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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으로 가는 길-그들이 본 우리2 (그들이 본 우리 002)
알프레드 에드워드 존 캐번디시 지음 | 조행복 옮김 | 2008년 3월 28일
브랜드 : 살림인문
쪽수 : 284 쪽
가격 : 16,000
책크기 : 192×148
ISBN : 978-89-522-075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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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전 사람들이 걸었던 백두산으로 가는 길
이 책은 두 명의 영국 군인이 제물포로 조선에 입국하여 육로로 원산을 거쳐 백두산을 등정하는 여행기이다. “관리의 부패와 ‘짜내기’의 원천”인 서울을 지나 “일생 동안 단 두 번 씻는” 조선인들을 만나며 낙후된 정치·사회·경제적 수준과 이 때문에 고통 받고 있는 조선인들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들을 따라 내륙으로 백두산까지 함께하면서 야생 그대로의 백두산을 체험할 수 있는 책이다. 기산(箕山) 김준근(金俊根)의 풍속화 19점(컬러 7점, 흑백 12점)이 실려 있어 당시 풍속을 사실감 있게 보여주고 있다.
발간사
머리말







1장 홍콩에서 서울까지
2장 서울
3장 서울에서 원산까지
4장 원산
5장 원산에서 장진까지
6장 장진에서 갑산까지
7장 갑산에서 보천까지
8장 백두산 등정
9장 보천에서 원산까지
10장 조선의 사냥감







여정
이 책은 두 명의 영국 군인이 제물포로 조선에 입국하여 육로로 원산을 거쳐 백두산을 등정하는 여행기이다. 여행 중 들르는 지역에 대한 소개, 만난 사람들에 대한 묘사에서 당시 조선의 상황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서울을 관리의 부패와 ‘짜내기’의 원천”으로 설명하기도 하고, 왕실의 무능을 비판하는 대목도 있으며, 당시 고위관료들의 안경 착용은 눈 보호나 시력 교정보다는 위엄을 드러내는 데 목적이 있었다는 언급도 있다. 이밖에도 조선의 군대와 조선의 무역 수치 등에 대한 언급(본문 70~76쪽)이 있다.
조선의 낙후함을 묘사하는 대목에서는 조선인을 비하하는 구절도 보인다: “들리는 말로는 조선인은 일생 동안 단 두 번 씻는다.” 이런 시각을 오리엔탈리즘으로 봐야 할지, 아니면 단순히 정보 부족의 결과로 여겨야 할지는 쉽게 단정할 수 없다. 시종일관 군인답게 눈에 보이는 그대로를 서술하는 데 꽤 충실하기 때문이다. “동대문은 … 성벽의 약 40야드를 차지했고, 한가운데로 나 있는 통로는 너비가 30피트, …” 이런 식으로 건물이나 도구, 지형 등을 묘사할 때는 가능한 수치를 꼭 적고 있으며, 온돌을 설명할 때는 다른 문화의 난방 방식과 비교하여 장단점을 상세히 적고 있다. 또한 조선의 물레방아와 다리, 수레 등의 설계도면 등을 싣기도 했다. 학대 받는 여성에 대한 묘사나 당시의 혼란스러운 사회상 때문에 보통 조선인들이 겪는 고통에 대한 언급에서는 애정이 느껴질 정도이다.
가끔씩 보이는 조선의 정치 상황에 대한 서술도 눈에 띈다. 일본과 청나라 사이에서 독립국 지위를 유지하는 조선의 외교술, 민씨 일가에 권력이 거의 넘어간 상황, 미국인 장군을 외교 고문과 군사 고문으로 삼은 당시 조선 정치 상황 등에 대한 언급 등이 실려 있다.
무엇보다 지금은 갈 수 없는, 내륙을 통한 백두산 여행에 대한 기록이라는 점에서 이 책은 흥미를 끈다. 비록 사회 상황은 변했을지라도, 지금의 우리가 느낄 수 없는 야생 그대로의 백두산 여행에 대한 기록은 어떠한 여행기보다 생생하게 다가온다.
책에 실려 있는 기산(箕山) 김준근(金俊根)의 풍속화 19점(컬러 7점, 흑백 12점)은 당시 풍속을 사실감 있게 보여주고 있다.







국가의 모든 권력은 사실상 임금에게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왕비의 가까운 친척으로 민씨 가문 출신인 영의정에게 귀속되어 있다. ― 70쪽
조선의 여인은 그저 남성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하는 유용한 도구에 불과했다. 결혼은 거래이며 정절은 부인에게만 요구된다. (중략) 사정이 이러하니 일하는 계층의 여성들이 이른 나이에 주름이지고 노파처럼 되는 것은 당연하다! ― 114~116쪽
원산과 나가사키 사이에는 여름에 2주에 한 번, 겨울에 5주에 한 번씩 일본 기선으로 우편물이 왕래한다. ― 124쪽
1884년에 서울에서 일종의 혁명이 일어났다. 수도의 두 파벌이 꾸민 음모가 원인이었다. 한 편은 개화파로 일본이 부추겼으며, 다른 한 편은 수구파로 중국의 지원을 받았다. 개화파는 민씨 가문을 타도하려 했다. 당시 장관인 민영익을 거의 죽일 뻔했고 궁궐을 거의 장악했지만 뒷문으로 피신한 임금은 잡지 못했다. ― 125쪽
북쪽으로 가는 조랑말의 임대료로 요구된 액수는 10리에 130냥으로 하루에 80리를 진행한다고 계산하고 대달러 환율이 555냥이니 하루에 거의 2달러인 셈이다. ― 127쪽
부사의 안경은 지름이 약 2인치로 수정 렌즈를 커다란 호박 틀에 끼워 넣은 것이다. 값은 전부 합해 15달러(약 7500냥) 정도 나갔다. 관리들은 한 편으로는 먼지와 눈부신 빛 등으로부터 눈을 보호하기 위해 안경을 착용하지만 주된 이유는 위엄을 드러내기 위함이었다. ― 131쪽
함흥평야를 떠난 뒤에 벼가 재배되는 것을 보지 못했다. ― 175쪽
조선인은 순수건을 지니지 않으며 종이 손수건조차 없다. 구태여 체면과 겸양을 차리느라 예법을 지키는 일도 없다. 따라서 인간이라는 동물이 내뿜는 여러 가스와 고체 배설물은 남녀를 불문하고 형편이 되는 대로 가장 편리하게 처리된다. ― 178쪽
부사는 이름이 홍남주였는데 서울 사람이었다. 부사는 우리에게 서울로 돌아갈 날만 기다리며 지낸다고 말했다. 부사의 통상 급여는 월 9000냥으로 연간 약 20파운드에 달했다. ― 183~184쪽
나머지 일행은 백두산 산신령의 진노가 그 우매한 머리에 내리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등정에 관여하지 않으려고 했다. (중략) 전날 한밤중에 모두 근처의 작은 통나무 건물로 가서 중얼거림과 손 흔들기, 밥 올리기, 가래 뱉기의 통상적인 의식을 수행하였다. 그 의식은 이제까지 내가 본 것 중 가장 인상적인 의식이었고, 내 편에서도 의지를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 216쪽
오두막에서 2700피트를 오르자 백두산 정상에, 그곳이 정상이었다면, 도달했다. 드디어 나는 해발 8900피트의 고도를 정복했다. (중략) 호수 둘레에 치솟아 있는 스무 개 이상의 봉우리 중 두 봉우리 사이에 도착하니 예기치 못하게 호수 앞에 서게 되었다. 호수가 너무나 갑자기 모습을 드러내 깜짝 놀랐다. 기막힌 풍광이었다. 호수의 절대적인 정적과 짙푸른 색깔은 내 안에서 폭발한 격정과 함께 발아래의 회색 및 흰색 비탈과 강한 대조를 이루고 있었다. ―217쪽
나는 호수가 이토록 짙푸른 색깔을 띠게 된 화학적 원인이 있는지 확인하고 싶어서 호수 물을 조금 떠가서 분석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불가능했다. 비탈은 거의 어디에서나 깎아지른 듯 가팔랐으며, 부서지는 속돌에 발을 내딛는 것은 매우 위태로웠다. ―218~219쪽
조선의 북쪽 지방에 사는 사람들은 확신하건대 남쪽 지방 사람들과 같은 인종이 아니다. 똑같이 게으르고 변변찮은 인간들이 아니라 그 반대로 최대한 열심히 일하고 근면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갑산에서 북쪽 국경 사이의 원주민들은 긴 얼굴에 매부리코를 지녔고, 훨씬 더 남쪽에서 두드러진 편도 모양의 눈과 튀어나온 광대뼈는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 223~22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