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에서 빛나는 리더십? 바로 현금이 왕이다!
가장 먼저 현금흐름을 챙겨라… 최고 기업도 2주일 내 망할 수 있다…
유동성 부족은 치명적 위협…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해… 손익분기점 최대한 낮추며… 보수적으로 경영해야… CEO들, 위기 맞으면… 현금 부족하다는 걸 까먹고… 너무 많은 일 벌여 '낭패'… 선택과 집중, 빨리 움직여야…

▲ /블룸버그뉴스

'현금이 왕이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컨설턴트, 램 차란(Charan·69)은 시종일관 현금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위기 때 경영자가 들여다봐야 할 단 하나의 지표가 있다면 바로 현금흐름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튼튼한 기업이라도 유동성이 부족하면 2주일 내에 무너질 수 있다."

그는 GE를 예로 들었다. 트리플A 등급을 받은 탄탄한 기업이지만, 지난해 두 차례에 걸쳐 유동성 부족으로 위기를 겪으면서 고리(高利)로 급전(急錢)을 조달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램 차란은 지금처럼 불확실성이 높을 때는 손익계산서에서 대차대조표로 관심을 돌려야 한다고 조언한다. 시장점유율을 올리고 매출을 늘리는 대신, 회사가 하는 모든 일이 현금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 파악하라는 것이다. 영업 소득에서 발생하는 현금은 얼마인지, 재고 등 운전자본은 얼마나 빨리 회전하는지, 자산을 팔아 현금을 확보할 필요성은 없는지 총체적으로 검토하라는 얘기다.

램 차란은 경영 컨설팅 분야의 독보적인 존재다. 1977년 보스턴대학의 교수직을 던지고 컨설팅에 뛰어든 이후 날카로운 통찰력과 실행 가능한 해법을 제시해 '경영 구루', '기업의 현자(賢者)'로 불린다. 그는 지금까지 12권의 책을 펴냈으며, 이 중 〈실행에 집중하라〉는 200만부가량 팔리며 약 3년간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다. 특히 현존 컨설턴트 가운데 누구도 램 차란만큼 전 세계 영향력 있는 경영자들과 친밀하고 오랫동안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은 없다. 그는 39년째 GE에 컨설팅을 하고 있고, 듀폰에서는 35년째 자문을 하고 있다. 2009년엔 더타임스 등이 선정하는 '세계 경영 사상가 50인' 중 13위에 랭크됐다.

잭 웰치 전 GE 회장은 "램 차란은 의미 없는 것들 가운데서 의미 있는 것을 골라내 다른 사람의 자존심을 상하지 않게 조용히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탁월한 능력이 있다"고 예찬한다. 미국 최대 이동통신회사인 버라이존의 이반 세이든버그 회장은 "램 차란은 나의 비밀 병기"라고 신뢰감을 표시하고, 씨티그룹의 전 회장 존 리드는 "할 일을 다했다고 뻐기고 있을 때 그는 전화해서 '이거랑 저거랑 했느냐'고 따져 묻는, 마치 '양심'과 같은 존재"라고 말한다.

컨설팅을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보이는 램 차란이 기업을 방문해서 첫 번째 하는 일은 역시 현금 체크다. 그는 "현금 사정이 어떠냐" "현금흐름이 어디서 일어나느냐"고 묻고, "피에 해당되는 현금이 없으면 당신은 당장 곤란을 겪는다"고 경고한다. 현금은 위기 때 더욱 중요하지만, 기본적으로 경영의 출발점이라고 보는 것이다.

램 차란의 현금 중시 원칙은 그의 어린 시절 경험과 관련이 있다. 그는 초등학교 시절, 인도에서 아침에 일어나 가족들이 꾸리는 신발가게에 나갔다가 방과 후엔 신발가게에서 하루를 정리하며 돈을 세는 역할을 맡았다. 이때 현금이 어디 있으며, 가족들이 무엇을 사고 파는지, 마진은 얼마이고, 어떻게 마감을 하는지 등 매우 구체적으로 경영에 대해 배웠다고 회고했다. 그는 "하루가 끝났는데 현금이 없으면 우리 집에 문제가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가 던지는 질문의 종착역은 이렇게 아낀 현금으로 무엇을 할 것이냐는 것이다. '전략적인 감축'은 회사가 성장하기 위해 위치를 잡도록 하는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그는 현대자동차의 공격적인 마케팅을 칭찬했다. "현대자동차는 좋은 자동차를 만들고 있고, 미국에서 고지(高地)를 점령하려고 하고 있다. 지금 이 시기에 현대차의 마케팅 방식은 먹히고 있다. 현대차는 당연히 해야 되는 일을 하고 있다."

Weekly Biz는 최근 뉴욕에서 그와 전화 인터뷰를 가졌다. 그는 위기 때 필요한 경영 리더십과 전략에 대한 자신의 노하우를 들려주었다.

램 차란은 독신이고, 2년 전까지도 집이 없어 '홈리스 컨설턴트'로 알려졌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그에겐 호텔이 집이다. 뉴욕 맨해튼 아스토리아호텔의 종업원은 그를 맞을 때 "집에 돌아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고 말한다고 한다. 그런 그가 2년 전 텍사스에 집을 샀다. 그와의 인터뷰 약속을 잡기 위해 여비서와 통화하는 도중, 그가 구입한 집에 대해 물어보았다. 비서는 "집을 사놓긴 했지만, 아마 아직 한 번도 들어가 보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가족이 없고 비행기에 올라 있는 시간이 많은 그는 굳이 집을 살 필요가 없었지만, 사람들이 하도 "왜 집이 없느냐"고 귀찮게 물어보는 바람에 사놓았다는 것이다. 마치 접선을 하듯, 비서가 알려준 전화번호로 정해진 시간에 전화를 걸어 램 차란과 연결됐다.

―지금 어디 있는가.

"코네티컷에서 뉴욕으로 가는 중이다. 오늘 아침 뉴델리에서 왔다. 오자마자 오전 8시부터 9시 반까지 비즈니스 미팅을 가졌다. 그리고 11시 50분부터 1시 반까지 일대일 약속이 있었고, 오후 4시 반부터 5시 반까지 또 다른 미팅이 예정돼 있다. 오늘 밤에는 뉴욕에서 잘 거다."

그의 스케줄은 살인적인 것으로 유명하다. 2년 전 그의 스케줄을 들여다본 포천지의 기자는 이렇게 썼다. '추수감사절 전주 금요일 인도로 가서 일요일 아침엔 뭄바이, 월요일 아침엔 델리, 수요일엔 뭄바이, 목요일엔 방갈로르, 토요일엔 트리반드룸, 다음 수요일엔 남아공 요하네스버그, 금요일 아침 7시 뉴욕에서 비행기로 날아온 CEO와 두 시간 인터뷰, 이후 2개의 미팅 후 이날 밤 두바이행'. 기자는 서둘러 본론으로 들어갔다.

■현금이 왕이다

―새 책 〈램 차란의 위기 경영(Leadership in the Era of Economic Uncertainty)〉에서 현금의 중요성을 강조했는데….

"현금은 유동성이기 때문이다. 유동성이 없으면 아무리 튼튼한 기업이라도 2주일 내에 무너질 수 있다. 미국 자동차 산업의 문제들은 오래전부터 축적되어온 것이지만, 유동성 부족으로 상황이 급격히 악화됐다. 미국 자동차 3사 가운데 안전한 여유 현금을 확보한 회사는 하나도 없었다. GE도 비슷한 사례다. 트리플 A 등급을 받는 탄탄한 기반의 회사이지만, 두 차례 유동성 위기를 겪으면서 높은 이자로 외부 자본을 끌어와야 했다. 유동성 부족은 기업에 치명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해 손익분기점을 최대한 낮추면서 보수적으로 경영할 필요가 있다."

―소년 시절의 경험이 중요한 계기가 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어릴 적 집에서 꾸리는 구둣가게를 도왔다. 작은 비즈니스에서는 현금이 더 결정적이다. 현금이 어디에 있고, 가족들이 무엇을 사고파는지, 마진은 얼마나 되는지, 어떻게 마무리를 할 것인지 등을 배웠다. 하루가 파했을 때 현금이 없으면, 우리 집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현금에 대한 정보를 어떻게 경영에 활용할 수 있는가.

"현금은 회사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재는 매우 분명한 잣대이다. 현금을 적정하게 갖고 있지 않으면 나쁜 상황이다. 이때 회사 상황을 정확히 잴 수 있는 정보가 있어야 한다. 물건이 얼마나 팔렸으며, 얼마나 팔릴 것이며, 어느 정도 재고를 갖고 있는지 등의 정보를 손에 넣고 있어야 한다. 현금을 기준으로 산출된 손익분기점은 경영자가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지 명확히 알려준다. 최악의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제품 라인을 중단할 것인지, 공장을 폐쇄할 것인지, 아니면 유통망을 없앨 것인지 결정할 수 있도록 해준다. 이를 위해 기업이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정보 기술을 십분 활용해 현금 흐름을 날마다 투명하게 파악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다."

―하지만 현금에만 집착하다 보면 장기적인 성장 기회를 놓칠 수도 있지 않은가.

"현금과 함께 비즈니스 모델을 다시 생각해야 한다. 실제 수요에 맞게 옷감을 다시 자르고 재단해야 한다. 하지만 이를 위해선 먼저 어디에 현금이 사용되고 있는지 알아야 하고, 현금이 어디서 창출되는지 알아야 한다. 매시간 돈이 어디 있는지 당신뿐만 아니라 직원들도 알 수 있도록 훈련시켜야 한다. 식료품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은 컴퓨터가 없어도 현금이 어디에 있는지 안다."

그러나 그는 위기 속에서 기업은 현금을 확보하면서 동시에 미래의 성장 엔진을 구하는, 자칫 배치되는 이중 목표를 함께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바닥 정보에 귀를 기울여라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아 어느 기업이 위기에 가장 잘 대처했다고 보는가.

"듀폰의 CEO 채드 홀리데이와 JP모건의 제이미 다이먼 회장이다."

램 차란은 책에서 채드 홀리데이가 이번 금융위기에 어떻게 대처했는지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재작년 가을, 일본의 거래처를 방문한 홀리데이 CEO는 그 일본 회사의 CEO가 "금융 위기가 확산될 경우에 대비해 현금을 비축할 것을 지시했다"는 얘기를 듣고, 곧바로 미국 본사로 날아와 임원회의를 소집한 뒤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하고 '기업 위기' 선언을 했다. 9개 비상팀이 듀폰의 생존에 필요한 조치를 결정했다. 그 뒤 10일 만에 모든 직원이 부장과 일대일로 만나 회사가 해야 할 일에 대해 설명을 들었고, 현금 비축과 비용 절감에 즉시 도움이 되는 아이디어 세 가지를 내라는 숙제를 받았다. 이후 듀폰은 2500여명의 정규직과 1만여명의 계약직 축소를 포함해 10억달러 규모의 고정비용을 줄였다.

―채드 홀리데이의 경험에서 무엇을 배울 수 있는가.

"많은 사람을 만나서 그들이 어떻게 세상을 보는지 늘 관찰하고 배워야 한다. 그리고 필요한 행동을 즉시 실행에 옮겨야 한다. 홀리데이는 일본의 CEO를 만나 그가 하는 얘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리고 재빨리 움직였다."

―그가 취한 행동 중 가장 결정적이었던 것을 꼽는다면.

"이를 회사 사람들에게 신속하게 알리고, 함께 행동한 것이다."

―JP모건의 제이미 다이먼 회장이 월가의 실패한 다른 경영자들과 구별되는 점은 무엇인가.

"그는 파생상품의 문제점을 먼저 발견했다. 그래서 다른 은행 경영진보다 빨리 위험한 대출상품과 파생상품을 취급하지 않도록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위기를 맞았을 때 CEO들이 범하는 치명적인 실수가 있다면.

"현실을 직시하지 못하는 것이다. 위기를 맞았을 때 CEO들은 매우 현실적이 되어야 한다. 빨리 움직여야만 한다. 무엇이 현실적인 목표이고 아닌지를 결정해야 한다. 그리고 이 결정을 과단성 있게 내려야 한다."

―치명적인 실수의 예를 들어달라.

"위기를 맞으면 너무 많은 실수를 저지른다. 현금이 충분하지 못하다는 사실을 까먹고, 너무 많은 일을 벌인다.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하는데 말이다."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직원들과 솔직하게 커뮤니케이션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는데.

"그렇다. 투명하게 당신의 관점을 말하고, 그들을 참여시키며 그들에게 정직해야 한다."

―하지만 솔직한 대화가 오히려 불필요한 근심을 불러일으킬 염려는 없는가.

"아니다. 커뮤니케이션이 부족할수록 더 많은 불안을 불러온다. 정직한 커뮤니케이션은 불안을 줄인다."

그는 어려울 때일수록 '바닥 정보(ground-level intelligence)'에 귀를 기울이라고 조언한다. 바닥 정보란 여과되지 않고 1차 출처에서 직접 얻은 상세한 최신 정보를 말한다. 현장으로 직접 나가서 소비자를 관찰하고 그들의 소리를 들으라는 이야기다.

―'바닥 정보'가 중요한 이유는?

"고객들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정보를 모아야 한다. 그리고 그 정보를 거르는 진짜 필터를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게 왜 그렇게 중요한가.

"지금 정말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정확한 정보를 얻지 못하면 나쁜 결정을 내리게 된다."

―그러나 경영자가 모든 바닥 정보를 다 들을 수는 없지 않나.

"소비자가 아니라면, 최소한 경영자 본인보다는 고객과 가까운 직원들에게 다가가라. 물론 직원들은 타고난 낙관주의자라는 점은 감안하면서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소망적 사고(wishful thinking)'는 왜 위험한가.

"사람들은 낙관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이 어려움은 곧 지나가고 우리는 정상으로 돌아갈 거야'하는 식이다. 현실적으로 낙관주의는 너무 많은 재고를 쌓아 위험에 취약하도록 만든다. 이런 속삭임을 절대로 믿어서는 안 된다."

▲ /John Abbott

■"컨설팅에 기성복은 없다"

램 차란은 시종 단문으로 대답했다. 그는 자신이 조금이라도 모르는 분야에 대해서는 철저히 입을 다물었다. 한국 기업에 대한 질문을 던지자 "모른다"고 대답했다. 하지만 현대자동차에 대해서는 "아!" 하면서 입을 열었다.

―현대자동차가 위기의 와중에 공격적인 마케팅을 벌여 왔는데 현명한 전략이라고 보는가.

"물론이다. 현대차는 좋은 자동차를 만들고 있고, 미국에서 고지를 점령하려고 하고 있다. 지금 이 시기에 현대차의 마케팅 방식이 먹히고 있다. 현대차는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당신은 위기 속에서 현금 위주의 경영을 강조했는데, 이런 공격적인 마케팅은 당신의 가르침과 어긋나는 게 아닌가.

"아니다. 그들은 현금을 갖고 있지 않은가. 현금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 물론 그들이 현금이 없다면 현금 확보가 우선순위가 되겠지만."

램 차란은 하버드대 비즈니스스쿨에서 상위 3%에 든 수재였고, 세계 최고의 컨설턴트로 불리며, 많은 책을 썼다. 하지만 그에겐 하나로 뭉뚱그릴 수 있는 특별한 이론은 없다. 그는 이론가라기보다는 컨설턴트라는 역할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컨설팅은 고객에게 맞춤복을 제공하는 것이 본연의 업무라고 그는 믿는다. 기성복은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컨설턴트로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본인이 직접 경영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가.

"나는 약 25년 전에 컨설팅을 하기로 결정했다. 내 회사를 경영하고 싶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이 시대를 요약한다면.

"책에도 썼지만 지난 세대의 경제적 평화는 끝났다. 우리는 두려움과 불확실성, 의심에 휩싸인 채 생존을 위한 전쟁을 벌이고 있다."

그는 이런 불확실성 속에 필요한 리더십으로 6가지를 꼽았다. ①정직과 신뢰성 ②활기를 불어넣는 능력 ③현실과 밀착된 처방 ④낙관주의가 가미된 현실주의 ⑤집중경영 ⑥미래를 대비하는 대담성이 그것이다.

―이런 리더의 자질은 습득할 수 있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배울 수 있다. 하지만 그렇게 못 하는 사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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