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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혁명
김형효 지음 | 2007년 6월 27일
브랜드 : 살림인문
쪽수 : 440 쪽
가격 : 15,000 원
책크기 : 신국판 변형
ISBN : 978-89-522-065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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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세상을 만나다”



‘철학의 쓸모는 어디에 있는가?’ 이 질문에 발끈할 순수한 철학자(인문학자)들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철학을 포함한 인문학은 언제나 실용적이었고 “그 자체로서가 아니라 오직 ‘쓰임’으로서만 의미를 갖는다.”(한형조) 단, 이 ‘쓰임’이 어떤 쓰임인지는 좀 더 숙고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철학은 어떠해야 하는가? “체계성과 일관성이 철학의 주요 변수는 아니다.”(한형조) 누군가의 철학을 얼마나 잘 이해했는가를 따지는 것은 철학적 성취의 지표가 될 수 없다. 그보다는 역사성, 즉 자신이 몸담고 있는 시대와 얼마나 잘 ‘소통’했는가 그리고 그 소통을 바탕으로 얼마나 적실하고 유효한 말을 했는가가 철학의 핵심이다.
『마음혁명』은 동서고금을 넘나들며 사유의 경계를 허물고 있는 철학자 김형효가 일반인을 위해 처음으로 쓴 철학 에세이다. 서양의 해체철학과 동양의 불교, 노자, 양명학을 결합해 ‘자기의 철학’을 한 저자가 30여 년에 걸친 사유의 여정을 대중들과 함께하고 싶어 하는 욕망의 표출이다.
다른 이의 말을 인용하되 철저하게 자기의 몸을 통과한 해석을 하고, 자기의 삶에 뿌리를 둔 사유를 펼치되 독단에 빠지지 않으려 애쓰며 펼쳐나가는 52개의 주제는, 그 하나하나가 우리시대에 대한 깊은 성찰의 결과물이다. 선과 악, 자유와 평등, 이기주의와 도덕주의 등의 대립이나 분열과 통합의 문제와 같이 우리시대가 맞닥뜨린 과제에 대해 저자가 제시하는 해법은 마음혁명. 세상은 소유적 욕망이 그려낸 사이버스페이스이므로 “세상을 혁명하려 하지 말고, 마음을 혁명해야 한다.”는 저자의 진단은, 무엇이 더 근본적인 것인가에 대한 고민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머리말

존재론적 혁명
이기주의와 도덕주의를 넘어서
선과 악을 넘어서
흑백 사고를 넘어서
삶과 죽음을 동시에 생각하기
본성을 꽃피우는 전도
‘생각하는 사람’과 ‘미륵반가사유상’
선악 대결에서 무선무악으로
가치와 사실
긍정적 사고
지식과 지혜 그리고 마음
이성을 넘어서
진리의 보편성과 특수성
원효의 화쟁 사상
소유에서 존재로
마음과 무의식의 중요성
‘나’의 말과 ‘그것’의 말
무無
열광 의식과 대중 시대의 위험성
한국 철학과 그 교육의 필요성
자유에 대한 명상
평등에 관한 명상
마음과 의식의 차이
몸의 느낌과 구체적 사유
공자의 도
일체유심조
택일적 사고와 이중적 사고
세상사는 환영
진리와 비진리
일심과 일즉일체
은유법과 환유법의 철학
같다는 것과 다르다는 것
인격적 정신주의의 문제점
자연적 사실주의의 인식
님이란 무엇인가
기술과 기능의 양면성
희망이라는 것
자본주의와 소비사회의 비판에 대하여
마음의 혁명
명분주의와 속물주의를 넘어서
운명과 자유
공空
업業
신실사구시
모든 것이 환상이라는 것
지성에서 본성으로
성욕과 에로티시즘
공간과 시간
인간이란 무엇인가
철학이란 무엇인가
정치란 무엇인가
병리의 자각이 곧 생리
■ 선과 악(이기주의와 도덕주의 비판)
선(善)과 악(惡)을 말할 때 우리는 습관적으로 ‘순수한 선’과 ‘순수한 악’을 떠올린다. 선에 악이 섞인다는 것 혹은 악에 선이 섞인다는 건 상상하지 않는다. 그리고 대개 선을 선호해, 선과 악이 맞설 때는 선이 승리하기를 바란다. 선이 승리하면 정의(正義)가 구현되었다 하고, 악이 승리하면 불의(不義)가 구현되었다 하는 건 이런 마음의 표현이다.
적(敵)과 나의 대결구도가 형성되었을 때, 그것을 선과 악의 대결로 설정하고 자신을 선으로 구별하는 것은 위와 같은 습관 때문이다. 중간에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이 선임을 설득하는 데 성공하기만 하면 대대적인 지원이 뒤따르기 마련인데, 그렇게 되면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더더욱) 승리할 공산이 커진다. 그래서 가끔은 도덕이나 공공의 이름이 이용되기도 한다. 악은 비도덕 혹은 이기심의 발로인 경우가 많으므로, 자기를 도덕이나 공공의 편에 세우면 자동적으로 자신이 선한 존재가 될 수 있다. 대중의 지지가 따르는 것은 정해진 순서다.
그렇다면 도덕적인 체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도덕적인 경우라면 괜찮을까? 저자는 그도 아니라고 한다. “이기심이 비록 자기중심적 의식의 소산이긴 하지만, 그 뿌리는 본능적인 무의식의 생존욕과 맞닿아 있기 때문에 도덕의식의 주장만으로는 없애기 힘들다. 그래서 이상적 도덕주의는 사회생활에서 늘 명분을 주장하는 의식의 영역만 점령하여 공허한 이름만 외쳤다. 이것이 선전 도구의 이념이다.”(30쪽) 순수한 도덕주의는 순수한 악만큼이나 위험하다. 그것은 현실에서 소용이 적을뿐더러, 자칫 순수를 내건 폭력을 부를 수 있다. 십자군 전쟁이 그랬고, 스탈린의 독재가 그랬으며, 홍위병의 폭력이 그러했다.
“공자가 말한 바와 같이 악은 운명적으로 선이라는 가치의 이면에 깃들어 있는 선의 배설물과 같다. (중략) 악은 선으로 청소될 수도 없고 사라지지도 않는다. 내가 악을 미워하여 완전히 뿌리 뽑겠다고 결심하는 순간, 나의 결심은 이미 악을 동반하게 된다. 악을 미워하여 그와 대결하겠다는 그 선행의 마음에 이미 독선이란 악이 소리 없이 스며들어 있다.”(36쪽)





■ 몰입의 철학
그렇다면 선과 악은 같은 것인가? 아니다. 선과 악은 분명 다르다. 하지만 둘은 동거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선을 행할 때 악을 행할 수밖에 없는 딜레마에 빠지는 것이다. 분석은 끝났다. 남은 건 행동이다.
저자는 이 대목에서 본능과 본성의 차이에 주목한다. “인간은 본능과 본성이 일치하지 않는다. 인간의 본성도 본능처럼 선악을 구분하기 이전의 자연적 상태라는 점에서는 공통적이다. 그러나 인간의 본성은 본능의 생존술을 잊어버려, 오로지 자기가 하고 싶은 어떤 일에 심취했을 때만 나타난다. 손재주가 좋은 이가 무엇을 만들 때나 생태계 사진작가가 사진을 찍을 때는, 자기의 이기적 이익을 의식하지 않고 오로지 그 일에만 매진한다. 그 순간 그는 선악도 손익도 계산하지 않는다. 본성의 기호에 따라 그냥 좋아서 무심으로 일할 뿐이다.”(27쪽)
물질적인 생존력에만 관심을 쏟는 본능과 달리 본성은 정신적이다. “본능은 생존을 위한 소유욕이지만, 본성은 자기의 특성을 그냥 꽃피우고 성취하고픈 욕망이다. 우리는 이런 욕망을 존재론적 욕망이라 부른다.”(30-31쪽) 이 존재론적 욕망의 실현을 위해 우리가 무언가에 빠져 있을 때 우리는 고요한 몰입의 상태에 이른다. 무언가에 몰입한 이들의 모습을 떠올려 보자. 새벽의 정적처럼 고요한 상태가 연상될 것이다.
그때의 마음은 선악을 넘어서 있다. 『대학』에서는 이런 마음 상태를 ‘지선(至善)’이라 읊었다. “지선은 절대적 선이라는 뜻이다. 불선의 악을 스스로 분비하는 의지적 선이 아니라, 선악을 넘어서 인간의 본성이 무선무악의 무심에서 자연스럽게 깨어난 그런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다. 이런 상태를 불교에서는 불성(佛性)이라 하고, 기독교에서는 신성(神性)이라 부른다.”(39쪽)
그러나 본성도 무엇인가를 이루려는 욕망인 만큼 본성에 몰입했을 때는 그 원하는 바를 이루는 데 이로운 것을 취한다. “인간은 자연적으로 이익을 좋아한다. 그러므로 이익은 선악을 구분하기 이전의 것이다. 그런데 인간이 바깥에 있는 이익을 남들과 싸워서 취득하여 소유하려는 본능은 불선인의 배타적인 방향으로 흐르지만, 내가 내 속에서 내가 좋아하는 마음의 기호를”(37쪽) 꽃피우려 하는 본성은 이타적 행위로 흐른다. 존재론적 욕망을 이루려는 본성의 발현물은 잘 갈고 닦인 것이어서 뛰어난 경지에 이르는 경우가 많은데, 행위 주체는 그 발현물에 소유적 욕망을 품지 않는다. 그 결과 그 열매는 모두의 것이 된다. 따라서 “고요해지만 우리는 모두 쓸모 있는 존재가 된다.”(32쪽)





■ 자유와 평등
우리가 흔희 상대방에게 내뱉는 말 중에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왜 나를 억압해?’ ‘동등한 인간으로 대우해 주세요.’ 전자는 발화자가 자신의 자유가 침해당하고 있다고 느낄 때 쓰는 말이고, 후자는 평등이 침해당하고 있다고 느낄 때 쓰는 말이다. 발화자는 어떤 자유 또는 평등을 침해당한 것일까? 구체적인 상황이야 제각각이겠지만, 이 두 발언 모두 정해진 어떤 외부의 것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 하나로 묶인다.
우리는 암묵적으로 자유와 평등이 무엇인지 동의하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동의한 자유와 평등을 얻기 위해 애쓴다. 이것은 우리가 비판해 마지않았던 서구의 단선적 발전 모델과 별반 다르지 않다. ‘목표는 하나, 모두 그걸 향해 달려라!’ ‘네가 누리고 있는 자유와 평등의 세부 목록을 내게도 달라. 나도 그것들을 똑같이 누리고 싶다.’ 이런 구도에서 경쟁과 대립은 피할 수 없는 숙명과 같다.
여기서 의문 하나가 고개를 쳐든다. ‘사람이 제각기 다양할 텐데 그 욕망의 세부 목록까지 똑같을까?’ 그럴 리가 없다. 생존과 관련된 기본 욕망은 같을 수 있겠으나(이도 종종 예외가 있다) 그 밖의 것이 동일할 수는 없다.
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은 자유와 관련해 다음과 같이 암시했다. “자유주의 사회에서는 인간이 점점 자기 자신의 포로가 되고, 자기 이익과 자기 감정과 자기 편견이란 굴레에 갇혀 살게 된다. 그래서 자기 중심적 관점에서만 세상을 바라보려는 습기의 짐을 벗어버리려는 존재론적 자유의 요구가 생긴다. 곧 존재론적 요구는 단적으로 마음이 자기의식으로 무장되지 않고 자의식에서 해방된 자유의 존재이기를 바라는 요구를 말한다.”(182쪽) 불교에서는 이를 위해 “참도 구하려 하지 말고, 오직 망령된 견해만 쉬라고 가르친다.”(184쪽) “세상에 대한 선/악과 호/오에 따라 감정적으로 택일하는 한, 인간은 자의식을 버릴 수 없”(184쪽)기 때문이다. “자유는 우리가 소유하는 속성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자유가 되어야 하는 자기 제어”(185쪽)이다.
평등과 관련해서도 가브리엘 마르셀은 중요한 지적을 한다. “대등적 평등주의 가치관에는 ‘나는 너와 같다’는 의식이 강렬하게 깃들어 있다. ‘너는 나의 형제다’라는 형제애를 나타내는 말과 달리 ‘나는 너와 같다’라는 대등 의식은, 불평등한 소유에 참을 수 없는 질투와 시샘을 느끼는 심리를 품고 있다.”(189쪽) 불평등을 부정하는 대등 의식이 강렬할 때 사회는 “대등 심리로 분열”된다. 이를 막기 위해 순자처럼 사회 기능을 분화하더라도 문제가 생긴다. “차별의 불평등”이 양산될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이는 모두 평등을 소유적 개념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이다. 불평등의 부정을 똑같이 갖는 것으로 바라보는 시각의 한계다. 평등주의는 소유론적 평등으로 미끄러질 수 있기 때문에, 우리는 평등이 아닌 ‘불평등의 부정’에 주목해야 한다. “불평등 부정의 정신은 대등한 평등주의 이념과 다르다. 불평등 부정의 정신은 억울함이 발생하지 않게 하는 자비의 정신이지, 결코 당돌하게 대등한 소유 의식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존재론적 평등은 인간의 사회생활을 자연의 만물이 지니는 존재 양식인 ‘상관적 차이(pertinent difference)’로 바라보는 사고방식을 통해서 이룰 수 있다. 상관적 차이는 자연의 만물이 서로 다르기에 상관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는 필연성을 말한다. 자연의 만물은 자기동일성을 지닌 독립적 존재가 아니라, 타자와 관계를 맺어 자기 존재를 발생시키는 의타기적(依他起的: 다른 것에 의존해서 생기는)인 존재일 뿐이다.”(191-192쪽) 타자가 없다면 자기의 존재도 실존하지 못한다. “자본가와 노동자와 소비자는 모두 기업의 존재를 평등하게 유지시키는 의타기적 존재 양식을 띤다. 이 셋의 관계에서 한쪽이 없으면 다른 쪽도 존재하지 않는다. (중략) 평등은 인간의 자존심 대결을 정당화시키는 대등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서로 다르기에 의존하며 살 수밖에 없는 자연적 존재 방식을 말한다.”(192-193쪽)





■ 왜 ‘마음혁명’인가?
혁명은 행복을 쟁취하기 위한 투쟁이다. 누군가 ‘진보의 패러독스’를 언급했다. 눈에 보이는 세상은 분명 나아졌는데 왜 우리는 전보다 더 불행해졌느냐는 말이다. 경쟁은 기업 단위, 국가 단위를 넘어 개개인을 압박한다. 개인은 점점 더 시간 부족에 시달리고, 시간이 있더라도 그 시간을 의미 있게 쓸 마음의 여유가 없다. 오로지 일에만 내몰리다 보니 소중한 것을 잊고 살기 일쑤다.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는 게 문제다.
이런 언사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인류의 처절한 노력을 폄하하는 건 아니다. 부조리한 사회구조를 개혁하기 위해 계속된 지난 몇 세기 동안 지속된 노력으로 사회가 개선되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위의 비판은 그 노력의 일방향성을 돌아보자는 제안이다. 그 일방향 속에서 주와 종이 전도되었을지도 모르는, 아니 전도되었다는 사실을 직시하자는 제안이다.
이미 다들 느끼고 있다. 이전에서는 필요하지 않던 능력들까지 기를 것을 종용하는 사회 시스템, 욕망의 평준화로 야기된 (동일한 욕망 대상을 두고 벌이는) 더욱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사람들은 무언가 바꾸고 싶은 욕망을 느끼며 산다. 김형효에 따르면 그 욕망의 대상은 바깥 세계가 아니다. 혁명해야 할 것은 자기 마음이다. 왜 마음을 혁명해야 하는가? 세상이 바로 “인간의 무의식이 그리고 있는 사이버 화면”(30쪽)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