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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테네인, 스파르타인 (살림지식총서 173)
윤진 지음 | 2005년 4월 10일
브랜드 : 살림지식총서
쪽수 : 96 쪽
가격 : 3,300
책크기 : 사륙판
ISBN : 978-89-522-0358-8-040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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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문명의 원류인 고대 그리스, 그리스의 양대산맥에 해당하는 아테네와 스파르타. 정치와 사회, 교육과 군사, 축제와 운동 경기 등 다양한 관점에서 두 도시국가의 차이점과 공통점을 천착한 책.
고대 문명의 두 중심지
수호신과 종교
축제
운동 경기
사회구성과 교육
정치와 군사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인물들
왜 아테네에 인재들이 모여들었나?
문화적인 면에서 아테네는 서양사에 있어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높은 수준의 창조성과 다양성을 보여주었다. 그리스의 후대 사람들과 르네상스 시기의 유럽인은 기원전 479년에서 336년 사이의 시기를 고전기, 즉 그리스 문명의 전성기라고 보았다. 이 150년 정도의 기간 동안 아테네는 그리스 문화의 중심지였으며, 그리스의 학교였다. 이 도시는 그리스 전역에서 가장 재능이 넘치는 예술가와 학자들을 마치 자석과도 같이 끌어들였고, 그 중에는 특히 이오니아 지방에서 온 사람들이 많았다.
그렇게도 많은 지성인과 예술가들이 아테네에 몰렸던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아테네가 비교적 부유했기 때문이다. 국가와 개인 모두가 예술가들에게 작품을 의뢰했고, 부유한 사람들은 주요한 종교적 축제 때 그 치장을 위해서 개인적으로 많은 돈을 썼다. 아테네 주민 중에 대단히 많은 수가 어느 정도 글을 읽을 수 있었고, 문화에 대한 비판적 판단력을 지니고 있었다. 다시 말해 문화면에서 넓은 시장이 형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지중해 세계 각지에서 온 재능 있고, 창의적인 그리스인들이 아테네의 대중들 앞에 작품을 내놓게 되었다. 더구나 이런 좋은 조건들이 결합하여 건축, 시각 예술, 문학, 철학 분야에서 주요한 발전을 이룩할 수 있는 이상적인 환경이 조성되었다.







스파르타가 인류에게 남긴 것은?
아테네가 이렇게 높은 수준의 문화와 예술의 경지를 후대에 보여주었다면, 스파르타는 또 다른 면에서 모범이 되었다. 국가에 의한 공교육의 창시, 국가에 대한 충성심, 즉 애국심의 끊임없는 고취, 소박한 생활 방식이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고대 그리스인도 그들 속의 한 도시 국가인 스파르타에 대해서는 하나의 기준이자 모범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바로 아테네의 철학자인 플라톤이 이상 국가의 모델을 스파르타에서 찾았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국가에 의한 공교육은 본질적으로 ‘투철한 국가관’을 심어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를 극한까지 밀고 나간 나라가 스파르타였다. 스파르타라는 서양 고대의 한 나라가 역사 속에서 갖는 의미는 그래서 기본적인 것이다. 사람이 만든 조직 중에서 가장 강력한 구속력을 갖는 국가와 그 구성원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할지를 보여주는 근본적이고도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모델이 스파르타였기 때문이다.







아테네 vs. 스파르타
고대 그리스 역사를 전공한 저자는 이 책에서 우리가 추상적으로만 알고 있었던 두 도시국가의 차이점과 공통점을 고대 사료들을 토대로 하나하나 쉽게 설명해준다. 종교와 축제, 운동 경기와 교육, 여성과 노예에 대한 다양한 관습, 정치와 군사제도 등이 비교되면서 자연스럽게 두 나라의 문화가 설명된다.
운동 경기와 관련해서 흥미로운 예를 하나 들면, 스파르타의 입법자라고 알려진 뤼쿠르고스는 운동에서 사람들이 포기하는 습관을 갖지 않도록 권투 경기를 금했다고 한다. 그가 ‘손을 앞으로 뻗는 행위’가 포함된 어떤 종류의 경기도 금지시킨 이유는 손을 앞으로 뻗는다는 것은 패배의 의미와 자비를 구하는 의미를 가진 동작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스파르타의 어머니들이 전투에 나가는 아들에게 “방패와 함께든지 아니면 방패 위에 얹혀서 돌아오라”고 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이는 전투에 승리하고 돌아오든지 아니면 전사하여 돌아오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상을 꿈꾸고 사회를 개혁한 인물들
아테네와 스파르타는 서양사를 다루는 책들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수많은 인재들을 배출했다. 저자는 그리스의 초석을 다진 이들의 열정을 통해 그들이 꿈꾸었던 이상과 노력을 오늘의 우리에게 보여준다.
솔론은 아테네의 정치가이자 시인, 가진 자들과 못 가진 자들 사이의 깊은 골을 어느 정도 해소해 줌으로써 아테네 발전의 기초를 놓았다고 평가되는 인물이다. 기원전 594년에 수석 아르콘이 된 그는 ‘조정자’(調停者)라는 별명으로 불릴 만큼 계급 간의 갈등과 증오를 희석시키는 데 노력하였다.
기원전 600년이 되면 스파르타는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2/5를 소유하는 강대국이 된다. 이러한 성공의 밑바닥에는 기원전 7세기에 도입되었던 개혁이 있었다. 이 개혁은 정치적으로는 제도를 바꾸어 바뀐 제도에서 중장 보병이 중요한 역할을 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사회・경제적으로는 메세니아의 토지를 시민들에게 분배하여 엘리트 전사 계급을 만들어 내는 것이었다. 이 개혁은 뤼쿠르고스가 혼자 해내었다고 하는데, 플루타르코스에 의하면 뤼쿠르고스의 죽음 역시 매우 전설적이고 극적이었다. 그는 법률과 제도를 정비하고 나서 델포이에 가서 신탁을 물어보겠노라고 시민들에게 이르고는, 자신이 돌아올 때까지 법을 고치지 않겠다는 서약을 받고 스파르타를 떠났다. 델포이에서 신탁을 물어본 그는 자신이 돌아가지 않으면 서약에 따라 스파르타인이 법을 고치지 못하리라고 생각하여 스스로 곡기를 끊고 자살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