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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라 다카시 평민 재상의 빛과 그림자 (살림지식총서 585)
김영숙 지음 | 2019년 8월 30일
브랜드 : 살림지식총서
쪽수 : 132 쪽
가격 : 6,800
책크기 : 120*190
ISBN : 978-89-522-4076-7-040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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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도자료 : 585.hwp
일본 정당정치의 상징이자
식민지 통치의 설계자 하라 다카시,
한국의 시선에서 그를 분석한다
식민지 관제의 설계자, 3·1 운동 당시 일본 수상으로 돌아오다
명실상부한 정당내각과 보통선거 시기상조론의 모순
식민지 무관총독제 폐지와 ‘내지연장주의’의 본질

외무성 통상국장으로서 1892년 조선 출장, 청일전쟁 후 외무차관으로서 조선총독부 관제의 기본 틀이 되는 타이완총독부 관제 제정에 참여, 1896년 조선공사 역임 등, 하라 다카시만큼 식민지 이전의 한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어온 사람도 드물 것이다.
이토 히로부미, 사이온지 긴모치를 이어 입헌정우회 제3대 총재를 역임하면서 일본 정당정치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인물이다. 그러나 그 비중에 비해 한국에는 널리 소개되지 못하였다.
식민지 총독무관제와 헌병경찰 철폐, ‘내지연장주의’에 의한 동화정책 강화, 한국의 관점에서 하라 다카시의 식민지 통치정책을 살펴본다.
머리말·‘정당정치의 상징’ 일본 근대사의 중심인물

제1장 하라 다카시와 그의 시대

제2장 제1차 외무성시대와 농상무성 시대

제3장 제2차 외무성시대와 한국

제4장 입헌정우회 창당과 정치인 하라의 탄생

제5장 하라 다카시 내각과 3·1 운동

맺음말·정치 인식의 한계, 그리고 완전한 동화를 지향하는 식민지 통치
하라가 ‘평민재상’이라는 애칭으로 불리게 된 것은 역설적이게도 진짜 평민 출신이 아닌데도 ‘평민’으로 신분을 낮추고, 평생 작위를 거부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집안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였고 언제 어디서나 품위 있게 행동한 귀공자였다._14쪽

이토는 네 번이나 총리대신을 역임한 인물이며, 초대 한국 통감으로 한국인 대부분이 아는 인물이다. 그는 갑신정변 결과 체결할 조약 교섭을 위하여 중국에 건너갔을 때 톈진영사 하라의 업무 처리 능력을 높이 평가하여 하라가 이후 외교관으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주었다. 하라가 이토가 결성하는 정당 정우회 창당 과정에 참여하게 된 것은 이 톈진에서의 인연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하라 다카시를 정당정치가로 만들어준 기반은 사이온지 긴모치(西園寺公望, 1849~1940)라고 할 수 있다._19쪽

더욱이 하라가 외무차관으로 재임했던 1895년 5월~1896년 6월에 조선에서는 명성황후 시해사건과 고종의 아관파천이 있었으며, 일본으로서는 처음으로 차지한 해외 식민지 타이완에 대한 지배를 시작한 중요한 시기였다._44쪽

가쓰라·사이온지·하라·야마모토 등에게는 국가의 경제력을 중심으로 한 ‘러일전후’의 국가적 과제에 대한 공통의 이해가 있었으며,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서 ‘정의투합’적 거국일치가 필요하다는 공통인식이 있었다. 이는 동시에 원로정치의 배제를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정의투합 선언’을 통하여 가쓰라 내각과 정우회의 결합은 밀약이 아니라 공공연한 선언이 되었던 것이다._60~61쪽

1918년 9월 27일, 마침내 하라 내각이 탄생하였을 때 하라의 나이는 만 62세였다. 이미 머리가 하얗게 변한 ‘백두(白頭) 수상’이었으나 자신의 오랜 정치신념과 정책을 실현하려는 기력은 충만하였다. 하라 이전에도 정당내각들이 있었지만, 하라 내각이야말로 육·해군과 외무의 세 대신을 제외한 나머지 각료를 모두 정우회 당원들로 임명한 명실상부한 정당내각이었다._89쪽

하라 내각 시기는 개각 후 얼마 되지 않아서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파리강화회의가 개최되었으며, 이어서 국제연맹의 탄생, 워싱턴회의 개최 등 국제사회와의 협조가 필요한 시기였다. 한국과 관련해서는, 3·1 운동과 식민지 관제 개정, 대학령 개정을 통한 제국대학 설립 준비 등을 들 수 있다._90쪽

하라 다카시는 일본의 정당정치의 상징과 같은 존재다. 그는 정우회 창당부터 참여하여 게이엔시대를 거쳐 정우회를 기반으로 하는 명실상부한 정당내각을 구성했던 인물이다. 뿐만 아니라 식민지와 만주에까지 정당 세력을 확대하려고 노력하였다._106쪽

이러한 ‘내지연장주의’야말로 ‘일본이 주도하는 식민지의 완전한 동화’를 목표로 하였다는 점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이는 3·1 운동에 대한 일본정부의 신속하고 강경한 진압방침에서도 드러난다. 식민지 민중의 아래로부터의 저항을 철저하게 진압하면서 완전한 동화를 이루고자 한 것이 하라의 식민지 지배정책의 본질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_115~11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