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출판사가 출판한 책 현재 2,403  
살림출판사홈 > 살림의 책 > 전체도서목록
저항의 방식: 캐나다 현대 원주민 문학의 지평
오민석 지음 | 2019년 11월 28일
브랜드 : 살림인문
쪽수 : 244 쪽
가격 : 13,000
책크기 : 140*210
ISBN : 978-89-522-4164-1-03800
• Home > 브랜드별 도서 > 살림인문
• Home > 분야별 도서 > 인문사회
보도자료 : Ways_of_Resistance_2.hwp
국내 최초의 캐나다 원주민 문학 연구서!
칼보다 강한 캐나다 원주민들의 저항의 방식

핏방울로 써 내려간 그들의 문학은
아직도 결핍뿐인 현실에 어떻게 대응하는가?
자기 땅에서 유배된 상처, 그 기록을 살펴본다!

“원주민의 삶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정치적이다.
개체의 삶이 개인의 의지를 넘어서 이미 결정된 사회적 힘,
즉 시스템에 의해 강제되기 때문이다.”
자신의 언어·문화·전통도 모르는 존재로 철저하게 개조된
캐나다 원주민들은 이 황폐한 현실에 어떻게 저항하는가?
식민 지배의 아픔, 그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본다!

● ‘내적 식민지’ 개념으로 원주민 문학을 분석한다
내적 식민지라는 개념은 원래 레닌의 제국주의론에서 발전해온 것이다. 제국주의가 한 국가(민족)가 다른 국가(민족)를 착취하고 지배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내적 식민지란 하나의 영토(국가) 안에 있는 어떤 정치적·경제적 중심(core)이 같은 영토(국가)에 있는 다른 주변부를 착취하고 지배하는 것을 의미한다.
신식민주의론에서 착취와 억압의 원천이 단위 국가의 외부에 존재한다면, 내적 식민지에서 착취의 원천은 내부가 아니라 단위 국가의 내부에 있다. 이런 점에서 현대 원주민 문학을 분석할 때 내적 식민지라는 개념은 매우 적절한 도구가 아닐 수 없다.

● 자본주의라는 거대한 기계 아래 여러 모순의 문신들
비어트리스 컬리턴의 『에이프릴 레인트리를 찾아서』에는 두 혼혈인 자매가 등장한다. 두 사람은 알코올 중독과 가난으로 부모로부터 강제로 분리되어 고아원에 보내졌다가 백인 가정에 입양된다. 백인의 외모에 더 가까운 언니 에이프릴은 백인 행세를 하며 자신의 원주민 정체성을 감추거나 부인하면서 살아간다.
이에 반해, 동생 체릴은 원주민으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을 오히려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떳떳이 밝힐 뿐만 아니라 인디언의 역사를 공부해 학교에서 발표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자신의 정체성을 대하는 이 서로 다른 두 입장 혹은 태도는 소설의 후반부에 이를수록 점점 뒤바뀐다. 넓은 의미에서 이 소설의 주제가 혼혈아의 자기 정체성 찾기로 읽히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한편 인종적 갈등과 계급적 모순 외에도 성적 모순이 주요하게 다뤄진다. 이 책에서는 내적 식민지 안에서 여성 피식민자들이 당하는 성적 수모와 억압이 가장 극단적인 형태로 표현된다. 원주민 여성을 보는 색안경, 매춘, 강간 등 에이프릴이 진정한 정체성을 회복하고 ‘진정한 해방’을 맞이하기까지, 우리 역시 내적 식민지가 내포한 여러 모순을 직면하게 된다.

● 문화적 파시즘에 저항하는 소수 문학
메릴린 듀몬트의 시집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진짜 착한 갈색 소녀』를 중심으로, 문화적 파시즘에 저항하는 소수 문학의 한 지형도를 그려내고자 한다. 문화적 파시즘은 다양한 요소의 중층적 결합에 의해 구성된다. 그것은 인종·계급·성적 모순의 환유적 결합물이고, 이 결합은 오랜 역사적 과정을 통해서 형성된 것이다.
대부분의 북미원주민 문학이 가지고 있는 정치적·수사적·문화적 긴장은 그것이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중심-주변, 주류-소수 사이의, 이처럼 매우 현실적이고도 역사적인 갈등과 모순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원주민 문학을 포함해 모든 소수 문학은 근본적으로 정치적이고 집단적이다.
소수 문학에 나타나는 개인사의 의미는 더 확대될 수밖에 없다. 개인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는 정치적·집단적 이야기, 즉 다수의 소수자가 공유하고 있는 역사적 서사가 있기 때문이다.

● 폭력 투쟁이 아닌 인디언 방식(나눔의 정신)으로
『슬래시』의 주인공(슬래시)은 다양한 탈식민 투쟁의 현장을 유랑하는 한 청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의 세대가 “특별한 세대”가 될 거라는 말을 듣는다. 그 이유는 증오로 가득 차 있지 않기 때문이다. 슬래시가 수많은 탈식민 투쟁의 과정에서 겪었던 절망은 항상 식민자에 대한 극단적인 증오를 동반했다. 출구 없는 싸움에 그는 번번이 유혹에 시달리지만, 폭력마저도 탈식민화의 궁극적 해결책일 수는 없다. 그는 극도의 무력감과 절망 속에서 술과 마약에 빠져 방황한다.
슬래시는 마약 중독자와 알코올 중독자를 돌보는 어떤 인디언 캠프에서 도움을 받게 된다. “종교적일 정도로 깊이 인디언 방식”으로 사는 원주민들과 만나 몸으로 서서히 느끼게 된다. 늘 그의 주위를 맴돌았지만 단 한번도 그의 것이 되지 않았던 인디언 방식을 말이다. 그리하여 인디언 방식은 “단순히 인디언들만의 생존이 아니라 비인간적 세계에서 인간적인 것의 생존”을 위한 더 큰 싸움을 지향하게 된다.
수많은 비극과 절망, 그보다도 더 큰 비극적 결말 앞에서도 슬래시는 담담하게 고백한다. “이제 나의 절망은 끝났다.” 『슬래시』가 이룩한 리얼리즘적 성취는 교육적 욕망에 일정 정도 억압된 아쉬움에도, 설득력 있는 울림으로 절절히 다가온다.

● 냉정하고 신중하게, 희망으로 나아간다
북미원주민 문학은 일반적인 탈식민주의 패러다임으로 접근하기에는 적절하지 않다. 탈식민주의 이론은 대부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사실상 종료된 직접적 식민 지배와 그 후의 상황을 전제로 하고 있으나 북미원주민은 아직도 직접적·영속적 식민 지배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리 매러클의 『레이븐송』은 현재로서는 거의 해결할 수 없는 캐나다 원주민 공동체의 모순을 매우 냉정하게 재현하는 작품이다. 내적 식민지의 적대적 두 세력이 전혀 다른 문법을 가진, 뿌리에서부터 분리된 집단이라는 사실을 절망적으로 그려내고 있으며, 그 경계의 해체와 재편의 욕망을 레이븐이라는 신화적 존재를 통해 보여준다.
매러클은 자신의 텍스트 안에서 현실과 욕망을 서로 충돌시키면서, 현실 안에서 무력해지고 마는 유토피아 욕망의 얼굴을 들여다본다. 그럼에도 모든 유토피아는 ‘도래할 미래’이므로 매러클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 뻗어나가는 실뿌리처럼 점차 탄탄해지는 저항의 의지
토머스 킹은 식민 현실의 사실적 재현보다는 지배언어로 지배언어를 교란하는 독특한 서사 전략을 구사한다는 점에서 ‘재현’에 중점을 둔 컬리턴이나 암스트롱 같은 작가들과 차이를 보인다.
그는 원주민 문학에 곧잘 나오는 코요테처럼 백인 지배담론을 마구 횡단하며 균열과 흠집 그리고 구멍을 만든다. 다양한 형태의 기호적 반전, 형태변형, 재맥락화, 혼종화, 판타지 기법 등을 동원하여 동화시키려는 지배담론의 의지에 저항한다.
실험주의인지 아닌지와는 별개로, 그의 소설이 유럽 중심의 정치학에 강력하게 저항하고 도전하고 있으며, 해체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머리말
자기의 땅에서 유배당한 자들의 문학

제1장 내적 식민지와 성의 정치학
비어트리스 컬리턴의 『에이프릴 레인트리를 찾아서』
- 왜 원주민 문학을 읽는가?
- 내적 식민지의 풍경들
- 피부와 가면 그리고 판타지들
- 성의 정치학
- 희생제의, 판타지를 버리며

제2장 문화적 파시즘과 소수문학
메릴린 듀몬트의 『진짜 착한 갈색 소녀』
- 메티스로서의 혼종성에서 비롯된 시학
- 문화적 파시즘과 성, 계급, 인종
- “악마의 언어”와 혼종성
- 액체성 혹은 그 너머

제3장 내적 식민지와 텍스트의 정치학
지넷 암스트롱의 『슬래시』
- 북미원주민 삶, 현재형으로 읽어내기
- 텍스트의 정치학 1: 성장소설과 탈식민 로맨스
- 텍스트의 정치학 2: 리얼리즘의 강화
- 『슬래시』의 리얼리즘적 성취

제4장 경계와 헤게모니
리 매러클의 『레이븐송』
- 경계에 대한 성찰문학
- 경계와 헤게모니
- 다시 대화를 향하여
- 좌절된 욕망, 현실의 우위
- 내적 식민지의 문제

제5장 유배당한 자들의 서사전략 그리고 전복의 수사학
토머스 킹의 『캐나다 인디언의 짧은 역사』
- 지배언어로 지배언어를 교란시키다
- 유배당한 자들과 소수문학
- 경계를 넘어서, 소수문학의 서사전략
- 다양한 서사전략으로 구축하는 캐나다 인디언의 역사

토머스 킹의 『한 좋은 이야기, 그 이야기』
- 내적 식민지 개념을 도입하다
- 텍스트의 정치학
- 판타지를 동원해 돌이키기 어려운 현실 뛰어넘기

주석
참고문헌
● 문학작품에 나타난 캐나다 원주민의 삶
캐나다 원주민들은 지금도 자신의 땅에서 유배당한 채, 영원히 오지 않을 확률이 높은 해방의 날을 기다리며 살고 있다. 지금도 수많은 원주민이 보호구역에서, 황량하고 어두운 도시의 뒷골목에서 대답 없는 미래와 씨름하며 괴로워하고 있다. 수백 년에 걸친 식민의 역사가 청산되지 않는 한 이들에게 희망적인 미래는 없다.
이 책에 소개된 다섯 명의 작가 비어트리스 컬리턴, 메릴린 듀몬트, 지넷 암스트롱, 리 매러클, 토머스 킹은 모두 캐나다 원주민 출신이다. 현재 캐나다에서 활동하고 있는 시인이자 소설가다. 이들은 작품 속에 자신들의 역사와 고통을 나름의 방식으로 드러내고 있다.
사실 모든 문학은 본질적으로, 결핍의 현실에 대한 대응의 예술적 형태라 할 수 있다. 캐나다 원주민의 궁핍과 결핍의 강도는 역사적으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것이고 게다가 현재 진행형이다. 그러므로 캐나다 원주민 출신 작가들의 문학을 검토하는 일은 매우 흥미롭고도 유의미한 일이 아닐 수 없다.

● 계약서로 가려진, 억압받은 식민의 역사를 복원한다
미국은 주로 물리적 폭력, 대량 학살의 과정을 거쳐 원주민을 말살했다. 반면 캐나다는 이른바 동화정책을 펼쳤다. 식민자 측은 계약·조약·협약을 체결하여 문서로 피식민자 원주민의 영토를 야금야금 차지하고 이들을 보호구역으로 몰아냈다. 기숙학교에서는 “야만인에게 문명을 가져다준다는 신념” 아래, 비교적 최근인 1996년까지 거의 150년에 걸쳐 원주민 아이들의 언어와 종교, 관습 등 정체성을 강제로 무너뜨렸다.
그렇게 ‘인종 개종학교’를 나와도 백인 주류 사회가 받아주는 것도 아니었다. 이들은 자기 부족과 주류 사회, 양쪽에서 철저하게 소외된 채 마약과 알코올 중독, 자살, 각종 범죄 등에 노출된 황폐한 삶을 살았다. 다른 나라에 비해 전쟁과 학살 같은 ‘악몽의 세월’을 상대적으로 덜 겪었으나, 기숙학교 시스템으로 인해 원주민의 유구한 역사와 전통, 세대 간의 연결과 연합은 심각하게 단절되었다. 원주민 공동체는 사실상 해체의 길로 접어들 수밖에 없었다.
이 “부끄러운” 역사는 공식 사과와 표명으로 겉으로는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캐나다 정부와 주로 가톨릭, 개신교 교회가 함부로 만든 기숙학교 제도는, 원주민들에게 유럽과 그 바탕이 되는 기독교 담론에까지 영속적인 반감을 심어주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은 캐나다 원주민 작가들의 시와 소설 속에 때로는 절절한 리얼리즘으로, 때로는 시적 비유로, 때로는 판타지의 형식을 빌려 치밀하게 그려졌다.

● 아직은 먼 미래인 ‘평화로운 공존’
“이 소설을 쓴 것은 해답을 찾기 위한 노력이었습니다. 왜 우리 가족이 모든 것에 맞서는 것 같았는지, 왜 부모님은 알코올 의존증이었는지, 왜 우리는 입양 가정에서 자라야 했는지, 왜 제 두 여형제는 자살했는지 그런 많은 질문에 대해서요. 많은 글쓰기가 해답을 줬지만, 가장 큰 답 중 하나는 제가 평생 원주민 출신이라는 사실을 부끄러워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 비어트리스 컬리턴

“저에게 시란 (메티스 원주민으로서) 많은 수치심을 몰아내기 위한 한 방식입니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해 배운 점은 수치심이 얼마나 사람의 심신을 약하게 만드는가였어요.”
- 메릴린 듀몬트

“제가 진정으로 추구하고자 했던 건, 어떤 특수한 목적을 위해 그 시대를 표현해내는 일이었습니다. ……(단순한 역사적 기록을 넘어)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고, 사람들이 무엇을 느꼈으며, 무엇을 꿈꾸었는지, 그 시대에 고통과 기쁨이 무엇이었는지를 전하고자 했습니다.”
- 지넷 암스트롱

“예전에는 백인을 위해 읽거나 쓰고 싶지 않았습니다. 백인 독자가 제 작품을 읽을까 봐 출간도 미룬 적이 있었죠. 하지만 어느 날 아침, 레이븐이 집 밖으로 나올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어요. 이제는 그런 걱정이 신경 쓰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제가 글을 쓸 때 염두에 두는 사람들은, 바로 원주민들입니다.”
- 리 매러클

“유머는 생존 전략의 하나입니다. 우리는 나쁜 상황에 너무 오랫동안 노출되었고, 할 수 있는 최선이 농담을 던지는 일이었습니다. 유머는 우리가 완전히 미쳐가는 것을 막아주는 한 방법이었습니다. 유머는 비극을 더 깊게 하죠. 사람들을 웃기는 동시에 울게 할 때 저는 유머를 활용했습니다.”
- 토머스 킹

캐나다 원주민 문학 연구는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국내는 물론 현지에서조차 조명을 받지 못하고 있다. 연구량이 빈약하여 해당 작품들에 관한 기존 연구 모델을 찾기도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평화로운 공존’은 먼 미래로, 이루어지기 어려운 미래로 그려진다. 하지만 관심이 늘고 캐나다 원주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면 밝은 미래도 점차 가까워질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 책은 새로운 연구 영역을 여는 작은 열쇠가 될 것이다.
탈식민화 혹은 민족 해방이 제국주의에 의해 침탈된 자신의 영토와 주권을 회복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이들이 앞으로 탈식민화나 해방을 성취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이들은 자신의 영토와 주권을 빼앗긴 상태에서, 바로 자신들의 영토 안에서 철저하게 주변화된 삶을 강요당하고 있다는 점에서 ‘내적 식민지(internal colony)’의 민중들이다._6쪽

내적 식민지란 한 민족(인종)에 의한 다른 민족(인종)에 대한 식민화의 역사가 영속화되면서, 하나의 국가·영토·사회 내부에서 자본과 권력을 독점한 식민 세력(인종)에 의해 피식민 세력(인종)이 지속적으로 착취당하고 억압당하는 현상과 공간을 가리킨다._21쪽

소수 문학에서 비정치적이고 비집단적인 이야기는 없다. 그것이 유년의 기억이건, 성년으로서의 삶의 어떤 단계에서의 이야기이건 소수 문학의 주체들에게 모든 사건은 정치적이다. 여기서 정치적이라는 것은 개체의 삶이 자신의 의지와 무관한, 개인의 의지를 넘어서 이미 결정된 사회적 힘, 즉 시스템에 의해 무리하게 강제되는 상황을 뜻한다. 이런 점에서 백인 주류 북미 사회에서 원주민의 삶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정치적이다._53쪽

그것은 마치 무의식처럼 결코 숨겨지지 않으며 지워지지 않는다. 원주민 문학이 하는 일은 백인 식민자에 의해 억압된 자신들의 존재를 강박적으로, 반복적으로 드러내는(회귀시키는) 것이다. 그리하여 식민자들에게 원주민의 존재는 일종의 반복되는 악몽이고, 그 악몽의 근저, 즉 무의식에는 수탈과 비행으로 얼룩진 (감추고 지우고 싶은) 부끄러운 역사가 존재한다._71쪽

소수 문학(minority literature)으로서의 캐나다 원주민 문학은 다양한 서사전략을 구사하여 주류 백인 담론에 흠집을 낸다. 가령 토머스 킹(Thomas King) 같은 작가는 백인 주류 담론이 만들어낸 창조서사들을 원주민 입장에서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다시 쓰거나, 트릭스터(trickster)를 동원한 말장난, 판타지 기법 등을 동원해 백인 담론이라는 기호적 구성물(constructs of signs)의 불안정정(unstability)을 근저에서 활성화시킨다. 토머스 킹의 서사전략이 어찌 보면 포스트모던적(postmodern) 언어의 유희를 통해 주류 담론을 조롱하고 전복한다면, 암스트롱은 거꾸로 전통적인 리얼리즘 기법을 동원해 서양 근대가 만들어낸 제국의 담론에 도전한다._109쪽

북미원주민 부족의 신화에 등장하는 가장 흔한 트릭스터는 코요테와 레이븐이다. 북미원주민 신화에서 트릭스터는 항상 양가적 존재로 묘사된다. 그것은 지혜와 무지, 영웅과 바보, 선과 악, 파괴와 생산이라는 대척적 자질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존재다. 그것은 항상 가치의 극단에 양다리를 걸침으로써 모든 형태의 규정에서 벗어난다._142~143쪽

“허락되지 않음”이라는 말은 백인-원주민 사이의 위계적 권력 관계를 정확히 보여준다. 백인들이 허락하지 않는 한 아무것도 얻을 수 없는 일방적 관계가 피식민지의 현실이다. 오랜 집단 무의식이 만들어낸 레이븐 신화도 먹히지 않는 척박한 현실이야말로 식민지 원주민의 공간이다._152쪽

백인 사장인 하퍼 스티븐슨(Harper Stevenson)은 자신의 사무실 벽을 흰색으로 칠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아무리 흰색 페인트를 칠해도 벽은 흰색으로 바뀌지 않는다. 이유를 알 수 없자 그의 비서는 원주민이자 흑인과 독일인의 피가 섞인 페인터인 아푸아(Afua)를 불러 그 이유를 설명하게 한다. 그녀에 따르면 그 벽은 너무 오래되었고 역사, 즉 기억을 가지고 있으며 그래서 흰색으로 칠해지지 않는다. 스티븐슨은 말도 안 된다면서 “색깔이 피라도 흘린단 말인가?”라고 되묻는다. 아푸아는 “이 세상은 색깔들로 가득 차 있다”라고 답한다._189쪽

현대 원주민 문학은 타자의 언어로 그들의 비유(trope)를 다시 비유한다는 의미에서 ‘비유의 비유(trope of trope)’이다. 그들은 주인의 비유(master's trope)를 다시 비유함으로써 주인의 주인됨을 조롱하는 원숭이이다. 이 상호텍스트성(intertextuality), 비유와 비유 사이에 원주민의 문학이 존재한다._201쪽

마치 대초원의 늑대나 물소처럼, 트릭스터는 원주민 서사의 이곳저곳에 널려 있다. 원주민 서사에서 트릭스터의 이와 같은 편재성(ubiquity)은, 원주민의 서사가 본래부터 단일한 규범을 인정하지 않으며, 유희와 트릭(play and trick)을 향유하고, 대상에 대한 단일한 해석을 거부하고, 경계를 수시로 넘나듦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모든 것의 약호화를 거부하는, 다양성과 역설의 세계로 열려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_210~211쪽

몸이 굳어가던 한 원주민의 “왜 이렇게 오래 걸렸어요?”라는 질문은-이 단편에서 나오는 원주민 계열 인물들의 유일한 대사이자, 백인들에게는 해석 불가능한 ‘암호’인데-바로 그 오랜 기다림의 정점에서 터져 나온, 판타지 공간의 말놀이 규칙을 공유하는 자들끼리만 서로 이해할 수 있는 소통의 언어이다. 토머스 킹은 이 단편에서 개연성의 말놀이 공간을 판타지의 말놀이로 덧칠하면서, 현실 속에서 불가능한 것의 ‘상상적 해결(imaginary resolution)’을 도모하고 있는 것이다._227쪽