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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5 순조~순종 편(큰글자 살림지식총서 165) (큰글자살림지식총서 )
이성무 지음 | 2021년 12월 31일
브랜드 : 큰글자 살림지식총서
쪽수 : 194 쪽
가격 : 15,000
책크기 : 163*256
ISBN : 978-89-522-4359-1-040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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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을 내린 조선왕조 500년
『조선왕조실록』 5권에서는 안동 김 씨의 세도 속에서 등극한 제23대 왕 순조부터 일본에 나라를 빼앗긴 제27대 순종까지 6대에 걸친 110년간의 기록을 담았다.
이 시기에는 세도 정치의 여파로 국정이 혼란해지고 민생은 피폐해져 전국에서 민란이 발생했다. 흥선대원군이 등장하면서 호포제 실시, 서원 철폐, 경복궁 중건, 천주교 박해, 쇄국 정책 등 대내외적으로 강력한 정책을 펼치기도 했다. 그러나 흥선대원군이 권좌에서 물러나자 조선은 일본과 조일 수호 조약을 시작으로 미국·프랑스·러시아·영국 등 서구 열강들과 차례로 굴욕적인 통상을 맺었다.
이후 전국적으로 일어난 동학 농민 운동은 청일 전쟁으로까지 확대되었다. 청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러일 전쟁까지 승리하면서 조선과 을사늑약을 체결했다. 그 결과 조선의 외교권을 박탈하고 각종 이권을 탈취했다. 고종은 일본에 국권을 빼앗기지 않으려 아관파천, 대한제국 수립, 헤이그 특사 파견 등 자구책을 마련했으나 결국 강제로 폐위되었다. 마침내 1910년 경술국치 조약으로 일본이 조선을 강제로 병합하면서 500년 조선의 역사는 사라지고 말았다.
제23대 순조, 60년 세도 정치가 시작되다
제24대 헌종, 풍양 조 씨 세도 속에서 서양 세력과 맞서다
제25대 철종, 60년 안동 김 씨 세도가 끝이 나다
제26대 고종, 조선의 국호를 버리고 대한제국을 열다
제27대 순종, 나라를 잃다
순조는 27년간 보위에 있으면서 안동 김 씨의 세도에 염증을 느꼈다. 그리하여 1827년(순조 27) 2월부터 효명세자에게 대리청정을 하도록 했다. 세자의 처가인 풍양 조 씨를 등용해 안동 김 씨 세력을 견제하려던 것이다.
대리청정에 나선 효명세자는 1776년(영조 52)에 영조가 정리한 신임의리를 재천명했다. 그리고 청의(淸議)를 내세우며 척족의 정치 참여에 반대했던 노론 인사를 중심으로 정치 세력을 새롭게 재편했다. 그는 대리청정 나흘 만에 종묘와 경모궁의 예식 절차를 트집 잡아 안동 김 씨 계열인 전 이조판서 이희갑(李羲甲)・김재창(金在昌)과 현 이조판서 김이교(金履喬)를 감봉에 처했다. 안동 김 씨 세력에 대한 견제를 시작한 것이다._pp.28~29

철종은 1852년(철종 3)부터 친정을 시작했다. 이듬해 봄에는 관서 지방에 심한 기근이 들자 대책으로 선혜청의 돈 5만 냥과 사역원에서 인삼세로 거둬들였던 세금 중 6만 냥을 내어 구제하게 했다. 또 그해 여름에 가뭄이 심하게 들자 식량이 없어 구제하지 못하는 실정을 안타깝게 여긴 나머지 재용 절약과 탐관오리 징계를 명했다.
1856년(철종 7) 봄에는 화재를 입은 1,000여 호나 되는 여주의 민가에 은자(銀子)와 단목(丹木)을 내려주어 구휼하도록 했다. 그리고 함흥에서 화재를 당한 백성에게도 3,000냥을 지급했다. 같은 해 7월에는 영남의 수재 지역에 내탕금 2,000냥, 단목 2,000근, 호초(胡椒: 후추) 200근을 내려주어 구제하게 하는 등 빈민 구호 정책에 적극성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정치 운영은 대부분 안동 김 씨 세력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러다보니 탐관오리가 횡행해 진주 민란을 시작으로 전국 각처에서 크고 작은 민란이 일어났다. 전국적으로 성난 민심이 들고 일어나니 조선 왕조의 체제는 근본부터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_p.58

철종조에는 삼정이 문란하여 전국적으로 민란이 일어났다. 그러나 이러한 민란의 수습도 기껏해야 삼정이정청이라는 임시 특별 기구를 설치하는 정책을 수립하는 데 그쳤다.
철종은 안동 김 씨와 힘을 합해 근본적인 정책을 수립하지 못했다. 그저 모든 관료와 재야 선비에게 대책을 세워 올리게 했을 뿐이다. 물론 철종으로서는 60년 안동 김 씨 세도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기가 그리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구제책이라는 것도 고식적인 정책에 불과했다.
철종은 왕으로서 정치력을 발휘할 기회도 없이 술과 여색에 빠져 지낸 날이 많았다. 그러다 1863년(철종 14) 12월 7일에 병이 악화됐고, 다음날 33세의 일기로 창덕궁 대조전에서 죽었다._pp.100~101

임오군란 직후 청일 양국은 조선에 군대를 파견했다. 일본은 일본 공사관이 공격받은 것을 빌미로 배상금을 요구한 뒤, 제물포 조약을 통해 일본군을 서울에 주둔시킬 수 있었다. 한편 청나라도 적극적으로 조선을 간섭했다. 게다가 영국은 군란을 틈타 이미 체결한 조약을 개정해 관세율을 하향 조정했다.
결국 임오군란은 일본이 조선을 군사적으로 지배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조선에서 반일파와 반청파의 대립이 격화되면서 갑신정변이 발발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_pp.141~142

순종 즉위 후 정미 7조약이라 불리는 한일 신협약이 체결되었다. 사법권 위임, 일본인 차관(次官) 채용, 경찰권 위임 등이 핵심 내용이었다. 또한 후속 조치로 언론을 탄압하기 위해 신문지법과 집회·결사를 금지하는 보안법을 제정했다. 이어 대한제국 군부를 폐지했다. 이 조치로 대한제국 군대는 강제 해산되었다. 이때 해산된 군대의 병력 일부가 무장 항일 투쟁을 벌이기도 했다._pp.1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