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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의 문화사 (큰글자 살림지식총서 068)
고형욱 지음 | 2013년 3월 15일
브랜드 : 큰글자 살림지식총서
쪽수 : 96 쪽
가격 : 15,000
책크기 : 163*255
ISBN : 978-89-522-2405-7-040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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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림지식총서, '큰글자'로 새 옷을 입다!

최근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전개되면서 더불어 노년층 독서인구가 증가하고, 다양한 지적・문화적 욕구 또한 늘고 있는 추세다. 하지만 노안이나 약시・저시력 등의 이유로 독서에 어려움을 겪는 독자들 또한 늘고 있다. 이에 살림출판사의 대표 브랜드인 살림지식총서가 문고판 최초로 제작 및 보급에 나섰다. 큰글자 도서는 노안으로 독서에 어려움을 겪는 어르신들과 시각 장애인들이 책을 읽기 쉽도록 글자 크기를 키운 도서로, 선진국에서는 ‘라지 프린트 에디션’이라는 이름으로 제작되기도 한다.
이 책들은 일반 글자크기인 10포인트(살림지식총서 기준)보다 1.5배 정도 더 큰 약 15포인트의 글자크기로 제작됐다. 큰글자 도서는 현재 출간된 살림지식총서 중 건강, 복지, 고전, 역사, 인문 등 중장년층의 관심이 집중된 분야 중심으로 추가 제작될 예정이며 큰글자 도서의 출간을 염두에 둔 기획도 진행 중이다. 독서 소외 계층을 위한 살림지식총서의 노력은 계속될 예정이다.
[와인, 누가, 어떻게 처음 마셨을까?]
기록된 바에 의존하자면 최초로 와인을 마신 인물은 노아였다. “노아가 농업을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와인을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라는 창세기의 구절을 보면 와인을 만든 이는 노아이며, 가장 먼저 취했던 이도 노아이다.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노아의 방주가 머무른 곳은 현재의 이란 서부 지역에 위치한 엘부르즈산山을 비롯해 몇 군데가 유력한 후보지로 떠오르고 있다.
와인의 역사와 연관지을 때 이는 어쩌면 우연이 아닐 것이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는 기원전 4000년 후반에 기록된 점토판이 발견되었다.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정착했던 수메르 인들이 남긴 기록이다. 그들은 농경 기술이 뛰어났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점토판에는 길가메시 왕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다. 수메르 역사에서 노아라 할 수 있는 우트나피슈팀의 일화는 노아의 이야기와 유사하다. 「길가메시 서사시」에서 우트나피슈팀은 길가메시 왕에게 방주 이야기를 들려준다. “일꾼들에게 에일ale과 맥주, 그리고 오일과 와인을 강물처럼 마시도록 했다”는 것이다. 대홍수가 일어날 때를 즈음해서 와인을 마시기 시작했다는 전설은 적어도 옛날 옛적 언젠가 이 지역에서 벌어질 수도 있었던 일임을 상기해 준다.
이와 비슷한 신화가 페르시아에도 전해진다. 페르시아 신화에서 와인을 처음으로 마신 인물은 잠시드 왕이었다. 잠시드 왕은 포도를 좋아해서 항아리에 보관해 두었다가 먹곤 했다. 어느 날 포도가 상해 버려서 독약이라고 써 붙여 두었다. 그런데 우연한 일이 벌어졌다. 두통에 시달리던 하렘의 여인이 찢어질 듯한 고통에서 버티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싶어서 독약을 마신 것이다. 취기가 올랐는지 그녀는 이내 잠이 들어 버렸다. 그런데 잠에서 깨어 보니 두통이 씻은 듯이 사라진 게 아닌가. 이렇게 해서 페르시아 신화에 와인이 등장하게 된다.
우연의 일치인지 노아, 길가메시, 잠시드 왕이 등장하는 지역은 현재의 이란 일대로 추정된다. 포도를 재배해서 와인을 만들었다기보다는 우연히 발효된 포도가 와인이 되었으리라는 추측이 더 설득력이 있다.

[생명의 상징인 와인과 디오니소스]
서구 사회에 와인을 가져다준 신은 주신酒神 디오니소스이다. 제우스 신과 인간인 세멜레 사이에서 태어난 디오니소스는 태생적으로 신과 인간의 양면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그는 와인을 통해 하늘과 땅, 신과 인간 사이를 이어주는 운명으로 살게 되었고, 그래서 그에게는 선량함과 잔임함이라는 이중성이 공존한다.
그러나 와인을 가져다 준 디오니소스는 그리스에서 가장 인기가 높은 신이었다. 그리스의 모든 식민지에서는 포도 재배가 가능했다. 그들은 어딜 가나 주신을 잊지 않았고, 와인을 마실 때마다 디오니소스에 대한 경배를 잊지 않았다. 디오니소스는 인류에게 쾌락이라는 기쁨을 전해 주었다. 와인 말고도 꿀을 선물해 주었으며, 포도 재배 방법을 가르쳐 주었다. 그의 주변에는 언제나 반인반수의 목신 사티로스들이 있었으며, 광적으로 숭배하는 여성들이 따라다녔다.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도 와인과 관련된 신화들이 있지만 그 모든 것들은 그리스 와인에 비교하면 예고편에 불과했다. 와인은 그리스에 와서 국민 음료가 되었으며, 삶과 죽음의 상징이 되었다. 디오니소스는 이 모든 것들을 통괄하며 인간들 옆에서 친숙한 존재가 되었다.
그가 어렸을 때, 티탄족들은 그가 좋아하던 거울과 회향풀을 이용해서 그를 꼬여 냈다. 그리고는 칼로 디오니소스의 몸을 일곱 조각으로 찢었다. 티탄들은 살 조각을 커다란 솥에 집어넣고 끓여 버렸다. 그때 물에 끓이지 않은 것은 심장뿐이었고, 여전히 살아서 뛰던 심장을 아테나 여신이 구해 내서 새로운 디오니소스를 탄생시켰다. 이는 와인과 부활에 관련된 영원한 메시지이다. 베어지고 헐벗은 채 남아 있는 겨울 포도밭 풍경은 이 비극적인 신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모든 게 잘려 나간 채 황량한 풍경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봄이 되면 디오니소스는 다시 살아나 생명을 이어 간다. 디오니소스, 오시리스, 예수는 이렇게 동일한 이미지를 갖고 있다. 희생과 부활, 죽음과 새 생명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이후 그리스 로마 시대를 거쳐 중세 시대까지, 와인의 거대하고 화려한 역사가 펼쳐진다. 저자는 폭넓은 인문 지식을 바탕으로, 와인을 통해 중세, 로마, 그리스로 거슬러 올라가는 와인 여행에 독자들을 초대한다.
처음으로 와인을 마신 이는 누구인가
디오니소스, 그리스에 포도나무를 심다
용맹한 그리스, 세계로 와인 지평을 넓히다
로마로 통하는 모든 길, 와인에 길들여지다
"이것은 내 살이요, 내 피다." - 예수의 와인 혁명
게르만, 와인에 취하다
사를마뉴 대제와 수도원의 전통
왕과 귀족, 그리고 교황들의 와인
와인, 그 다양한 이미지들
아테나 여신은 오디세우스의 아들 텔레마코스 앞에 나타나 여행 채비를 하라며 이렇게 말한다. “와인은 항아리에 담고, 남자들의 활력에 핵심이 되는 보릿가루는 튼튼한 가죽부대에 담으시게.” 포도와 올리브는 넉넉했으나 기후가 나빠서 빵은 원활하게 공급되지 않았다. 곡물은 주요 수입품이었으며, 원활한 공급을 위해 시칠리아와 북아프리카 일대로 식민지를 확대해 나갔다. 식민지에는 포도나무를 경작했으며, 품질이 좋은 그리스 본토의 와인들은 토기에 담겨 수출되었다. 같은 시기 이탈리아 반도에 거주하고 있던 에트루리아인들의 묘지에서는 당시 그리스의 토기가 발견되기도 했다. 진흙이 풍부해서 많은 도공들이 아름다운 도자기들을 구워 냈다. 붉은색이 아름다운 아테네산産 도자기는 인기를 끌었다. 아테네의 경제적 번영은 이러한 시대적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선원들은 와인과 올리브오일을 담은 도자기를 싣고 지중해 전역으로 배를 몰고 나갔던 것이다. _pp.18~19

노아에서부터 와인의 역사는 끈끈하게 이어진다. 창세기에 등장하는 멜기세덱은 아브라함이 승리를 거두고 돌아올 때 사웨 골짜기에 나와서 영접한다. 그는 아브라함을 축복하면서 복을 받기를 하늘에 기원한다. 지극히 높은 제사장이었던 멜기세덱이 준비한 것 역시 빵과 와인이었다.
이런 상징성을 지닌 와인은 모든 이들에게 이로운 것이었다. 와인이란 예수가 십자가에 짓눌려 마치 압착기에 눌린 포도송이처럼 피를 쏟아낸 것이다. 와인을 모든 병자들을 치유하는 약으로 사용한 것은 상징적이면서 현실적인 것이었다. 와인은 믿음과 영양을 동시에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교회는 포도 재배와 와인 생산에서 확고한 후원자가 되었다. _p.49

『프랑크사』를 쓴 투르의 그레고리우스는 와인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았다. 그는 부르고뉴 와인을 즐겨 시음했다. 그레고리우스는 당시 최고로 평가받던 그리스나 팔레스타인 와인에 비해 부르고뉴산 와인이 떨어질 게 없다는 평가를 내렸다. 13세기까지는 화이트 와인이 인기가 높았다. 그러면서 서서히 도수가 높은 와인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이후에는 보르도와 부르고뉴 와인들이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수상록』의 저자이자 부르봉 왕조의 시조 앙리 4세를 위해 일하기도 했던 몽테뉴는 보르도의 와인 상인 집안 출신이었다. 경제적으로 넉넉했던 몽테뉴는 고급 호텔에 묵으면서 이탈리아 여행을 즐겼다. 이때 남긴 기록들은 여행기로 간행되었다. 몽테뉴는 자신에게 제공된 와인에 대한 불만을 솔직하게 털어놓기도 했다. 출신이 출신이니만큼 식사 때 나온 와인의 품질에 민감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몽테뉴는 나중에 보르도 시장을 역임하면서 고향의 와인 산업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기도 했다. _p.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