에 기대어 ―남쪽으로 튀어! 에 기대어 ―아니 에르노의 소설들에 기대어 ―하드리아누스의 회상록에 기대어 ―여행과 글쓰기 ―소설 혜초를 위해 고심하기 ―물의 상상력 ―원미동 사람들에 기대어 ―복수는 나의 것과 집으로에 기대어 ―새로운 인생에 기대어 ―작가는 나무처럼
릴케가 발견한 작업하는 로댕의 여러 자세중에서 강조한 것이 두가지 있는데
첫째는 눈이다. 관조할 수 있는 눈, 즉 내면의 깊이나 인간의 삶에 대한 강력한 요약을 할 수 있는 눈을 말한다.
둘째는 손이다. 로댕의 작품중에는 손을 조각한 것도 있는데, ................................. 자극받고 화가 나서 일어서 있는 손, ......걸어가는 손, 잠에서 깨어나는 손, 범죄자 같은 손, .........그리고 지쳐서 더 이상 아무것도 원하지 않고, 아무도 자신들을 돕지 못하는 것을 알고 있는 병든 동물처럼 어느 한구석에서 누워 있는 손, .......... 이 손들은 실제로 저마다의 문화와 독특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릴케의 로댕>
저자는 창조의 자부, 창조의 오만, 창조의 황홀과 도취를 이야기 한다. 사막이 아름다운건 오아시스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 어린왕자가 생각난다. 소설이나 시 등을 읽다보면 우리가 무심코 지나쳐 버리거나 그 내면에 숨겨진 것을 끄집어 내서 이야기하고 그것을 읽는 독자는 감동하여 눈물을 흘린다.
그래서 만약 그 작가를 만난다면 " 왜 나를 슬프게 한거야? "라고 말하며 따지고 싶은 적도 있다. 그렇게 작가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눈을 가진 사람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로댕의 작품중에서 손을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놀랍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지쳐서 더 이상 아무것도 원하지 않고, 아무도 자신들을 돕지 못하는 것을 알고 있는 병든 동물처럼 어느 한구석에서 누워 있는 손" 을 만들어 냈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다시 한번 감탄한다. 그림을 그릴때도 손을 그리는 것이 어렵다. 그리고 손에 감정을 실어서 표현한다는 것은 더 어렵다. 물론 그림이나 조각등등에서 감정을 표현한다는 것은 정말 어렵고 힘이 드는데 그것을 보고 그 감정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표현한다는 것은 모든 미술가들이 꿈꾸는 것인데 이것을 표현하려고 수많은 밤을 돌을 쪼면서 노동을 한 로댕의 집념에 존경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알아본 릴케에게도 존경심을 느낀다. 아는 만큼 보인다!
흣날 몇몇 사람에게 나는 "내가 열두 살 무렵 아버지가 어머니를 살해하려 했었어요." 라고 말한 적이 있다. 내가 누군가에게 이 말을 털어 놓고 싶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깊이 빠져 있다는 것을 의미했다. 사람들은 이 말을 듣고는 모두 입을 굳게 다물었다. 나는 내가 실수를 한 것이고 그들은 이런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부끄러움중에는 이런 것도 있다. 나에겐 어떤 일이건 일어날 수 있고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며, 부끄러움 뒤에는 오직 부끄러움만 따를 것이란 느낌. <부끄러움 -아니 에르노>
"위로와 평안을 주는 글쓰기가 아니라 오히려 숨어 있던 상처들을 하나하나 집어내어 다시 아파하는 행위이다." 라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요즘 상처를 치유하는 글쓰기라는 주제로 나오는 책들이 많다. 그래서 한번 사볼까하고 기웃거렸었는데 (아마도 가슴 깊은 곳에 상처가 있었나? 글쓰기로 가슴 가득 응어리진 것을 끄집어 내서 치유하고 편안해지고 싶었나보다.) 아니, 에르노의 글을 읽으니 이건 상처 치유가 아니라 다시 꺼내고 후벼 파는 글쓰기가 되버린다니, 이래서 글쓰기는 단순한 작업이 아니라 내면의 이야기이고, 독자를 울어 버리게 만드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작가는 자신의 치부까지도 들추어 내서 까발릴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 있다. 사람은 누구나 숨기고 싶은 것이 있는데 그것도 정말 숨기고 싶은 것을 까발려야 한다니 " 참 힘이 들겠구나 " 라고 위로하고 싶어진다. 아마 내가 글을 쓴다면 꼭꼭 숨기고 시치미떼지 않을까 ?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 웃음이 난다. 숨기고 싶은 뭐 대단한 것이 있나? 너무 평범하게 살고 있는 건가? ) 하나하나 들추어 내서 까발려 버릴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진정한 작가가 될 것 같기도 하다.
모든 것을 배울 것, 모두 읽을 것, 온갖 것의 정보를 수집할 것. <하드리아누스의 회상록>
일단 그 인물이 남긴 글을 다 읽고 , 그 인물과 동시대에 살면서 교유했던 이들의 글을 읽고 .........그 시대의 역사서를 읽고, 또 그 인물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성과들을 읽어나가는 것이지요 이렇게 자료의 숲을 헤매다가 보면, 점점 그 인물을 이해하게 되고 그 인물의 얼굴과 목소리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역사소설이나 대하소설 같은 것을 볼때 어떻게 주인공을 실감나게 표현할 수 있지? 라고 생각하고는 했는데 모든 정보를 수집하고 그 인물에 가깝게 접근하는 과정에 대한 설명을 보니 조금은 이해가 된다. 그래서 지구력이 강한 사람이 쓰는 분야가 역사소설이 아닐까 생각했는데 역시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창작을 하는 사람 대부분 그렇겠지만 아마도 이렇게 긴 역사소설은 그 작품이 끊날때까지 정신적으로 그 작품에 메여 있어서 많이 지칠 것만 같다.
작가는 나무처럼 예술가는 나무처럼 성장해가는 존재입니다..........아무 걱정도 없이 조용히 그리고 여유있게 기다리는 참을성 있는 사람들에게만 찾아오는 것입니다. 저는 그것을 날마다 배우고 있습니다. 나는 오히려 내게 고맙기만 한 고통속에서 그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인내가 모든 것이라고 ! <라이너 마리아 릴케 ㅡ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왜 책 제목이 천년습작인지 알 것 같은 글이다. 작가는 나무처럼 오랜 시간 그 자리에서 고통을 참고 인내하는 것이라는 것, 그 오랜 시간, 천년만큼 긴 시간 글을 쓰는 것이라고 ...........
글쓰기 특강이라는 말에 이 책을 읽고 글 좀 잘 쓸수 있으려나? 하는 기대감 같은 생각이 든다. 책을 읽다보니 글을 쓰고 싶어져서 글쓰기에 관한 책을 찾아보게 되는데, 그 책을 읽는다고 갑자기 글을 잘 써지게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희망을 가지고 계속 읽어 봐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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