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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당제국 (생각하는 힘-세계사컬렉션 15)
윤미리 지음 | 2020년 10월 30일
브랜드 : 살림
쪽수 : 172 쪽
가격 : 14,000
책크기 : 152X210
ISBN : 978-89-522-4249-5-0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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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 교류로 국제도시를 이루던 수·당제국,
한자·유교·율령·불교 공유하는
동아시아 문화권을 완성하다!
수(隋), 분열된 중국의 남·북조 재통일해
당(唐)제국 번영의 기틀을 마련하다!

‘개방성’과 ‘국제성’으로 요약할 수 있는 당의 문화는 당제국을 동아시아의 중심에 서게 했다. 방대한 영토뿐만 아니라 오늘날까지 동아시아 문화에 큰 영향력을 미치는 당, 그리고 이러한 당이 나올 수 있게 초석을 다진 수(隋). 두 제국의 역사를 기술한 책.
머리말|당삼채를 통해서 본 당제국의 이국적 향기 … 4

제1장 수의 잉태 — 유목 세계와 농경 세계가 하나로
01 황건적의 난과 조조의 나라 … 14
02 화북과 강남이 마주 서다 … 25
03 위·진·남북조 시대의 문화와 예술 … 38

제2장 수의 시작과 끝
01 통일제국의 출발점, 수 … 54
02 수의 건국자, 문제 … 60
03 수의 마지막 황제, 양제 … 68
04 수제국, 그 존재의 의미 … 73

제3장 당제국의 건설
01 당제국의 탄생 … 84
02 당제국의 발전과 변화 … 91

제4장 장안의 화려한 시절
01 탄탄한 지배체제의 완성 … 106
02 사회와 경제의 변화상 … 113
03 장안을 중심으로 꽃피는 문화 … 122
04 동서 교류의 확대 … 142

제5장 당제국의 위기와 새로운 제국의 시작
01 당제국을 흔드는 자들, 절도사와 환관 … 152
02 민중의 저항 … 156
03 주전충과 5대 10국 … 160

맺음말|수·당제국의 역사적 의의 … 166

참고문헌 … 168
연표 … 170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분열된 중국을 통일했던 수와 수의 뒤를 이어 찬란하게 번영을 구가했던 당은, 중국 역사상 큰 의미를 지닌다. 이들이 만든 정치 체제와 문화는 이후에 등장하는 수많은 나라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 뿐만 아니라 주변 동아시아에도 영향을 주었고 이는 ‘동아시아 문화권’을 형성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_7~8쪽

수 양제는 대운하가 완성되자 배를 타고 물놀이를 했다. 가족과 신하들을 거느리고 출발한 배는 62척이나 되었고, 황제의 전용선이 만들어졌다. 양제는 노 젓는 배를 싫어하여 백성들을 시켜 배를 밧줄로 끌게 했다. 이때 동원된 농민의 수는 8만 명에 달했다. _79쪽

수는 비록 짧은 왕조였지만 그 존재의 의미는 엄청나다. 수가 가지는 가장 큰 의미는 오랫동안 분열된 중국의 남·북조를 재통일했다는 점이다. 후한 이후 중국은 남과 북으로 갈려 개별적인 문화와 전통을 만들어가며 분단이 고착화되고 있었다. 수가 아니었다면 중국은 양분되어 적어도 아직까지 두 개의 나라가 존속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수는 불가능할 것 같던 통일을 이루어냄으로써 당제국이 번영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주었다. _80쪽

수 양제가 완성한 대운하 공사 또한 강남과 화북을 연결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단순히 경제 교류만을 가능하게 한 것이 아니라 중국 사회를 하나로 묶어준 계기가 된 것이다. 처음 운하는 정부의 물자만을 운송하는 관영(官營) 전용 수로였지만, 당대 중기 이후부터는 민간에서도 사용하는 유용한 운송 수단이 되었다. 그리고 오늘날까지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다.
이처럼 수나라는 비록 짧은 역사를 뒤로하고 사라지긴 했으나, 뒤이은 당나라 번영의 토대를 닦았다는 점에서 역사상 지니는 의미는 상당하다. _81쪽

후한 말 이후 유목 민족들이 중원으로 진출하면서 대규모 인구의 이동과 함께 문화의 이동도 이루어졌다. 각기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한 지역에서 만나면서 중국 문화의 폭은 더 넓어졌다. 이는 결과적으로 ‘모든 길은 수도 장안으로 통한다’는 수·당제국이 등장하는 배경이 되었다. 즉 중국은 이미 민족의 이동을 몸소 체험했기에 다른 민족의 문화를 개방적인 자세로 대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장안은 역동적으로 문화의 교류가 이루어지는 현장이 될 수 있었다.
당은 영토 확장으로 아시아 전역을 아우르는 대제국이 되었다. 아시아를 비롯해 서역까지 세계 곳곳에서 사신과 유학생, 상인, 승려, 화가, 음악가, 무사 등이 수도 장안으로 몰려왔다. 장안은 단순히 당의 수도만이 아니었다. 동아시아 문화가 싹트는 발원지이자 다양한 문화의 융합이 이루어지는 현장이었다. 장안으로 이어지는 길은 항상 사람들로 북적였고 당에 사는 외국인도 점차 늘어났다. 광저우만 하더라도 거주하는 외국인이 20만 명이 넘었다. _127~128쪽

당제국은 외국인이라 하더라도 재능만 있으면 관직을 주었다. 이는 당제국의 개방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현종 때 활동한 안녹산이나 사사명은 모두 이민족 출신이었다. 그리고 신라의 고선지 장군이나 최치원, 장보고와 혜초 또한 외국인으로서 당에서 활약한 인물이었다. 뿐만 아니라 발해의 대문예도 당에서 명성을 떨쳤다.
일본의 아베노 나카마로는 당의 과거에 합격하여 안남도호부의 도호로서 베트남을 통치했고, 승려 엔닌 또한 당에서 구법 활동을 하고 『입당구법순례행기』를 남겼다. _128~129쪽

중앙아시아를 비롯한 서역 지역에서는 중국 문화가 유행했다. 중국식 먹거리가 유행하고 중국식 옷을 입었다. 그리고 종이와 비단, 도자기 등이 서아시아 지역으로 전파되면서 큰 인기를 끌었다. 이 가운데 종이를 만드는 기술은 서아시아 지역의 문화 수준을 한 단계 향상시키는 엄청난 결과를 가져왔다.
물론 제지법 전파는 의도했던 바는 아니다. 당이 이슬람 세력과 전쟁을 할 당시에 패하고 말았는데, 그때 잡힌 수많은 당의 포로 중 제지 기술자가 있었다. 이를 계기로 제지술은 아랍 세계에 전파되었고, 삶의 큰 혁신을 가져왔다. 더불어 당삼채는 페르시아에서 큰 인기를 끌어 많은 양이 수출되었고, 바그다드에서는 많은 수의 중국인 화가들이 활동했다고 한다. _146쪽

황소가 일으킨 봉기는 농민들의 지지를 받으며 순식간에 세력을 키웠다. 황소는 스스로를 ‘빈부의 차이를 없애고 모두를 균등하게 만들기 위해 하늘이 내린 장군’을 칭하며 농민들을 이끌었다. 이는 당시 백성들의 평균에 대한 염원을 대변한 것이다. 함께 농민군을 이끌던 왕선지는 당 왕조가 관직을 주겠다고 제안하자 황소와 갈라섰다가 전사했다. 황소는 농민군을 이끌고 파죽지세로 나아갔고 수도 장안까지 점령했다. 황소는 국호와 연호를 정하고, 황제라 일컬었다. _158쪽

중국 역사상 수·당 시대는 전례가 없을 정도로 다양한 제도가 만들어지고, 다채로운 사상과 종교가 시작되었으며 예술이 화려하게 꽃피던 시기다. 이러한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것은 이전에 존재했던 다양한 문화들을 한데 끌어 모은 수·당 왕조의 능력에 있다. _166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