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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3 중종~광해군 편(큰글자 살림지식총서 163) (큰글자살림지식총서 )
이성무 지음 | 2021년 12월 31일
브랜드 : 큰글자 살림지식총서
쪽수 : 198 쪽
가격 : 15,000
책크기 : 163*256
ISBN : 978-89-522-4357-7-040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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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림 시대의 시작과 붕당의 서막, 그리고 또 다른 반정
『조선왕조실록』 3권에서는 반정으로 왕에 오른 제11대 왕 중종부터 인조반정으로 폐위된 제15대 왕 광해군까지 5대에 걸친 117년간의 기록을 담았다.
이 시기는, 중종반정 이후 사림파 조광조의 급진 개혁, 훈구파의 반발로 일어난 기묘사화, 대윤과 소윤의 싸움으로 벌어진 을사사화, 동인과 서인의 갈등과 기축옥사 등 붕당이 벌어진 시기다. 이 와중에 조선침략을 준비하던 일본의 야망을 파악하지 못해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이 일어나기도 했다. 전란 이후에도 조정은 동인은 남인과 북인으로, 북인은 대북과 소북으로 분열을 거듭했다. 임진왜란에서 선조를 대신해 활약한 광해군은 왕위 계승의 정통성 문제로 수많은 옥사를 일으켰고 결국 인조반정으로 폐위되었다.
제11대 중종, 반정으로 왕위에 오르다
제12대 인종, 8개월의 짧은 치세로 생을 마감하다
제13대 명종, 권신 정치기의 절정과 쇠락을 맞이하다
제14대 선조, 사림 정치 시대를 열다
제15대 광해군, 난세를 이끌고 패륜의 멍에를 쓰다
중종은 즉위 후 연산군 대에 시행되었던 모든 정책에 혁신을 시도했다. 먼저 연회 장소로 사용하여 훼손된 성균관을 수리하고 경연을 다시 개설했다. 또한 두 번의 사화를 거치면서 화를 입었던 사람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고 유학을 숭상하는 기풍을 조성했다. 이러한 일련의 조치로 학자들의 사기는 점차 살아났다.
중종은 연산군과는 달리 왕의 전제적 권한 행사를 피하고 유능한 유학자들의 의견을 존중했다. 이에 위로는 수기치인(修己治人)의 학문을 계발하고, 아래로는 교화 사업을 펼치게 되었다. 이러한 분위기에 편승해 도학 정치를 실현하려는 인재들이 계속해서 등용되었으며, 유숭조(柳崇祖)를 필두로 조광조의 동지들이 뒤를 이었다._pp.20~21

고려 말부터 조선 초에 걸쳐 전개되었던 억불 정책은 유학 자체를 진흥시키려는 차원의 운동만은 아니었다. 오히려 불교의 세속화를 조장한 폐단으로 지적된 경제력을 몰수함으로써 국가 재정을 확보하려는 의도가 더 컸다. 물론 몇몇 왕들에 의해 불교가 중흥되는 모습도 간간이 보이기는 했다. 그러나 불교는 여전히 탄압받고 있었다.
억불 정책으로 사찰 정리와 사찰 재산의 몰수, 도승법(度僧法) 시행과 폐지, 승과 폐지, 교리상의 특성을 무시한 종파 통합 그리고 다비와 같은 불교의 전통적인 풍습 금지 등의 조치가 이루어졌다. 특히 도승법과 승과 폐지는 승려에 대한 국가 차원의 관심과 보장을 전적으로 거부한 것이었다. 이 때문에 승려의 지위는 크게 하락할 수밖에 없었다._pp.76~77

신립의 패전과 선조의 피난으로 나라는 극도의 불안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이에 비상 타개책으로 제시된 것이 광해군의 세자 책봉과 분조 활동이었다. 당시 서울은 민심이 극도로 흉흉한 가운데 “나라가 반드시 망할 것이다”라는 말이 난무했다. 이에 우승지 신집(申楫)이 민심을 진정시키는 방도로 세자 책봉을 건의하기에 이르렀다. 평소 서장자인 임해군을 신뢰하지 않았던 선조는 영의정 이산해・좌의정 유성룡 등의 대신을 소집해 서차자인 광해군을 세자에 책봉했다. 신립의 패전 소식이 전해진 바로 그날이었다._p.141

인목대비 폐비 이후에도 광해군과 대북의 칼바람은 멈추지 않았다. 왕의 형제인 임해군과 영창대군, 종친 진릉군에 이어 능창군(綾昌君)도 목숨을 잃었다. 능창군은 광해군의 배다른 형제인 정원군의 아들이자 훗날 인조가 되는 능양군의 동생이었다. 능창군은 매우 영특했는데, 정원군의 집에 왕기가 서린다는 말이 돌아 결국 모역죄로 죽고 말았다.
이렇듯 광해군과 대북의 패륜 행위는 계속되었다. 이런 혼란한 상황에서 억눌려 지내던 서인은 정국을 뒤집어놓을 계획을 세웠고, 이 계획이 인조반정으로 이어졌다._pp.189~1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