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수와 언론인, 작가 등 국내 필자 200여명과 이미 출판계약을 체결했고, 올해 안에 70여권을 발간할 계획이다. 이달 중에 인류학·신화학과 문화연구 분야 10권이 속속 출간된다. 

살림출판사 강훈 기획팀장은 『인문학 책들은 전문적인 내용과 부담스러운 분량 때문에 아무래도 독자들이 쉽게 접근하기 어렵다』면서 『현학적 표현을 배제하고 대학 신입생 수준이면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서술, 지식과 교양의 대중화를 시도했다』고 말한다.

최근 살림 출판사에서는 '세상의 모든 지식'이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국내 필진이 쓴 문고판 '살림 지식총서'를 출간했다. 이에 앞서 지난해 초부터 출판사 책세상은 '책세상문고 세계문학' '책세상문고 우리시대''고전의 세계' 등을 꾸준히 내고 있다.

이제이북스라는 신생출판사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등 심리학 주제만을 다룬 '사이코 북스'를 출간하고 있다. 또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시공사)'한길로로로'(한길사)'하룻밤의 지식여행'(김영사) 등 현재 유통되고 있는 문고판은 30여종이 넘는다.

출판평론가 이권우씨는 "미국.일본의 경우 하드커버로 나와 1차로 소화되고, 그 다음 저렴한 가격으로 양서를 보급한다는 취지에서 출판사에서 페이퍼백으로 책꼴을 바꿔 다시 출간한다"며 "그러나 우리는 문고판을 위해 새로 번역하고 저작권을 계약하니 문고판으로서 가격 경쟁력을 갖추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통계에 따르면 일본의 경우 1년간 문고판 신간 종수는 6천1백55종, 판매 부수는 2억1천9백91만부에 달한다. 전체 도서시장에서 문고본이 차지하는 비중은 판매부수의 29.8%, 매출액의 13.6%다. 그러나 우리 시장에서 문고판의 비중은 통계조차 잡히지 않을 정도로 미미하다. 

출판연구소 백원근 차장은 "1970년대 문고판 전성기를 지나 80년대부터 외양을 중시하는 풍토가 자리잡으며 이제는 값싸게 우량 콘텐츠를 보급하겠다는 출판 철학이 부재하게 됐다"고 말했다. 

문고판을 교양.고전 분야로만 국한하고 있는 것도 활성화를 막는 요인이다. 일본의 경우 실용서도 문고판으로 나오고, 베스트셀러로 인기 높았던 '로마인 이야기'도 지난해 문고판으로 출간됐다. 백차장은 "출판 시장의 미래에 대한 투자로 여기고 출판사.유통업체들은 문고판 보급을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시 장정일의 '삼중당 문고'로 돌아가보자. "용돈을 가지고 대구에 갈 때마다 무더기로 사 온 삼중당 문고/책장에 빼곡히 꽂힌 삼중당 문고/싸움질을 하고 피에 묻은 칼을 씻고 나서 뛰는 가슴으로 읽은 삼중당 문고/처음 파출소에 갔다왔을 때, 모두 불태우겠다고 어머니가 마당에 팽개친 삼중당 문고." 아무래도 문고판 시장을 그냥 방치할 수는 없을 듯하다. 

8명의 국내 필진이 미국의 역사 정치 사상 사회 문화 예술 과학 등 다양한 부문을 천착하고 있다.

‘미국의 정체성’을 쓴 한국외국어대 외국학종합연구센터 김형인 대우교수는 10가지 코드를 통해 미국을 조명했다. 그가 선택한 키워드는 자유에 대한 예찬, 개인주의, 평등주의, 법치주의, 문화주의, 청교도정신, 개척정신, 실용주의, 과학과 기술에 대한 신뢰, 미래지향성. 지은이는 미국인들을 움직이게 하는 행위의 기저에 있는 가치체계를 이해하는 일이야말로 최근 반미주의에 감추어진 미국의 또 다른 모습을 파악하는 지름길이라고 주장한다.

‘마이너리티 역사-혹은 자유의 여신상’은 미국의 상징인 자유의 여인상이 빚은 신화의 진실과 실상 역사를 다루고 있다. 지은이 손영호(청주대 사학과) 교수는 미국 정부를 상징하는 남성상인 엉클 샘과 함께 미국의 양대 상징물인 자유의 여신상이 미국인의 역사와 생활 속에서 어떻게 변질되고 왜곡돼 왔는가를 보여 준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MD-미사일 방어체제’를 통해 미국 대통령 조지 W 부시가 왜 MD문제에 집착하려 하는지를 설명한다. 그는 부시 행정부와 군수산업복합체와의 유착관계를 파헤침으로써 그 이유를 설득력있게 그려낸다.

‘반미’는 태양이 지지 않는 나라, 미국은 세계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어떤 전략을 구사하고 있는가를 파헤쳤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반미주의가 걸어 온 길을 조명했다. 세계를 조절하는 미국의 전략과 반미주의에 대한 객관적인 설명으로 미국의 실체를 한겹 벗긴다.

이런 고민을 덜어줄 수 있는 새로운 기획이 선보였다. 살림출판사가 새로 선보이는 ‘살림지식총서’가 그것이다. 분량(각권 95쪽)이나 가격(각권 3300원)면에서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는 문고본인데 매달 10권씩 발간해 한 해 동안 100권 이상의 문고가 선보일 예정.

처음 발간된 10권의 주제는 ‘미국’. 한 권씩 살펴보면 다양한 스펙트럼을 통해 오늘의 미국에 대한 윤곽을 잡아나가겠다는 의욕을 엿볼 수 있다. 미국이 오늘날의 정치 체제를 만들기까지 보수와 진보의 갈등을 역사적인 관점에서 추적하고(『미국의 좌파와 우파』·이주영 지음), 영화를 통해 전 세계로 퍼져나가는 미국 문화에 대한 배경을 설명한다(『영화로 보는 미국』·김성곤). 『미국 뒤집어보기』(장석정)에서는 ‘자유와 정의라는 인간적인 가치를 표방하는 미국이 끝내 인간성에 반하는 전쟁을 빚어내고 있는’ 모순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고, 『미국 메모랜덤』(최성일)에서는 미국에 관해 알아두면 유용한 정보를 소개했다.

살림출판사는 앞으로 인류학과 신학, 사회문화, 철학, 과학, 종교를 주제로 각 5권씩 문고본을 발행할 예정. 올해까지는 주제별 연계를 중시하고 내년부터는 책마다 서로 다른 주제를 다루게 된다.

이 시리즈가 ‘지식의 백과사전’을 궁극적 목표로 하면서 ‘국내 필자에 의한’ 인문학 문고를 지향한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살림출판사 김훈 기획팀장은 “이미 200명의 필자를 확보했다”고 말했다. 그는 “70, 80년대의 문고본이 고전이나 명저에 치우쳐 독자의 관심을 충족시키지 못했고, 90년대 후반 등장한 문고본들은 번역본이 많아 외국 독자 취향이라는 한계가 있었다”며 이 시리즈가 과거 문고본에 대한 복고적 향수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출판사는 앞으로 이 시리즈를 영국의 ‘펭귄 북스’, 프랑스의 ‘크세즈’, 일본의 ‘이와나미 문고’ 같은 문고본으로 키울 계획이다.

현재 출간되고 있는 다른 출판사의 문고본들과 달리, 살림지식총서는 모두 국내 필자가 집필한 창작물만으로 문고를 꾸린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번에 나온 1차분 필자도 모두 국내 필자들이다. 이렇게 문고를 창작물로 한정하는 것은 ‘지식과 교양의 대중화라는 전선에서 첨병 노릇을 하는 중간필자를 발굴해 키우겠다’는 의지의 발로이기도 하다. 

그러나 발간된 미국 주제 10권의 책만 놓고 보면, 이들의 기획의도가 얼마나 내실있게 실현될지 적잖이 걱정스럽다. 우선, 필자마다 견해가 크게 달라 ‘미국’이라는 소재만 같을 뿐 관점은 제각각이다. 가령, 『미사일방어체제』(정욱식 지음)는 지구촌의 가장 중대한 위험 요소로 등장하고 있는 미국의 군사전략과 그것이 한반도에 끼치는 악영향을 정리하고 있어 미국의 국제관계 실상에 관한 정보서 노릇을 한다. 또 『마이너리티 역사』(손영호 지음)는 ‘자유와 평등’의 신화 뒤에서 벌어지는 유색인차별과 백인우월주의의 역사를 제대로 짚어주고 있다. 반면에, 『미국 뒤집어보기』(장석정 지음)나 『미국 문화지도』(장석정 지음)는 미국을 객관적으로 이해한다는 취지 아래 미국의 문화와 제도를 높이 평가하면서, 한국은 미국보다 못하다는 식의 친미사대적 태도를 끼워넣고 있다. 

또 제목과는 달리 주로 미국의 보수·우파를 분석한 제1권 ‘미국의 좌파와 우파’(보수파가 정치·경제를 장악하고 좌파는 문화운동이나 하며 쭈그러들어 있어서이겠지만) 말고도 실용주의등 10가지 코드로 미국을 해부한 ‘미국의 정체성’(2권·김형인), 흑인들을 때려잡던 KKK단도 성경구절을 들먹였듯 노예제와 기독교의 야릇한 함수관계를 풀어쓴 ‘두 얼굴을 가진 하나님’(4권·김형인), 미국만의 독특한 생활문화와 그들의 사고방식등을 핀셋으로 집어내듯 정리한 ‘미국 문화지도’(9권·장석정)에다가 ‘마이너리티의 역사 혹은 자유의 여신상’(3권·손영호)‘MD·미사일방어체제’(5권·정욱식)‘반미’(6권·김진웅), ‘영화로 보는 미국’(7권·김성곤)‘미국 뒤집어보기’(8권·장석정)‘미국 메모랜덤’(10권·최성일) 등 미국의 과거·현재를 두루 꿰는 다양한 메뉴를 골라보는 재미도 있다.

특히 유럽과 미국을 비교하는 대목은 유럽과 또다른 미국문화의 성격을 간명하게 드러나게 한다. 유럽은 공항을 포함, 어디에서나 담배를 자유롭게 피우는 곳이 많다. 미국은 담배에 엄격하다. 유럽은 국가주의를 경계하고 이혼,낙태,동성애, 안락사 권리등 반종교적·세속적 가치를 중시한다. 미국은 국가와 애국심을 강조하고 청교도 정신과 기독교 근본주의 성향을 지닌 중산층 계급이 이끌고 있다. 

오늘날 어느 나라도 미국을 정확히 이해하지 않으면 손해를 본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반세기 동안 혈맹 관계였지만, 최근 갑작스럽게 느슨해진 양국 관계를 바로 세우거나 복원하기 위해서도 미국에 대한 보다 정확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이번에 문고본 형태로 나온 '살림지식 총서 시리즈 미국편'(총10권.살림출판사)은 정치 사회 문화 등 각 분야의 미국 전문가들이 미국의 여러 얼굴과 모습을 알기 쉽게 풀어냈다. 이 시리즈는 1권 미국의 좌파와 우파, 2권 미국의 정체성, 3권 마이너리티의 역사 혹은 자유의 여신상, 4권 두 얼굴을 가진 하나님 등의 주제로 저마다 미국 면면들을 돌아보게 한다. 책을 집필한 10명의 지은이는 세계를 지배하는 초강대국 미국을 객관적으로 이해하자고 강조한다.

시리즈 첫 권인 '미국의 좌파와 우파'(이주영 지음)에서도 이 점은 분명히 드러난다. 건국대 사학과 교수인 지은이는 미국의 국력과 국가적 위신이 보수-우파 세력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분석한다. 미국이 국가와 종교라는 전통적 가치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미국적 가치'와 '미국적 체제'를 내세우는 보수-우파의 전통이라는 이야기도 들려준다. 개인적 자유 보장 속에서 세속적이고 이성적인 가치를 중시하는 유럽인들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미국편 시리즈 출간의 의미는 책 내용뿐 아니라 독자들에게 '지식의 광범위한 보급과 대중화'를 선언한 출판사의 과감한 도전에서도 찾을 수 있다. 시리즈물은 100쪽 안팎의 작은 문고판 사이즈(B6)로 가격이 3300원이어서 인문지식에 목마른 독자들의 부담을 가볍게 한다. 출판사측은 미국편 이후 주제를 달리해 격주마다 책을 내놓을 예정이다.

문고본 시대의 부활을 짐짓 노렸을 수도 있겠으나, 출판사의 이런 흐름에 동참하는 것이 독자들에게 손해는 아닐 듯하다. 이러한 동참이 국내 저자 부족과 높은 로열티 관행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 출판계에 작지 않은 도움이 되길 기대해 본다.

우리만이 아니다. 이라크전 이후 세계 모든 나라가, 로마제국, 몽골제국보다 더 넓은 지역을 사실상 통치하면서 전세계 국방예산을 다 합쳐야 비슷할 정도의 가공할 군사력을 가진 이 나라의 눈치를 살피며 비위를 맞추고 있다. 미국은 결코 지적 통찰의 대상에만 머물지 않고 있다. 작금의 북핵 문제와 주한미군 재편, 스크린쿼터 논란이 보여주듯 우리의 일상과 생존에 개입하는 절박한 현안이 되고 있다. 또한 그토록 짧은 역사 속에 세계 유일의 초강대국으로 떠오른 미국의 저력에 대한 탐색은, 사회 전 분야에서 성장의 과도기적 진통을 겪고 있는 우리가 지향할 바에 관해 비판적 성찰의 기회를 제공해줄 수 있다. 

살림출판사가 내놓은 ‘살림 지식총서’ 1차분 ‘미국편’은 이같은 시대적 요청에 대한 출판계의 화답이라 할 만하다. 프랑스의 크세즈, 독일의 레클람 문고, 일본의 이와나미 문고처럼 한국의 대표 문고를 지향한다는 이 문고의 첫 시리즈 주제가 ‘미국’인 까닭은 “실상은 미국을 잘 모르면서도 스스로는 잘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판단 때문이다. 10권의 문고 중 ‘미국의 정체성’ ‘미국 뒤집어보기’ ‘미국 문화지도’ 등 3권은 미국인들의 가치관과 문화를 해부하는 개론에 해당한다. 김형인 한국외대 교수의 ‘미국의 정체성’은 개인주의, 평등주의, 다문화주의, 청교도정신, 개척주의 등 10가지 코드를 통해 미국인의 정체성과 신념을 분석한다. 장석정 일리노이 주립대 교수의 ‘미국 뒤집어보기’ 및 ‘미국 문화지도’는 저자의 오랜 미국 체류 경험을 바탕으로 미국인의 자잘한 일상속에 드러나는 미국 문화의 독특한 특징을 포착, 잘못 형성된 인식을 교정한다. 그의 결론은 “미국은 결론을 내릴 수 없는 나라”란 것이다. 그는 “우리가 미국을 잘 모르는 이유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잘 모르고 있기 때문”이라며 문화의 상대성을 고려하지 않는 자문화 중심주의적 ‘미국 바라보기’에 일침을 가한다. 

또 ‘미국의 좌파와 우파’(이주영) ‘미사일 방어체제 MD’(정욱식) ‘영화로 보는 미국’(김성곤)은 정치·군사·문화 등 특정 분야에 초점을 맞춘 각론이다. 신보수주의, MD, 스크린쿼터 등은 지금 우리가 맞닥뜨린 뜨거운 현안이기도 하다. ‘두 얼굴을 가진 하나님’(김형인)과 ‘마이너리티 역사 혹은 자유의 여신상’(손영호)은 미국의 노예제 및 이민사를 통해 미국의 잠재의식을 해부한다. 전자는 미국의 노예제 찬반론자들이 성서를 근거로 각기 자신들의 입장을 어떻게 옹호했는지를 분석하며, 후자는 자유의 여신상이란 미국의 대표적 상징을 중심으로 다인종·다민족 국가의 형성 과정을 일람하고 있다. 

김진웅 경북대 교수의 ‘반미’는 반미주의의 기원과 다양한 형태를 조망한다. 남미의 담벼락에 ‘양키 고 홈’이란 문구가 즐비한 가운데서도 “그리고 나도 데려가라”는 유행어가 돌고 있듯 증오와 선망이 뒤얽힌 지구촌의 모순된 대미 인식을 보여준다. 출판평론가 최성일씨의 ‘미국 메모랜덤’은 미국에 관한 국내외 저작들을 일목요연하게 소개한 미국 관련 도서 길라잡이다. 

저자들의 정치적 스펙트럼은 진보와 보수, 중도를 망라한다. 이 때문에 같은 현상을 놓고 이 책에선 이렇게 보는가 하면 다른 저자는 정반대로 풀이한다. 다양한 시각을 접한 뒤 최종 해석은 독자의 몫으로 남겨진 셈이다. 촛불시위로 상징되는 미국에 대한 비판적 인식의 확산 추세를 저자들이 예민하게 의식하고 있는 흔적도 곳곳에서 읽힌다. 시의성이 부각된 점은 높이 살 만 하지만 독서의 흐름을 방해하는 잔소리로 느껴질 때도 있다. 각권 90쪽 남짓의 부담 없는 분량이지만 그렇다고 내용이 가볍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