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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준 (현대신학자 평전 02)
천사무엘 지음 | 2003년 12월 15일
브랜드 : 살림기독교
쪽수 : 244 쪽
가격 : 10,000
책크기 : 사륙판
ISBN : 89-522-016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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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ꡔ김재준 - 근본주의와 독재에 맞선 예언자적 양심ꡕ을 쓴 천사무엘 교수는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그것은 그의 삶의 여정과 그가 직접 말했던 것, 썼던 글들을 하나하나 추적함으로써 가능할 수 있었다. 창꼴 마을에서의 어린시절부터 서울, 일본, 미국으로의 유학 시절, 조선신학원의 설립과 근본주의와의 갈등, 기장의 출범과 군부 독재와의 투쟁 등 이 책에서는 그의 삶을 제3자적 입장에서 될 수 있는 한 감정을 최대한 배제하고 사실을 그대로 전해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우리는 신학자 김재준의 열정과 땀과 눈물을 확인할 수 있으며,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깊은 사랑을 엿볼 수 있다.
머리말

김재준에 대한 시각

1. 어린 시절
창꼴마을 │ 외가와 신식교육 │ 직장생활과 결혼
2. 유교인에서 기독교인으로
서울생활과 개종 │ 고향에 돌아가 │
3. 큰 마음 큰 뜻을 품고
일본 청산학원 │ 미국 유학
4. 교육의 첫걸음
평양 숭인상업학교 교목 │ 북간도 용정 은진중학교 교목
5. 조선신학원 교수
조선신학원은 세워야 한다 | 시련의 시작
6. 해방 직후 혼돈의 시대에
무너진 땅을 다시 세우며 | 근본주의에 맞서

7. 전쟁의 와중에서
전쟁속에서도 계속된 교육 | 장로교의 분열 | 기독교 장로회의 탄생
8. 신학교육의 마지막에
9. 독재정권에 항거하며
의를 위한 투쟁 | 캐나다 이민 생활 | 마지막 불꽃
10. 김재준의 사상과 그 평가
성경 │ 교회 │ 역사 │ 자유 │ 신학교육

맺는 말: 근본주의와 독재에 맞선 예언자적 양심

∙참고문헌
∙연 보
믿음과 행위의 관계

문익환 등 한국 현대사에서 민주화를 외쳤던 사람들 중 한신대출신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그리고 바로 그 한신대를 세우고 한 평생 지켜온 사람이 김재준 목사라는 것도 알고 있는가? 그의 삶은 평생 싸움의 삶이었다. 유교 사상에 경도된 아버지와의 싸움, 서울과 일본, 그리고 미국의 유학 기간 내내 자신을 따라다녔던 가난과의 싸움, 목회와 교육 활동을 하는 동안 자신과 대면했던 근본주의와의 싸움, 군부 독재와의 싸움 등 그는 세상을 떠나는 그 순간까지 싸움의 중앙에 있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교육에의 열의를 잃지 않았고, 제자들에 대한 사랑을 거두지 않았다. 그가 있어 한국 교회는 더욱 풍요로울 수 있었으며, 그가 있어 한국 사회는 좀더 건강해질 수 있었다. 이 책 ꡔ김재준 - 근본주의와 독재에 맞선 예언자적 양심ꡕ을 쓴 천사무엘 교수는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리고 그것은 그의 삶의 여정과 그가 직접 말했던 것, 썼던 글들을 하나하나 추적함으로써 가능할 수 있었다. 이를 위해 천사무엘 교수는 방대한 김재준 전집을 일일이 검토하고 ‘범용기’ 등 김재준 자신이 썼던 글들을 꼼꼼히 살펴본 후 필요한 부분을 우리에게 제시하는 친절함을 보여주고 있다. 창꼴 마을에서의 어린시절부터 서울, 일본, 미국으로의 유학 시절, 조선신학원의 설립과 근본주의와의 갈등, 기장의 출범과 군부 독재와의 투쟁 등 이 책에서는 그의 삶을 제3자적 입장에서 될 수 있는 한 감정을 최대한 배제하고 사실을 그대로 전해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우리는 신학자 김재준의 열정과 땀과 눈물을 확인할 수 있으며,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깊은 사랑을 엿볼 수 있다.

김재준은 함북 경흥 출생으로 일본 청산학원 신학부와 미국 프린스턴신학교를 거쳐 미국 웨스턴신학교에서 신학석사학위를 취득했으며, 캐나다 브리티쉬 콜롬비아주립대학교 유니온 칼리지에서 명예신학박사를 받았다. 목사 안수를 받은 후 경동교회에서 담임목사로 목회를 시작했으며, 한국신학대학교의 전신인 조선신학대학교를 설립하고, 한국신학대학교 교수 및 학장으로, 한신학원 이사장으로 활동했다. 대한일보 논설위원으로도 활동했으며, 삼선개헌반대 범국민 투쟁위원회 위원장, 민주수호 국민협의회 공동의장, 북미주 한국인권 수호협의회 회장, 북미주 민주주의와 민족통일을 위한 국민연합 위원장, 북미주 한국민주회복 통일촉진 국민회의 의장 등 군부독재에 맞서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 국내외에서 다양하고 활발한 활동을 벌이다 1987년 사망했다. 그는 평생 성경 본문의 내용을 문자적으로 절대시하는 근본주의에 맞서 성경에 대한 문학적, 역사적 비평을 포함해야 함을 강조했고 이로 인해 장로교에서 분열하여 기독교 장로회를 세우게 된다. 또한 군부 독재에 맞서 의를 지키기 위해 몸소 실천한 실천가이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그는 교육자였다. 한국신학대학을 세우고 이곳을 지켜내기 위해 평생을 바친 학자이자 선생님이었다.

이 글을 쓴 천사무엘은 연세대학교 신과대학 및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장로회신학대학교에서 목회학 석사학위(M.Div.)를 받았으며, 미국 예일대학교 신학부(Yale University Divinity School)를 졸업(S.T.M.)하고, 미국 Graduate Theological Union에서 박사학위(Ph.D.)를 취득했다. 목사 안수를 받고 미국 하트포드 한인교회, 새크라맨토 연합장로교회 등에서 목회를 하기도 했다. 현재는 한남대학교 기독교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본문 중에서

“나는 무슨 ‘주의’에 내 신앙을 주조할 생각은 없으니 무슨 ‘주의자’라고 판박을 수가 없오. 나는 생동하는 신앙을 은혜의 선물로 받았다고 믿으며 또 그것을 위해서 늘 기도하고 있소. 내가 어느 목표에 도달했다고 생각할 수는 없지만, 그리스도를 목표로 달음질한다고는 할 수 있을 것 같소. 기어코 무슨 ‘주의’냐고 한다면 ‘살아 계신 그리스도주의’라고나 할까?”
(「신학교육의 마지막에」 중에서)

김재준에 관한 글을 쓰는 것은 부담스러운 일임에 틀림없다. 그를 사랑하고 존경하며 따르는 수많은 제자들이 생존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 그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김재준에 대한 적절한 평가와 폭넓은 논의가 아직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또한, 한국 장로교 역사에 있어 그가 관련되었던 성경해석에 대한 논쟁이나 교단 분열 등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시각이 아직도 학문적으로 적절하게 수렴되거나 정리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서 본 책은 가능한 어느 한편에 치우치지 아니하면서 학문적인 평가를 적절하게 가하여 신학도나 일반인들이 김재준을 쉽게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고자 했다. (「머리말」 중에서)

4.19의거가 지나고 학교가 정상수업을 하던 날 오랜만에 전교생이 모여 예배를 드렸다. 이날 김재준은 설교를 하면서 흐르는 눈물을 억제할 수 없었다. …… “우리 기성인들을 용서해 달라. 너희들 젊은이들이 나라를 위하여 피를 흘리는 동안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우리를 용서해라. 앞으로 너희가 길거리에 나서지 않게 하마. 너희가 나서기 전에 우리가 나서겠다. 너희는 이제 공부해 달라.” (「신학교육의 마지막에」 중에서)

한 학생이 등록금이 없어 학교를 그만두면서 하직 인사를 하러 김재준을 찾았다. 그러나 그는 캐나다에 1년간 요양하러 가 있었다. 이 학생은 작별의 편지를 써서 캐나다로 보냈다.
“캐나다에 계시는 김재준 목사님께 …… 더 이상 공부할 형편이 못 되어 고향에 내려가려 하는데 언제 다시 뵙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 .”
얼마 후 기숙사에 있던 그를 서무과장이 찾았다. 서무과장은 항공우편 하나를 보여주면서 말했다. “이거 큰일났다. 학장님이 캐나다에서 조원길 학생에게 이달분 월급을 등록금으로 내주라 하시면서 도장까지 찍어 이렇게 보냈으니 학장님의 가족들은 이 월급을 기다리고 있는데 큰일났다.” 김재준은 학장 월급으로 이 학생의 등록금을 대납하라고 인감도장을 찍어 위임장을 보낸 것이다. 그 학생은 그 돈으로 등록하여 공부를 계속 할 수 있었다. (「신학교육의 마지막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