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알아야 우리를 안다] 서양 역사의 현장, 다큐 보듯 - 중앙일보(작성자: 이훈범 기자)

인류 최초의 서사시 '길가메쉬'에서 길가메쉬가 친구 엔키두의 죽음 앞에서 비통해 하는 장면은 수천 년 문학사에서도 찾기 어려울 만큼 극적이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는 고대 서양사의 결정적 사건인 트로이 전쟁을 손에 땀을 쥐며 관전할 수 있게 해준다. 헤로도투스는 '역사'에서 최초의 동서양 충돌인 페르시아 전쟁을 전장에 나간 병사가 바라보듯 생생히 묘사한다. 
그런데 오늘날의 역사책은? 짝이 맞지 않는 퍼즐 조각 같은 단편적 사건과 의미 없는 숫자에 불과한 연도를 나열하고 있는 건 아닌지. 
이 책은 그런 회의에서 출발한 서양문화사다. 저자는 우선 독자들을 역사의 뒤편에 있는 언덕으로 데려 올라간다. 안에서는 볼 수 없는 역사의 도도한 흐름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그리고 서양문명이 발아한 바빌론의 사막, 세계를 뒤흔든 로마의 뒷골목, 콜럼버스의 산타마리아호 내부, 사르트르가 실존을 외쳤던 파리의 카페로 독자를 안내한다. 거기서 우리는 페르시아 대군에 맞서 옥쇄하는 스파르타 병사, 은신처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는 성모 마리아, 죽음 앞에서 담벼락에 사랑의 낙서를 하는 폼페이의 연인, 연인의 죽음에 의욕을 잃고 사창가를 전전하는 단테, 단두대로 걸어가는 마리 앙투아네트를 만난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 같다. 역시 역사는 인물들이 만들어 가는 것. 그렇다고 역사는 군주나 장수 등 잘나가던 이들만의 것은 아니다. 하늘을 뒤덮은 페르시아군의 화살을 바라보며 스파르타군 병사는 말한다. "땡볕이 아니라 그늘에서 싸우니까 좋군." 
이훈범 기자 

화제의 책 - 세계일보(작성자: 이보연 기자)

"그리스 사람들의 피를 들끓게 한 것은 아킬레스의 죽음이었다” 
“오! 여신이여,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스의 분노를 노래하라.”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스(일리아드)’는 이렇게 시작한다. 작품을 여는 이 구절은 ‘일리아스’를 관통하는 일관된 주제를 함축하고 있다. 호메로스는 트로이 전쟁의 경과를 노래하지 않았다. 그는 아킬레스의 분노, 거기에서 비롯된 아카이아 사람들의 슬픔을 노래했다. 
“모든 세기에 걸쳐 인류가 관심을 가졌던 것은 민족들이 아니라 개개인에 관한 것이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처한 상황, 심장의 고동, 기질과 겸양, 불굴의 용기에 관심을 가진 것이다. 서양 세계문학에서 가장 위대한 이 작품을 꿰뚫고 있는 것은 그리스인들의 피를 들끓게 한 아킬레스의 인내, 원한 속의 인내였다. 그 배경으로 깔려 있는 것이 두 민족 간 다툼이었다. 그리스 민족과 트로이 민족의 전쟁에 관한 이야기는 이 서사시의 배경에 지나지 않는다.”
이바르 리스너의 책 ‘서양, 위대한 창조자들의 역사’는 ‘일리아스’를 이렇게 설명한다. 사건이 아닌 인물에 초점을 맞추는 것, 이는 곧 책 자체의 핵심이기도 하다. 이 책은 ‘인물로 풀어쓴 서양사’다. 
리스너는 과거의 주인공들에 숨결을 불어넣는다. 그리스의 걸인 철학자 디오게네스, 후원자를 찾아 여기저기를 떠도는 콜럼버스, 성스러우면서도 독창적인 그림을 그린 엘 그레코, 계모를 사랑한 펠리페 2세의 아들 돈 카를로스 등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지은이는 때로 역사 현장을 곁에서 지켜보고 있는 것처럼 묘사하거나, 역사의 중심부가 아닌 주변부에 있던 인물의 입장에서 역사를 서술한다. 이로써 울고 웃는 인간의 냄새를 전달한다. 
역사는 결국 인간이 만들어가는 것이기에 역사를 이해하는 데 인간을 중심에 두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서양’은 서양정신의 기원이 된 역사적 유산과 사건, 뛰어난 인물들의 삶과 그들의 작품을 재현한다. 무게는 사건의 흐름보다는 서구 문화를 형성한 사상과 창조성에 놓인다.
서양 정신은 7000년 전 바벨탑으로 상징되는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 시작된다. 이는 이집트와 그리스·로마 문화로 이어지고, 서양을 기독교라는 하나의 정신세계로 통일했던 중세를 지나 근대의 계몽·혁명 시기를 거쳐 20세기까지 이어져 내려온다. 한 권의 책에 기나긴 역사를 담아내기란 불가능한 법. 저자는 핵심 범주를 정하고, 중요한 인물과 사건을 발췌한 후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풍부한 그림과 짤막한 서술, 흥미로운 에피소드는 어렵지 않게 서양사에 다가가게 만든다. 그러나 각각의 사건과 인물이 유기적으로 긴밀하게 연결되지 않는 것은 단점이다.

서양, 위대한 창조자들의 역사 - 서울신문(작성자: 임창용 기자) 

요즘 대중을 겨냥한 역사서들에선 사람냄새가 물씬 풍긴다. 역사적 사건을 연대기적으로 설명하기 위해 마지못해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소설 주인공처럼 등장해 사건을 주도해 나간다. 수동태로 쓰여진 문장보다 능동태로 서술된 문장이 자연스럽듯, 똑같은 역사라도 인물을 앞세워 펼쳐 나간 책이 좀더 친근하게 느껴지기 때문이 아닐까?
‘서양, 위대한 창조자들의 역사’(이바르 리스너 지음, 김동수 옮김, 살림 펴냄)는 서양이라는 7000년에 걸친 방대한 시간과 공간의 역사를, 그 주인공인 인물들을 중심으로 전개해 나간 책이다. 서양정신의 기원이 된 역사적 유산들과 사건들, 뛰어난 인물들의 삶과 그들의 창조적 작품들이 어떻게 서양문화를 풍성하게 했는지 생생히 재현하고 있다.
책은 바벨탑으로 상징되는 메소포타미아 문화에서부터 이집트와 그리스·로마 문화, 중세를 넘어 20세기의 서양 정신을 넘나드는 방대한 세계를 펼쳐 보인다. 저자는 때로는 모래가 휘날리는 바빌론 사막의 한 가운데서,7000년 전 거대한 신전을 세우려 했던 고대인들의 꿈을 이야기하고, 에페소스에 남아 있는 성모 마리아의 마지막 집으로 알려진 곳에선 서양에 미친 그녀의 정신적 영향을 떠올리기도 한다.
이같은 방식으로 저자는 서양의 문학이 어떻게 탄생되었는지, 탐구의 정신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최초의 동서양의 충돌로 기록되는 페르시아 전쟁에서 어떤 인물들이 유럽의 운명을 결정했는지, 세계를 뒤흔든 로마의 뒷골목에선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한 편의 다큐멘터리 프로를 틀어주듯 생생히 서술하고 있다.
자자는 역사의 주인공들을 딱딱한 동상이나 제단, 무덤으로부터 과감히 탈출시켜 생명 불어넣기를 시도한다. 책에 묘사된 각 인물들의 일화와 심리가 마치 코 앞에서 보듯 생생하다.
다른 사람의 아내로부터 유혹의 눈짓을 받는 요셉, 은신처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는 성모 마리아, 담벼락에 영원한 사랑의 낙서를 하는 폼페이 연인들, 비극적인 사랑을 나누는 아벨라르와 엘로이즈, 베아트리체의 죽음으로 사창가를 전전하는 단테,“나를 표현할 시간이 더 이상 없구나.”라며 숨을 거둔 화가 세잔 등등.
이들뿐만 아니라 역사서에서 찾아보기 힘든 민초들의 모습도 고스란히 담아 냈다. 프랑스혁명의 급진적 지도자 장 폴 마라를 암살한 25살의 처녀 샬로트 코르데이가 끝까지 흐트러지지 않은 자세로 단두대에 섰던 일, 페르시아 병사가 전쟁의 와중에서 던진 중얼거림 등.
수천년 역사속에서 명멸했던 수많은 인물들이 어떻게 서양문명을 일구어 왔는지 물 흐르듯 일목요연하게 보여 주는 서양 지성사 산책으로 읽어볼 만하다.

인물들이 엮어가는 서양사 - 한겨레 (작성자: 안수찬 기자)

역사책은 쉴새 없이 쏟아진다. 여기 한 권을 더 보탠다. 라트비아공화국에서 태어나 독일과 프랑스에서 공부하고 영국 연방과 동아시아 등을 17년간 여행한, 천생 ‘유럽인’이 쓴 책이다. ‘우리는 서양문화 공동체다(Wir sind das Abendlad)’가 이 책의 원래 제목이다.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는 7천년의 서양 역사를 살폈다.
지은이 이바르 리스너는 그 역사를 쓰기 위해, 서양사의 주류를 이루는 큰 강이 아니라 주변을 끼고 도는 샛강에 자리 잡았다. 이 책이 지닌 독특한 매력의 정체다.
이집트보다 메소포타미아에 더 주목하고, 예수가 아닌 바울과 마리아의 삶에 더 귀 기울이고, 알렉산더가 아닌 필리포스에 더 애정을 쏟는 일이 그래서 가능했다. 이런 역사 서술은 때로 묘한 ‘스릴’까지 전한다. 스페인의 황금기를 일군 필리페 2세를 슬쩍 지나쳐 그가 죽인 아들 돈 카를로스 왕자를 말한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여왕에 대한 설명은 거의 없는 반면, 스웨덴의 크리스티나 여왕이 계몽군주의 또다른 전형으로 등장한다.
그러니까 학창 시절 ‘지겹도록’ 공부한 서양사의 많은 주역들이 이 책에서는 ‘조연’에 불과한 것이다. 등장은 하는데 대사가 몇마디 없다. 나폴레옹, 콜럼버스, 볼테르 등 몇 명의 예외도 있지만, 조연들이 꾸며가는 서양의 샛강을 끝내 지배하지는 못한다. 지은이는 그 샛강이 바로 서양이라는 큰 강의 근본이라고 말하고 있다.
고대 로마와 르네상스의 베네치아, 혁명의 프랑스를 서술하는 대목은 이 책의 백미다. 그 숱한 주역들이 마치 군무(群舞)를 이루듯 속도감있게 명멸한다. 그리고 다시, 샛강에 앉은 어느 주변 인물의 삶에 주목한다. 간혹 역사에 대한 지은이의 보수적 성향이 묻어나는 대목이 있지만, 진정한 보수주의자를 접하지 못한 한국 독자들로선 기꺼이 포용할만하다.

▶ 인물로 보는 서양 예술문화사 - 문화일보(작성자: 엄주엽 기자)

 

사람의 냄새, 문화·예술의 향취가 풍겨나는 서양 역사서다. 라트비아공화국 출신인 저자(1919~1967)는 주로 서양문명의 기원들이 어떻게 형성됐고,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틀에 잡힌 역사서의 서술방식을 벗어나 독자들의 눈높이로 써온 저술가다. 
그의 서술 방식은 주로 구체적 인물과 유적, 문학 등 예술작품에 접근하면서 딱딱한 역사서의 뒤에 숨은 생생한 장면들과 의미를 끌어올린다. 따라서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듯한 현실감을 느끼게 하며 역사속에 잠자는 드라마를 재현해 준다. 책은 메소포타미아 문화에서 이집트와 그리스·로마 문화, 중세를 거쳐 20세기에 이르는 7000년의 서양 문화사, 인물사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등장하는 역사적 인물들의 일화와 심리까지 들여다보는 것이 이 책의 큰 재미 중 하나다. 다른 사람의 아내로부터 유혹의 눈짓을 받는 요셉, 페르시아의 대군에 맞서 마지막 전투에 나서는 스파르타의 장수와 병사들, 은신처에서 마지막 숨을 거두는 성모 마리아, 담벼락에 영원한 사랑의 낙서를 하는 폼페이 연인들 등 유명인물은 물론 민초들의 모습이 세세히 드러난다. 김동수 옮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