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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지니아 울프 : 살아남은 여성 예술가의 초상 (살림지식총서 053)
김희정 지음 | 2004년 1월 15일
브랜드 : 살림지식총서
쪽수 : 96 쪽
가격 : 4,800
책크기 : 사륙판
ISBN : 978-89-522-0181-2-040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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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면 누구보다 친근감 있는 그녀
많은 독자들이 불평하는 ‘난해함’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지금 울프를 읽는 까닭은 무엇인가. 아마도 그녀의 급진적 세계관과 실험적 기법이 낳은 새로운 통찰이 21세기를 사는 현재의 우리에게 아직도 시사성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의 생애와 작품이 어우러지는 지점들을 추적하는 방식으로, 모더니즘 기법으로 치장된 울프의 언어 저변에 숨겨진 ‘여자이기에’ 쉽게 동감할 수 있는 메시지들을 해명하는 책.
1. 지금 왜 울프를 읽는가
2. 살아남은 여성 예술가의 초상
3. 여성 모더니스트로 탄생 : 그 오랜 모색기
4. 한순간에 삶의 모든 층위를 포착하기
5. 사람의 마음속 생각을 기록하기
6. 셰익스피어에게 누이가 있다면
7. 버지니아 울프, 문학적 대모
읽히지 않는 작가?
버지니아 울프는 20세기 초의 모더니즘 문학을 빛낸 중요한 모더니스트라는 입지 말고도, 제임스 조이스, 조셉 콘라드, 프루스트, 카프카 같은 당대 남성 모더니스트들과 동등한 지위를 누리며 비중 있게 논의될 수 있는 유일한 여성 모더니스트라는 자리를 차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 독자의 입장에서는 선뜻 다가가 한 권 두 권 작품을 읽어낼 수 있는 그런 작가는 아닌 것 같다. 그 높은 명성만을 귀담아 들었을 뿐 작품은 한번도 읽어 본 적 없는 방관자에게 버지니아 울프는 박인환의 시 ‘목마와 숙녀’에 나오는 구절이나 에드워드 올비의 희곡,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 같은 제목 이상의 의미를 던져 주지 못할 것이다.

새로운 실험적 기법
그녀의 작품은 왜 쉽게 읽히지 않을까? 전통 소설의 관례에 도전하여 새로운 실험적 기법을 구사하기 때문이다. 그녀는 플롯, 줄거리, 인물 설명 같은 외적인 세계의 재현을 거의 무시하고 모든 중심을 ‘내부에서 본 삶’에 둔다. 이전의 19세기 사실주의 소설들(우리가 잘 아는 찰스 디킨스, 제인 오스틴, 토마스 하디 등)처럼 소설 첫 부분에서 앞으로 벌어질 이야기 속의 인물이나 배경, 사건 등을 친절하게 설명해 주질 않는다. 그냥 느닷없이 어느 시점, 어느 장소 속의 인물 마음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그리고는 독자로 하여금 그 사람이 되어 주변 사람들의 생각이나 표정이나 감정을 눈치껏 살펴 이해하도록 노력하게 만든다. 한마디로, 작가는 사람들의 ‘밖에 서서’ 설명하지 않고 사람들 ‘안으로 들어가’ 밖에서는 보이지 않고 들리지도 않는 그 사람 마음속의 느낌과 생각을 포착한다. 그것이 ‘의식의 흐름 기법’이다.

서술된 적 없는 여성들의 삶
또 하나 울프의 문학적 도전은 여성들의 삶에 시선을 둔 점이다. 그녀는 “서술된 적 없는 여성들의 삶”을 기록할 새로운 형식을 발견하고자했다. 눈에 보이는 외적 세계의 재현에 치중하는 당대의 사실주의 문학관에서 여성의 세계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냐하면 여성의 삶은 언제나 사적인 내용으로 가득하고 공적인 항목은 비어있기 마련이다. 그들은 주로 감성과 감정 세계를 담당하게 되어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성의 세계를 효율적으로 드러내고자하는 울프에게 공적인 외부세계가 아니라 내부로 들어가는 모더니즘 기법은 아주 적합한 도구이다.
그렇다면 울프가 내면의 세계를, 그것도 여성들의 내면세계를 주로 다루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것은 당시 기준으로 보기엔 매우 과격한 생각에서 비롯된다. 즉, 인간의 경험은 사람마다 다르고 주관적이라는 것이다. 같은 사건이나 환경이라도 성, 계급, 경제 여건에 따라 다르게 해석되고 경험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인간의 모든 경험은 하나의 객관적 진실이라는 것에 의해 재단되었고 그 기준에 벗어나는 경험은 진실이 아닌 것으로 규정되어왔다. 그러나 울프에 의하면 모든 것에는 두 층위의 진실이 함께 존재한다. 때문에 버지니아 울프는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 여성적 가치와 남성적 가치, 정상과 비정상, 안과 밖 모두를 동시에 거느리며 제시할 수 있는 어떤 새로운 소설적 형태와 모양(form and shape)을 추구한다.

살아남은 여성 예술가의 추억
많은 독자들이 불평하는 난해함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지금 울프를 읽는 까닭이 바로 거기에 있다. 그녀의 급진적 세계관과 실험적 기법이 낳은 새로운 통찰은 21세기를 맞은 현재의 우리에게 아직도 시사성이 크다. 울프는 인간이 서로를 다르다는 이유 하나로 가르고 분리하고 편을 만드는 한, 그 이분법적 가치관에 기초해 강자는 약자를 지배할 수 있다는 가부장적 가치관이 팽배해있는 한, 전쟁과 파괴의 양상은 불가피함을 작품을 통해 분명한 목소리로 주장했다.
울프는 의식의 흐름 기법을 통해 겉으로 보이지 않는 인간 내면의 정신세계가 얼마나 광활하며 또 복잡한지를 보여준다. 그리고 더 나아가 지금까지 드러난 적 없는 여성의 세계로 하강해 그 낮선 세계를 탐사한다. 하지만 울프는 여성의 세계가 더 우월하다고도 말하지 않는다. 그녀는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와 양쪽의 경계를 허물어버린다. 자꾸만 경계를 짓고 벽을 쌓아올리고 구분하려드는 가부장적 사회 속에서 울프의 문학이 지니는 의미는 바로 그 대립 넘기, 경계 허물기, 대립된 현실세계를 동시에 포착하기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로써 영국 문학 속의 그 많은 위대한 남성 작가들과 자신을 차별화 하는 데 성공했다.
버지니아 울프에게는 서로 상반되는 이미지들이 있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우리가 가장 흔히 보는 사진 속의 그 연약한 듯, 우울한 듯하면서도 지적인, 젊은 시절의 모습이다. 이 스물몇 살 무렵의 울프는 열세 살에 어머니의 죽음을 맞이한 뒤 겪은 심한 신경쇠약증세, 스물두 살 때 아버지의 죽음으로 증폭된 심각한 정신질환과 자살 시도 등으로 얼룩진 어둠의 터널을 지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시기는 그녀가 처음으로 문학잡지에 익명의 서평과 에세이를 쓰기 시작하며 작가가 되는 길을 암중모색하던 때이기도 했다. _p.3

울프가 의식의 흐름 기법을 처음 본격적으로 사용한 이 소설에서 독자는 클라리사라는 한 인물을 그 여자의 마음속에 흐르는 생각을 통해 알게 된다. 그녀의 매순간 속에는 여러 감각들과 기억, 희망과 두려움이 섞여 있다. 그녀의 모든 경험은 순간적인 감각들로 물들여지고 그것은 또 과거와 미래에 대한 생각들에 영향을 받는다. 우리는 그녀 주변 다른 인물들의 생각, 그녀 자신의 변화하는 생각, 다른 사람들이 그녀에 대해 하는 생각들을 통해 클라리사를 알아간다. _p.50

지금까지 버지니아 울프에 대한 이미지나 평가는 사뭇 다양하게 변천되어 왔다. 속물적 엘리트 그룹의 일원, 실험적 모더니스트, 정신질환자, 성추행의 희생양, 열렬한 페미니스트 등 그녀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여러 각도에서 시도되어 왔다. 그러나 그녀의 작품과 일생을 함께 자세히 들여다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슴 깊이 남는 이미지를 한 가지 간직하게 된다. 그것은 서평, 에세이, 일기, 편지, 강연 등의 엄청난 작업량을 매일매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지속한 완벽주의 프로의 모습이다. _p.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