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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딜런 그의 나라에는 누가 사는가(살림지식총서 567) (살림지식총서 )
오민석 지음 | 2018년 5월 23일
브랜드 : 살림지식총서
쪽수 : 164 쪽
가격 : 4,800
책크기 : 120*190
ISBN : 978-89-522-3932-7-040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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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너머의 장르, 딜런의 세계
그 전설의 비밀을 밝히다
이 책은 2016년 노벨문학상을 받은 밥 딜런의 ‘음악’과 ‘시적 표현들’을 통해 ‘밥 딜런의 세계’ 를 분석한 사실상 국내 초유의 저서이다.
‘밥 딜런의 세계’는 훌륭한 예술이 갖추어야 할 덕목들을 두루 가지고 있다. 딜런의 세계 안에는 인류가 축적해온 무수한 철학적, 사상적, 예술적 유산들로 가득하다. 그는 이 거대한 창고를 뒤지고 뒤져 수많은 사유의 장비들을 끄집어내며, 그것들을 자신의 언어로 뜨개질한다. 심지어 동일한 노래조차도 그는 늘 다르게 부른다.
딜런은 한 인터뷰에서 “나는 나의 말이다(I am my words)”라고 고백했다. 그는 읽기를 기다리고 있는 텍스트이다. 이 책은 그 기다림에 대한 작은 응답이다.
머리말 장르 너머의 장르, 딜런의 세계 3

제1장 난 단지 피 흘리고 있을 뿐: 밥 딜런에게 지속되고 있는 것들 11
거리의 비평가 밥 딜런/ 주님, 가련한 제 목소리를 세상에 들리게 해 주소서
제2장 외로운 부랑자: 되기(becoming)의 예술적 주체 45
뉴욕에 온 부랑자/ 유목민 혹은 탈근대적 주체/ 시적 주체의 탄생/ 나는 거기에 없네
제3장 안녕 또 안녕: 생산자로서의 예술가 77
생산자로서의 예술가/ 전통과 개인적 재능/ 난 내일 이곳을 떠나요
제4장 연속된 꿈들: 사회적 상징 행위로서의 내러티브 105
이야기꾼의 노래/ 딜런의 나라에는 누가 사는가/ 우리 승리하리라

주 141
참고문헌 150
초현실주의적 몽타주(montage) 수법을 동원한 이런 식의 언어 배열은 그가 포크 가수일 때와 매우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포크의 언어가 상대적으로 단순하고 직접적이라면, 포크 이후 밥 딜런의 언어는 문학으로 치자면 모더니즘의 언어처럼 난해하고 파편적이고 복잡하다. 딜런은 세계의 복잡성, 파편성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다. 그는 복잡한 현실을 단순하게 재현하는 것이 현실에 대한 왜곡이며 사상적 나태임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는 복잡한 현실을 단순한 것으로 왜곡하는 대신에, 그것을 있는 그대로 복잡하게, 파편적으로 재현한다. 딜런의 이런 태도는 적어도 대중문화의 장르에서는 매우 희귀한 현상이다. 그는 이런 방식으로 대중문화에 숭고성(sublimity)을 부여한 예외적인 예술가이다. 그는 ‘거리의 비평가’이기를 거부한 것이 아니라, 여전히 거리에 있으며, 그 거리의 삶을 매우 비판적인 시각으로 읽어내고 있되, 다만 과거와 ‘다른’ 방식으로 읽어내고 있을 뿐이다

마을에 저녁 안개가 내리고
시냇가엔 별이 빛나네
프롤레타리아 계급의 구매력은 떨어지고
돈은 점점 바닥나고 약해지지
내가 가장 사랑하는 곳은 달콤한 기억
그것은 우리가 밟았던 새로운 길
사람들은 말하지 저임금은 현실이라고
우리가 해외에서 경쟁하려면
― 부분_20~21쪽

첫 앨범에는 이 노래 외에도 , , , , 같은 노래들이 실려 있는데, 제목에서도 드러나다시피 일관되게 국외자, 아웃사이더, 부랑자들의 ‘길 위의 삶’을 소재로 하고 있다. 첫 앨범에서의 이런 징후들은 그가 출발부터 정처 없는 ‘유목의 공간(nomadic space)’에 스스로를 밀어 넣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이런 점에서 그가 지금까지 내놓은 38개의 스튜디오 앨범들은 ‘반복’이 아니라 ‘차이’의 생산이었으며, 정주(定住)를 거부하는 유목의 예술가가 거쳐 온 수많은 고원(高原)들이다. 60년대 초반에 밥 딜런의 연인이었으며 그와 함께 저항의 상징이었던 존 바에즈(Joan Baez)가 팔순을 앞둔 지금까지도 포크의 전설로 일관되게 남아 있는 것과 매우 대조적이다. 한마디로, 존 바에즈가 ‘범생이’ 가수라면, 밥 딜런은 끝없는 ‘되기(becoming)’의 과정에 있는 ‘생성’의 예술가이다. 1941년생 동갑인 존 바에즈가 포크계의 모범적이고 건실한 교장 선생님이라면, 밥 딜런은 고통과 번민으로 일그러진, 예민하고도 신경질적인 예술가이다. _49~51쪽

그가 왜 포크에서 일렉트릭으로, 록으로, 포크 록으로, 블루스로, 기독교 복음주의의 전도사로, 끊임없는 “변신”을 행했는지 잘 보여준다.
딜런은 과거의 유산을 뒤적여 그것을 재배열함으로써 자신의 것을 만들어낸다. 딜런의 손을 거치면 낡아빠진 것들도 ‘독특한 배합(odd combination)’이 된다. 딜런은 새로움이 낡은 것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앞에서 인용한 브레히트의 말처럼 그 어떤 것도 무(無)에서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딜런은 이런 점에서 과거를 잘 발굴할 줄 아는 예술가이다. 그는 라디오를 통해 포크, 컨트리 웨스턴, 블루스, 재즈, 록, 컨트리, 리듬앤블루스(R&B), 가스펠 등으로 이루어진 미국 대중음악의 전통을 하나하나 마스터해갔다. 그에게 있어서 노래는 그의 “개인교사였고 현실에 대한 변화된 의식으로 인도하는 가이드였으며, 어떤 다른 공화국, 어떤 해방된 공화국이었다.” 라디오와 음악을 통해 그는 실물의 세계에서 벗어나 상상의 세계로 빠져들었다._86~88쪽

‘예술가’ 딜런의 과거를 만든 또 하나는 바로 ‘문학’이라는 거대한 창고였다. 딜런의 자서전 『연대기들 I, Chronicles I』은 상당 분량을 자신이 영향을 받은 작가들과 그들의 문학작품에 대한 언급에 할애하고 있으며, 2016년 딜런의 노벨문학상 수상 연설문은 (당연하겠지만) 월터 스콧(Walter Scott), 로빈슨 크루소(Robinson Crusoe), 존 던(John Donne), 멜빌(Herman Melville), 셰익스피어 등 작가들의 문학세계에 대한 언급으로 가득 차 있다. 특히 멜빌의 『모비-딕 Moby-Dick』, 에리히 레마르크(Erich M. Remarque)의 『서부 전선 이상 없다 All Quiet on the Western Front』, 호메로스(Homer)의 『오디세이 The Odyssey』에 대한 자세한 언급은 그 화려한 수사(rhetoric)도 수사지만, 분석의 깊이에 있어서 웬만한 문학연구자나 문학평론가의 수준을 훨씬 상회한다. 딜런은 이 무수한 사상과 언어의 창고에서 자신의 철학과 노래와 가사들을 끌어올린다. 그는 이 모든 과거의 언어들을 다시 뜨개질했으며, 그것들을 자기 시대, 자신의 언어로 변형시켰다. 개인적 재능이 오로지 전통과의 관계에서 발전하는 것이라는 엘리어트(T. S. Eliot)의 주장이 옳다면(엘리어트, 「전통과 개인적 재능 Tradition and the Individual Talent」), 이는 딜런의 경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딜런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이 아니라, 낡고 오래된 창고에서 새로운 사운드와 언어를 건져낸 예술가이다._90~91쪽

딜런은 세 번째 앨범 (1964)의 해설(liner notes) “11개의 개괄된 묘비명들(11 outlined epitaphs)”에서, “나는 생각들을 훔치는 자이다(I am a thief of thoughts)”라고 고백하고 있다. 이 때 그는 고작 스물세 살의 청년이었다. 앞에서 그의 데뷔작 를 설명하면서 지적했듯이 그는 이미 데뷔 초부터, 인유와 몽타주, 콜라주와 상호텍스트성의 귀재였다. 그는 ‘무(無 nothing)’의 무덤을 뒤지는 자가 아니라, ‘기존에 있는 것(something)’에서 ‘새로운 것(something new)’을 만들어내는 것이 예술의 운명이며 본질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렇게 보면 딜런은 그가 일찍이 밝혔듯이, 잘 “훔치는 자,” 잘 훔쳐서 그것을 더 나은 것, 무언가 다른 것으로 만드는 자이다. 문제는 그가 훔쳐낼 수 있는 원료의 창고가 워낙 광대하다는 것이다. 앞에서도 그 원저자들의 리스트를 열거했지만, 그 목록은 사실 그것보다 훨씬 더 길고 복잡하다. 그는 마치 지상의 모든 텍스트들을 다 읽고, 그것들을 자신의 프레임 안에서 녹이고, 재배열하고, 재조직하는 장인(匠人) 같다. 그는 같은 노래도 늘 다르게 부른다. 그는 자신의 현재를 과거로 만드는 기술자이고 생산자이다. 그는 오늘도 자신이 생산한 사운드와 언어에게 ‘까칠한’ 표정으로 말한다. “안녕 또 안녕(Bye and Bye).” 그는 다시 새로운 고원(高原)을 향해 간다._101~103쪽

딜런의 나라에는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딜런이 데뷔 초기부터 거대한 청사진을 그려놓고 이런 인물들을 조직적으로 배치했을 리는 만무하다. 그는 그저 하나하나 노래를 만들어갔을 뿐이며, 가사를 썼고, 그것들을 음반으로 완성했다. 그러나 이 축적된 과정은 딜런 자신도 모르게 그의 세계를 총괄적으로 보여주는 중요한 지도(map)가 되었다.
딜런의 음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혼란스러울 정도로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주지만, 그것들은 (의도적인 것은 물론 아니었지만) 사실 일정한 ‘구도(frame)’에 의해 선택되고 배치되어 있다. 딜런의 인물들을 크게 보아 다음의 네 집단으로 분류할 수 있다. 1)군: 지배계급과 그들의 지배를 돕는 인물들 그리고 2)군: 그들의 지배를 받고 있는 하위주체들(서발턴 subaltern)이 존재한다. 이들은 사회 안에서 직·간접적인 긴장과 대립의 관계에 있으며, 마주치는 공간에서 이들의 이해관계는 늘 충돌한다. 다음으로 3)군: 이 두 계급 사이의 갈등에 직접적으로 연루되어 있지 않으며 계급적 대립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롭고, 대체로 하위주체들의 편에 서 있는 인물들이 있다. 4)군: 이 모든 관계들로부터 일정 정도 초월해 있으나 궁극적으로 선(善)의 편에 서 있는 ‘종교적’ 인물들이 있다._121~12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