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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이야기 3
시오노 나나미 지음 | 이경덕 옮김 | 2018년 8월 3일
브랜드 : 살림
쪽수 : 544 쪽
가격 : 23,000
책크기 : 152*223
ISBN : 978-89-522-3944-0-04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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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융합의 세계제국을 향한 웅비

대왕 알렉산드로스, 그리스의 한계를 초월하다!
세계제국을 건설한 알렉산드로스의 '힘'은
배타적 민족주의를 뛰어넘는 혁신에 있었다.
『로마인 이야기』의 저자, 시오노 나나미 필생의 역작!
서양 문명의 원형, 세계화의 선구자
그리스를 둘러싼 거대 역사 스펙터클!

최고의 역사 저술가 시오노 나나미의 눈으로 본
그리스인의 역사, 마지막 세 번째 이야기

이 시대 가장 뛰어난 역사 저술가 가운데 한 사람인 시오노 나나미. 그가 서양 문명과 민주주의의 원류, 그리스와 그리스인의 역사 탐색이라는 새로운 도전에 나섰다. 모두 3권으로 출간하는 시리즈 『그리스인 이야기』에서 저자는 특유의 박진감 넘치는 문장으로 그리스인의 생각, 인생, 정치, 문화, 사회, 외교의 전모를 펼쳐낸다.
시리즈의 마지막 세 번째 책인 『그리스인 이야기 Ⅲ: 동서융합의 세계제국을 향한 웅비』는 펠로폰네소스전쟁 이후 도시국가 시대의 그리스가 몰락해가는 순간순간을 적나라하게 그려낸다. 한편 그리스 변방에서 새롭게 웅비한 마케도니아의 대왕 알렉산드로스가 그리스와 이집트를 제압하고 거대한 페르시아제국을 정복해나가는 과정을 생생하게 써내려간다.
그리스인이면서도 그리스의 인습, 즉 ‘배타적 민족주의’를 뛰어넘은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최초로 동서융합을 이룬 세계화의 선구자로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그가 단숨에 세계제국을 건설한 ‘힘’은 과연 어디서 나온 것일까? 시오노 나나미는 자신만의 독창적인 관점으로 위대한 영웅 알렉산드로스의 혁신적인 리더십과 인간적 면모를 면밀하게 파헤친다.

문명의 중심 그리스의 몰락 과정을
누구보다 상세하게 기록하다!

그리스의 양대 도시국가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펠로폰네소스전쟁으로 크게 한판 붙었다. 아테네는 전쟁의 패배로 크나큰 상실감에 빠졌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자신감에 차 있던 아테네는 전쟁의 패배와 함께 곤두박질쳤다. 시오노 나나미는 그리스 세계가 이제 ‘도시국가 시대의 종언’을 맞이했다고 표현한다. 사실상 ‘아테네의 몰락’은 ‘그리스 전체의 몰락’의 또 다른 말이다.
패배한 아테네가 민주정치에 대한 자신감을 잃고 망연자실해 있는 사이 과두정권이 들어섰다. 과두정치는 곧 공포정치로 변질되었다. 아테네는 경제력마저 상실했고 사회는 이내 큰 혼란에 빠졌다. 국내의 인재들은 해외로 빠르게 빠져나갔다. 뒤늦게 민주정치를 부활시켰지만 자신감까지 회복되지는 않았다. 저자는 주체성을 잃은 그리스인의 모습을 ‘소크라테스의 재판’ 사건에서 탁월하게 분석해낸다.
혹자는 그리스의 패권이 이제 승자 스파르타에게 넘어가지 않았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스파르타는 시오노 나나미의 표현대로 ‘괄호를 친’ 패권 국가, 즉 명목상의 패권 국가였다. 영향력 없는 패권이었다는 말이다. 주변에 큰 영향력을 미치지 못한다면 패권 국가라고 할 수 있을까? 이 점을 시오노 나나미가 콕 집어 지적한 것이다. 결국 패권 국가 스파르타는 그리스를 페르시아에 팔아넘기고 만다.
그리고 테베. 스파르타가 권력을 쥐고 있는 동안 테베도 조금씩 세력을 키워나갔다. 스파르타의 지배에서 벗어나려면 스파르타를 무너뜨려야 했다. 테베는 내부적으로 군사 개혁을 이루어 스파르타를 무너뜨리는 데 성공했다. 그리스의 패권은 이제 테베에게 넘어왔지만 마찬가지로 ‘괄호를 친’ 패권 국가였다. 그리스의 패권은 머지않아 변방의 신흥 세력 마케도니아에 넘어간다.
저자는 『그리스인 이야기』 제3권 제1부에서 많은 지면을 할애해 그리스의 몰락 과정을 설명했다. 제1권과 제2권에서 그리스의 발전 과정, 특히 민주정치의 태동과 발전, 그리고 한계를 중심으로 파란만장한 그리스인 이야기를 전개해나갔다. 이에 비해 펠로폰네소스전쟁 이후 그리스의 몰락 과정은 상대적으로 간단하게 서술하고 넘어갈 법도 하지만, 시오노 나나미는 예상과 다르게 마음먹고 펜대를 잡은 듯하다. 성공한 역사보다 실패한 역사 속에서 배울 점이 더 많다는 진실을 누구보다 공감하고 있는 듯 보인다.

카이사르, 마키아벨리보다 앞선 그녀의 남자,
시오노 나나미는 알렉산드로스를 어떻게 보았는가?

익히 알려진 대로 시오노 나나미는 카이사르, 마키아벨리, 체사레 보르자처럼 강한 남성상 또는 영웅상을 좋아한다. 이미 그녀는 이들에 관한 책을 출간했다. 이제 저자는 생애 최후의 역사 에세이가 될 것이라고 밝힌 『그리스인 이야기』시리즈 가운데, 마지막 제3권에서 알렉산드로스를 마지막 주인공으로 삼았다. 이 책에서 다루는 두 주제 ‘그리스의 몰락’과 ‘알렉산드로스의 등장’은 마치 저자가 의도라도 한 듯 묘한 대비를 이룬다. 제3권의 부제도 ‘새롭게 웅비하는 힘(新しき力)’이다.
『그리스인 이야기』 제3권의 제2부는 마케도니아 왕국이 그리스의 패권을 잡는 시기부터 시작한다. 그러니까 알렉산드로스의 아버지 필리포스 2세 이야기부터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이번 책에서도 시오노 나나미 특유의 인물 중심의 역사 서술 방식이 적용된다. 특히 알렉산드로스라는 전무후무한 영웅의 일대기를 마치 다큐멘터리를 찍듯이 따라간다. 당연히 알렉산드로스와 직접 인터뷰는 못했겠지만, 고대 역사가들과 현대 연구자들의 풍부한 자료를 토대로 당시의 정황과 배경을 면밀하게 추적하고, 저자의 독특한 역사적 상상력으로 알렉산드로스의 개인적인 심정까지 세밀하게 헤아린다.
그렇다면 시오노 나나미는 알렉산드로스의 어떤 면에 주목했을까? 우선 알렉산드로스의 어린 시절을 이야기하면서 타고난 성격과 기질을 파악했다. 어린 알렉산드로스가 『일리아스』를 읽고 영웅 아킬레우스를 동경한 대목에서 그의 성향을 엿볼 수 있다. 아버지와 ‘트러블’이 생겨 가출을 감행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유명한 ‘고르디우스의 매듭’ 사건 때도 매듭을 꼼꼼히 풀기보다 단칼에 잘라버리기를 선택했다. 전투뿐만 아니라 무슨 일이든 앞장을 서야 직성이 풀렸다. 이처럼 앞뒤 가리지 않고 행동하는 습성은 왕이 된 이후 리더십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역사상 국왕이 직접 정복 활동을 나서서 대제국을 이룬 사례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최초일 것이다. 리더 알렉산드로스는 부하 장수와 병사를 이끌고 낯선 땅을 탐험하며 적군과 싸워야 했다. 늘 선두에 서서 모든 것을 홀로 지휘하고 홀로 판단했다. 부하들은 오로지 리더의 명령에 순종해야 했다. 이런 의미에서 시오노 나나미는 알렉산드로스를 ‘폭군’은 아니지만 ‘독재자’로 보았다. 알렉산드로스에게 인간적인 면모야 당연히 있었겠지만 저자는 굳이 그것에 주목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유능한 리더에게 결국 필요한 건 사람을 이끄는 ‘능력’이지 사람을 끌어안는 ‘인품’은 아니라고 내내 역설한 듯하다.

세계제국을 건설한 알렉산드로스의 ‘힘’은
배타적 민족주의를 뛰어넘는 혁신에 있었다!

문명의 중심이라 자부하며 그 외의 것을 비문명 또는 야만이라 규정짓는 자문화중심주의, 다른 말로 ‘배타적 민족주의’는 문명의 이면에 숨겨진 또 다른 ‘야만’이자 ‘폭력’일 뿐이다. 오늘날 전 세계가 세계화를 부르짖는 듯 보이지만, 한쪽에서는 난민 문제나 자국우선주의, 브렉시트 등 새로운 형태의 국수주의가 고개를 들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인류 역사상 누구보다 먼저 세계화를 지향한 알렉산드로스의 지혜와 전략은 다문화 다민족 글로벌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크나큰 예지와 비전을 제시한다.
그렇다면 알렉산드로스가 세계제국을 건설한 ‘힘’, 다른 말로 ‘원동력’은 무엇일까? 시오노 나나미에 따르면, 알렉산드로스는 새로운 문물에 대한 호기심, 즉 세상에 대한 호기심이 매우 강했다. 이집트를 정복할 때도 나일강의 찬란한 문명에 감탄하며 발에 땀이 나도록 ‘여행’을 다닐 정도였다. 정복 활동의 루트도 늘 겹치는 법이 없었다. 언제나 새로운 것을 추구했고 새로운 생각과 혁신적 아이디어를 손 벌려 환영했다. 이집트나 페르시아만의 독특한 타문화도 별 거부감 없이 받아들였다. 저자는 알렉산드로스의 바로 이런 ‘혁신성’과 ‘열린 마음’을 높이 평가한다.
이 책에서 알렉산드로스는 명실상부한 그리스인으로 나온다. 마케도니아인을 그리스인으로 볼 수 있는지 여부는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아무튼 시오노 나나미는 알렉산드로스를 그리스인으로 ‘보았다.’ 저자에 따르면, 알렉산드로스는 어린 시절부터 스파르타 왕 레오니다스에게서 무예를, 아테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 교양을 배운 뼛속까지 그리스인이었다. 알렉산드로스가 제국을 건설한 이후 아시아 지역에 ‘헬레니즘 세계’가 펼쳐진 것만 보아도 그리스 문화에 대한 그의 자부심은 대단했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그리스인 알렉산드로스는 그리스를 뛰어넘었다. 물리적으로도 넘어섰지만 정신적으로도 마찬가지였다. 그리스는 서구 문명의 근간을 이룰 만큼 고도로 발달한 정신문화를 이룩했지만, 그만큼 배타성도 짙었다. 오늘날의 표현을 빌리자면 ‘배타적 민족주의’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우월한 자의 교만이라 해야 할까! 시오노 나나미는 이를 잘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을 소개한다. 최고의 철학자이자 알렉산드로스의 스승인 아리스토텔레스마저 그리스인과 이방인을 문명인과 야만족으로 구분 지었고 제자에게도 그렇게 가르쳤다. 하지만 철학은 지식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힘’, 즉 지력(智力)을 기르는 학문 아니던가. 알렉산드로스는 스승에게 배운 지력으로 스승의 생각을 뒤집어버린다! 시오노 나나미는 이 장면을 책에서 몇 번이고 반복해서 서술했다. 알렉산드로스의 혁신적 철학은 결국 헬레니즘 제국의 근간을 이룬 패배자 동화 정책, 즉 민족 융합 정책을 낳았다.
군사 정책에서도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두드러진다. 이미 아버지 필리포스 대에 중무장 보병의 장창 밀집 대형인 일명 ‘팔랑크스’를 만들었다. 오랜 전통과 관습만 고수하는 경직된 그리스 시민으로는 해내기 어려운 시도였다. 여기서 아들 알렉산드로스는 한발 더 나아간다. 그리스에서는 보병을 중시하다보니 기병 전력은 사실상 제로에 가까웠다. 기병은 자산이 풍부한 부유층의 전문직에 불과했다. 그러나 알렉산드로스는 ‘기병=중산층계급’이라는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기동성이 뛰어난 기병을 전투에 철저하게 활용해 연전연승의 승부사가 되었다. 또한 체계적인 보급품 조달, ‘알렉산드리아’라는 도시(기지) 건설 등 드넓은 제국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시스템을 적재적소에 만들어냈다. 이를 두고 시오노 나나미는 “아버지 필리포스는 그리스를 상당한 수준으로 뛰어넘었지만 아들 알렉산드로스는 그리스의 한계를 ‘초월’했다”고 평가한다.
지금까지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 『십자군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은 독자라면, 『그리스인 이야기』의 완간이 더욱 반가울 것이다. 특히 『그리스인 이야기』 제3권에서 다룬, 타문화를 야만이라 치부하지 않고 넓게 품는 알렉산드로스의 관용정신은 오늘날 한국에서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한 뼈 있는 교훈이 될 것이다.
제1부 도시국가 그리스의 종언

제1장 아테네의 쇠락
자신감의 상실/ 인재의 유출/ 소크라테스의 재판

제2장 벗어날 수 없는 스파르타
승자의 내실/ 고정화된 격자/ 오로지 호헌/ 시민 병사가 용병으로
스파르타 브랜드/ 그리스를 페르시아에 팔아넘기다

제3장 테베의 한계
테베의 두 사람/ 스파르타를 타도하기 위해/ 소수정예의 한계
양분된 그리스/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제2부 새롭게 웅비하는 힘

제4장 아버지, 필리포스
신들이 등을 돌린 땅/ 껍질을 벗은 마케도니아
새롭게 태어난 마케도니아 군대/ 인접 국가에 대한 대책
향상된 경제/ 올림포스 남쪽으로/ ‘우국지사’ 데모스테네스
그리스의 지배자로/ 아버지가 아들에게 벌을 내리는 방법
이혼과 재혼/ 암살

제5장 아들, 알렉산드로스
생애 최고의 책/ 생애 최고의 친구/ 목숨을 맡긴 말
스파르타 교육/ 스승, 아리스토텔레스/ 첫 출전/ 20세에 왕이 되다
동방 원정/ 그 내실/ 아시아로 내딛는 첫걸음/ ‘그라니코스전투’
승리를 활용하다/ ‘고르디우스의 매듭’/ 이소스로 가는 길
엇갈림/ ‘이소스전투’/ ‘해상 교통로’를 확립하다/ 티로스 공방전
이집트 정복/ ‘가우가멜라’로 가는 길/ 유프라테스강과 티그리스강
‘가우가멜라전투’/ 다이아몬드가 달린 끝/ 바빌론, 수사, 그리고 페르세폴리스
스파르타의 몰락/ 중앙아시아로/ 타인보다 앞서가는 자의 비극
재개된 동방 원정/ 애를 먹인 게릴라전/ 인도로 가는 길
마지막 대전투 ‘히다스페스’/ 종군을 거부당하다/ 인더스강
미지의 땅을 탐색하다/ 패배자를 동화시켜 이루려고 했던 민족 융합의 꿈
알렉산드로스, 분노하다/ 마음의 친구가 죽다
서방 원정을 꿈꾸며/ 마지막 이별

제6장 헬레니즘의 세계
‘보다 뛰어난 자에게’/ 후계자 쟁탈전/ 알렉산드로스가 남긴 것

17세의 여름: 독자에게
역자 후기
도판 출처
참고 문헌
500명 재판관 판결은 유죄 250표, 무죄 230표였기에 벌금만 내면 모든 게 끝날 수 있었다. 하지만 소크라테스가 펼친 정공법의 변명을 들은 뒤에 이루어진 최종 판결에서 유죄 360표, 무죄 140표로 큰 차이가 났기 때문에 사형이 결정되었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는 『소크라테스의 변명』을 읽으면 알 수 있는데, 한마디로 말하면 적당한 수준에서 정리하려고 생각했던 재판관들을 소크라테스가 분노하게 만든 것이다. …… 360명은 왜 분노했을까? 나는 이 시기 아테네 사람들이 자기 나라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상황에서 초조해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순간에 소크라테스가 나타나 벌금형이나 망명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고 스스로 자기의 운명을 결정하겠노라고 선언한 것이다. 바로 그 소크라테스에게 시민들은 반발했다. 초조해하는 자신과 달리 평온한 소크라테스에게 분노를 쏟아부었다. 그 결과가 큰 차이의 투표수로 결정된 사형 판결이었다. 이런 상상 말고는 처음에 유죄를 선언한 사람이 250명이었다가 이튿날 360명으로 증가한 이유를 찾을 수 없다. 그러나 소크라테스의 입장에서 도발적인 전술은 성공했다. _40~41쪽

마케도니아 군대에는 ‘팔랑크스’ 외에 경무장 보병도 있었다. 궁수와 투석병에 더해 ‘사리사’보다 짧은 창으로 싸우는 병사들이 있었다. 필리포스는 그들을 주요 전력인 ‘팔랑크스’의 보조 병사로만 활용했다. 이 병사들을 멋지게 활용한 사람은 그의 아들인 알렉산드로스였다. 알렉산드로스는 기병도 달리 활용했다. 필리포스도 기병의 이점을 모르지 않았다. 그가 이상하다고 생각할 정도로 테살리아 지방의 영유에 깊은 관심을 가졌던 것이 증거이다. 올림포스산 바로 남쪽에 펼쳐져 있는 테살리아의 지세는 말을 키우는 데 적합했고 당연하게도 기병의 산지이기도 했다.
고대인은 등자를 몰랐다. 그래서 기병은 말 위에서 발을 고정시킬 수 없었다. 기병은 그 상태에서 적의 창에 찔리거나 적이 던진 창에 맞아야 했다. 두 발을 꽉 붙인 채로 공격력을 발휘하려면 어릴 때부터 말을 타서 익숙해지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기병이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윤택한 계층 출신이라는 것은 아테네에서도 사실이었고, 훗날 로마에서도 ‘기사계급’이라는 명칭이 있다는 점에서 확인할 수 있다. 테살리아 지방에는 말이 많았고 당연히 숙달된 기병도 많았다. 알렉산드로스는 이를 철저하게 활용했다. 필리포스는 도시국가 시대의 그리스를 상당한 수준으로 뛰어넘었지만, 아들과 비교했을 때는 그리스를 초월했다고 말하기 어렵다. _148~149쪽

하지만 스승의 가르침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단순한 우등생으로 끝나고 만다. 알렉산드로스는 달랐다. 스승이 말한 다음의 가르침에는 전혀 따르지 않았다.
“그리스인은 동등한 친구로 대해도 좋지만 그리스인이 아닌 사람(즉 야만족)은 동물이나 식물과 같다고 생각하고 대해야 한다.”
페르시아로 갔을 때 알렉산드로스는 특히 이 가르침과는 정반대라고 해도 좋은 태도를 취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을 읽고 느낀 개인적인 소감이지만, 아리스토텔레스도 어쩔 수 없는 도시국가 시대의 그리스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와 달리 알렉산드로스는 도시국가를 초월한 그리스인이었다.
아무튼 스승으로부터 모든 것을 배웠지만 스승의 가르침을 모두 따르지 않았다는 것은 그가 뛰어난 제자였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아닐까. 철학 자체가 자기 머리로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가르친다는 점에서 그렇다. _222~223쪽

“이 매듭을 푸는 자가 오리엔트의 지배자가 된다는 전설이 있지만 아직까지 성공한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이쯤 되면 알렉산드로스도 물러날 수 없었다. 그렇다고 여러 겹으로 얽혀 있는 줄의 끝이 어디인지 찾을 수도 없었다. 마케도니아의 젊은 왕은 잠시 침묵하면서 매듭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오래 망설이지는 않았다. 어떻게 하면 이 문제를 풀 수 있는지 해결책을 찾아내려고 했다. 그러더니 갑자기 긴 칼을 들고 단번에 내리쳤다. 가죽끈으로 묶여 있던 줄은 둘로 조각났다. 전차와 그것을 끄는 채도 둘로 나뉘었다.
매듭을 손으로 풀어야 한다는 이야기는 어디에도 없었다. 칼로 잘라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 역시 어디에도 없었다. 금지되어 있지도 않은데 지금까지 도전했던 사람들은 매듭을 손을 사용해 풀려고 생각했던 것이다. 금지되어 있지 않다면 해도 된다고 생각한 사람이 지금까지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_279쪽

서양에서 알렉산드로스 이후에 나타난 고대의 명장을 꼽는다면 다음의 세 사람일 것이다. 두 차례에 걸친 포에니전 쟁에서 16년 동안 로마군을 능멸했던 카르타고의 장군 한니발. 그 한니발을 마지막 전투에서 무너뜨린 로마의 장군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 그리고 인도까지 ‘동방’을 제압한 알렉산드로스처럼 ‘서방’을 제압하고 훗날 윈스턴 처칠이 영국의 역사는 카이사르가 도버해협을 건넌 뒤에 시작되었다고 말하게 만든 로마의 장군 율리우스 카이사르.
전략과 전술에서 절대적인 자신감을 갖고 있었던 이 세 사람도 최고의 무장을 알렉산드로스로 꼽은 점에서는 완전히 일치했다. 그럼에도 세 사람은 전쟁터에서 알렉산드로스의 방법을 그대로 따르지 않았다. 부분적으로는 도입했지만 전면적으로 따르지는 않았다. 왜일까?
이탈리아어로 ‘푼타 디 디아만티Punta di Diamante’라는 말이 있다. 다이아몬드가 달린 끝을 의미하는데, 연마 도구의 끝에 달려 있는 다이아몬드를 가리킨다. 가장 단단한 광석인 다이아몬드를 앞에 달면 쉽게 절단되지 않는 것도 자를 수 있다. 이 3명의 명장은 세로로 긴 마름모꼴 진형을 이루며 돌격하는 마케도니아 기마 군단의 위력과 효력을 충분히 이해했다. 하지만 알렉산드로스라고 하는 ‘푼타 디 디아만티’이기에 가능하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_368~369쪽

로마 시대에 알렉산드로스의 전기를 쓴 쿠르티우스 루푸스Curtius Rufus는 알렉산드로스가 이 말을 많은 사람 앞에서 했다고 기록했다. 다만 병사들을 향해 말했다고는 쓰지 않았다. 알렉산드로스는 장군과 병사를 차별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그만큼 병사들로부터 사랑을 받은 최고사령관이 없을 정도이다. 전쟁터에 늘 선두에 서서 누구보다 큰 위험을 안고 싸웠기 때문에, 알렉산드로스의 상징이 된 투구 위에 나부끼는 하얀 깃털 장식을 보면서 장군뿐만 아니라 일개 병사까지도 왕을 따르겠다는 일념으로 싸우게 만들었다.
알렉산드로스가 생각하는 리더는 부하의 모범이 되어야 하고 솔선해서 위험을 무릅쓰는 모습을 보여주어 자신의 모델이라고 생각하게끔 만드는 존재여야 했다. 따라서 사령관이나 지휘관을 향해 “너희가 나를 사랑해준 것도 내가 이제까지 보여준 용기 때문이다”라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 말은 앞으로도 ‘다이아몬드가 달린 끝’을 그만둘 생각이 없다는 의지를 확실하게 표명한 것이다. _370~37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