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세종 8년(1426년) 3월4일, 한 장의 탄핵 상소문이 평온하던 조정을 뒤흔들었다. 병조판서 조말생이 김도련이란 사람으로부터 노비 수십명을 불법으로 증여받았다는 내용이었다. 요즘말로 하자면 현직 국방부장관이 추잡한 뇌물 스캔들에 연루된 것. 사형에 처하라는 빗발치는 상소. 정작 세종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했다. 사헌부와 사간원이 한목소리로 '말생을 죽이라' 청했지만 세종은 결국 귀양보내는 것으로 사건을 마무리했다.

"경들이 법에 의거하여 아뢰니 내가 어찌 감히 그르다고 하겠는가. 그러나 말생은 선왕 때부터 삼가 그 직책을 수행한 지가 20여 년이 되었으니 어찌 공로가 없다고 하겠는가. 경들이 말한 바를 따를 수 없다."(62쪽)

"조말생은 2년 뒤 전격적으로 사면을 받아 귀양에서 풀려납니다. 뿐만 아니라 함길도 관찰사로 임명되지요. 법치주의자였던 세종이 왜 이토록 관대한 처분을 내렸을까요? 그것도 숱한 신료들의 반대를 무릅쓰고서 말이죠. 제 고민은 여기서 시작했습니다."

'세종, 부패사건에 휘말리다'(살림)는 현직 검사가 썼다. 대구지방검찰청 포항지청에 근무하는 서정민(34·사진) 검사는 "뇌물사건을 재구성하면서 실리적 법치주의자로서 세종의 진면모를 확인할 수 있었다"고 했다.

"조말생은 여진족 정벌과 명나라 외교문제에 관한한 탁월한 수완을 발휘했던 외교관이자 무관이었습니다. 세종이 그를 중용해 함길도로 보냈던 것은 그의 이런 자질 때문이었어요. 명나라 사신의 수탈과 여진족과의 전투로 피폐해진 국경일대의 민심을 추스를 사람이 필요했지요. 국가의 최고 통치권자이자 인사권자인 세종에게 있어서 조말생은 법치주의 관철을 위해 죽이고 배척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적절히 벌을 주고 다시 그 능력을 재활용해야 하는 인물이었습니다."

서 검사는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2002년 육군법무관으로 법조인의 길에 들어섰다. 바쁜 일상 중에도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아 지금은 모교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전공은 '한국 법제사'.

"우리나라가 서양식 형사사법제도에 익숙하다보니 조선시대의 법체계를 '원님재판'이니 '고문재판'이니 하면서 폄하하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실제로 사극을 보면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고문과 형벌을 가하고 수령이 독단적으로 재판해 처결하는 것으로 나타나죠. 그러나 실제로는 형사법전인 '대명률'과 '경국대전'을 기준으로 처벌절차를 엄격히 규정하고 있었습니다."

문득 궁금했다. 서 검사가 조말생 뇌물 사건을 맡았다면 어떻게 처리했을지.

"당연히 사형을 구형했을 겁니다. 저는 통치권자가 아닙니다. 법을 집행하고 공익을 수호하는 검사는 응당 법률에 근거해 엄정히 처리해야지요."

김민호 기자

세종 8년(1426년) 3월 조정에 한 장의 탄핵 상소가 날아들었다. 권력의 핵심인사인 조말생이 뇌물을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조말생은 태종의 최측근이었으며 세종 때에 와서도 병조판서를 지내고 있는 인물이었다.

수사 결과 조말생은 780관의 뇌물을 받고, 수차례 매관매직을 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관가에 바치는 은그릇을 횡령한 혐의도 추가로 드러났다.

사헌부는 조말생에게 교수형을 구형한다. 관리가 받은 뇌물이 총 80관을 넘기면 사형에 처한다는 법률에 의거한 것이었다. 그러나 세종은 어찌된 일인지 여기에 동의하지 않았다. 다시 사간원까지 합세해 세종에게 사형을 내릴 것을 주청하지만 세종은 꿈쩍도 하지 않는다.

`그대들은 법에 의해 말하지만 내 뜻은 이미 정해졌다"는 게 세종 주장이었다.

결국 조말생은 목숨을 구하고 황해도 평산으로 귀양을 간다. 그러나 귀양도 잠시. 불과 2년 만에 조말생은 다시 관가에 복귀한다. 몇몇 대신들이 사직원을 내면서까지 반대했지만 세종은 굴하지 않았다. 그것도 모자라 세종은 조말생을 함길도 관찰사로 임명한다. 법을 무시한 패도정치를 하겠다는 선언이나 마찬가지였다.

현직 검사인 서정민 씨가 쓴 `세종, 부패사건에 휘말리다(살림 펴냄)`는 이 사건의 전모를 아주 예리하고 치밀하게 추적 분석한다.

세종이 조말생을 함길도로 보낸 것은 이유가 있었다. 함길도는 골치 아픈 변방이었다. 여진족의 잦은 침입과 명나라의 공출로 백성들의 삶은 피폐했다. 그렇다고 국력이 약한 조선이 강경책만을 쓸 수는 없었다. 세종은 이 문제를 해결할 적임자로 강직한 젊은 신하보다는 청렴하지는 않지만 노련한 외교술로 정평이 난 조말생이 적격자라고 생각했다. 의도대로 조말생은 동북지역을 안정시켰다.

여기까지만 보면 세종은 국법을 어기고 실리만을 선택한 군주라는 느낌이 강하다. 그러나 2라운드는 달랐다.

공을 세운 조말생은 자신의 아들이 탐관오리의 자식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자 예전 사건을 다시 꺼내 무죄 주장을 펼친다. 그러나 세종은 그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았다.

세종은 실리주의자였다. 유연성을 발휘해 실리는 취했지만 법을 끝까지 무시하지는 않은 것이다. 물론 이 문제에 대한 평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어쨌든 우리에게 많은 걸 생각하게 해주는 사건임에는 틀림이 없다.  

 

허연 기자

“최고의 성군인 세종이 부패 관리를 중용하기 위해 수사기관의 사형 요구를 물리친 이야기예요. 믿기 어려운 일이죠. 법조인 신분에서 당연히 분개할 일입니다. 하지만 세종은 법을 집행하는 사람이 아니라 국가 경영을 책임지는 통치권자였어요. 그 점이 중요합니다.”

서정민(32·사진) 검사의 전화 목소리는 무척 부드러웠다. 성격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대구지검 포항지청에서 공직, 기업 비리를 수사한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그는 “강압적으로 범죄를 자백받는 시대는 지났다”며 기분 좋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가 ‘세종, 부패사건에 휘말리다’(살림)라는 흥미로운 제목의 책을 냈다. 병조판서 조말생(1370∼1447)의 부패 문제를 둘러싸고 그를 사형에 처하자는 사헌부, 사간원과 그를 살려 중용하려는 세종의 논쟁을 치밀하게 재구성했다.

1426년(세종 8년) 조말생은 뇌물을 받은 부패 인물로 지목된다.

세종은 조말생을 귀양 보내고 엄정한 수사를 지시한다. 수사기관인 사헌부와 사간원은 부패의 핵심 조말생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그러나 세종은 이를 물리치고 귀양으로 마무리하라는 판결을 내린다. 사헌부 관리들이 판결 번복을 간청했지만 세종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5년 뒤 조말생은 함길도(지금의 함경도) 관찰사에 임명된다.

요즘 법 감정으로 보면 부패 관리를 감싸는 세종의 태도가 이해되지 않는다. 그런데 서 검사는 그런 세종의 선택이 옳았다고 말한다.

“제가 사헌부 관리였더라도 사형을 구형했을 겁니다. 하지만 세종은 법 집행자가 아니라 국가 경영자였습니다. 국가의 기틀이 아직 완전히 잡히지 않은 당시 적재적소에 쓸 수 있는 인재가 제한돼 있다는 점을 간파했어요.”

서 검사는 그렇다고 세종이 법치주의를 무시한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세종은 사헌부의 사형 요청은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유죄라는 수사 결과를 뒤집지는 않았어요.”

조말생이 사면받은 뒤 무죄를 주장하자 세종은 그걸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조말생의 아들이 관리로 진출하는 것까지 막으려는 대신들의 움직임에는 제동을 걸었다.

부패 문제가 정략적으로 악용되는 걸 막기 위한 조치였다는 것이 서 검사의 분석이다.

그는 현재 서울대 대학원 박사과정에서 한국법제사를 전공하고 있다. 책 쓰는 일이 힘들거나 본업에 방해가 되진 않았을까.

“거짓을 밝히고 진실을 추적하는 일을 하면서 과거엔 어떤 법적 장치가 이런 일에 대응했을지 궁금할 때가 많아요. 글을 쓰고 공부하면서 얻은 지혜가 검사 업무를 자극해 오히려 도움이 됩니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제목을 좀 더 정확히 표현할 필요가 있다. 세종 자신이 부패사건을 저질렀다는 뜻이 아니라 총애하던 근신(近臣) 조말생의 부패사건에 깊이 얽혀들어갔다는 뜻이다. 세종 8년(1426년) 3월 우의정 조연, 곡산부원군 연사종과 함께 병조판서로 있던 조말생이 사헌부의 탄핵을 받아 전격적으로 귀양을 떠나게 되면서 조정이 발칵 뒤집어진다. 세 사람 중에서도 특히 조말생이란 인물이 태종과 세종 두 임금에게 차지했던 비중이 워낙 컸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는 대구지검 포항지청에 근무하는 현직 검사다. 아마도 582년전에 일어났던 이 사건을 때로는 당시의 시각으로, 때로는 21세기 대한민국 검사의 시각으로 비교 조명하면서 세종의 '깊은 뜻'을 추적해보려 했던 것같다. 더불어 관리의 업무능력과 도덕성이 충돌할 때 지도자는 어떤 식으로 사람을 써야 하는가라는, 현재적인 문제의식도 책 전반을 지배하고 있다.

조말생은 자타가 공인하는 조선초 최고의 엘리트다. 태종1년(1401년) 문과에 장원급제해 고속승진을 거듭한 끝에 지신사(=도승지)에 이르렀다. 그리고 태종이 세종에게 양위한 때부터 8년 동안 병조판서를 맡아 병권을 관리했다. 문무를 겸비했던 인물이었던 것이다.

세종 8년 조말생이 유배를 가야했던 죄목은 장오죄(贓汚罪), 오늘날의 뇌물수수죄였다. 민간의 노비소송을 뒤에서 거들어주고 뇌물로 노비 24명을 받았다는 혐의였다. 우의정 조연은 15명, 곡산부원군 연사종은 10명의 노비를 받았다. 당시 형법인 '대명률'(大明律)에 따르면 수수한 뇌물이 80관에 이르면 교형(絞刑)에 처하도록 돼 있었다. 문제는 노비 24명과 전지를 포함할 경우 조말생이 받은 뇌물액은 780관이었다. 거의 10배였다.

사헌부에서는 유배지에 있는 조말생을 당장 불러들여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주청했고 세종은 한사코 반대했다. 대신 관리자격이라고 할 수 있는 직첩을 빼앗는 선에서 유배형으로 마무리지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세종은 2년 후인 세종 10년 윤4월에 조말생을 사면하여 유배를 풀어주었다. 2년후인 세종 12년 4월, 세종은 조말생의 직첩도 돌려줄 것을 명했다. 직첩을 돌려준다는 것은 관직으로 복귀할 수 있는 길을 터주었다는 뜻이다. 사헌부와 사간원에서 일제히 들고 일어났지만 세종은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이 대목에서 저자는 본질적인 질문을 던진다. '세종은 법치주의를 무시한 국왕인가?' 그것은 곧 세종에게 성군(聖君)의 자격이 있는가라는 물음과 연결된다. 그리고 저자는 해답을 던진다. 세종은 북방 오랑캐의 잦은 도발에 대한 응징을 구상하고 있었고 그것을 구현하는데 조말생만한 적임자를 찾을 수 없었다. 결국 2년후인 세종 14년 세종은 조말생에게 중추원 동지사를 제수한 다음 이듬해초 곧바로 함길도(함경도) 관찰사로 임명한다.

세종은 이미 국가 전체를 생각하고 있었다. 서북면(평안도) 접경 지역의 오랑캐를 공략하려면 함길도의 군사적 안정을 확보해야 한다. 서북면 접경 공략은 당대 명장 최윤덕이 맡았고 이 때의 작전은 대성공을 거둔다. 훗날 김종서가 육진개척에 나설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전체적으로 볼 때 조말생의 역할 또한 무시할 수 없었다. 그에 반대했던 신하들도 이 점을 인정한 듯, 무리한 탄핵시도는 더 이상 하지 않았다.

저자는 묻는다. 세종이 조말생을 둘러싼 도덕성 공방에 갇혔다면 과연 성공적인 여진족 정벌은 가능했을까? 명시적 표현은 없지만 저자는 불가능했을 것으로 보는 듯하다. 따라서 세종의 조말생 복권은 도덕정치 그 이상의 자주국방이라는 실리에서 볼 때 탁견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세종은 무신인 최윤덕은 정승으로 올리면서 조말생에게는 끝내 정승의 자리를 허락하지 않았다. 공을 인정하되 허물 또한 그냥 지나가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도덕성 문제가 정적타도의 수단으로 전락해 버린 시대에 세종의 지혜를 다시금 배워야 하는 것 아니냐고 젊은 검사는 묻고 있다. 

 

이한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