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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들레르의 풍자적 현대문명 비판 『벨기에 기행』을 중심으로 (살림지식총서 589)
이건수 지음 | 2020년 3월 16일
브랜드 : 살림지식총서
쪽수 : 140 쪽
가격 : 6,800
책크기 : 120*190
ISBN : 978-89-522-4183-2-040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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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 보들레르 탄생 200주년 기념!

『악의 꽃』의 시인, 보들레르의 벨기에 기행
“벨기에는 똥막대기” “여자는 없고 암컷만”
풍자시집 『우아한 벨기에』 등 국내 최초 완역 수록
현대시의 창시자 보들레르의 가시 돋친 벨기에·벨기에인論
『우아한 벨기에』(全), 『불쌍한 벨기에여!』(개요) 국내 초역 수록

4년 전 압류된 시집 『악의 꽃』이 1861년 마흔 살 때 해금되며 재판을 찍고, 이후 몇 년 동안 샤를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 1821~1867)는 도대체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나중에 『파리의 우울』 『현대생활의 화가』로 묶일 시와 미술비평 원고를 한 편 두 편 발표하게 된 것이 그나마 위안이었다.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에 입후보했다가 가당찮다며 문단의 집중포화를 얻어맞은 끝에 이듬해 1862년 후보에서 사퇴한 것이 어쩌면 그의 ‘잠복하고 있던 병(매독으로 인한 뇌병변)’을 도지게 했거나, 아니면 그 반대인지도 모른다.
궁지에 몰린 시인은 독립한 지 30년이 갓 지난 이웃 벨기에왕국을 ‘자발적인 유배’ 장소로 점찍는다. 교육부에 지원받고자 예산을 신청했으나 무산된 뒤 1864년 봄, 강연이나 해서 펀딩을 할 요량으로 벨기에 수도 브뤼셀을 찾았다. 그러나 강연회는 실패로 끝나고 보수도 보잘것없어, 돈을 마련하러 잠깐 파리를 다녀간 것 말고는 극도의 빈곤과 우울 속에서 만 2년 이상 그곳에 머문다.
『악의 꽃』의 산문·산문시 버전이라 할 일련의 칼럼·메모 들은 생전에 출판은커녕 연재조차 거절당한다. 그는 끝내 반신마비가 되어 넉 달간 병원 신세를 진 끝에 파리로 이송되고, 2년 뒤 숨을 거둔다(1867년, 46세). 시인의 방탕한 사생활처럼 결코 아름답지 않은 이 백조, 아니 ‘흑조(黑鳥)의 노래’가 바로 유작이 된 벨기에·벨기에인 비판 『우아한 벨기에』 『불쌍한 벨기에여!』다.

“동물계의 어떤 종자에 / 벨기에 사람을 분류해 넣을 것인가?” (중략) / (대학자 퀴비에가) “연체동물부터 원숭이까지 / 도대체 어떤 자리에 넣어야 할지 / 도통 알 수가 없어 난 포기하겠소!” (71~72쪽 | 『우아한 벨기에』, 「퀴비에(Cuvier)의 발언」 중에서)

여기(벨기에)에는 암컷들이 있다. 여자들은 없다. (82쪽 | 『불쌍한 벨기에여!』, 「개요 - 4. 풍속들, 여자들과 사랑」 중에서)

벨기에는 똥 묻은 막대기다. 그래서 이 나라는 불가침이 된다. “벨기에를 건들지 마시오!” (94쪽 | 『불쌍한 벨기에여!』, 「개요 - 21. 프랑스와의 합병」 중에서)

그런데 도대체 벨기에와 그곳 사람들의 그 무엇이 이 프랑스 시인을 그토록이나 부아가 나게 만든 것일까? 에스파냐에 이은 오스트리아의 지배, 나폴레옹 프랑스의 점령, 네덜란드에 병합 등 굴곡진 역사를 지나 1831년 왕국으로 독립한 벨기에는, 문화적으로야 프랑스에 비할 바 못 되었다 해도 산업화와 경제적 풍요에서는 프랑스를 능가했다. 그러나 얼핏 ‘늙은 대국의 배알 꼴린 시인’의 토악질로 치부해버릴 수 있는 일련의 메모들 속에서 저자는 신랄한 ‘현대문명 비평’을 간취해낸다(여기서 현대modernité란 보들레르의 당대이니 우리에게는 근대다. 그런데도 저자가 읽어내는 보들레르의 비판에서 우리는 ‘보들레르의 낡은 근대’가 아니라 정말로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의 그림자를 언뜻 볼 수 있다).
‘야만적’인 나라 벨기에의 ‘상스러운’ 국민들에서 보들레르가 느낀 혐오의 본질을 저자는 그들의 ‘따라쟁이’ 기질, 즉 ‘관례주의=순응주의(conformité)’로 요약한다. 벨기에 사람들이 원숭이이고 브뤼셀이 ‘원숭이들의 수도’인 이유다.
40여 년간 보들레르의 숨겨진 보석 같은 작품을 발굴해 연구하고, 국내 초역으로 번역해온 저자 이건수는 『저주받은 천재 시인 보들레르』 등 다양한 보들레르 관련 서적을 출간한 바 있는 보들레르 전문가다.
이 책의 본문에는 『벨기에 기행』 소개는 물론 보들레르가 현대문명을 비평한 흐름을 분석하며, 전통 보들레르 연구에서 사용돼왔던 기존 서명에 관해 검토까지 보들레르 지식의 정수가 담겨 있다. 여기에 부록으로 『우아한 벨기에』 전문(全文)과 『불쌍한 벨기에여!』를 위한 「개요」 전문 그리고 보들레르 생전의 마지막 시집(1866년 브뤼셀)이 된 『표류물』 속 시 세 편을 주석과 함께 실었다. 『우아한 벨기에』와 「개요」는 국내 첫 완역이므로, 본문의 이해를 도울 뿐만 아니라 숨겨진 보들레르의 진품(珍品)을 찾아 읽는 기쁨을 함께 제공한다.

그래도 아무도 나무라지 않는다

“보들레르의 벨기에 기행(紀行)은 한 민족 전체에 대한 그 신랄한 풍자성으로 인해 병든 천재 보들레르의 문학적 기행(奇行)으로 여겨지기도 한다(60쪽).” 그런데 이렇게 벨기에와 거기 사람들을 대놓고 과장, 왜곡, 폄하하는 글을 썼다가 필화(筆禍)를 입지는 않았을까? 실제 보들레르 자신이 “벨기에를 떠난 다음에야 출판할 수 있겠다”고 평할 정도였다니 말이다.
그러나 원고 뭉치(라기보다는 쪽지 더미)를 유고로 남긴 채 보들레르는 세상을 떠났고 그해 『유작집』에서 내용 일부가 공개됐을 뿐이다. 그중 책에서 『불쌍한 벨기에여!』로 소개하는 글들의 전모는 그로부터 100년도 더 지나 1976~80년에야 『불쌍한 벨기에여!』와 『옷이 벗겨진 벨기에』라는 같은 내용, 다른 제목의 두 책으로 빛을 보았으니, 시인은 자기 글에 대한 반응을 볼 기회가 없었다. 책을 보고 사후에나마 짙은 유감을 표한 벨기에인이 있기는 했다.
“개인적인 기억이 없더라도, 조금만 역사를 참조해보거나 벨기에의 삶, 특히 1865년경의 브뤼셀의 생활상을 알고 있는 사람에게 물어만 봐도, 보들레르가 내린 평가와 그의 단언들의 진위를 쉽게 판단하고 가려낼 수 있다(49쪽).”
그러나 “파리 몽파르나스 묘지에 안장된 보들레르 시인의 무덤을 찾아오는 그 어떤 벨기에 사람도 침을 뱉지는 않는다(55쪽)”.
들어가면서: 벨기에 풍자를 통한 보들레르의 현대문명 비판

I. 1864년의 보들레르 기행문

II. 보들레르 시대의 벨기에 왕국

III. 원숭이에서 똥 묻은 막대기까지: 벨기에 사람에 대한 보들레르의 정의(定義)들

IV. 풍속 연구의 예시: 제4장 「풍속들. 여인들과 사랑」

V. 보들레르 풍자의 두 방향: ‘관례주의’와 ‘순응 정신’ 비판

VI. 『벨기에 기행』의 제목 선정과 문학적 의의

VII. 운문시집 『우아한 벨기에』

VIII. 풍자 문학의 절정, 미완의 산문집 『불쌍한 벨기에여!』

[부록 1] 보들레르의 풍자시집 『우아한 벨기에』(국내 최초 완역)

[부록 2] 『불쌍한 벨기에여!』의 「개요」(국내 초역)

[부록 3] 잊혀진 시집 『표류물』 에 실린 세 편의 익살 풍자시



샤를 보들레르 연보

참고문헌
풍자를 위해서라면 과장과 왜곡을 서슴지 않는 보들레르. 모순 덩어리인 그의 삶을 익히 알고 있는 우리가 그를 흉내 내 말해보자면, 보들레르 자신도 그가 비난하는 대상에서 결코 피해 나갈 수 없을 터다. _「들어가면서」, 6쪽

정치와 사회의 각 영역에서 프랑스를 그대로 따라 하는 벨기에. 이곳에서 피할 수 없이 다시금 마주치게 된 프랑스 공화주의나 반교권주의에 대해 보수 성향의 보들레르가 느낀 반감을 짐작할 수 있다. 게다가 ‘어중이떠중이’라며 자신이 평소 폄훼하던 프랑스 공화주의자들의 국가(國歌)인 「라 마르세예즈」를 우연히 벨기에 현지에서 듣게 되었을 때 그가 느낀 당혹감은 대단했다. 이런 상황에서 강연 실패와 출판 좌절로 인해 시인의 반(反)벨기에 감정은 극에 달한다.
이렇듯 벨기에에 대한 불만으로 현지인들을 악의적으로 비판하고 있는 『불쌍한 벨기에여!』 안에서 보들레르는 날카로운 풍자화가의 시선으로 사소한 몸동작이나 목소리 억양에서조차 벨기에 사람들의 내면을 포착할 정도였다. _II. 「보들레르 시대의 벨기에 왕국」, 13쪽

이 책(『불쌍한 벨기에여!』)의 풍자성에 대해서 클로드 피슈아(Claude Pichois)는 “게다가 여기에는 신랄한 기백, 왜곡하는 재간, 날카로운 풍자 감각이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_III. 「원숭이에서 똥 묻은 막대기까지」, 18쪽

첫 번째로 보들레르는 후일 책을 써서 프랑스에 대해 복수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두 번째로는 이 계획의 예행연습으로 벨기에에 대한 책을 목하 진행 중이다. 세 번째로 자신이 품고 있는 인간에 대한 혐오감들이 이 두 권의 책 안에 남김없이 기술되리라는 점이다. 이렇듯 벨기에→프랑스→인류의 세 단계로 점차 확장되어가는 증오의 기저에는 진보의 시대라는 19세기가 드러내 보여주는 당대의 지적 어리석음에 대한 보들레르의 비판이 깔려 있다. _V. 「보들레르 풍자의 두 방향」, 37쪽

한순간이라도 자신만의 독특한 기발함을 잃지 않았던 보들레르는 벨기에 국민이 보여주는 집단적인 모방증을 견디기 어려워했다. _V. 「보들레르 풍자의 두 방향」, 39쪽

결국 벨기에에 대한 보들레르의 풍자는 두 개의 방향성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 하나는 ‘원숭이 짓거리’→‘모방과 위조’→‘관례주의’의 흐름이다. (중략) 또 다른 하나는 ‘패거리 짓기’→‘단체’→‘순응 정신(conformité)’의 가닥이다. _V. 「보들레르 풍자의 두 방향」, 41~42쪽

보들레르의 이런 무례한 비판이 일정 부분 정당성을 갖는 것은 그가 프랑스로부터 피해 달아났던 극도의 물질주의에 벨기에가 매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문학과 예술을 통한 정신의 고양을 도외시한 채 오로지 산업기술의 발전과 물질적 번영만을 추구하는 세태를 그는 서슴없이 질타한다. 이 밖에 『불쌍한 벨기에여!』 안에서 주된 비판의 대상은 진보사상·반교권주의·무신론 등의 주제였다. _VI. 「제목 선정과 문학적 의의」, 47~48쪽

보들레르의 풍속 비판의 진위 여부를 차치하더라도 『불쌍한 벨기에여!』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시의성을 띠고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이 책에서 그가 적시하고 있는 빈약한 정신, 인색한 풍습, 모방을 통한 이익 추구 등은 보들레르 당시의 벨기에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현대문명 전반에 걸쳐 끊임없이 부각되는 부정적 요소들이기 때문이다. _VI. 「『벨기에 기행』의 제목 선정과 문학적 의의」, 49쪽

산업기술에 근거한 근대문명, 우민(愚民) 정치 수준에 머물던 공화주의, 종교화되어버린 물질문명 등은 보들레르가 언젠가 쓰고자 작심하고 있었던 프랑스 문명 비판서와 궤를 같이하고 있다. 결국 보들레르의 예리한 비평은 단지 19세기 중엽의 벨기에나 프랑스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현대의 물질문명 전체에 던지는 통렬한 경고장이었다. _VII. 「운문시집 『우아한 벨기에』」, 54~55쪽

자신이 이 나라를 떠나 프랑스로 귀환하기 전까지는 출간해서는 안 된다고 저어할 정도로 파격적인 과장과 왜곡으로 점철된 (중략) 보들레르의 벨기에 기행(紀行)은 한 민족 전체에 대한 그 신랄한 풍자성으로 인해 병든 천재 보들레르의 문학적 기행(奇行)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_VIII. 「풍자 문학의 절정, 미완의 산문집 『불쌍한 벨기에여!』」, 59~60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